최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자사고 폐지 정책’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자사고.
그동안 서울 시내 14개의 자사고 중 최근 8개가 재평가를 거쳐 지정이 취소되는 등의 일이 있는 등 자사고 정책은 이 짧은 기간 동안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명문대를 수두룩빽빽하게 보낸다는 자사고가 기존의 외고나 과고와 뭐-가 다르다고 폐지가 논의되고 있는지 의문이 드시는 분들도 계실 터입니다. 그러나 반전이 있었으니. 이 같은 평지풍파(!) 와는 상관없이 명문대를 수두룩뺵빽하게 보낸다는 ‘자사고 바람’의 주인공은 ‘다른’ 자사고들입니다.
(가나다순으로) 광양제철고, 민사고, 상산고, 현대 청운고, 포항제철고 ,한일고, 해운대고(해운대고는 재단의 자금 사정으로 2010년에 일반고로 전환됐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 라인에 합류한 용인외고와 하나고 . 똑같이 ‘자사고’라고 부르지만 이 자사고들은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의 준말입니다. 취소 논란으로 최근에 뜨거운 감자 신세가 된 자사고들은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구요.
헷갈리시죠? 저도 헷갈립니다
미리요약: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 명박 오빠가 하자고 함 -> 명문 일반고 대거 지원 -> 흐규흐규 정원미달 -> 고등학교 줄이나 세우고 돈이나 받아먹고 쓸데없다는 비판 나옴 -> 지금 교육부랑 교육감이랑 fight 중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고교 다양화 300’ 정책으로 2012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50여개의 고등학교를 이르는 말입니다. 각 동네에서 조금 유명하다, 싶은 ‘명문 일반고’들이 대거 지원해 이 때 자사고로 많이 전환했습니다. 그 왜 있잖아요, 일반고임에도 불구하고 한 해에 서울대를 수십 명 보낸다고 하는 그 동네의 ‘명문’ 고등학교들 말이에요.
하지만 지정된 지 올해로 2년차, 재평가를 해보니 반드시 내야 하는 재단전입금을 교육청에 납부하지 않은 학교, 일반고보다 비싼 수업료 등으로 인해 오히려 정원이 미달되는 학교 등 다양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고, 고등학교 서열화에 가세한다는 비판을 받아 최근의 폐지 논란으로까지 문제가 치닫게 되버렸다는 겁니다. 뭐, 그렇습니다.
자사고 말고 자사고요
하지만 오늘 ‘너어디고’에서 이야기하는 자사고는 그 자사고가 아닌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입니다. 이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란 건 2002년에 처음 등장합니다. 고교 평준화에 대한 빗발치는 비난을 막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고등학교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2007~8년 즈음에 점차 각 고등학교의 1, 2기들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데, 이때 어마무시한 대학 입시 성적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 때의 자사고 열풍은 후에 전반적인 특목고 열풍으로 번지고, 그 열풍은 2010년대 초반까지 주욱 이어졌습니다. 그 열풍의 절정기 – 공부 잘하는 친구 치고 페르마나 대치동 각종 창의력 수학학원에 안 다니는 애가 없었던 – 에 살았던 세대가 지금 20대 초반이 됐습니다.
얼마나 잘났냐고요?
인터뷰이 중 한 명은 제게 “한 해에 서울대를 가는 숫자가 연, 고대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과 비중이 높아서 그렇긴 하다”고 한 마디를 덧붙이긴 했지만요. 다른 인터뷰이는 “주변에 의대 친구들은 많아서 평생 아파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했죠(네 거짓말 아니에요 정말 들은 말입니다 촤하핳핫 저도 부러워지는군여). 또 다른 인터뷰이는 입학식 때 “대 입시 명문 고등학교 OO고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현실판 정글고에 들어온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현실파 정글고’라는 그 표현은 랫사팬더가 자사고 출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챱챱-한 느낌을 확 압축해 설명해주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성해 봤습니다. 이른바 ‘시간차 자사고 토크-쑈’. 제가 질문하고 친구들이 답해줬습니다.
- 인터뷰이들은 모두 익명 처리를 했습니다. 읽으실 때 헷갈리지 않도록 미리 한 번 정리해 드립니다.
해운대고 나온 김해운대, 상산고 나온 정상산, 포항제철고 나온 이포고, 청운고 나온 박청운이 등장합니다. 참고로 성씨는 모두 랜덤입니다. 인터뷰이 신상공개 ㄴㄴ해!
대 입시 명문 고등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낯선 이여
랫사: ‘자사고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던 그 당시를 돌이켜보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공부를 우리 학교에서/ 우리 지역에서 잘 하는 편인데 – 공부를 잘 하니까 뭔가 다른 학교에 가고 싶었긴 했는데, 혹은 주변에서 부추겼는데 – 전형이 나에게 잘 맞아서/지역적 메리트가 있어서 그 고등학교에 가게 됐다”는 구조의 이야기를 많이들 하던데, 한번 직접 들어보기로 하죠.
그 학교를 가기로 결심했던 계기가 뭐-에여?
김해운대: 우리학교가 특징이, 자사고 중에 유일하게 남고였거든. 그걸 오히려 장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던 게 나 때가 10 수능때였는데 내신이 막 죽음의 트라이앵글, 등급제 하고 막 그렇게 난리날때라서 그랬지. 막 여자애들은 수행평가 괴물들? 그래서 오히려 남녀공학을 회피하는 애들이 있었어. (중략) 나는 특목고 목적이 좀 달랐던 게, 보통 사람마다 공부에 중점을 둔 계기가 있잖아. 나는 내가 어릴 때 형이 과고였어. 과고를 가봤거든? 근데 막 쩌는 거야. 내가 언제 갔냐면 막 학부모들이 야식 줄 때. 나도 같이 따라갔는데, 피자, 산딸기 이런거 기본으로 나오고 애들 다 노트북에 사복 입고 있고. 와- 그래서 진짜 막 압도당한거지. 그래서 대학 개념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나도 특목고 가서 저런 생활 하고 싶다, 멋져 보인다, 공부 잘하면 저런 대우 받는구나. 그걸 그 때 본거지. 너무 부러운 거야. 그래서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이 아니라 특목고를 가겠다, 그랬던 것 같아.
정상산: 중2때까지는 딱히 별 생각없이 – 외고를 준비한다기보다는 학원 종합반 다니면 다 그러잖아 – 잘하는 애들 외고 준비반 이렇게. 근데 나도 내가 막 수학을 자신있게 하고 그런 게 있었는데 문과인가,이과인가 하는 혼란이 왔었어. 그때 마침 자사고반이 신설이 됐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사고 준비를 하게 된 거고, 과고를 못 준비한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특목고 준비를 시작했다고 했잖아. 근데 막 수상실적이나, 서울권같은데는 뭔가 막 엄청 높은게 필요하단 말이야. 제일 큰 건 진로를 명확하게 못 정했기 때문에 (과고에 갈 생각이 없었어).자사고는 문과든 이과든 선택의 폭이 넓으니까. 그러면서도 이제 어느정도 공부 잘하는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끼리 모이니까 분위기나 그런 것도 고려해서 자사고를 가게 됐지.
이포고:사실 포항제철고를 들어갈 생각은 별로 없었어. 어차피 포항은 비평준화 도시라서 주변의 고등학교를 가서 농어촌 전형을 쓰려고 했는데 어머니는 계속 포항제철고를 가라고 했고. 그런데 고등학교를 갈 때 포항이 평준화가 됐어. 그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가장 안정적인 포항 제철고를 가는 게 가장 나을 듯해 포철고로 진학했고. (중략) 학교는 전교 10등 안에 들어야 지원을 해 볼 수 있었어. 친구들이 성적이 좋았기에 지기 싫어서 그랬던 마음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그 친구들이랑 같이 포항제철고에 진학했어.
박청운:원래 사교육을 적게 받은 편이라 준비하고 그런 거는 없었는데 주변에서 그냥 (학교를) 잘 가니까 좋은 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있었고, 처음에 엄마가 나한테 한일고를 추천했었어. 엄마가 중3 1학기 끝나고 한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거야. 그 때 외고는 싫었던 게 내가 수학과, 혹은 경영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외고는 문과 진로만 될 것 같아서 외고는 제쳤고. 그런데 한일고를 찾아보니까 남고(…)더라고. 그래서 그냥 안 되는 학교 다 제끼고 나니까 남는 학교가 청운고였어.
랫사: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가 교육 당국으로부터 독립하는 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첫째가 ‘학생 선발권’입니다. 이 자사고는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할 수 있고, 선발 방식에서도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받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어떤 식으로 각각의 학교에 들어 갔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상산: 1차가 서류인데, 그것도 일반전형이랑 특기자전형이 있어. (중략) 일반 전형은 일단 내신 성적을 환산 점수로 바꿔. 그래서 그 점수가 나온다? 근데 남녀 정원이 따로 나누어져 있어. 여자가 내신 컷이 더 높았고, 남자가 조금 더 낮았던 것 같긴 해. 보통 전교 10등 안쪽이었어야 해. 나는 국영수사과로는 10등 안쪽이었고. 거의다 20등 안쪽?엔 들었던 것 같은데 애들이. 그리고 그걸 가지고 2배수를 뽑아서 면접시험을 보러 가지. 5명씩 조를 짜. 첫 번째 국어를 한 명씩 다른 교실에 들어가서 국어 문제를 주고, 막 시 같은 거 주고 그게 의미하는 바 같은 거 물어봐. 대나무가 의미 하는 게 뭐냐(…) 막 그러면서. 수학 가면 또 그냥 그 면접관 앞에서 문제를 몇 개 풀어. 그리고 영어는 영어대로 하고 그래서 세 개를 봐.
김해운대: 학교에서 수학하고 영어 시험을 따로 치고, 영어는 수능보다 조금 더 어려운 수준? 그냥 수능 1등급 받을 정도 뽑고, 수학 좀 많이 보고. 우리학교는 의대를 많이 보내니까, 수학 쪽에 무조건 가중치를 많이 주지. 시험범위는 막 창의력수학? 그런거 나왔었고.
이포고: 포스코 직원의 자녀 중에서는 내신 상위 30%, 외부인은 내신 3% 정도가 돼야 포항제철고에 지원을 하는데, 원래 비평준화 지역이다 보니 내신 경쟁은 계속 하고 있었지. 고등학교 내신 경쟁이 중학교로 내려온 느낌? 내신만 잘 받으면 들어갈 수 있었기에 따로 공부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어.
박청운: 국영수 봤던 것 같은데, 거기서 한국어능력검정시험이랑 유명한 학원 교재로 쓴다는 학원 책 사서 하고, 수학은 경시대회 책 같은거 사서 보고, 영어도 그냥 학원에서 나왔던 책 가져가서 혼자 공부했어.
랫사: 네네, 뭐 별거 없었다고 하지만 사실 엄청나네여. 내신 뿐만 아니라 국영수 시험을 따로 보고, 그 시험 자체의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음. 내신의 비중이 높은 자사고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자사고는 갈 준비를 하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자립’이 ‘다름’이 되기까지
랫사: 자사고의 또 다른 ‘독립적인 권리’ 중에 하나가 ‘교육과정 자립권’입니다. 그말인즉슨 최소한의 국민공통교육(음미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거나 뭐 그런 거)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교과 과정을 학교가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뜻인데요,
그래서 실제로 학교 교과과정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됐나요? 선생님들은 우월했습니까?
김해운대: 우리는 음미체 비중을 최대한 줄이고 다 영어, 국어, 수학. 우리는 토플이 정규 수업시간에 있었고, 영어 외에도, 그리고 막 시간표도 국어 수학 영어만 하루 종일 있는 경우도 많고. 음미체도 최대한 학생들이 부담을 안가지게 막 감상 이런거 하고, 노래나 악기 안시키고. 수업시간에 힐링할 수 있도록. 미술도 막 재미있는 주제들 해서 예체능 과목에 부담을 안 느끼도록 했었고. 체육도 우리는 배구 이런거 안하고. 주변 호텔 수영장 빌려서 수영같은 거 하고 그랬어.
그리고 특목고는 내신이 딸리니까 그걸 만회할 걸 학교가 준비해주는데,그거 중에 하나가 AP(Advanced Placement, 대학 기초 전공 수준의 과목들을 고등학교 때 미리 시험을 쳐 인증받는 제도. 미국 학교 등에서는 실제 기초 전공 학점으로 인정해 주기도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고등학생들의 똑똑함 자랑용으로 쓰인다)였어. 마이크로, 매크로(미시, 거시 경제학). 문과 상위권 애들 (10~15명) 정도는 무조건 그거 5.0 5.0 있었던 것 같아. (랫사: 참고로 5.0이 만점입니다) 경제경시, 생활법 경시대회 막 학교에서 지원하라고 하기도 하고.
(랫사: 귀족… 학교 아닙니까?) 맞아. 우리 때는 워낙 해운대가 귀족학교 같은 걸로 유명했어. 그래서 우리학교가 해운대 중심가 있고. 그러다보니까 우리학교 애들 막 삥뜯기기도 하고. 한 번은 수업시간에 담임쌤이 불러서 갑자기 수업 잘 듣고 있냬. 집에서 전화가 왔다고, 보이스피싱 전화가 와서 너 아들 납치돼 있으니까 막 입금하라고 연락오고 그랬다는 거야. 뭐 그런 타겟이 될 정도로 유명했던 것 같아.
선생님은 그냥 그랬어. 학교에서 배운 건 없던 것 같아. 사탐도 그냥 인강이 최고였고. 괜찮다, 수업 잘한다 그런 선생님도 없고. 우리학교에 수능출제위원 선생님도 계셨는데 진짜 별로였고, 나중에 도움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당시에는 진짜 쓸모없었어. 그냥 수업시간에 학원 숙제하는 애들도 있고.
정상산:아무래도 국영수 위주로 많이 했는데, 영어 과목만 세 개 였어. 영어 독해, 영어 듣기, 영어 회화. 그리고 고급수학이나, 일반고에서 안 배우는 심화과정, 고급물리, 고급화학 그런 과목들이 있었지. 그런 걸 배우면 좋은 게, 서울대에서 심화과정을 배우는 애들을 대상으로 한 전형이 있어. 그래서 그걸 채우고 가면 자격조건이 돼서 갈 수 있는데, 일반고에서는 지원을 못 하니까.
수학 같은 경우에는 한 학기에 막 수1+수2, 고급수학 같이 듣고 그랬어. 고급 수업들은 선택해서 듣고. 안 듣는 나머지 애들은 자습. 애들이 막 고급 과목을 많이 선택하고 그러지는 않았어. 나는 그냥 흥미로 들었고 보통은 서울대 갈 능력이 되는 애들이 듣고는 하지. 고급수학은 많이 들었는데 물리나 화학은 별로 안 들었던 것 같아.
우리도 음미체를 하기는 해. 근데 1학년 때만 하나? 3학년 땐 안해. 3학년때는 체육만 하고 음악 미술을 안 했어. 기술가정도. 그리고 국영수랑. 2학년때 문이과 정해지고 나면 국영수과 체육 이렇게만 듣는거지.
우리학교는 원래 사립고인데 자사고로 (2003년에) 전환한 거라서 선생님들은 대부분 사립고 계시던 분이고, 전환 후에 오신 분들은 서울대에서 오신 분이 많긴 한데 학력하고 가르치는 실력은 절대 비례하지 않아서, 별 상관은 없는 것 같아. 따로 찾아가서 질문하면 그 선생님이 아는 게 많다는 게 보이긴 하는데 막상 수업에선 별로?
이포고: 수업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은데, 학교는 사학재단이다 보니 선생님들의 라인이 있는게 눈에 너무 띄어. 체육선생이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고 있고,선생이 수업 들어와서 다른 선생을 대놓고 까기도 했고.
박청운: 우리는 학교에서 예체능을 중시해서 음미체도 꼬박꼬박 있었고… 재량으로 오히려 더 넣은 느낌이 드는데? 2학년때는 음미체중에 하나 선택해서 듣게 하고, 3학년때에도 체육을 의무적으로 듣게 했어. 물론 대부분은 자고 자습하고 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런 시간을 빼고 국영수를 넣고 그런 건 없었어. 우리도 영어가 한 세 개 정도는 있었던 것 같은데. 텝스시간이라고 부르는 정체모를 시간이 있었고 그랬는데 거기서 막 많이 배운 것 같지는 않아.
방과후 수업은 따로 돈 내고 듣는 거였고, 논술 수업 같은 경우엔 선생님들을 서울에서 불러왔는데 다른 과목들은 그냥 학교 선생님들이 하시고,.애들이 적게 듣는 편은 아니고 적당히? 듣는 편이었어.
선생님들은…음…우리는 우리 재단 안에 학교가 많으니까 선생님들이 좀 왔다 갔다 하시고 그래서 뭐라 말로 표현을 못하겠네. 아무래도 우리는 워낙 인강이랑 그런 걸 통해서 뛰어난 선생님들을 많이 접하니까 막 엄청나다, 그런 수준은 아니었어. 전반적으로 애들한테 관심이 많기는 하시지? 나는 오히려 국영수선생님들보다는 예체능? 선생님들이 좋았어. 음악이나 미술같은.
랫사: 빡센 수업도 수업이지만, 어마무시한 애들을 뽑아서 가르치니 학교에서 경쟁적인 분위기도 심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 학교의 분위기는어떤지 궁금합니다잉?
김해운대: 스트레스 받는 애들이 많았어. 탈모도 있었고, 공부 진짜 열심히 하는데 내가 봐도 안타까울 정도로 안되는 애들이 있었어. 노력도 노력이지만 머리거든. 그래서 노력해도 한계에 부딪혔던 애들이 스트레스 엄청 받았던 것 같아. 나도 수능 가까워지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 밑에 애들은(…) 성적이 쫙쫙 오르는데 상위권 애들은 유지 자체도 힘드니까, 그런 거에 스트레스 받는 애들이 많았던 것 같아. 그때 고등학교 애들끼리 만나면 맨날 하는 이야기들이 공부 이야기 밖에 안 했었지. 막 기숙사에서 어떤 대학 어떤 전형 이야기하면서 공유하고.
그래서 재수하는 친구들이 많았어. 하도 애들이 눈이 높다 보니까 상위권 애들은 좀 그런 게 있어. 더 의식하는 거. 나랑 비슷한 애가 저기 갔는데 나는 거기 못 갔다는 평생 꼬리표. 그래서 조금만 더 하면 되겠지, 해서 그런 것 때문에 만족을 못 했던 것 같아. 조금만 더 잘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고등학교 진학실적 거의다 재수잖아. 우리학교도 재수 진학실적이 훨씬 좋았지.
정상산: 애들 분위기가 막 예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수능 한 달 전까지도 모의고사로 아이스크림 내기하고. 남자애들이 많아서 그런건지, 분위기에 딱히 예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서로 견제하고 그런 건 없었어. 학업을 장려하는 분위기라기보단 때가 되면 애들이 알아서 공부를 하고, 자습 때도 사실 체크도 잘 안하고.
3학년 때는 하는데 2학년때까지는 자습 체크도 거의 안하고. 기숙사에는 들어와야 돼. 사유가 있는 애들은 11시 반, 사유가 없으면 9시 50분? 반?까지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어. 그리고 12시 15분에 전원이 나가. 막 손전등 키고 막무가내로 그 이상 하는 애들도 있는데, 그거 미친 짓이지. 12시에 자도 7시간밖에 못자.
이포고: 경쟁이 정말 심했다고 생각해. 처음 들어가면 입학 시험을 쳐. 포철고 내부에 거대한 도서관이 있고 다들 자습을 거기서 하는데, 1학년은 자리가 부족했는지 상위 200명 정도 안에 들어야 도서관을 사용할 수 있었어. 하도 주변에서 다들 도서관에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이 얘기를 하다 보니 나도 ‘엇, 그런가’ 싶어서 경쟁에 몰두하게 되고. 매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올 때마다 도서관 자리를 새롭게 배정받았어. 도서관 내에서도 또 성적에 따라서 열람실이 세 단계로 나뉘어. 대략 40명/150명/그 외로. 사람 수가 다르다 보니 쾌적함이라든가 학생 관리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
월말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면 상위 30명의 점수와 실명,성적이 교실 뒤편에 붙어. (랫사: 오… 우리학교는 상위 50명이었는데!픵픵! )그러니까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은 전교생이 다 알고 있어. 공부 잘 하는 애들한테 뭐든지 다 몰아줘. 그래서 걔네가 반장, 부반장도 독점하고, 학교에서도 대접받고 애들도 우러러보니까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야. 공부 잘하는 상위그룹한테는 학교에서 정말 각종 혜택을 막 줘. 멘토링, 논술 특강, 가장 좋은 열람실 등등… 각종 논술 대회도 보내주고. 상위권에는 기본으로 제공하는 게 하위권에게는 신청해야만 할 수 있는 옵션이었어.
경쟁 뿐만 아니라 애들을 억압하는 분위기도 강했는데, 예를 들면 우리 학교에는 이성간 연애 금지 조항이 있었어. 연애단속기간(… 그런 게 있다는 것도 신기합니다만)에 세 명이 불려가서 혼나고 교무실 앞에서 무릎 꿇고 있으라는 벌 받고. 걔네가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이었는데, 니들이 모범을 보여야지 다른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냐, 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대. 우리학교에는 또 교감선생님과 별도로 체육교감선생님이 있었어. 예전에 교련 과목을 담당하던 분이라는데, 체육 시간에 들어 와서 우리에게 제식 동작을 시키고 그랬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
아, 자주조회라는 것도 있네. 선배들이 들어와서 신입생에게 교화/교가/교목 등을 물어보고 못 외우면 벌주고, 청소상태를 검사하고, 사물함도 열어보고 그랬지. 뒤로 나가서 앉았다 일어섰다 각종 기합을 주고 그런 걸 보면 군대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 내가 입학하기 이전에는 아예 오티를 해병대 캠프로 보냈대(…).
박청운: 무슨 청춘물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자사고 애들이 다 나쁘고, 성깔이 더럽고(…)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각자 악의가 아니라 열의를 가지고 하잖아. 그게 서로를 힘들게 하는 느낌이었어.
하루 일과는 대략 이래. 막 아침 6시쯤에 일어나. 기상쏭을 듣고 일어나. 멜론 차트 이런거 틀어주고. 씻고 대충 나갈 준비하고 학교에 가. 그럼 학교 가서 아침 먹고,(아마 한 7시 10분정도) 뭐 학교에서 아침마다 영어듣기도 했었던 것 같고. 가서 자습하다가 조회하다가, 공부하고, 방과후학교 있고, 자습하고, 저녁먹고, 그냥 계속 10시인가? 까지 자습하고 아마 3학년이 11시반까지 자습을 하고 기숙사 갈 때 화장실 이런게 밖에 있어서, 10시쯤 되면 막 생활관 러시해서 씻으러 가고 점호할 때 쯤 애들이 와. 그 때 점호를 해. (점호는 야자 끝나고30분 후야!) 점호 하고 소등도 꽤 금세 했지.
랫사: 그래서… 실제로 진학 성적은 다들 좋답니까?
정상산: 아니. 중학교 때 막 전교권이던 애들을 모아놨잖아. 비율로 따지면 중학교 때 상위 3퍼정도? 근데 애들이 들어왔던 그 상위권 비율 그대로 다 의대, 다 스카이는 아니었어. 그러니까 특히 이공계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양대도 많이 가고, 성균관대도 많이 가고. 근데 생각해봐. 그 신문에서 나오는 합격자 수 같은거. 그게 중복합산을 하잖아. 나 같은 경우에도 연세대랑 한의대가 동시에 됐단 말이야. 되는 애들은 세 개가 다 되. 그리고 재수생도 합치고.
그리고 막상 수능을 점수를 봤을 땐, 점수로 한 80~100등까지 이과애들은 스카이를 가. 나머지 140명은 어디로 가냐, 한양대, 성대에 가. 재수를 해. 그래서 어떻게든 의대나 스카이에 가는 애들도 있고. 재수를 정말 많이 해. 재수학원 가면 상산고 진짜 많아. 확실히 반 넘게는 재수하는 것 같아. (랫사는 그 정도 수준도 어마무시하게 진학을 잘 하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포고: 입학식 때 ‘대 입시 명문 사립고등학교 포항제철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어. 정글고인줄(…) 알았다니까. 그냥 이 학교를 계속 다니면 수능을 잘 볼거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아. 한번 내신을 망쳐서 좌절하고 있을 때 하위권을 차지하던 친구가 ‘어차피 이 학교는 수시가 아니라 정시로 가려고 온 거잖아.’라는 말을 했는데, 다 그렇게 그냥 저냥 있는 것 같아. 진학 성적이 좋은 편이긴 하지.
박청운: 수능 성적에서는 재수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우리가 학교를 보내는 게 기형적이어서. 수시로 서울대를 많이 가. 서울대에서 뭔가 그런 게 있겠지? 잘은 모르지만 알고 보면 내신을 좀 우대해주고 그런 것도 있을 거고. 일단 수시로 학교를 많이 가고, 주로 특기자로. 연고대 간 숫자를 합쳐도 서울대 가는 숫자 될까 말까야. 그리고 연고대는 거의다 재수생이 많고. 예전에는 재수해도 서울대는 내신을 보니까, 정시로는 서울대 가기 힘들고 그러니까 그래서 정시로 연고대를 많이 가고 그랬어. 서울대의 대부분은 현역 수시생일거고, 연고대 대부분은 재수 정시생일거야.
그래서 일단 그런 건 있어. 애들이 수시 넣을 때 연대 학생부 전형 쪽은 안되니까. 애들이 연고대까지 갈 마음은 있는데, 수시로는 별로 연고대에 마땅한 전형이 없어서논술 전형정도만 쓰고 (그래도 안 되는 애들도 많고), 그리고 서성한? 이정도 되면 그냥 고민을 해서 가는 애들도 있고, 중경외시는 확실히 안가고. 거기에 갈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아.
랫사: 김해운대씨도 딱히 ‘몇 명이나 잘 간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의대 가는 고등학교’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만큼의 학교라고 하니 크게 다를 것은 없겠습니다. 하나 주목할 점은 자사고생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재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진학 성적은 절반 이상이 재수생에게서 나오고, 그것은 제가 다녔던 특목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변 애들이 워낙 학교를 잘 가니까 왠지 나도 ‘스카이 미만 잡!!!’하면서 재수 학원을 가야할 것만 같은 압박에 시달리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제 때 그런 학교에 가는 학생들은 많지 않은데도요. 그래서 재수를 해서 명문대를 가고, 그 재수 인원이 포함된 진학 실적을 보면서 학생들은 또 압박을 느끼고,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자사고, 다니는 데 돈은 많이 듭니까?
랫사: 왠지 자사고를 다닌다고 하면 사교육비도 더 들것만 같고, 워낙 자사고 다니는 애들은 잘 사는 애들이라는 이미지가 있기도 한데요.
실제로 잘 사는 애들이 많나여?
김해운대: 수업료만 한 분기에 130정도? 거기다가 기숙사비랑 식비도 있고 식비도 꽤 비쌌어. 또 우리는 실습비같은게 나오는게 수영 하면 호텔 수영장 빌리고 그런식이라(…) 꽤 했었지. 체육복도 시중에 파는 나이키 그런거에 단체 로고 박고 그래서 의외로 세부적이고 부수적인 걸로 비싼게 많았어.
그리고 사교육비도 많이 나갔고. 나도 학원 진짜 많이 다녔고 개인과외, 그룹과외도 하고. 부산에서는 해운대가 약간 강남8학군 그런느낌이라서 학원가가 엄청 발달한 편이야. 평소에는 경시대회 준비할 때 수시로 경시대회 대비 과외 받고 그랬어. 3~4개월씩. 한 달에 80 넘어. 경시준비하는거니까.
그리고 기본적으로 영어 그룹과외랑 수학학원 맨날 다니고. 그거는 1~3학년 내내 꾸준히 다녔고. 아무래도 학부모들이 지방에 있다는 부담감이랑 돈이 많은데 쓸 데가 없는 그런 부모들이 많았으니까. 우리학교는 의대를 비율로 많이 보내는 학교로 유명해서 부모님이 의사인 애들도 많았고. 학부모 간담회하면 주차장에 막 까만 차 있고. 종합병원장, 개인병원 등등 그 안에서도 다양했던 것 같고, 따져보면 부모님 의사인 애들이 40%는 넘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내가 학교에서 이런 학교는 왠만한 애들은 못 오겠다 생각한게, 막 그런 것들 있잖아. 시험 끝나고 단체로 부페 가거든. 그런데 그런 건 다 학부모들이 부담한단 말야. 일인당 부담이 7~8만원이 넘을 텐데 그것도 엄청 비싸고. 학교 야식이 질이 나빠서 학부모들끼리도 따로 돈 모아서 사주셨고. 학교에서도 막 기부금내라고 편지 많이오고. 스승의 날 때는 막 학교 선생님들한테 현금 주고.
정상산: 학비는 다른 학교에 비해서 2~4배, 분기당 100만원정도? 1년에 400. 급식비 한 달에 20, 기숙사비까지 포함해서 한 달에 3~40만원 정도는 들었던 것 같아. 그런데 우리 학교 애들은 학원은 안 다니는 편이었어. 전주에서 오는 애들이 있어(전주 애들은 따로 뽑기도 해). 그런데 전주에서 오는 애들은 비기숙사잖아. 걔네는 학교 끝나면 학원 가기도 하고 막 그러는데 기숙사 사는 애들은 학교가 거의 다섯 시쯤 끝나면 밥을 먹고 그냥 야자를 하고, 기숙사를 와서 기숙사 자습을 또 해. 사유서를 제출하면 이걸 빠질 수는 있는데. (그걸로 많이 째고 다녔지. 클클클) 자습을 하면 11시까지 해. 애들이 학원을 많이 안 다니는 건 아무래도 전주에 있기도 하고, 학원도 잘 마련이 안 돼 있고, 자습하는 풍토가 많기도 해서 그런 것 같아. 애들이 인강을 되게 많이 들었어. 선생님 수업하는데 막 인강 듣기도 했고.
박청운: 근데 잘 사는 애들이 많기는 하더라. 의사도 기본이고, 국회의원 딸이랑, 막 암튼 되게 울산 쪽의 지역 유지? 그런 애들도 있었고 아무튼 되게 애들이 잘 살았어. 씀씀이도 크고.막 졸업하고 나서 애들 성형하고 그런것도 많고. 그런거 고민할때 비용을 고민한다기보다는 그냥 그 하는 거 자체에 대한 고민하는 거 보고 느끼기도 했구.
우리 학비는 일반고의 두 배 수준? 그래서 학비 자체는 다른 데보다는 부담이 적었어. 학원은 거의 안 다니는 분위기였고, 한 3학년때쯤 되서는 특히 울산이나 부산에 사는 애들이 많이 오는데 걔네들의 경우에는 학원을 좀 다니기도 했는데, 근데 그렇게 다니는 게 당연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나는 딱히 아는 학원도 없고 그래서 학원은 거의 안 다닌 것 같아. 그냥 왠만큼 잘 한다고 하는 애들중에서 학원 다니고 했던 애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내 룸메 언어학원 다니고 그런 정도? 우리는 막 학교에서 울산에 그나마 있는 학원가도 엄청 멀고 그래서 학교에서 최대한 해주고, 인강 많이 듣고.
졸업 후에도… 좋아요?
랫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마다 편차는 조금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수한 교육을 제공받되 학교를 다니는 제반 비용은 결코 싸지 않은, 그리고 경쟁적인’ 명문대를 보내는 고등학교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 고등학교를 갔던 것이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해운대: 대학교 수업에 도움이 안 된다고하면 거짓말이야. AP 이런거 생각해보면, 대학 들어와서 경제학입문 들을 때 수업 하나도 안 들어도 다 이해되고. 내 전공은 또 어문계열이라서 과 동기 중에 인문계가 열 명도 안 됐거든? 내가 자사고라서 다른 특목고 애들이랑 더 잘 어울릴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냥 내가 아는 형 중에 하나는 대구의 인문계고 출신이었는데 적응을 못하고 아싸가 됐어. 특목고 분위기랑 인문계고 분위기가 진짜 다른데, 대학 와서 보니까 특목고 애들 많아서 아무래도. 또, 동창회도 활성화돼있고, 의대 많고 문과 적어서 문과 잘 챙겨주고.
정상산: 고등학교를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다시 상산고 갈 거 같아. 거기서 제일 크게 얻은 건 친구고. 공감대 형성이 되는 친구들. 사실 중학교 때 친구를 사귀면 되게 공감대 형성이 덜 되는? 공부를 한다거나 그런 거에 있어서.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오고는 서로 공부 면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았지. 좀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런 거? 아무래도 비슷한 애들을 많이 만나. 그래서 좋고.
대학교 들어와서는 학문적으로 엄청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그냥 내 고등학교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 그런 게 좀 있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아직 체감은 못했는데 같은 대학교들의 선배들과도 그런 게 있을 수 있고.
이포고: 고등학교로 돌아가래도 전혀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 후배들이 나처럼 고등학교만 생각해도 치를 떨게 만들고 싶지는 않고. 내가 다녔던 그 고등학교의 그런 방식으로는 공부는 잘할 수 있지만 옳은 방향은 아니었던 것 같아. 잘못된 부분은 개선했으면 좋겠는데…
박청운: 좋다고 해서 가 봤는데 애한테 그렇게까지 좋은 건 아닌 것 같고. 막상 가보니까 막 꼭 가야 했던 건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내가 다시 태어나면 나를 거기 보낼 것 같기는 한데, 고생해서 강인해지라고 보내는 거지, 거기 가서 똑똑해지라고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 오히려 학교를 잘 갈 목적이라면 일반고에서 얌전히 내신 잘 따고, 학원 잘 다니고 해서 가는 게 더 좋아 보였거든.
사회적인 메리트? 음… 이제 슬슬 취업하는 선배가 생기니까, 의사야 깔려 있고, 회계사랑 삼성전자, 기자, 등등등. 나는 학교에 별 기대가 없었고 선배들 다 학생이고 그랬는데 이제 학교에 그런 면을 기댈 수 있겠다는 게 느껴지긴 하더라고.
‘자립’은 ‘다름’이 되고 ‘다름’은 ‘우월’이 되었네
자사고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 탐험할 수 있었던 저는 사실 인터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면에서 압도(…)를 당하고는 했습니다. 그들이 받았던 고등 오브 고등 교육과, 다양한 경쟁을 부추기는 장치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탈들(야자 빼먹기, 주변 음식점 가서 밥 먹고 들어오기 등등)을 거치며 소화하기 힘들어 보이는 교과 과정과 일상적인 통제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킨 모습들 같은 게요.
그리고 동시에 그 정도만 조금 달랐지, 특목고 교육이라는 것도 결국 이것과 크게 다른 궤를 그리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들이 교육의 다양화에 기여를 하고 있습니까? 다양한 형태의 인재를 길러내고 있습니까? 마찬가지의 질문을 미스핏츠가 살펴 왔고 앞으로 살펴 볼 고등학교들에게 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고등학교가 ‘대학교 보내는 입시학원’으로 바뀌어 버린 수준을 넘어서, 학벌로 나뉘는 계급 의식을 끌어온 ‘미니 대학교’로 바뀌고 있지는 않는지요.
‘자립’형 교육은 ‘다른’ 교육을 만들었고, 그 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우월한 존재’로 인식되고는 합니다. 본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요 (ex. 우와!!! 너 민사고 나왔어?!?? 초천재!!! 와!!!). 이제 출신 대학교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학벌’의 냄새를 맡는 것은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늘 돌아봤던 자사고를 포함해 다양한 학벌 깡패 특목고들이 버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괜히 마음이 챱챱-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