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썸머입니다. 오늘 오전 미스핏츠에서 발행된 이 글, 보셨나요?

링크 클릭해서 지금 보기 ->  외고 나왔다. 질문 받는다. Misfit

http://misfits.kr/2253

#지켜본다가 ‘난 외국어 고등학교 출신이지만 외고 별거 없음 ㅇㅇ’이라며 어그로를 끌었고, 여기에 외고 출신인 #랫사팬더와 일반고 출신 #박궁그미가 묻고 답하여 완성한 글이었습니다. 외고 애들 부자냐, 외고 수업이 그렇게 좋냐, 대학은 잘 가냐 등등… 여러 질문이 던져졌었는데요. ‘일반고-자사고-외고’를 바탕에 깐 이 논의를 지켜보고, 썸머는 조용히 이 글의 후속편을 준비했습니다. 틈새를 공략하는 썸머! 제목은 전편의 제목을 이어 받아 ‘검정고시로 고졸 땄다. 질문 받는다’로 정했습니다. 네. 제가 바로 그 말로만 듣던 그 대한민국 1%, 검정고시 생입니다.

썸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 뒀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하던 날, 자퇴서를 냈습니다. 그 후에 수능 준비를 해서 09년도 수능을 쳤고, 대학에 떨어져서 한 번을 더 쳤습니다. 그래서 2010년도에 신입생으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이 글은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받고, ‘수능’ 쳐서 대학 간 ‘자퇴생’의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인 검정고시생, 일반적인 자퇴생의 이야기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병원에 있어서 학교를 못 다닌 친구들도 있을 거고, 그냥 학교에 가기 싫어서 안 나갔던 친구도 있을 겁니다. 누구를 줘패서, 징계를 받아 학교를 나왔을 수도, 장사를 하고 싶어 학교를 관뒀을 수도 있습니다. ‘1%’라고 하나로 묶기도 힘듭니다. 그렇게도 각양각색입니다.

 

1%의 틈새

일반고생이 71%, 특성화고와 자율고가 25%, 특목고가 3%, 그리고 나머지 틈.

일반고생이 71%, 특성화고와 자율고가 25%, 특목고가 3%, 그리고 나머지 틈.

2013년을 기준으로 보면 전체 학생 중 특목고 학생이 3% 내외, 일반고 학생이 71% 정도입니다. 특성화고와 자율고가 나머지를 차지합니다.

전체에서 따져보면 자퇴생이 차지하는 1%는 굉장히 작은 수 같습니다. 하지만 한 학년이 300명이면 그 중 셋이고, 한 학교로 따지면 그 중 열입니다. 동네로 따지면 더 많겠지요. 2014년 4월을 기준으로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3만명. 이 중 2만 3천명이 자퇴로 학교를 그만 둡니다.

패기 있게 ‘대한민국 1%다!’라고 적어두긴 했지만, 1%는 대략적인 추산입니다. 2014년을 기준으로 한 해 고등학교 자퇴생은 2만여명. (생각보다 훨씬 많지 않나요?) 2013년도 통계에서 전체 고등학생 수가 190만명 정도니까 대략 1%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본 겁니다. 하지만 이중에 굳이 고등학교 학력을 따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자퇴생을 제외한 학업중단자-이를테면 몸이 좋지 않아서, 혹은 퇴학을 당해서, 외국으로 가게 되서- 중에서도 검정고시를 보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러니 단순히 1%라고 볼 순 없습니다. 설렁설렁해 본 추산입니다.

 

1) 어디 아팠어? 2) 학교 짤렸어? 3) 내신 때문에?

(사진=CC, the Italian voice)

왜 학교를 안 다닌 거야? (사진=CC, the Italian voice)

그럼 이 2만명은 왜 학교를 관두는 걸까? “나는 검정고시 보고 고졸 땄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궁그미가 되어 저를 쳐다봅니다. 보통 그냥 왜 관뒀냐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외엔 이 셋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 1은 “어디 아팠어?”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2는 “사고쳤지?”라며 나를 의심하고(ㅋㅋㅋㅋㅋㅋ), 사람 3은 “아, 내신 때문에?” 라고 묻더라구요. 이 셋 중 어느 질문이 가장 많았을까요?

제가 자퇴를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무조건 반대!’라고 말하셨어요. “사고 쳐서 학교 짤렸냐?” 딸이 사회에서 이런 말을 들을 까봐 겁이 나셨던 겁니다. 엄마는 무서운얼굴로 “너 검정고시 봤다고 하면 사회 나가서 사람들 인식이 안 좋다”며 제 자퇴를 말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엄마는, 아마 2번째 질문이 가장 많았을 거라고 답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대학 와서 친구들이 “어느 학교를 나왔냐?” 물으면 처음엔 좀 쫄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 오, 드디어 시작인가? ‘편견’이라는 사회의 커다란 벽에 한 번 나도 부딪쳐 보는 것인가!?!?’ 그렇게 두근두근하며 “난 검정고시 봤어” 라고 말을 꺼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싱거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태연한 얼굴로 이렇게 묻는 친구들이 꽤 됐습니다.

” 아아~ 내신 때문에? ” 이런 반응 (그림= 네이버 웹툰 야매토끼)

그러니까, 정답은 3번. 내신 때문이냐, 외고 다녔었냐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일반고를 다녔습니다.) 대학 친구들이 보통 그렇게 묻습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는 특목고를 나온 친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2005년부터 시작된 내신등급제의 후폭풍으로(저는 2009년,2010년 수능을 봤습니다), 외고에 갔다가 내신이 똥 돼서 자퇴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90년대 후반부터 대학입시에 내신 반영 비중이 늘어나면서, 자퇴로 ‘내신 세탁’을 하는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검고생들에겐 자퇴를 했으니 내신이 없고, 내신이 없으니 수능이 제일 중요합니다. (내신 반영은 ‘비교내신’을 통해 합니다. 이에 대해선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친구들을 본 경험 때문인지 ‘내신 때문에’ 학교를 관뒀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자퇴를 할 당시엔 자퇴한 특목고생들이 몰려가는 재수학원의 ‘자퇴반’이 따로 있었습니다. ‘재수계의 서울대’라 불리는 강남 대성학원의 경우, 자퇴반에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습니다. 대학입시 라군 전형 입시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강대 자퇴반이라니…후덜덜해서 저는 입학 시험도 안 쳤습니다) 외고 자퇴반을 만들면서 강남대성이 입시계의 강자로 떠올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곳입니다만… (사진=SBS 스페셜)

여튼, 제 또래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내신 탓에 자퇴를 하든, 대안 학교를 가든, 정규교육과정을 벗어난 친구들을 본 경험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별 편견도 없고, 별 희한한 반응도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나이 든 분들 반응은 또 다릅니다. (걱정했던 것처럼) 노골적으로 정체를 ‘의심’한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면접을 볼 때 이력을 적어내면 꼭 한 번은 질문을 받습니다.

“학교를… 안 다녔네? (미심쩍은 눈빛 쏘기)”

이렇게요. 옛날엔 다닐 수만 있으면 다니고 싶은 곳이 ‘학교’였기 때문에, 굳이 학교를 벗어날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잘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력서 항목에 고등학교를 쓰라고만 나와있고, 검정고시 이력은 쓸 수 없는 곳도 자주 보입니다.

 

왜 학교를 관두지?

왜 학교를 관두느냐. 교육부의 2014.4 학업 중단 현황을 보면 자퇴 사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2014년 기준 고등학교를 관둔 학생이 3만명 정도입니다 -정확히 30,382명. 이 중 몸이 아파서, 해외로 나가야해서 학교를 관둔 친구들이 5,366명. 그리고 나머지가 80%입니다. 이들이 학교를 관둔 이유 (교육부 통계에서는 ‘부적응 사유’라고 부르는데 이 ‘부적응’이란 말이 참 기분 나쁜데 어쨌든)를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눠놨습니다.

  1. 학업 관련
  2. 자발적 의지 ( ex. 조기진학, 종교, 방송활동 등의 사유를 포괄함)
  3. 기타 부적응

2014.4. 학업 중단 현황 , 교육부 (http://if-blog.tistory.com/4135)

뭔가 나라에서 하는 통계조사 치고 항목 구별이 참 구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자발적 의지를 따로 빼놓다니 그러면 나머지는 자발적 의지가 없는 건지 뭔지. 통계 참 구립니다. 어쨌든, 미스핏츠에서 통계 조사를 할 순 없으니까 이 통계를 두고 보겠습니다. 뭐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할까요?

1등 학업 관련 (32%)

2등 자발적 의지 (26%)

3등 기타 부적응 (25%)

그러니까, 학업을 이유로 학교를 관두는 학생들이 가장 많다는 겁니다. 사실 자발적 의지 항목에서 조기진학도 학업을 이유로 관두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네요. 해외로 나간 20% 친구들 중에도 아마 유학을 목표로 학교를 관둔 친구들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배울 학(學)’을 실천하기 위해 ‘學교’를 떠나는 애들이 많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걸 배울 수 없어서 학교를 관둡니다. ‘사고친 애들이 태반이겠지’ 하는 예상을 와장창 깨는 조사 결과입니다.

저는 어떤 케이스냐구요? 저는 학교가 이상해서 학교를 나왔습니다. 말도 안되는 걸 말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곳. 사회의 축소판이라며 사회보다 더 뒤틀린 경험을 강요하는 곳. 학교가 그런 곳이구나, 하고 자각할 만한 경험을 하고 나니 굳이 뭉개고 있을 필요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신중하게 고민을 한 뒤에 기쁜 마음으로 자퇴서를 내고 학교를 나왔습니다. 방학식 날 자퇴를 해서 그런지 처음엔 그냥 긴 방학을 맞이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자퇴를 결심한 아이들

흐음 자퇴를 해 말아..?

자퇴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한 달 동안 저도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납득하고, 다른 사람도 납득 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인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커뮤니티를 뒤졌고, 책도 읽고 그랬습니다. 찾아보면 자퇴생들의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여기선 자퇴생들이 서로 아침 저녁으로 생존신고를 하기도 하고, 먼저 자퇴를 하고 학교를 나와있는 친구들이 경험담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자퇴를 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간 친구들 이야기도 있었구요. 다들 ‘실패’하지 않으려고 서로를 참고하고, 다독이고, 욕하고 그럽니다. “땡땡 할 거면 자퇴 하지 마라”식의 협박조 글도 여럿입니다. 어설프게 마음 먹고 학교 관두지 말라고 살벌하게 충고 하는 글들입니다.

저도 이런 커뮤니티들을 ‘눈팅’하면서 경험담을 수집했습니다. 아, 자퇴를 해서 이렇게 망할 수도 있구나. 자퇴를 해서 이렇게 재밌게 살 수도 있구나. 그렇게 두루두루 봤습니다. 대안교육을 고민하는 ‘민들레’의 글도 많이 읽었습니다.

책 중엔 조한혜정 교수님의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라는 책과 김현진 씨의 <네 멋대로 해라>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는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탈학교의 경향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진짜 ‘학교’를 찾아 학교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하나의 새로운 흐름으로 보았습니다.

“ 1995년 학업 중퇴자들을 연구하던 나는 아주 새로운 유형의 자퇴생이 늘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새 유형의 자퇴생은 사실상 침몰하는 거대한 배에서 탈출하는 아이들이었다. 그 이후 기존의 학교가 더 이상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잇었고, 이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자구책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과거의 중퇴 이유가 주로 사망, 질병, 가사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지난 3년 사이의 중퇴 현상은 가출과 장기 결석, 학교 생활 부적응, 검정고시, 유학과 이민 등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 여는글 : ‘거리두기’를 위한 방법론, p35

<네 멋대로 해라>의 저자 김현진 씨는 청소년증을 만들자고 먼저 건의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학교를 관두기까지의 고민, 경험, 그리고 학교를 관둔 후 하자센터라는 대안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녀는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에서도 등장합니다. 책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학교를 나오고) 하자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세상을 낯설게 볼 줄 아는 힘’과 ‘혐오할 것을 혐오할 줄 아는 예민함’, 그리고 ‘나의 언어’이다.

십 년이 넘는 학교 생활 동안 내 몸은 온통 싫다고, 여기가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나의 교육받은 이성은 그걸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다. 언론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대고 있는 제도 교육의 모순에 관한 이야기는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 죽은 말이다.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학교라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이탈하는 아이들, p78.

그러니까, 제 경우엔 이런 말들에 큰 충격을 받았고, 단번에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나왔습니다.

앞의 이야기와 연결해보면, 제가 찾아간 검정고시장 안에는 같은 또래라고 해도 각양각색의 친구들이 있었던 겁니다. 외고에서 내신이 안 좋아서 학교를 관둔 친구도 있었을 거고, 학교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애들도 있었을 겁니다. 전자는 제도를 잘 이용하려고 하는 쪽이고, 전자는 제도를 벗어나려고 하는 쪽입니다. 얼핏 보면 무지 다른 부류 같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여기서 얻을 수 없다. 그런 걸 본능적으로 알고 찾아 나갔다는 겁니다.

 

학교를 나와서 어디로 갑니까?

학교를 나오면 하루 온종일이 자기 시간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10년간 ‘시간표’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이 ‘자기 시간’이 생긴다는 건 무척 낯선 일입니다. 어디 소속도 아니고, 누가 시키는 것도 없고, 오라가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대학에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12월부터 시작되는 재수학원 개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자퇴를 한 지라, 몇 개월이 남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까지 5개월 간은 여기저기 기웃대며 혼자 공부를 했습니다. 수유너머나 하자센터 같은 대안공간에서 하는 프로그램도 알아보고, 동네 문화센터에서 책도 읽고,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도 했습니다. 청소년증을 들고 가끔 영화관에 가서 조조영화도 보고 그러고 다녔습니다. 자퇴생도 학생 할인 받습니다. 조조할인까지 해서 5천원이면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자퇴해서 소속이 없어지고 나면, 학생증 대신 ‘청소년증’이란 걸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2004년부터 시행된 제도입니다. 청소년증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청소년증 사진 대부분 처음 보시죠?

사실 갈 곳이야 알아보면 많습니다. 요즘은 더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안공간도 더 많아졌으니까요. 평소엔 그냥 독서실 가고 학원 가고 학교 가는 거랑 별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습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친척 언니랑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혼자 계획을 짜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학교랑 엇비슷하게 진도를 뺐습니다. 격주로 시민단체에서 하는 청소년 동아리 활동도 했는데, 사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잠만 자기도 했습니다. 5개월은 그냥 저냥 마치 긴 방학처럼 금방 흘러갑니다.

 

학교를 나와 재수학원으로 가다 

12월에 동네 재수학원에 들어갔습니다. 문과반이 3개 있는 작은 학원이었습니다. 원래 저도 ‘강!남!대!성!’, ‘강!북!종!로!’ 이런 파워 넘치는 4음절의 명문 재수학원을 들어가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60명씩 들어찬 교실 사진에 식겁하고, 거리가 너무 멀어서 등원부터 실패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동네 학원에 들어갔습니다.

12월엔 수능 기본반을 운영합니다. 본격적으로 우수수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생이 확정되는 게 한 2월 초. 그 때면 재수반이 꽉 찹니다. 12월에 미리 학원에 오는 사람들은 수능을 치자마자 ‘아 이번엔 재수다!’라는 감이 왔거나, 19살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20살이 아니라 30살, 20살이 아니라 18살, 16살. 이런 사람들이요.

각양각색 인간군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CC By Chris, Flickr

각양각색 인간군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CC By Chris, Flickr

 

학원에 들어간 그 겨울, 제 나이가 18살이었습니다. 대부분이 재수하러 온 열아홉 언니,오빠들이었는데, 저보다 어린 친구도 하나 있었습니다. 열 여섯 여자애가 하나 있었고, 저랑 동갑인 남자애가 하나 있었습니다. 남자애는 체육을 하다가 공부로 진로를 틀면서, 학교를 나왔다고 했습니다. 여자애 사정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서른인 언니 하나는 교대를 가고 싶어서 다시 학원을 다닌다고 했습니다. 점심 때면 언니가 바리바리 싸온 반찬을 나눠주셨습니다. 나이는 모르겠지만 재수 학원 선생님보다 누나인 30대 중반 언니도 있었습니다. 그 언니는 학원 복도에서 자꾸 노숙을 하던 (무릎 담요를 덮고…) 미스테리한 인물이었습니다.

한 오빠(or 아저씨)는 한의대를 가고 싶다며 학원을 찾았습니다. 항상 맨 뒷자리에서 책을 비스듬히 책상에 걸치고 뭔가를 끄적거리던 분이었습니다. 옆에 다가가서 “오빠 뭐하세요?”하면 “응. 시 써.” 이렇게 대답하곤 했어요. 문학 시간에 수업 안 듣고 딴 짓 한다고 오빠를 나무랐는데, 알고보니 그 오빠가 등단한 시인이었어요.

나이를 속였던 어린 학원 강사 선생님은, 그 오빠랑 서른 살 언니에겐 어쩔 줄 모르고 존댓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언니, 오빠들은 “선생님, 말 낮추세요.”하고 껄껄 웃었습니다. 그렇게 열 여섯부터 서른 다섯까지,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서 저만의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검정 고시는 어찌 봤는가

정신 없이 수능을 준비하다보니 4월이 금방 왔습니다. 검정고시는 4월, 8월 일년에 두 번을 봅니다. 고등학교를 1년만 제대로 다녔어도 무난히 별 준비없이 풀 만한 시험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같이 학원을 다닌 친구들 모두 딱히 검정고시를 준비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국어,수학,사회,과학은 필수 과목입니다. 그리고 도덕, 체육, 음악, 미술, 실과, 영어 중 2과목을 선택해서 시험을 봅니다.

평균이 60점 이상이면 검정고시 합격입니다. 전에는 과락제라고 해서, 평균이 60을 넘어도 한 과목이라도 40점 밑이면 60점 이하인 과목들은 불합격 처리 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2005년도에 폐지돼서 이제는 그냥 수학이 5점이어도 나머지 과목이랑 합쳐서 평균이 60만 넘으면 합격입니다.

검정고시 수학 과목 기출문제

보시면 아시겠지만, 떨어지라고 내는 문제들은 아닙니다. 선택 과목은 그래도 좀 공부를 해야하지 않나 했었는데, (예를 들어 가정 과목 문제에서 ‘순면’ 표시, ‘울 표시를 골라라, 이런 문제 좀 어렵습니다) 도덕 같은 경우 그냥 ‘착한 사람’이면 풀 수 있는 문제랄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검정고시 성적은 그냥 합격 or 불합격이 중요한 것일 뿐 입시랑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내신 대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내신은 비교 내신으로 들어갑니다) 대학 갈 때 쓸 일이 없는 점수입니다. 검정고시 성적으로 수시를 넣을 수 있는 곳도 왕왕 있습니다. 제가 수능을 볼 때는 고려대학교에서 검정고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 전형이 있었습니다. 거의 뽑지도 않고, 합격자 커트라인이 평균 98점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2014년 대학입시를 찾아보니, 검정고시 합격자를 위한 특별전형을 마련한 곳이 몇 군데 눈에 띕니다. 감리교신대, 경북외대, 동명대, 목원대, 부산외대, 삼육대, 전남대 등 7개 대학이 검고자를 위한 특별전형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전체 선발 인원은 218명. 그러니까, 그냥 검정고시는 ‘고등학교 졸업한다’ 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겁니다.

 

여담 : 검정고시 시험장의 풍경

검정고시 시험장 앞에서… (사진=청운학원 홈페이지)

시험날 아침엔 아주 살벌하게 장사판이 펼쳐집니다. 교문 앞에서 컴퓨터용 사인펜이랑 시계를 파는 아주머니들도 나와계시고, 냉커피, 식혜도 팝니다. 시험 전에 보는 핵심 개념! 이런 책자도 나눠줍니다. 물티슈도 서너개 받았던 것 같습니다. 검정고시 학원에서 온 봉고차도 앞에 서있습니다.

그 장사진을 뚫고 교실로 들어가면, 교실엔 일찍부터 사람이 빼곡합니다. 돋보기 안경을 올리며 공책을 보는 할아버지, 츄리닝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어올린 언니, 머리 안 감고 모자 쓰고 온 오빠, 내 또래 학생. 교실 뒤편에선 다같이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한 교회에서 같이 온 어머님들이신지 ‘하느님 아버지, 우리 모두 무사히 시험을 잘 치르게 해주시고….’ 하시면서 손을 꼭 잡고 둥글게 서계셨습니다.

쉬는 시간엔 심심하니까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제 앞에 앉은 언니는 공부에 대한 의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언니였습니다. 분홍색 츄리닝 바지, 오래 공부하는 사람에게 필수인 텀블러, 슬리퍼, 양치 세트, 올려 묶은 (안 감은) 긴 머리. 머리 띠로 앞 머리를 다 넘겨서 내 공부를 방해하는 한 올의 머리카락도 용서치 않겠다는 의지를 내뿜었습니다. 그래도 이쁘더라구요. 수수하니, 이쁜 언니였습니다.

그 미모를 보고 또 가만 있을 수가 없었는지, 한 오빠가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힐끔힐끔, 껄렁껄렁, 언니 책상 앞에 기대서더니 “저기 점심 다 먹었으면 쉬는 시간인데, 산책이나 같이 하실래요?” 하고 뻐꾸기를 날리더군요. 언니는 당연히 무시했고, 오빠는 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시험장에서 별 일이 다 있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소속으로 대학을 가려다보니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을 가려면 수능 원서 접수도 알아서 하고, 수시 접수도 알아서 하고, 다 알아서 잘 챙겨야 합니다. 사실 5년 전 일인지라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수시 일반전형은 다 넣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학교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는 내신 성적 우수자 전형, 학교 어쩌구 리더 전형 이런 건 (당연히) 못 넣었습니다. 수시는 (아마) 논술을 못 써서 떨어졌고, 결국 정시로 대학에 왔습니다.

검정고시생들은 고등학교를 안 다녔으니 내신이 없습니다. 정시든 수시든 대부분 전형이 내신을 반영합니다. 수능 100% 전형이 아니라면 ‘학교 성적’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학교를 안 다닌 검정고시생들은 ‘비교내신’을 적용 받습니다.

비교내신제는 학생부 성적이 없는 검정고시생들을 위해 마련된 제도입니다. 각 학교마다 다른 방식으로 내신을 산출합니다. 일례로, 수험생들이 지원하는 대학교 학과의 평균 내신 등급을 검정고시 합격생들의 내신 등급으로 매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수시 성적이 동급인 학생의 내신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도 있습니다. 혹은 검정고시 성적을 환산해 내신을 반영하거나, 수능 성적을 기준으로 반영하기도 합니다. (Zimm님의 의견을 참고하여 비교내신 관련 설명을 덧붙입니다.)

겁나 공부를 잘 하는 사람에겐 “내가 왜 평균밖에 안된다는 구야!” 라며 좀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내신이 안 좋은 외고생들의 경우엔 ‘어라? 평균은 쳐주네 헤헤. 학교 내신 엉망인데 헤헤. ’ 할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수능 점수로 쇼부를 보는 겁니다.

검정고시생들은 상대적으로 대입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편입니다.그래도 저는 입시의 최전선에 있다는 ‘재수학원’을 다녔으니, 대학 입학을 지원할 때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게 전형이 거미줄처럼 복잡해서 참 알기가 어렵습니다. 도움을 안 받고 혼자 알아서 했으면 또 얼마나 머리가 아팠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어찌어찌 대학에 왔습니다.

 

마무리

대학엔 ‘교복데이’라는 게 있습니다. 개강 초에 4월 1일 만우절날, 교복을 입고 등교해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그 중엔 앙드레김이 디자인했다는 엘레강스한 교복도 있고, 동네에선 본 것 같은 청색 교복도 보입니다. 그리고 개중엔 교복을 안 입고 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 풍경을 보면 우리가 제각각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날, 교복을 안 입고 온 여느 친구들처럼 사복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삶이 있다는 게 참 재밌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허허)

 

[너 어디 고등학교 나왔니?] 시리즈

1. 외고나왔다질문받는다.misfits

2. 검정고시로고졸땄다질문받는다.썸머

3. 이번엔_과학고다.interview

4. 자사고_나왔습니다.inter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