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아카사카의 거리는 어두웠다. 24시 맥도날드는 2층까지 환히 불이 켜져있었다. 1층엔 주문카운터 뿐이었고, 2층엔 세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교재를 여러권 펼쳐두고 공부 중이었다. 구석으로 흩어진 나머지 두 사람은 남자였고, 둘 다 모자를 눌러쓰고 엎드려 있었다. 매장엔 24시라고 적혀있었지만 실제 매장운영은 세 시까지였다. 잠을 청하던 이들은 3시가 가까워오자 고개를 들고 짐을 챙겼다.
마쿠도난민. 맥도날드를 마쿠도나르도라고 발음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새벽을 떠도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넷카페와 도야(싼 여관)를 전전하며 산다. 좀 더 사정이 나은 쪽은 불법적으로 방을 쪼개놓은 쉐어하우스에 들어가기도 한다. 언제든 떠돌 것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트렁크 가방 한 개 안에 모든 생활을 담아야 한다. 부모의 집에서 떨어져 나온 청년은 도시에서 난민이 된다. 저소득 청년에게 이 시대에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둘 중 하나다. 가족친지의 집에서 원치 않는 동거를 택하거나, 도시를 떠돌거나.
엄마, 나도 이렇게 오래 엄마랑 같이 살 줄은 몰랐어
지난 2월 8일, 도쿄에서 [시민들이 생각하는 젊은이의 주택 문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고베 대학의 히라야마 요스케 교수가 “부모의 집을 나오지 않는, 나올 수 없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할 수 없고, 자립할 수 없는, 자립하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 받지 못하는 청년이 늘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
2013년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의 36.7%.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기를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는 경우 25세~34세 사이가 30.3%로 가장 많았다. 자기 의지로 ‘자유롭게 일하기’를 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제된 상황에서 저임금에 시달린다. 니트족과 히키코모리 처럼 사회에 진입하지 않는 청년들의 자립 문제도 고착화 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고용’과 ‘복지’의 영역에서 해결하려 해왔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없는 상태에서 이 모든 해결책은 무용지물이다. 히라야마 씨는 “라이프 코스 모델 자체가 쇠퇴하고 있다”며 “주택도 예전에는 부모의 집을 떠나 언젠가는 주택을 스스로 소유한다는 모델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연 200만엔 미만의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수도권 간사이 권의 20~39세 미혼 연봉 200만엔 미만의 와카모노(젊은이) 1700여명을 대상 ) 부모와 동거하고 있는 비율이 77.7%. 자택을 소유한 부모들이 주거와 노동 조건이 불안정한 청년층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NPO 모야이의 이나바 츠요시 씨는 ” 부모와 따로 사는 청년들을 보면 노숙 경험이 13.5%이다. 생각보다 높은 수치고, 따지자면 7-8명에 한 명 정도”라고 말했다. 이나바 씨는 “청년들이 집을 빌리기에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넷카페,사우나 같은 곳을) 전전하게 되는 것 같다. 노숙자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소득 청년이라고 하지만 ‘연봉 200만엔 미만’이 포함하는 범위는 결코 작지 않다. 2012년 취업구조 기본 조사를 살펴보면 수도인 간사이권의 20~39세의 근로자 중 30.0%가 연봉 200만엔 미만이었다. 무직자를 제외한 수치다. 이 청년들은 부모의 집에서 독립하지 않고 있고, 독립할 생각도 하고 있지 않으며, 결혼에도 비관적으로 드러났다. 독립할 경우 7~8명 중 1명이 거리로 내몰릴 위험에 처하니 독립을 꿈꾸지 않는 것이 합리적인 것도 맞다. 인생이 정체된다. 밟고 올라설 거점이 사라졌다. 안정적으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은 당연히 남일이다. 셋 중 하나가 결혼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결혼에 대한 인식이 이런 마당에 하물며 출산이야. 부모님의 집에서 장성한 자식들이 늙어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님의 소득도 줄어들고, 서로가 서로를 부양해야할 처지인데, 아무도 부양할 능력은 없는 상태가 찾아온다. 자립하지 못한 청년을 이고 지고 가정은 조금씩 무너진다. 물론, 사회도 함께다.
일시적 노동, 일시적 삶, 일시적 주거.
어제 오늘 시작된 이야기는 아니다. 어찌보면 예정된 수순이고, 꾸준히 일본 사회는 그 징후를 발견해왔다. 2010년 빅이슈 재팬에서 발행한 ‘와카모노 백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젊은 노숙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것을 알게 된 것은 3년 반 전, 2007년 3월의 일이었습니다. 그 달, 노숙자만 판매를 담당하는 잡지인 『 빅 이슈 재팬 』을 팔겠다고 온 13명 중 7명이 40세 미만, 20대-30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노숙자의 평균 연령은 56.9세로 알려졌기 때문에 젊은 노숙자의 출현은 충격이었습니다.”
– 빅이슈 재팬 사노 쇼우지
이러한 ‘노숙자의 청년화’는 극단적으로 드러난 표면일 뿐이다. 그 표면 아래 근근히 살아가는 청년들의 주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맥도날드를 떠돌거나, 1평짜리 넷카페에서 자는 청년들은 드러나지 않은 채 도시를 떠돈다. 2007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넷카페 난민은 5400여명.
그러나 이는 넷카페에서 주 3-4회 이상을 머무는 사람들만을 포함한 수치다. 그 이외 캡슐호텔이나 패스트푸드점을 전전하는 이들은 포함되지 않은 숫자. 주거곤란자의 상담을 돕는 모야이의 이나바 씨는 “그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 이후 정부는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제대로 된 수치는 모르지만 모야이에서 상담하는 기준으로 보면 (청년 층의) 상담 건수가 많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간 모야이에 700-900명 정도가 (상담을 받으러) 오는데 그 중 30% 정도가 20-30대”라는 것이다.
일본에선 주소가 있어야 주민표를 발급 받을 수 있다. 주민표가 없으면 제대로 된 취직이 어렵다. 집세를 못 내서 집에서 쫓겨나면 일을 하기도 어렵게 되고, 일을 하기 어렵게 되면 또 제대로 머물 집을 구하기가 힘들어진다. 악순환이다. 일본에서 ‘집 구하기’는 까다로운 일이다. 일본의 대학생 유토 니시즈카는 “일본에서 집을 빌릴 때는 까다로워서 본인에게 신용도가 없으면 집을 빌리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높은 보증금으로 ‘신용’을 보장하는 식이다. 일본은 보증인을 세우거나 주택 보증회사를 통해 신용을 보증 받는다. 제대로 된 일이 있고, 보증을 해줄 가족이 있으면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다. 부동산 초기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부담이다. 법에 정해진 게 아니라서 지역마다, 경우마다 액수도 다르다. 도쿄의 경우 1~2달치 월세분을 미리 보증금으로 내고, 1달치 정도의 사례금을 집주인에게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유토 니시즈카의 경우 14제곱미터 크기의 원룸에 사는데, 그는 월세 7만엔에 비례해 “시키킹(보증금) 1개월 어치를 포함해 14만엔을 내고 처음에 집에 들어갔다. 레이킹(사례금)은 없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나 이사비용을 포함하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물론 월세 45에 보증금 1000만원(서대문구 연희동 기준)을 부르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여튼 보증인이 없거나 부동산 초기비용이 없거나 하면 묘오오한 루트로 빠지게 된다. 목돈 부담 없이 묵을 수 있는 임시 거처를 전전하는 것이 가장 쉽다. 샤워실도 있고 양말,티셔츠,맥주,온갖 먹을 것을 다 파는 일본 넷카페도 하나의 선택지다. 싼 여관이나, 캡슐호텔, 사우나도 있다. 더 싼 곳을 찾는다면 200엔 음료 한 잔이면 하룻밤을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가게 된다.
좀 더 나은 거처를 찾아보자면 초기 입주비용이 필요 없는 쉐어하우스 같은 선택지가 있다. 좋은 곳도 많지만 ‘말만’ 쉐어하우스고 도라에몽이 사는 벽장 수준인 거처도 있다. 짐을 놓을 자리가 좁으니 트렁크 하나에 모든 살림을 넣고 운신 한다. 꼭 집을 빌리고 싶다면 보증인이 되어줄 회사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신용이 확실하지 않으면 보증회사는 아주 엄격하게 관리를 한다. 월세가 조금만 밀려도 ‘방문을 잠그고 내쫓아’ 버린다.
계약직, 아르바이트, 파견직 근무로 떠도는 도시의 청년들. 일시적 노동은 일시적 삶을 재생산한다. 높은 부동산 비용은 청년을 도시 구석구석 그늘 진 방으로 내쫓는다. 이들에게 집은 단지 ‘걱정 거리’일 뿐이다. ‘재충전을 위한 곳’이라거나 ‘내일을 꿈꾸며 잠드는 곳’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런 집에서 오늘이 저물고 내일이 밝는다. 삶이 툭툭 끊겨 흐른다.
이렇게 20년이 흐른다면…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기 전까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청년들은 알아서 부모 집을 나와 월세-전세-자가 주택 소유로 단계를 밟았다. 이 흐름에 맞춰 일본정부는 ‘중산층’ ‘가족’이 집을 자가 소유하도록 촉진하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내세웠고, 대량의 주택대출을 공급했다. 그러나 ‘저소득’의 ‘1인’,’세입자’가구를 위한 정책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적당히’ 못 사는 사회초년생이 들어갈 수 있는 공공 주택 같은 건 없었다. 청년은 지원의 대상이 아니었다. 회사와 가정이 알아서 책임질 영역이었다.
일본의 기업에선 회사 기숙사를 제공하거나 주거 보조금, 교통비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NHK world에서 일하는 미오 네기시 씨는 한 달에 주거비 2만엔 정도를 회사로부터 지원 받는다. 그가 사는 집은 회사에서 45분 거리이고 집값은 집값은 7만 5천엔. 그러니까 본인 부담은 5만 5천엔이고, 교통비도 지원 받고 있다. 공무원인 타쿠야 (가명) 씨는 월세 7만엔짜리 원룸에 산다. 그의 직장은 2만 7천엔 정도를 서포트해주고, 그는 나머지 4만 3천엔을 부담한다. 그는 “대기업이면 (주거 보조금 지원)을 해주고, 돈 많이 주는 데도 있고, 중소기업 중에는 안 주는 데도 많다”고 이야기했다.
회사에 다닌다면 회사의 보조금을 받거나,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하는 식으로 주거 안정을 보장 받을 수 있었으나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회사도 여력이 줄었다. 모야이의 이나바 씨는 “이전에는 회사에서 맨션 같은 것을 지어서 살게 해줬는데, 버블이 붕괴되면서 그게 다 (회사에) 빚이 되니까 기숙사를 팔아버렸다. 지금도 파견회사가 제공하는 집이 있긴 한데, 그냥 일반 집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예전에는 굉장히 (가격이) 쌌다”고 말한다. 가처분 소득에서 주거비 지출이 커졌고, 기숙사가 아닌 다른 잘 곳을 찾아야 했다. 메뚜기처럼 3개월마다 집을 옮겨다니며 ‘잠만 잘 곳’을 찾아들어가는 청년들이 생겼다. 이나바 씨는 “예를 들어 파견 사원 같은 경우에 일을 3개월마다 바꾸는데 그러면 지역이 바뀐다. 그렇게 되는 경우에 3개월 마다 이사를 해야하니 자기 짐을 많이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박스 하나에 자기 짐이 다 들어가게 해서 돌아다닌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교통비를 지원해주는 회사도 줄어들어서 (지출을) 더 줄이려면 그 회사 주변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와 생존의 집’은 프리터노동조합의 주택 부회에서 만들어진 단체로, 프리터를 위한 저월세 주택 공급을 목표로 한다. 이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 중엔 사원 기숙사에 살던 사람들이 많다. 키쿠치 켄 씨는 “제일 많은 케이스는 일본의 파견업체에 소속되서 사원 기숙사에 있던 친구들이다. 일과 주거라는 것이 이렇게 세트인 것이다. 그런데 해고가 되면 당연히 그 집에서 쫓겨나게 되니까 , 해고가 되는 순간 주택 문제도 생기는 그런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이전에 ‘주거 안정’을 떠받치던 회사들이 이제 여력이 줄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들은 이제 가족에 기대거나, 알아서 도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가족 안에서 늙어가는 청년들
부모 집에 붙어사는 게 ‘해피홈’을 만드는 길이라면 좋겠다만, 그렇지 않다.
‘왜 애가 집에서 나가지 않지? 왜 독립하지 않지? 왜 이 애들은 일하지 않지?’
부모도 당황스러울 뿐이다. ‘젊어서는 사서도 고생’한다며 어깨를 다독이고 가끔은 훈수를 두며 윽박질러봤지만 상황이 나아지질 않는다. 부모도 늙어간다. 연금을 내줄 세대가 부모의 연금으로 함께 생활하고, 그런 상황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당황스러울 뿐이다. 누군가는 캥거루족이라 비웃지만, 부모의 보호 아래 있는 것이 청년에게도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주머니에 애를 담은 캥거루맘도 버겁지만, 다 큰 몸으로 그 주머니에 담겨있는 어른 캥거루도 엄마 못지 않게 그 상황이 버겁다.
이렇게 경제가 꼼짝도 않고 멈춰버릴지 아무도 몰랐으며 이렇게 사람들이 빨리 늙어버릴지도 몰랐다. 애가 이렇게 조금 태어나는데도 양질의 일자리가 줄고 또 줄어들 줄 아무도 몰랐다. 부모의 집을 떠나지 않는 청년. 독립해서 열악한 월셋집에서 저축 없이 살아가는 청년. 그들도 늙는다. 늙어간다.
K2 요코하마는 니트와 히키코모리 청년을 지원하는 단체이다. 이 곳에서 일하는 이와모토 마미 씨는 말한다.
“일본 정부에서 젊은이들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2003년도에 만들어졌는데, K2에서는 처음엔 ’25살까지만 지원하면 되겠지’ 이렇게 (지원 연령)을 상정했다. 그런데 점점 이런 청년들이 늘어나고 아무 것도 안 하기 시작하면서 ‘아 그러면 30살까지 (지원하면) 되겠지’ 그랬는데 ‘아니야 35살도…’ 이런 식으로 가기 시작했다.”
사회에 나갈 때를 놓친 청년들이 적절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그대로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영원히 청년도 아니고, 영원히 건강하지도 않으며, 불안정 속에 나이 들어 가고 있다.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임금에 불안정한 고용, 높은 집값. 포기가 낫겠다 싶을 수 있다. 2015년 통계청에 따르면 일을 하려고 해도 노동시장적 이유로 일을 못구한 구직단념자가 무려 오십만이다. 정확히 따지면 49만 2천이다. 집을 나오자니, 다달이 나가는 집값이 발목을 잡고, 주거비는 허리 졸라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 초, 파이낸셜 타임즈는 생활수준에 있어서 세대간 격차가 보이며, 이 격차는 집값 상승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체 조사를 발표했다. 청장년의 생활수준은 떨어지고 연금생활자는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데, 이는 ‘집을 싸게 살 수 있었고’, 그리고 ‘의미 있는 소득’을 얻을 수 있었던 행운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