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깔쌈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역 이기주의 아웃이라니, 시위 현장(그리고 그 분들)이 떠오르는 이 표현.

한참을 생각하다 이번 글엔 멋진 제목을 달지 않기로 했다. 딱히 멋있는 제목이 붙을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예전 글에서 살짝 언급했듯, 지하철, KTX 등 철도가 지나가는 지역의 교통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획기적으로 편해진다. 그 덕에 역 주변에 번화가가 생겨나고, 상권이 커지며 땅값이 올라간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많은 주민들은 자신의 집 앞에 기차역/전철역이 생기길 바란다. 뭐, 이건 당연한 인간 심리이다.FB_IMG_1438403819437

하지만 최소 수천 억대, 혹은 그보다 높은 자릿수의 건설비용이 들어가는 철도의 특성상(도시철도 기준. 딱 얼마라고 말하기 애매한 게 노선별로 역 수, 역사 크기 및 열차 규모, 토지매입비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노선을 땅따먹기하듯 마음대로 금 그어 지을 수는 없다. 노선 변경 없이 역만 추가한다 하더라도 일단 역사 건설에 개당 수백 억 이상의 금액이 들어가고, 열차 표정속도 감소로 인한 노선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철도 건설은 천문학적인 비용의 대부분이 세금에서 나가기 때문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야 한다. 집 앞에 철도 역(이왕이면 지하 역)이 생겼으면 하는 주민의 바람, 노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정말 필요한 역만 지으려는 정부. 철도 건설은 항상 이 두 집단의 충돌의 연속이다.

만약 지자체의 요구가 정당하고, 역을 추가로 건설해 들어가는 비용과 노선의 표정속도 감소로 인한 손해의 합보다 노선의 혜택을 입는 국민의 편익 정도가 더 크다고 판단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역을 건설하면 된다(잊지 말자. 역 건설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들도 세금을 내고,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우리나라 국민임을).

그런데 문제는 지자체의 역 건설 요구가 ‘부당할’ 경우이다. 여기서 부당하다는 말은, 역 건설로 인한 전체 피해의 규모가 이익의 규모보다 큰 경우를 뜻한다. 이 경우 정부는 (당연하게도) 요구를 거절하게 된다(왜 당연한지는 집에 돌아가 중학교 사회 교과서,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를 꺼내 정독해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역 주민은 포기하지 않고 정부를 계속 압박한다. 민원을 넣고, 시위하는 것은 애교다. 다음 선거에서 의원직을 유지하려 하는 지역구 국회의원, 시장과 구청장에게 압박을 넣어 지역 내 공사 진행을 거부하고, 노선의 혜택을 받는 지역과 싸움이 붙는 등 정상적 공사 진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 등은 노선 개통을 수 년 늦추는 결과를 낳고는 한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노선이 설계 과정에서(때로는 착공 후에도) 지역의 이익 다툼으로 계획이 변경된다. 이번 기획에서는 그 중에서도 지역 이기주의의 희생양이 된 대표적 노선 몇 곳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 타자는 바로 강남리 마을 전철로 전락해 버린 분당선이다.

강남리 마을 전철

수도권 전철 노선도를 보면 우측 하단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노란 노선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분당선이다1)조만간 수원역에서 수인선과 직결운행할 예정이라 수인선도 노란색이다. 분당에서 강남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관통하는 빨간 노선의 신분당선에 비해 비슷한 거리를 돌고 돌고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애초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당선을 보완하고자 신분당선을 만들어서이기도 하지만, 같은 광역철도인데 차이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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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인터넷 노선도에선 차이가 작게 나 보인다. 실제 전철에 달려 있는 노선도를 보면 그 차이는 안습. (출처 : 다음 지도 지하철 노선도)

신분당선 개통 전, 그리고 2012년 선릉-왕십리 구간 개통 전 분당선 분당 최남단 역인 오리역에서 강남역까지는 지하철로 약 한 시간, 버스로는 약 30분이 걸렸다. 조금 비싼 요금을 내더라도 분당 남부와 강남을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버스를 타고 다녔고, 출퇴근 시간대가 아닌 때의 분당선은 상당히 널널해 쉽게 자리에 앉아갈 수 있었다. (이른바 공기수송. 물론 이것은 2004년~2012년 8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선릉-왕십리 구간에 이어 오리-죽전-기흥-망포-수원역 구간이 차례로 개통해 분당선이 수원-용인-분당-성남-강남-강북을 잇는 거대한 노선이 되며 지금은 출퇴근 시간이면 가축수송을 맛볼 수 있다.)

비싼 돈 들여 지은 (당시)분당의 유일한 전철이 공기수송2)공기(air)를 운반하는 것 같다는 풍자적 표현. 반대표현으로는 가축수송이 있다이라니. 왜일까?

분당선의 경쟁력이 떨어진 이유는 여럿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분당선 강남구간의 선형과 무분별한 역 건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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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이 분당선, 주황색이 3호선이다. (출처 : 다음 지도)

분당선과 3호선은 수서-도곡 구간을 같이 달린다. 아니,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분당선이 S자, 3호선이 역S자로 이 구간을 달려 대청역을 중심으로 도곡-대청-수서역에서 두 노선이 교차하며 8자 형태를 띤다.3)대청역 지하에 분당선이 달리긴 하지만 역은 건설하지 않았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나온다. 상식적으로, 열차가 직선 선로를 달리는 것과 곡선 선로를 달리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속력이 나겠는가? 기존 오리-수서 구간도 일직선은 아니지만.

그리고 여기서 노선의 선형보다 더 큰 문제인 역 개수와 역간 간격이 등장한다. 오리를 기점으로 수서역까지는 19km 구간에 역 개수가 11개. 역간 거리의 평균은 약 1.73km이다. 그런데 강남 구간이 추가되며 총 25km 거리에 17개의 역이 생기며 역간 거리의 평균은 1.47km로 줄어든다.4)승강장 길이는 제외한다. 그것까지 하면 복잡해져… 수서부터 선릉까지의 평균 역 간격은 약 1.07km지만, 수서-대모산입구 구간의 한 정거장 거리가 3.1km임을 감안하면 대모산입구-선릉 구간은 600m마다 하나씩 역이 들어서 있는 셈이다. 평행하게 달리는 3호선보다도 역간 간격이 좁은 곳이 있다. 승강장 길이를 제하면 실제 거리는 더 좁아져,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전에는 한티역 승강장에서 도곡역 승강장이 보일 정도였다(승강장 거리를 감안하면 이 두 역 사이의 거리는 400m가 채 되지 않는다). 복잡한 숫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오시는 분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같은 거리에 이전보다 3배 많은 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구간을 달리는 3호선은 분당선보다 역 개수가 많잖아! 뭐가 문제야! 라는 주장을 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물론 분당선과 3호선이 같은 목적의 지하철이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애초 3호선 서울 구간은 도시철도다. 시내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라, 서울시내 전철(대략 1~8호선 노선 서울 구간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은 역간 거리가 짧은 편이다. 시민의 발이 되어 교통 음영지역을 해소하고, 지상 교통을 분담해 교통 체증 해소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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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발 빠르고 편한 도시철도~

반면 분당선은 광역철도5)엄밀히 말하면 광역철도법이 제정되기 전에 건설에 들어간 오리-선릉 구간은 광역철도가 아니다. 선릉-왕십리, 오리-수원 구간만이 광역철도. 하지만 광역철도의 정의를 보았을 때 분당선은 분명한 광역철도이다. 같은 이유에서 3호선 일산선 구간, 4호선 과천선-안산선 구간, 1호선 경부선 구간 및 경인선 구간도 ‘광역철도가 아니지만 실질적 광역철도’로 여겨진다. 분당, 용인, 수원 등 경기 동남부 지역과 서울을 빠르게 이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도시철도가 시내버스와 경쟁하는 반면, 광역철도는 광역 좌석버스와 경쟁하기 때문에, 그만큼 속도도 빠르고 수송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분당선은 오리-수서 약 19km의 구간을 28분에 주파하니 이 구간 분당선의 평균 속도는 47.5km/h이다. 그런데 수서-선릉의 6.4km구간이 개통된 후 분당선은 총 25km 거리를 40분에 걸려 주행하게 됐다. 평균 속도는 37.5km/h. 수서-선릉의 6.4km를 12분에 걸려 주행하는 셈이니, 이 구간의 평균 속도는 32km/h가 되는 셈이다.6)여기 나오는 숫자들은 대략적 수치로, 근사치로 보시면 된다. 정확한 값을 원하는 분은 코레일에 연락해서 직접 문의하시길 바란다그리고 그렇게 철싸대가 되는 거야!! 하하하7)왕십리-수원 전 구간이 개통한 현재 분당선의 표정속도는 37.4km다 서울 입구까지는 신나게 달려 놓고, 막상 서울에 진입하니 기어가는 셈. 이에 분당선의 경쟁력은 광역버스에 비해 매우 떨어지게 되었고, 경쟁 버스노선이 없는 송파 방면과 강남구 동남쪽 방면으로 향하는 사람들만이 분당선의 주 고객이 되었다. 경기도 동남부와 서울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주 목적지가 강남대로와 도심임을 고려했을 때 분당선은 실패에 가까운 노선이 된 것이다.8)그나마 경기 동남부의 인구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공기수송 수준까지 가지는 않았다 뭐, 철덕의 입장에서는 덕분에 신분당선이라는 어마어마한 노선이 새로 생겨났고, 분당선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널널하게 앉아 가고 싶을 때’ 버스 대용으로 분당선을 이용할 수 있어 나쁘진 않았다.

사실 강남리도 억울하다

원래 문제의 구룡-대모산입구 구간은 현재의 세 개가 아닌 한 개의 역만 건설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강남 주민들의 요청으로 짧은 거리에 세 개의 역이 들어서게 되어 분당선의 표정속도 저하에 큰 기여를 했다. 이를 두고 철도 동호인들은 분당선을 ‘강남리 마을 전철’이라 칭하며 해당 지역 주민들의 핌피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사실 분당선의 강남리 마을 전철화의 역사는 3호선 2차 구간인 양재-수서의 연장 계획부터 시작되었다. 80년대 초반 개포동 일대에 많은 아파트가 건설되어 인구가 급증하며, 당시 양재역이 종점이던 3호선을 개포동을 거쳐 수서역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 때 역 건설이 계획되었던 위치가 현재 개포동역과 구룡역 부근(개포고 부근)이다. 그런데 노태우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공약 중 하나가 3호선의 대치동 경유였고, 실제 당선이 되며 노선이 대치동을 거쳐 탄천변을 따라 수서로 가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그리고 이후에 탄천이 아닌 대청역과 일원역을 경유하는 현재의 노선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동 수단으로 전철이 필요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서민의 비중이 높았던 개포동 일대의 주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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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렇게 되었다구요. 노란색이 애초 3호선 연장안.

이에 정부는 분당선 노선 계획을 짤 때 개포동 일대를 지나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수서-개포동-한티(영동)-선릉으로 이어지는 분당선 건설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후 한티역과 개포동역 사이 도곡역과 환승역 계획이 추가로 생기고, 개포동역과 수서역 사이에 역이 하나 더 건설되어도 괜찮다는 분석에 따라 대모산입구역의 신설이 확정되었다.

사실 이 때 이미 수서-선릉 구간의 크고(아름답고)작은 곡선, 그리고 도시철도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정차역 수로, 분당선은 너덜너덜했다. 그런데 여기에 구룡(당시 개포고)역 부근의 주민이 분노했다. 몇 년을 기다려왔는데, 안 짓는다고? 결국 분노한 강남 주민들의 항의, 그리고 강남구가 500억이 넘는 역사 건설비를 전액 지원한다는 조건으로 구룡역 설치가 확정되었다.

때문에 대모산입구-개포동-구룡-도곡-한티는 다섯 개의 역이 연달아 평균 4~500m마다 들어서게 되었고9)최단거리 기준, 분당선은 앞서 언급했듯 다음 역에서 전 역의 승강장이 보인다거나, (분명 광역철도인데) 열차가 출발하고 1분도 되지 않아 다음 역에 도착한다거나 하는 도시 괴담급 썰의 주인공이 되었다. 차라리 도시 괴담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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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려다… 발컨의 한계를 깨닫고 포기했습니다. (출처 : 디씨인사이드 철도갤러리)

지하 6층으로 거대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구룡역은 일 평균 승차인원 2000명을 넘지 못하다 2년 전에야 간신히 2000명을 넘기는 역이 되었다10)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는 분을 위해 비교하자면, 강남역은 같은 해 일 평균 승차인원 10만 명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이것은 신분당선을 제외하고 2호선만 계산했을 때의 수치이다.

2011년 말부터 분당선은 차츰 아래위로 길이를 늘렸고, 2013년 11월 드디어 수원에서 왕십리를 잇는 거대한 노선이 완공되며 분당선은 강남리 마을전철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수원, 용인, 분당 남부 등에서 신분당선을 타러 정자역으로 몰리는 탓에 출근시간 정자역 부근에서는 9호선에 버금가는 가축수송을 맛볼 수 있는 노선이 되었다.

나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아직 강남리 마을 전철은 철덕들의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있다(그리고 ㅊㅆㄷ입구도…). 노선 건설 때마다 터지는 크고작은 병크에 이제 현자가 되었을 법도 한데, 새로운 병크가 터질 때면 철덕들의 마음은 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다음 글에서는 역 하나에 세 지자체가 달라붙어 싸움을 벌인 병크를 소개하겠다.

   [ + ]

1. 조만간 수원역에서 수인선과 직결운행할 예정이라 수인선도 노란색이다
2. 공기(air)를 운반하는 것 같다는 풍자적 표현. 반대표현으로는 가축수송이 있다
3. 대청역 지하에 분당선이 달리긴 하지만 역은 건설하지 않았다
4. 승강장 길이는 제외한다. 그것까지 하면 복잡해져…
5. 엄밀히 말하면 광역철도법이 제정되기 전에 건설에 들어간 오리-선릉 구간은 광역철도가 아니다. 선릉-왕십리, 오리-수원 구간만이 광역철도. 하지만 광역철도의 정의를 보았을 때 분당선은 분명한 광역철도이다. 같은 이유에서 3호선 일산선 구간, 4호선 과천선-안산선 구간, 1호선 경부선 구간 및 경인선 구간도 ‘광역철도가 아니지만 실질적 광역철도’로 여겨진다
6. 여기 나오는 숫자들은 대략적 수치로, 근사치로 보시면 된다. 정확한 값을 원하는 분은 코레일에 연락해서 직접 문의하시길 바란다그리고 그렇게 철싸대가 되는 거야!! 하하하
7. 왕십리-수원 전 구간이 개통한 현재 분당선의 표정속도는 37.4km다
8. 그나마 경기 동남부의 인구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공기수송 수준까지 가지는 않았다
9. 최단거리 기준
10.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는 분을 위해 비교하자면, 강남역은 같은 해 일 평균 승차인원 10만 명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이것은 신분당선을 제외하고 2호선만 계산했을 때의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