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받는 질문과 시비들을 모아보았다. 아마 당신이 궁금했거나 시비걸고 싶었던 것에 대한 답도 있을 것이다. 이 답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삼겹살을 끊게 만들기는 힘들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려는 의도도 없다. 아무쪼록 이 글이 삼겹살이 되기까지 돼지가 사는 삶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나는 족하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별종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고추장과 캡사이신을 팍팍 풀어넣어야 밥이 목으로 넘어간다고 하고, 어떤 이는 벌레를 산 채로 먹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어떤 이는 햇반과 참기름이 함께라면 어떤 식재료와 비벼먹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보다 머릿수는 더 많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대한민국 100만 명의 편식쟁이들이다. 치느님께 거역하는 것만으로도 천벌 받아 마땅한 이들은 ‘어쩌다’ 이런 상상만해도 끔찍한 선택을 하게된걸까?

채식 2년차인 나는 치즐링을 먹어본 적이 없다.

채식 2년차인 나는 치즐링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냥 고기가 맛이 없다거나, 종교적인 이유가 있다거나, 위생 때문이라거나, 건강관리 차원에서라거나. 그래서 채식을 한다고 하면 대개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덕적 양심 때문에, 윤리적 신념 때문에, 동물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고 하면 반응이 좀 다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육식이 비도덕적이라는 말로 들리는지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방어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바빠지는 것이다. 영양 섭취를 이유로, 동물의 도덕적 열세를 이유로 자신을 변호하는 상대방. 그런 반응이 지긋지긋한 나는 미쳐돌아버릴 지경이다. (물어보지를 말든가..)

그래서 나는 왜 채식을 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항상 조심스럽고 채식한다는 것을 밝히기조차 망설인다. ‘채밍아웃’을 했을 때, 채식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멸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그 반응은 결코 특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악질들도 있다. 한국에 채식주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한국에 온 채식주의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그래서, 채식주의를 알려주겠다.

“헐 그러면, 치킨도 안 먹어요?”2

채식주의자들도 단순히 ‘풀만 먹는 사람’을 넘어 여러 종류로 나뉜다. 소나 돼지처럼 사람과 똑같은 빨간 시체 조각을 가진 동물들은 먹지 않지만 조류는 먹는 세미-베지테리안, 조류를 포함한 육지 동물은 먹지 않지만 해산물은먹는 페스코-베지테리안, 살아있던 모든 것을 먹지 않지만 계란과 유제품은 먹는 락토오보-베지테리안, 계란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은 먹는 락토-베지테리안, 모든 동물성 제품을 먹지 않는 비건이다. 비건은 또다시 꿀을 먹는비건과, 꿀을 먹지 않는 비건으로 나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식물의 생명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뿌리를 먹는 일은 거부하는 대신 가지나 떨어진 열매를 주로 먹는 프룻테리언까지 도달하게 된다. (나는 락토오보! 라틴어로 락토는 우유, 오보는 계란이다.)

번외로 때때로 육식을 하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언이 있다. 이들은 사골육수와 멸치육수, 고기 분말이 온 나라에 창궐함에 따라 덩어리만 먹지 않기도 하고, 인간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죽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직접 구입하지 않고 더이상 누구도 구매할 수 없어 폐기될 예정인 고기를 먹기도 하고, 주문하거나 구입하지는 않지만 고기가 제공되면 먹기도 한다. 이것은 어떤 계기로 채식을 시작했는지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개나 고양이는 먹으면 안 되는 동물인데, 돼지나 닭은 먹으라고 있는 동물이잖아요?”

유기견 보호활동이나 개·고양이 식용 반대 운동을 하다보면 가끔씩 누군가 찾아와 “개는 안되고, 돼지나 닭은 되는 겁니까? 예?”라며 시비를 걸곤 한다. 여기에 대고 채식한다고 대답했을 때 벙찌는 모습을 보면 무척 기분이 좋다. 제 딴에는 무적의 창이라고 생각했나보다. (커여워!)

개와 고양이가 학대 받다 도살당하는 경우, 그 잔혹성은 타동물의 사례에 비해 더욱 부각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여기는 동물이기 때문에 공감대와 지지층을 구축하기 용이하다.  그렇게 구축된 지지층은 동물권에 대한 인식 확산에 기여하고, 차차 소, 돼지, 닭 등 다른 동물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지니게 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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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누가 먹어도 되는 동물과 먹어선 안 되는 동물을 정의하고 나누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타동물을 내세운 세간의 비아냥과 달리 나와 함께 유기견 보호’활동’, 개·고양이 식용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채식을 하고 있다. 우리는 우선 개와 고양이부터 먹지 말자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일 뿐, 활동 중에 채식 전단지도 나눠 드리고 있으니 소, 돼지, 닭을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동물의 권리요? 그러면 식물은 안 불쌍해요? 약육강식의 법칙이라고요!”

이런 종류의 시비는 대개 채식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이 채식주의자를 경멸하고 깔볼 때 종종 나오곤 한다. 제 딴에는 채식주의에 대한 깊은 수준의 철학적 고뇌를 통해 도출해낸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로, 나도 할 말이 좀 많다.

소고기 450g을 만들기 위해 곡물 7kg이 필요하다. 이 말은 한 조각의 고기를 먹는 것이 수많은 채소를 먹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고기를 먹지 않아 소가 계속 살아간다면, 더 많은 식물이 죽게 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인간이 소를 사냥하던 시절이었다면 맞는 말이겠지만 오늘날 소는 공장과 같은 농장에서 물건이 생산되듯이 만들어진다. 수컷이 틀에 묶여 인간의 손에 의해 정자를 생산당하는 이 공장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먹지 않으면 더이상 돌아가지 않고, 동물은 학대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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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가 저렇게 이상하게 번역해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약육강식’과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사전에서 제시되고 있는 표현은 ‘정글의 법칙the law of the jungle’이다. 우리와 일본을 제외하곤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이 표현은 정글과 같은 ‘야생’에서 서로 먹고 먹히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말이었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웠을 텐데, 우리는 뉴런이라는 신경계를 통해 감촉과 고통을 느낀다. 뉴런은 동물이 갖고 있는 것이고, 식물에게는 없다. 채식주의자 별거 없다. 그냥 내게 먹힐 동물이 딱 나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고, 딱 나만큼 죽기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유기체를 살생하고 섭취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얼마든지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메뉴를 고를 수 있는 21세기 메갈로폴리스 도시에 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그 수많은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너에게 먹힐 존재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고통을 받았을지 고민하는 것이 채식주의자와 비채식주의자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아, 그리고 논리를 조금만 공부해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약육강식은 어떠한 현상에 이름을 붙여 설명하기 위한 ‘설명논리’이지, 당위와 원리를 부여하는 ‘해석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적절한 접근이 아니다.

“사람이 고기를 먹고 살아야죠. 인간은 잡식동물인데요? 고기를 먹는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소위 ‘인육’을 먹었을 때 인간이 폭력적이 된다고 하는 소문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인데, 채식을 시작하고 한 달만에 머릿속이 청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눈도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착각이 아니다. 이거 진짜다.

‘리틀 타이크’라는 채식을 하는 사자가 있었다. 야생의 육식동물에게 채식이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에 사람들은 고기를 먹이기 위해 애썼지만, 타이크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4살 때 160킬로그램이 나가는 성숙한 암사자로 성장했다. 타이크의 건강 상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있고 나서야 사람들은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비록 인간의 장이나 이빨이나 맹장이나 위산 등 모든 신체적인 요소가 상대적으로 초식동물에 가깝지만, 일단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먹고 있으니 잡식동물이라 치자. 하지만 지금의 잡식 생활은 산업화한 음식문화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영양섭취는 어떻게 하죠? 단백질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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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영양 섭취는 말 그대로 영양분을 ‘고르게’ 섭취하는 것이다. 채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영양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주로 콜레스테롤, 비타민 B12, 단백질 결핍을 문제 삼는다. 콜레스테롤의 경우 육식을 했을 때는 LDL 콜레스테롤이 체내에서 과도하게 합성될 수 있는 반면, 채식을 했을 때는 HDL 콜레스테롤 적정량이 원활히 합성될 수 있다. 또한 비타민 B12의 경우 하루에 김 몇 장을 먹는 것으로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 콩에 어마어마한 단백질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채식으로 모든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되어있다.

채식을 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채식에 영양학적 딜레마가 있다면, 일반인보다 더 많은 영양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채식을 한다고 질병이 생기지는 않지만, 아무렇게나 먹었다간 잡식보다 영양 불균형이 생기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냥 나는 지적 게으름을 핑계로 남의 살을 먹고 싶지 않다.

“와, 동물 엄청 좋아하시나봐요!”

대개 이런 반응은 부정적인 의도를 가진 반응이 아니지만, 대답하기 조심스러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혹자는 동물의 권리에 대해 행동하는 것이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퉁쳐버리며, 동물에 대한 차별 반대 활동을 ‘기호의 차이’로 만들어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장애인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권리와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동물권에 대해 활동하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당신이 동물을 좋아하는 만큼 동물을 좋아한다.

“솔직히 가끔씩 치킨 먹고싶죠?”

나는 열렬한 고기 숭배자였고, 치킨보다는 삼겹살이 그립다. 그 줄줄 흐르는 고기 기름과 김치를 함께 구워먹었을 때의 맛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삼겹살을 참을 때 느끼는 일종의 심리적 고통보다, 돼지가 삼겹살이 될 때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종종 고기가 그리운 채식주의자를 위한 ‘고기 코스프레’ 요리는 상당히 많다. 콩으로 만든 두루치기와 불고기, 돈까스, 햄, 참치 통조림, 치킨너겟도 있고, 쌀로 만든 탕수육과 밀로 만든 삼겹살도 있다.

“그러면 뭐 먹어요?”

나는 아직 계란과 유제품을 먹는 락토오보-베지테리안이지만, 모든 동물성 제품을 먹지 않는 비건과 프룻테리언을 지향하고 있어 계란부터 서서히 줄여나가는 중이다. 외식이나 술자리에서 메뉴를 선택하기가 좀 힘들긴 한데, 파스타, 피자, 볶음밥, 비빔밥, 인도요리, 두부요리, 감자요리, 당신이 아는 요리에서 레시피를 다르게 만든 요리, 그리고 당신이 모르는 요리들을 주로 먹는다. 바게트에는 우유와 계란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딸기잼을 발라 맛있게 먹고, 순두부찌개나 김치찌개를 끓일 때는 육수나 돼지고기 대신 쌀뜨물을 넣는다. 아, 쌀뜨물로 만든 음식 진짜 맛있다. 고기를 먹더라도 한 번 시도해보라.

채식을 시작하기 두려워하는 이들은 먹는 것이 상당히 제한될까봐 걱정하는데, 사실 쓸데 없는 걱정이다. 물론 기존에 즐겨 먹던 요리가 100가지라면, 채식을 시작했을 때 90가지는 사라지겠지만 또 다른 90가지가 새롭게 생긴다. 당신이 아는 콩 요리는 내가 만들줄 아는 콩 요리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이 만드는 명절 음식은 내가 만드는 명절 음식보다 살 찔 것이다. 놀랍게도, 살짝 튀겨 먹으면 치킨과 맛과 식감이 똑같은 콜리플라워라는 채소도 있다. 진짜로, 내가 먹어봐서 안다. 밤에 치킨 먹고 싶을 때 한번 튀겨보고, 절반은 비비큐 소스 부어서 후라이드 양념 반반으로 맥주랑 먹어봐라.

칼로리부터 개이득ㅋ

칼로리부터 개이득ㅋ

아무튼, 나는 지금 육식이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규탄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채식하라고 설교하거나 가르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혹시, 채식에 대한 괜한 오해와 선입견을 갖고 있었고, 채식주의자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산산조각 났으면 한다. 채식주의자들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돈까스를 떠올리면서 돼지의 삶도 함께, 치즐링을 떠올리면서 닭의 삶도 함께 고려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다. 혹시 그들의 삶을 알거나 떠올리기 불편하고, 학대받는 동물 사진들이 식욕이 떨어져 보기 불편하다면, 사진을 멈출게 아니라 학대를 멈춰야 한다는 것도 살짝 알려주고 싶다.

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채식주의가 동정심만으로 가득찬 무논리 식습관이라든지, 건강에 위험한 식생활이라든지, 먹을게 없어 풀만 뜯어 먹는 비참한 삶을 살겠다는 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동물이 당신과 똑같은 고통을 느끼고, 똑같이 죽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채식을 시작하고 싶은데 이런 저런 우려가 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편집 및 교정 / 비글

글 / 직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