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번 쯤 말했던 것 같은데 나는 게이이고 호모포비아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멈춘다면 좋겠지만, 한 술 더 떠 다른 소수자에게도 충분히 관용적이지 못한 면을 갖고 있다. 몰래 님의 글1)http://misfits.kr/9266 중 바이섹슈얼이 퀴어퍼레이드 현장에서 언급되지 못했다는 부분과 ‘바이포비아’들이 적지 않다는 고발을 읽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바이섹슈얼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을 때가 언젤까. 바로 떠오르는 사실은 하나다.  전남친이 다음 학기면 복학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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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라니! CC라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나와 전남친이 표면적으로 헤어진 이유는 우리 둘이 서로의 손을 잡고 가기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 내 내면에서 계속해서 속삭이는 말이 있었다. 그는 바이였다.

그는 나와 사귀기 전부터 어떤 여자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난 이성애자일지도 몰라!’ 라고 말했고, 나랑 사귀는데 다른 여자애한테 반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는 정말 어렸다. 하지만 그만큼 나도 끔찍하게 어려서 그가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던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까 봐 무서웠고 두려웠다.

바이섹슈얼이고 싶기

먼 옛날 게이라서 구석으로 몰리고 손가락질 받았을 때, 어떻게든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왜 나는 바이섹슈얼이 아니고 게이인가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어릴 적에는 ‘내가 바이섹슈얼이구나’ 하고 착각했던 적도 있었다. 당시엔 난 그게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면서 어느 순간이 되면 결혼을 통해 속칭 ‘정상’ 사회로 편입할 수 있을 테니까.

게이이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을 거란 생각과 결혼이 인생의 하나의 ‘골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시절에 내가 바이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달콤했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만일 내가 바이라면 그렇게 행동할 것 같다. 조금의 편견이나 오해도 살 일 없고 뒤에서 수군대는 걸 들을 일도 없고 가정도 꾸릴 수 있다. 애를 입양하거나 시험관 아기를 만들 필요도 없다. 내가 바이섹슈얼이라면 반드시 이성과 결혼하고 만다.

결혼식 날 나는 턱시도를 입고 교회로 입장한다. 나는 기독교인이니까 내가 이성애 결혼식을 올린다면 교회에서 올리는 게 더 재미있을 거다. 결국 내가 그 안으로 순응해 들어가는 그림 같아서. 조금씩 결혼 생활이 불만스러울 때마다 친구라는 이름의 동성 애인을 만나 아무도 모르게 바람을 피겠지.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런 행동도 불사할 인간이니까.

바이포비아 정당화하기

문제는 아마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할 거라는 데에서 발생한다. 내가 저렇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만날 바이섹슈얼이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나는 그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요구할 권리도 없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이 여전히 중요한 ‘사회화’의 한 과정인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드물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내가 바이섹슈얼을 피한다는 게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만일 정말 믿었던 사람이 이러한 배신의 결말을 내게 안겨준다면? 결국 이건 어떤 사회적인 옳음, 정당함, 이런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내게 있어 이 부분은 그냥 두려움이다. 두려워서 바이섹슈얼에게 가까워질 수가 없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도 나는 바이인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무섭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의심하지 않고선 믿을 수가 없고, 어느 순간 의심이 믿음보다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호모포빅이 만연한 사회 탓일지도 모른다고 일단 책임을 돌려 본다. 어쩌면 그러나 동시에, 나라는 개인의 버림받고 싶지 않은 몸부림이다.

그냥 나도 행복해지고 싶은 것 같다

어릴 적에 나는 28살 쯤 결혼해서 30살에 애를 낳고 서울을 떠나고서 살 수 있는 직업을 찾아 살고 싶었다. 조용히 나랑 내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 처음 내가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각했을 때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럴 수 없다. 외국에서도 여전히 눈총이 따라오는 나라들이 있다. 내 꿈은 ‘내’가, 정확히 말하면 ‘게이인 내가’ 꿨다는 이유로, 동화책 속에서만 있는 세계가 되었다.

예전에 바람을 폈던 것을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상담했던 친구를 두고 ‘질투’가 난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2)http://misfits.kr/4261 그때도 그가 이성애자라는 데에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정리하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타인에게 질투하는 불행은 내가 동성애자인 것에서 비롯된다’가 정확한 표현이겠다. 내가 게이이기 때문에 가지지 못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능해서 질투를 느끼니까.

최근에 알게 된 한 친구가 있다. 나는 그가 온전히 동성애자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양성애자였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실을 듣자마자 살짝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던 건 내가 행복한 삶을 꿈꾸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충분히 미래에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하다면, 다른 사람이 나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듣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다.

나는 아무래도 계속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내 새로운 친구도 양성애자라면, 그리고 내가 만날 사람들 중 양성애자가 적지 않을 거라면, 나는 계속 부딪히고 질투하게 될테니까.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타인을 질투하고 끌어내리면서 표면적으로는 그의 최고의 편인 것처럼 구는 게 내가 하는 선택의 전부라면,

앞으로도 나는 별로 건전하지 못한 인간일 것이다.

편집 및 교정 / 커밋

글 /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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