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어라……. 먹을 게 없는데요?
아랍권에서 건너온 A의 주식량은 햇반과 김이다. 아, 가끔 어쩌다가 참치캔도 딴다. 주말이 되어서야 이태원 등지에 나가서 먹는 이태원 식당들의 밥이 그의 유일한 낙이다. 국제캠의 식당에는 할랄 식단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나 메뉴가 없기 때문이다. “참치 김밥 하나에도 햄이 들어가 있고, 모든 급식 메뉴에는 고기가 섞여 있더라구요. 편의점 음식도 그렇고… 뭘 먹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햇반 먹어요.”
 
장면 #2.: White Only
학교 입학처의 공식 홍보 브로슈어. 국제캠이 ‘국제’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서일까? 브로슈어의 곳곳에서는 한국인 학생들과 ‘외쿡인’ 학생들이 어울려서 앉아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은 모두 금발에 파란눈, 백인이다. 하지만 정작 국제캠에서 (그리고 신촌캠도 마찬가지이지만) 가장 많이 보이는 외국인은 중국계, 혹은 동남아 등의 아시아계다.
 
장면 #3. ERF가 뭐에여? 먹는 건가?
RC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학교 측의 설명에는 꼭 ERF(English Residential Fellow) 제도가 빠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주로 영어강의를 맡은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국제캠에서 생활하며 영어 사용을 일상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ERF가 뭐냐”, “ERF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등의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ㄱ하우스의 한 RA(Residential Assistant, 2~4학년의 학부생 또는 대학원생으로 RC 프로그램 중 하우스에 관한 대부분의 업무를 담당한다)는 “캠퍼스 전체에 ERF 교수님 4명이 계신다”며 “사실 그 교수님들도 처음에는 열정을 가지고 해 보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요즘엔 교수님들끼리의 간담회 등에서도 배제돼 있는 구조라서 뭘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장면 #4. 영어로 공지 나가면 국제캠인줄 아라쪙?
국제캠의 모든 공지사항은 한글과 동시에 영어로 번역되서 나간다. 학교는 어쩌면 이를 통해 ‘우리는 국제캠이라고!’라고 말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지 외에 생활에서 영어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은 극히 미미하며 – 올해 총학생회부터 총학생회 공지도 영어로 번역하는 정도 – 캠퍼스에서 일상 회화를 영어로 한다면 “쟤 국제대야? 외국인이야? 재외국민전형이야?” 등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된다. 2012년까지는 국제캠에서 열리는 모든 수업이 명목상으로라도 영강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영어 교육을 돕는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2013년부터 전교생이 국제캠 RC 프로그램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100% 영강’과 ‘일상 속의 영어회화’는 없던 소리가 됐다.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공식 홍보영상. 와…. 돋…돋는다>
 

무엇이 국제란 말이냐

연세대학교가 인천 송도 신도시에 새운 이 새로운 캠퍼스의 정식 명칭은 ‘연세대학교 인천 국제캠퍼스’다. 국제화 교육의 산실이 되겠다는 야망과 포부를 이름 안에 담았다. 그리고 적어도 등록금을 부담하는 실질적인 ‘고객님’인 학부모들 눈에 비춰지는 국제캠의 외양은 제법 ‘국제’스럽다고 할 만 하다. 유명한 미국의 명문대(솔직히 명문대라고 말할 수준인지는 모르겠다)들의 분교와 학교 캠퍼스가 나란히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송도 신도시에는 앞으로 굵직한 국제기구들이 줄줄이 유치될 예정이다(거듭 말하지만, ‘예정’이다).

학교에 들어서면 모든 간판과 안내문에는 영어와 한글이 병기돼 있으며 국제캠의 어느 엘리베이터를 타도 엘리베이터가 ‘영어’로 안내 음성을 뱉는다. 게다가 브로슈어에 나오는 외국인 학생, 교수들과의 일상적인 교류, 다양한 영어 및 인성 교육은 ‘내 자녀가 이곳을 다닌다면 정말로 글로벌 리더가 되겠어’라는 확신 혹은 착각을 주기에 적당하다. 특히 학교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배포하고 있는 ‘RC Brochure’에 등장하는 국제화 교육들의 면면은 화려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어떠한 리더’를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나는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제시된 국제화 교육들의 내용을 통해 연세대가 어떤 사람을 기르려는지, 또 그것은 실제로 어떤 모양새로 국제캠에서 나타나고 있는지를 추적해 봤다.

출처 = 연세대학교 공식 RC 브로슈어

출처 = 연세대학교 공식 RC 브로슈어

 

1) 영어를 잘 하는 사람? 글쎄요 영어는 개뿔

영어 이야기는 역시나 빠지지 않았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만이 글로벌 리더로 취급되는 한국의 특수성을 그대로 빼다박은 것도 모자라서, 그 교육의 내실이 부실한 것까지 아주 그냥 그대로다.

‘외국어 집중 교육’이란 섹션 아래에 연세대 측은 대학영어와 영어인증제를 통해 신입생들이 영어를 잘 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영어 1, 2 총 4학점을 이수하는 제도는 학부대학 도입 때부터 진행돼 왔던 제도로, 국제캠퍼스와는 무관하다. 신촌캠에서도 2003년부터 시행해온 제도란 이야기다. 게다가 영어인증제라고 저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졸업 전까지 특정 조건을 맞춘 영어 과목을 특정 조건 이상 들으면 주는 선택적 인증으로 졸업에 필수도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은 있는 지도 모르는 제도일 것이다.) 덧붙여, ‘English for Specific Purpose’는 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지 추측해 보기도 힘들 정도로 모호하다. 제 2 외국어 교육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그 흔적은 역시 코빼기도 찾을 수 없다. 재탕에 삼탕에 사골이요.. 아이쿠 사골! 겉포장만 새로 한다고 속아 넘어갈 줄 알았지? (찡긋)

출처 = 연세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출처 = 연세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ERF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위의 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English Residential Fellow의 줄임말인 ERF는 위의 공식적인 조직도에서 볼 수 있듯이 RC 교육원장 바로 아래 소속된 영어 전담 교수다. 그들은 영어 강의 및 영어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이야기되고 있지만, 실제로 4천 명이 거주하는 하우스에 단 4명만이 현재 ERF를 맡고 있다. 인원수에서부터 매우 말이 되지 않는다. 일당백도 아니고 일당천으로 갓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영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수님들이... 일점당천도 아니고 말이야. 사진 = 네이버 웹툰  중 캡쳐

교수님들이… 일점당천도 아니고 말이야. 사진 = 네이버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 중 캡쳐

 

덧붙여 신입생들과 ERF 교수들 사이에는 그들이 통상적으로 들어야 하는 대학영어 수업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접점도 없다. 그런 면에서 RC 외국인 교수와의 비교과 활동 섹션은 사실상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연세대 국제캠에서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글로벌리더의 첫 조건으로 꼽았지만 신입생들은 영어를 집중적으로 교육받을 기회도 없으며, 오히려 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구사했다가는 ‘재수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그나마 국제캠퍼스는 2012년까지만 해도 – 의예과, 국제대, 약대 및 글로벌융합공학대, 자유전공 등 약 700명만이 거주하던 시절 – ‘국제캠에서 열리는 강의는 100% 영어’ 정책을 고수했지만 이마저도 2013년부터는 흔적없이 사라졌다.

 
연세대 국제캠에서 영어를 한다면.jpg 사진 =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연세대 국제캠에서 영어를 한다면.jpg 사진 =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한줄 요약: 영어 잘하는 사람이 ‘글로벌 리더’의 필수조건이라는 의심스러운 전제 + 그러나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단다.

 

2)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람 – 단 ‘영어권’ 문화만

마찬가지다. ‘Global Citizenship’ 교육이란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가리키는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홍보 책자에서 제시하는 여러 이미지들을 통해 대략적이나마 이 문화적 다양성의 폭을 읽어볼 수는 있었다.

 

연세대학교 RC 브로슈어 중 캡쳐.

연세대학교 RC 브로슈어 중 캡쳐.

보다시피 모든 사진에는 백인들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2013년 대학알리미를 기준으로 어학연수생을 포함해 연세대학교에 다니는3,585명의 외국인 유학생 중 사실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지역은 아시아다. 중국에서 915명, 일본에서 709명, 대만에서 141명, 싱가포르에서 79명, 홍콩에서 72명 등 아시아권에서 오는 학생들의 유학 비율이 절반을 넘어가지만 이들은 학교의 공식적인 홍보의 그 어느 자리에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국제캠에 살 확률이 매우 적은 어학연수생을 제외한 790명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비율은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 국제캠의 공식 홍보 자료에는 그들이 등장하지 않을 뿐더러 국제캠에 존재하는 유일한 ‘국제’ 언어도 영어 뿐이다. 게다가 앞서 들었던 장면 1과 같이 식성이 맞지 않아 고생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들도 상당수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고향의 밥은 요원해 보였으며, 가끔 셀프 키친에 모여서 태국식 똠양꿍을 끓여 먹거나 이태원에 나가서 비싼 한 끼를 때우는 것이 그나마 남은 낙 중 하나였다. ‘인바운드 국제화’를 외치며 수치상 외국인에 포함될 수 있는 외국인이란 외국인은 다 불러다 놓고, 정작 기본적인 식생활에서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심지어 공식적인 이미지에 등장하는 모습은 WASP 뿐이다.

이 캠퍼스에서 이야기되는 국제화는, 우리나라의 많은 다른 ‘국제’ 교육 기관들이 그러하듯 국제화가 아니라 미국화, 혹은 영국화가 아닐까.

네… 식당에 먹을게 있지만 ‘먹을게 없다구요!’

비영어권 외국인들의 식생활조차 포용하지 못하는 이곳에선 이들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교육이나 교류 기회조차 찾을 수 없다. 홍보 브로슈어에서는 글로벌 에티켓,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함양을 통해 신입생들을 진정한 글로벌 시민으로 기르겠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연세대학교 신입생들이 국제캠퍼스에서 RC를 이수하면서 반드시 들어야 하는 과목 중 이러한 내용은 없다.

실제로 2014학년도 1, 2학기 국제캠퍼스 수업 편람을 뒤져봤지만 글로벌 시민,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글로벌 에티켓과 관련한 수업은 단 한 과목도 없었다. 이건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지경이다. 게다가 국제캠퍼스에서 수학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인터네셔널 하우스’라는 명목 하에 12개 중아리스토틀/알렌 두 개의 하우스에만 배정돼 있다 (주: 최신태님이 제보해 주셨습니다. 국제대가 아닌 단위로 들어오는 아주 소수의 외국인 학생은 이 외의 하우스에도 배정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10개 하우스에 사는 대부분의 학부생들은 이들과 일상적인 교류를 할 기회는 없다.

 
 
 

3) ‘글로벌 리더십’을 가진 사람 – 그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제시된 교육 프로그램들 중에 ‘글로벌 리더십’ 교육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직접 1학년 수강편람을 찾아 봤지만 알기 쉽지 않았다. 수강 편람에 ‘글로벌’ 혹은 ‘global’이란 단어가 포함돼 있는 수업을 찾아 봤지만 글쎄다. 3, 4학년들의 전공 수업만 뜰 뿐 국제캠에서 열리는 과목을 찾을 수 없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1학년들에게 물었다. “그런 수업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2012학년도까지는 ‘글로벌 리더십 포럼’이라는 수업이 명목적으로 존재하기는 했는데, 이를 주로 들었던 자유전공 출신 학생에게 어떤 것을 배우는지 물었다. 글로벌 리더십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적 명사들을 컨택해서 수업에 초청 강연을 불러오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더 유명하고 더 좋은 사람일수록 높은 학점! 참으로 글로벌하고 참으로 리더십을 배울 만 하다.

 
 
 
 

4) College English Tutoring Service – 유명무실의 좋은 표본

이 학교를 꽤나 오래 다닌 나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이 서비스의 이름. 그래서 국제캠퍼스에 가면서 정말로 새로 생긴 신규 서비스인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ㅋ 아 ㅋ !

연세대 CETS 센터 홈페이지 중 캡쳐

연세대 CETS 센터 홈페이지 중 캡쳐

그렇습니다. 이것은 2007년부터 존재하던 고대의 서비스였던 것입니다… 하하하. 그렇지만 내 주변에서 그 누구도 이를 이용해 본 적 없다는 이야기만 들린다. 이는 신입생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 RC 프로그램의 한 갈래로 넣은 만큼 이 서비스의 본거지가 그럼 국제캠으로 옮겨 갔을까? 그렇다. 오오, 국제캠퍼스 자유관 A로 이사하셨다. 하지만 함정은? 이사와 함께 운영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 전에는 월-금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로 비교적 여유롭던 운영시간은 월-금 오전 10시 ~  오후 12시, 오후 2시~ 오후 4시반으로 정말 폭삭 줄고 만 것이다. 고귀하신 영문과 대학원생들이 국제캠에 자주 오기가 정말로 힘드셨나 보다. 그리고 역시나, 이들의 예약 캘린더는 아무리 넘겨봐도 텅~텅~ 비어있었다.

...주륵. CETS 홈페이지에서 캡쳐

…주륵. CETS 홈페이지에서 캡쳐

(4월도…5월도…6월도…. 또르르 또륵 또륵)
 
 

다소 빡치는 결론: 이 국제캠은 ‘국제’ 하지 않다

아무렴, 누구라도 예상했을 결론이긴 하다. 사실 다니는 학생도, 여길 보내는 학부모님도, 외부에서도 연세대학교 국제캠의 ‘국제’라는 명칭을 관습적으로 붙이지 않던가. 하지만 우리가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는 바와 달리 연세대 측에서는 이 ‘국제화 교육’에 대한 거대한 뻥튀기 홍보를 시전했고, 실제로 그 국제화란 것은 어디 고등학교 수업시간에도 내밀기 힘들 정도로 좁고 볼품없는 ‘영어 몰입’에 집중한 아주 (매우 정말) 좁은 의미의 국제화에 그칠 뿐이었다. ‘대한민국의 대학 교육을 선도하는 명문사립대’이신 연세대의 품격에 너무나 걸맞지 않는 것만 같다. 

공지문만 영어로 붙인다고, 엘레베이터의 안내 음성만 영어로 바뀐다고 그곳이 국제적인 교류의 장이 된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그 모든 너의 말들은 허황된 약속이었을 뿐이었니…(눈물). 차라리 ‘국제’말고 뭔가 다른 명칭을 붙일 것이지. 학교에겐 ‘국제’라는 단어가 (수많은 우리나라의 입시기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들처럼) 그저 학부모 및 학생 낚시용, 대외용의 번지르르한 ‘간지’용 단어가 아니었나 싶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