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가장 큰 요인은 돈이었다. 우리의 초기자금은 슬슬 바닥을 보이는 참이었고, 궂은 날씨 탓에 피킹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마가렛리버에 산 지 10년이 넘는 마스터 오빠도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며, 며칠 뒤에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일을 나갈 수 있을 거랬다.

그렇게 일을 하지 못한 채 2주가 흘렀다. 사실 일을 한다고 해도 별 다를 건 없었다. 농장 첫 번째 편에서 언급했듯, 하루에 8시간을 일하고 100불을 번다. 원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간 일을 하지만, 우리가 그 곳에 있는 동안은 하도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일주일에 3, 4일 밖에 일을 못했다. 고로 주급 천불은커녕 300불을 겨우 넘겼다. 쉐어비가 인당 150불이었다. 주급 300불은 방값과 생활비로 쓰고 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우리는 투잡을 뛰기로 했다. 농장 일이 일찍 마치기 때문에 오후에는 타운에 있는 가게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종화오빠는 근처 과일공장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동네가 워낙 작은지라 레주메를 돌릴 만한 가게도 없거니와 레주메를 전달하고 오더라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일을 하고 싶어요..

일을 하고 싶어요..

친구와 나는 우리의 근거지를 도서관에서 타운의 한 카페로 옮겼다.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가격도 합리적이고. 무엇보다 와이파이가 빵빵 터졌다. 아이스커피나 진저비어를 시키고는 서너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었다. 너무 민폐인가, 싶으면 감자튀김을 추가로 주문하기도 했다. 야, 어떡하지. 퍼스 올라갈까. 우리 일 못한 지 2주째야 지금. 그럼 다음 주에 돌아가자. 답은 정해져있었고 친구는 답하기만 하면 됐다. 우리가 호주에 온 것과 같이 아주 쉽고 빠른 결정이었다. 우리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인 부분이었다. 쓸데없이 명확한 결단력을 가진 점. 어쩌면 그 전부터 퍼스로 가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엄마를 보채 새 캐리어를 샀다든가 할 때부터 나는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디파짓(deposit)이었다. 보통 쉐어를 들어갈 때 보증금의 개념으로 2주치(외국인 쉐어의 경우 4주치) 방값을 미리 내고 들어간다. 쉐어 생활을 하는 동안 룰을 어기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깎이지 않는 한 쉐어를 뺄 때 디파짓을 돌려받을 수 있다.

우리는 왜 월세의 25배에 달하는 보증금을 내는 거죠?

음..? 우리는 왜 월세의 25배에 달하는 보증금을 내는 거죠?

디파짓을 돌려받기 위한 ‘룰’ 중에는 ‘노티스(notice)’라는 게 있다. 쉐어생이 집을 빼거나 마스터가 쉐어생에게 집을 빼도록 요구할 때 ‘몇 주 전에 통보할 것!’이라는 일종의 약속이다. 대부분의 한인 쉐어가 그렇듯 우리 집도 2주 노티스가 붙어있었다. 그러니까 방을 빼기 최소 2주 전에 마스터에게 알리지 않으면 디파짓을 못 받는 거였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2주 노티스를 위해 1주일 여기서 더 죽치고 있느냐, 아니면 디파짓을 못 돌려받더라도 당장 다음 주에 퍼스로 가느냐. 누누이 말했듯 우리는 이성보단 감성이 앞섰고 남들보다 행동력이 빠른 류의 사람이라고. 디파짓 안 받아도 상관없으니 다음 주에 방을 빼겠노라 선언했다. 사실 따지자면 1주일 방값을 더 내고 디파짓을 돌려받으면 결국 1주일 치 방값을 돌려받는 셈이다. 우리에게는 그 방값 대신 1주일이라도 빨리 레주메를 돌려 안정된 일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2천불 가량의 초기자본은 슬슬 바닥을 드러내는 참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방값을 낼 때마저 벌벌 떨었다.

마가렛리버를 떠나다

마스터 언니에게 노티스를 드렸다. 언니는 딱히 우릴 추궁하거나,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전부터 여기 너무 심심하지, 퍼스에서 도시 생활 좀 더 하다 왔어야하는데, 서울 살다 왔으니까 더 심심하겠다, 하는 말을 입에 붙이고 있던 사람이니까. 머잖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투로 이별통보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타운으로 가서 버스표를 샀다. 아침 6시인가 7시인가 상당히 일찍 출발하는 버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퍼스에서 머물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인들도 적당히 있고, 시티와도 멀지 않은 그런 동네를 위주로 ‘퍼스, 그 참을 수 없는 그리움’(퍼스 한인 커뮤니티, 이하 퍼참)을 뒤졌다. 나는 퍼스 CBD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인 빅토리아 파크(이하 빅팍)에 싱글룸을 구했다. 방값은 150불. 2주 노티스에 디파짓도 2주. 미니멈 스테이가 3개월이 걸려있는 집이었다. 방 사진을 받아보니 썩 마음에 들었다. 미리 디파짓을 입금했다. 방을 렌트하겠다고 하고는 입장을 번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 많은 짐을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마가렛리버에 온 지 딱 4주 만에 우리는 다시 그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침에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나와 보니 집 식구들은 모두 일을 나가고 없었다. 전날 대강 작별 인사를 하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얼굴은 보고 가고 싶었는데. 무엇보다 차가 없는 우릴 정류장에 태워주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텅 빈 집을 뒤로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타운에 있는 정류장까지 걸어서 30분, 캐리어와 짐을 들고 간다는 점을 감안해서 넉넉하게 한 시간의 여유를 두고 나왔다. 우리가 호주에 도착할 때만 해도 여름에 가깝던 날씨가 이젠 제법 쌀쌀했다. 우리는 한숨 한 번에 발걸음 한 번.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며 차가 씽씽 지나다니는 고속도로를 걸었다. 다 내팽겨치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를 빠르게 스치는 차들을 보며 아, 누가 우리 태워주면 좋겠다, 하던 찰나에. 거짓말처럼 웬 차가 멈추더니, 운전석의 창문이 스르르 열렸다. ‘Do you need a lift?’ Oh, yes plz!!!!!!!!!!!!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라도 만난 것 마냥 소릴 질렀다. 와, 대박. 와, 와. 평소라면 이거 완전 장기매매 아녀? 의심에 찬 눈길부터 보냈겠지만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여유롭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시간은 15분밖에 남지 않았고 차를 타지 않는 이상 시간 내에 정류장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우린 냉큼 차에 몸을 실었다. 차에는 아주머니와 딸들이 타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우릴 보고 유턴해서 돌아왔다고. 정말이지 감동의 눈물이 펑펑. 친절하게 캐리어도 직접 트렁크에 다 실어주셨다.

친.. 친절해(말을 잇지 못함)

친.. 친절해(말을 잇지 못함)

내릴 때도 짐을 하나하나 다 내려다주며 우리에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Good luck in Perth!

I hope 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