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강남에 산다. 교육의 메카라는 대치동. 그 유명한 대치동 옆 동네에서 약 20년째 살고 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대치동에 있는 학원을 걸어서 들락날락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을 할 때 다음 10초 동안의 대화를 예상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어디 사세요?” “도곡역이요. 강남이에요.” “오 부자ㅋ” 라는 뻔한 대화. 스무살 이후 5년 동안 수없이 지속된 뻔한 대화. 이 뻔한 대화를 끝마치면 나에게는 ‘강남 사는 남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부러움, 시샘, 선입견을 한 몸에 받곤 했다.

나를 강남에 살 수 있도록 해주신 아버지께서는 내가 6살 때 교수직을 그만두셨다. 강남에 입성한지 1년 만이었다. 학내 부정부패와 싸우다가 못 견디고 뛰쳐나온 아버지 앞에는 고생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 후 20년 동안, 우리 가족은 집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수십 번도 넘게 집을 내놓았다가 취소했고 차압 딱지가 붙기 직전까지도 가면서 집을 지켜냈다. 그러면서도 우리 부모님은 빚을 내 형과 나를 학원에 보냈고, 형과 나는 부모님의 골수를 바닥까지 빨아먹으며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고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학에서 날 기다린 것은 학기 당 3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이었다. 학자금 대출의 은총 덕분에 등록금은 낼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성인이 되자마자 빚쟁이가 되는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시발. 학기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귀여운 빚더미들시발, 그리고 용돈을 받을 수 없는 집안 사정 때문에 나는 스무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운 좋을 때는 과외, 대부분의 경우 카페, 학원, 스터디 센터, 할인마트, 사무실 이사, 선반철거작업, 영상 외주 작업, 심지어 농장까지. 학교를 다니는 동시에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내가 먹고 살 돈도 벌어야 했던 나의 삶은 “오 부자ㅋ”라는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랐다.

알바생들의 100%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스런 알바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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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나의 대학생활이 대다수의 대학생들보다 힘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는다!’ 정도의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 후배들, 선배들을 둘러봐도 대다수가 아르바이트나 과외로 용돈을 벌고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집에 빚 없는 친구도 찾기 힘들다. 나 역시 S대 김모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꼰대질한 청춘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강남’에 산다는 이유로 내가 대다수의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부정해 버린다. 강남이란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나’는 사라지고, 고급 아파트에 살며 잘나가는 부모님을 둔 허구의 ‘나’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나의 경제적 곤란이나 집안 사정에 대한 토로를 해봐도 그 모든 것은 ‘강남 철부지의 어리광’이 된다. 돌아오는 것은 “강남 사는 너보다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정신차려, 넌 고생을 좀 더 해봐야 돼” 라는 가시돋힌 말뿐이다(덧붙이자면 이 말을 했던 사람은 지방 유지의 아드님이었다 시발).

‘강남’ 이란 단어는 ‘나’의 많은 속성을 부정해버린다. ‘강남’에 산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부자’가 된다. 아니, 부자가 되어야 한다. 월급이 다 떨어져서 “돈 없어”라는 말은 “ㅋ.. 있는 놈들이 더해”로 돌아오고, 용돈을 벌기 위한 알바는 “돈독 오른 놈, 대체 얼마나 더 잘 살려고” 로 돌아온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남들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그 행동들이 ‘강남’이라는 이름 아래 왜곡되어 버린다. 나는 당신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나 역시 알바와 학자금 대출에 골머리 썩이다가 친구를 불러서 오뎅탕에 소주 하나 시켜놓고 낄낄대는 사람일 뿐인데.

대출 앞에선 누구나 얄짤없다

대출 앞에선 누구나 얄짤없다

“그래도 강남에 산다는 것은 결국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고, 비싼 집에 살고 있다는 거고 강남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만 해도 너는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것 아니냐? ” 같은 비판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절대적인 재산의 수치가 아니라 생활이다. 남들보다 더 많이 소비한다면 모를까, 나는 더 많이 소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금수저, 부자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본의 아니게 금수저가 되었던 것이다. 오오 내가 금수저라니! 시발

“오 부자ㅋ” 라는 말을 셀 수 없이 들어왔다. 있는 놈이 더한다느니, 너처럼 잘사는 놈들은 술값을 더 내야 한다느니 같은 말을 이제는 농담으로 받아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나를 ‘강남 사는 사람’의 ‘환상’으로 받아들일 것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내가 강남에 살건 어디에 살건 나는 거주지가 아닌 나 자신으로 받아 들여지고 싶다.

 

나는 가끔, 강남에 산다는게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