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

연초에 있었던 일이다. 밤 늦게 귀가를 하다가 모르는 남성에게 집 앞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이어폰을 끼고 있었던 터라 뒤에 누가 오는 지도 모른 채 문을 열려다가 맞았다. 당황한 나는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고, 그 의문의 남자는 건물 밖으로 도망쳤다. 급히 경찰을 불러 신고 접수를 하고 집에 와서는 방 안의 불을 다 켜 놓은 채로 잠이 들었다.

충격을 많이 받아서 다음 날 오후까지 내리 자다가 사건 담당 경찰이 집 앞에 왔다는 연락을 받고 씻지도 않고 나갔다. 지난 날의 상황을 묻던 경찰은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근데 어제도 이 바지 입고 있었어요?”

편집자주: '핫팬츠'라고 검색했다가 눈만 버리고 영어로 반바지를 검색했습니다...

편집자주: ‘핫팬츠’라고 검색했다가 눈만 버리고 영어로 반바지를 검색했습니다…

라고 물었다. ‘이 바지’라 함은 내가 입고 있던 핫팬츠를 말 하는 거였는데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집에 있을 땐 속옷만 입고 있는 편이라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나갔는데 내 바지를 문제 삼을 줄은 몰랐다. 담당 경찰은 “세상이 흉흉하니 당분간 밤 늦게 다니는 걸 자제하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당시에는 머리가 멍한 채로 대충 집에 들어왔는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열이 받는 거다.  혹, 내가 폭행 당할 당시 핫팬츠를 입고 있었다면? 어쩔 건데? 그게 뭔 상관이지? 핫팬츠를 입고 있었으면, 날 폭행한 그 남자의 행동이 잘못이 아닌 게 되기라도 하나?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여성은 헤픈 여자(slut)같은 옷차림을 피해야 한다.”1)이 발언으로 촉발된 시위가 슬럿워크 행진이다. 슬럿(slut)은 잡년이라는 뜻으로 이 행진은 성폭력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 사회적 시선을 비판하며 캐나다에서 출발해 미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귓방망이 맞을 말을 했을까. 바로 캐나다의 경찰관이 법과 대학원 강연에서 지껄인 말이다. 혼잣말도 아니고, 무려 강연에서.

캐나다에만 등신이 있는 게 아니다. 여기 대한민국 등신도 추가요! 나는 평소 남자 사람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잦은데,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어느정도 무르익다 보면 노출의상을 입은 여자들을 향해 ‘잡년들’, ‘ 걸레같은 년들’, ‘싸보인다’ 등등의 ‘혐오스런’ 말들을 내뱉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싸웠다. 정말 개탄스러운 건 이런 싸움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거다. 정말 수차례.

“밤 늦게 짧은 거 입고 돌아치는 년들은 성폭행 당해도 싸”

캐나다에도 있는 등신이 한국에도 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실제로 뱉는 대사다!

실제로 뱉는 대사다!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은 게 어째서 성폭행을 당해도 싼 이유가 되는 것이냐 물으면

“야, 문단속은 지가 잘 해야지. 문 열어 놓고 도둑 당했다고 징징대는 게 말이 되냐?”

더 빡세게 패는 짤이 필요하다...부족해...

더 빡세게 후드려 패는 짤이 필요하다…부족해…

문을 열어 놓고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게했으니, 내가 무얼 훔쳐도 문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의 탓이다? 넌 잠재적 범죄자 새끼냐? 하면 그건 또 아니란다.

문이고 뭐고 이건 진정 개소리다. 내가 거의 헐벗은 채로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어느 누구 하나 나를 덮칠 권리 따윈 없다. 누군가 내가 노출을 했다는 이유로 나를 덮쳐도 된다 생각하고, 그 어떤 합의도 없이 나에게 제 권력을 바탕으로 한 성욕을 풀고자 한다면 분명 이 새끼가 ‘비정상’ 인 거고, ‘미친놈’인 거다. 내가 미니스커트를 입었다고 해서 수백명의 남자와 섹스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건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목적일 순 있겠으나, 일상에 흘러가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사람에게 몰래 사진찍히거나 희롱당해도 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잠재적 위험, 그리고 실제로 벌어지는 위험을 비판하고 없애려 노력하지도 않고, 그런 위험이 있으니 입지 말아야 한다고 너부터 조심하라는 말은 정말 개소리다. 원래 병신을 조져야지, 병신 앞에서 조심 못한 니가 병신이라고 말하는 너는 정말 병신이잖아ㅜㅜ (하-_-;; 내가 왜 아등바등 ‘비정상’을 ‘비정상’이라고 매번 설명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비정상이 일상인 세상인가.)

노출은 보여주기 위함일까, 자기 만족일까?

어떤 옷을 입든, 사람들이 단순 자기 만족만을 위해서 옷을 입는 건 아니다. 옷의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함인 건 너무나 당연한 거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옷을 입는 것이든, 벗는 것이든, 입고 싶은 옷을 내가 선택하는 거니까 자기 만족이기도 하다. 노출이 보여주기 위한 거냐, 자기 만족이냐 따지는 것은 죽은 논에 물 대는 것 만큼이나 쓸데없는 짓이다.

문제는 내가 옷을 선택할 때에  ‘노출을 야하다’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 옷을 입기를 꺼리게 될 때다. 노출이 야할까? 아니, 노출은 야하지 않다. 야하다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1. 천하게 아리땁다. 2. 깊숙하지 못하고 되바라지다.’ 란다. 결국 ‘야하다’는 상대방을 천하다고, 되바라졌다고 얕잡는 단어인 것이다. 노출이 어째서 천하고 되바라진 건가? 내 몸을 드러내는 것은 화장을 하고, 셀카를 찍고, SNS에 올리고, 그리고 나의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처럼 본인의 매력을 타인에게 어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 자신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건 똑같은 거 아닌가? 그게 얼굴이거나, 생각이 아닌 몸일 뿐이지. 내 셀카에 누군가 좋아요 눌러주길 바라고, 내 생각에 누군가 공감하고  나를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을 ‘노출’하는 거다. 그 노출을 향한 욕구는 지금의 SNS가 유행하게 된 현상을 정확히 대변한다. 그게 천하다고? 페이스북 무시하냐? 마크주커버그 되바라짐?

“노출은 천박하지만, 보는 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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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새꺄 이거나 먹어라

TV속 인형같은 아이돌의 춤을 넋 놓고 보고있는 당신,  여성들의 노출에는 천박하다는 비난을 던지면서 그 노출을 관음하는 것은 과연 고고한가?

“너무 야해, 싸보인다”

“이 정도 벗는 건, OK~! 저 정도는 예뻐~”

어느 노출은 관음하면서도 또 다른 노출은 천박하다고 비난하다니. 똑같은 크롭티라도 아이유가 입으면 예쁘고, 일반인이 입으면 천박함인가. 예뻐야 노출할 수 있다 이건가? ‘예쁘고, 보기 좋은 적당한 노출을 한 네 눈에 보기 좋은 인형’을 갖고 놀고 싶거든, 미미나 쥬쥬랑 소꿉놀이나 해라.

내가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내 몸의 섹시함을 드러내겠다는데, 나의 매력을 드러내는 것이 당신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낼 자유와 권리가 있다. 내 매력을 드러내는 건 나의 선택이다. 내 선택은 나로 인해 나에게 영향을 미칠뿐이지만, 당신의 꼰대스러운 판단은 당신에 의해 타인이 억압받는 결과를 낳게된다. 당신이 나를 억압할 이유는 뭔가? 난데스까? 

이뭐병..

이뭐병..

미니스커트가 단속대상이 됐던 70년대에 비해 지금은 뷔스띠에, 시스루, 크롭티까지 아주 다양한 옷들이 생겨났다. 당신이 천박하다고 비난하는 여성의 옷차림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고로, 당신이 ‘노출=천박’하다고 생각하는 인식을 하루 빨리 버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당신이 만날 수 있는 상대가 대폭 줄어들게 될 지 모른다. 2)사실 나는 그런 널 만나주지 않을 거 같다 나를 혐오하고 비난하는 사람을 ‘굳이’ 만날 이유가 있을까? 왜? 굳이? 왜 때무네????

끝으로, 나는 앞으로도 노출을 즐기며 살 예정이다. 나를 불편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나를 어필하며 살 거다. 당신들을 더 더 더 불편하게 만들 작정이다. 나는 25년을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불편과 억압 속에 살았는데 그 불편과 억압에 동조했던 당신도 불편을 좀 경험해야지?

 

편집 및 교정 / 커밋

글 / 무네

   [ + ]

1. 이 발언으로 촉발된 시위가 슬럿워크 행진이다. 슬럿(slut)은 잡년이라는 뜻으로 이 행진은 성폭력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 사회적 시선을 비판하며 캐나다에서 출발해 미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2. 사실 나는 그런 널 만나주지 않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