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한국일보에게 묻습니다.

심호흡을 크게 고르고, 정말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구역질이 난다. 제노포비아에 대해 무릎 꿇어 사과하고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지는 이 21세기에 전근대적인 미스코리아라니. 매년 미스코리아 홍보 광고를 마주할 때마다 이 분노를 도통 쉽게 가라앉힐 수가 없다. 미스코리아라니!!!!! 지금은 딱 각 지역에서 올라온 미스코리아 후보들 30명을 두고 누가 누가 진선미의 자격이 있는지 투표하는 기간이다. 매우 늦긴 했지만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와중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국일보는 매년 이 대회를 개최한단 말인가.

그래도 이해해보기로 했다

우선 미스코리아 공식 홈페이지1) www.misskoreai.co.kr에 들어가 봤다. 현란한 사진들 사이사이에 대회 소개 및 역사  페이지가 있다. 그래, 내가 잘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거야. 이 전근대적인 미스코리아가 믿을 수 없게도 현대사회에 벌어지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대회역사

한국일보가 지성과 교양,미를 겸비한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을 선발하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60년의 역사를 맞이한다. 1957년 5월 그 대단원의 막이 열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전후 정신적으로 피폐한 시대적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축제의 장을 마련해 주었고 대외적으로 국제적인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외국과의 교류가 미미한 상황에서 국제 미인대회에 나가 국위를 선양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그 기원을 ‘전후 정신적으로 피폐한 시대적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축제의 장을 마련해주었’던 것2)미스코리아는 1957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72년부터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었다에서 찾는다.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이 문장은 넣지 않았을 텐데. 전후 피폐한 시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지금 시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자들이 많아 퀴퀴한 회사나 칙칙한 술자리에서 분위기나 띄우는 역할을 하는 여성’이 필요했던 거다. 전후 피폐한 시대적 상황을 국민, 시민 너나할 것 없이 함께 혹은 스스로 극복해야지 왜 ‘여성’을 그 분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삼느냔 말이다.

기쁨조는 멀리 있지 않아요~

기쁨조는 멀리 있지 않아요~

축제의 장? 꼴 같지도 않는 말 갖다 붙이지 마라. 그냥 전후의 고통과 불만을 돌리기 위해 입 닥친 ‘아름다운 여성’, ‘분위기를 띄우는 여성’, ‘미디어에 의해 소비되는 여성’, ‘수영복으로 몸매를 뽐내는 여성’, ‘눈요깃 거리가 되는 여성’이 필요했던 거라고 말해라. 사실 여성이 분위기를 띄우는, 주체 아닌 객체로, 대상화로, 곁다리로, 부수적 존재로 취급 받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표현처럼 우리는 대학에서 회사에서 혹은 사회에서 여성을 곁다리 기쁨조 정도로 여기는 태도를 쉽게 마주한다. ‘야 남자만 있어서 좀 칙칙한데, 여자 좀 불러봐’, ‘야 여자랑 남자 좀 섞어 앉자’, 아니면 군 부대에 여아이돌들을 부르거나 국군 행사에 여성들이 나와 꽃목걸이를 걸어준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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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과의 교류가 미미한 상황에서 국제 미인대회에 나가 대외적으로 국위 선양할 기회를 제공했단다. ‘대의를 위해 니가 좀 닥치고 희생해라’ 는 태도다. 마치 진보진영이라고 떠들어 대는 공간에서 성폭력이 발생해도 모두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미래를 위해 쉬쉬하는 것처럼. 월드 미스 유니버슨가 뭐시기에 미스코리아가 나가서 얼마나 국위선양을 했는지 알고 싶다.

예쁜 사람을 대체 왜 뽑는 거냐

예쁜 사람을 뽑고 순위를 매기는 건 사실 낯설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도 그 예는 차고 넘친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꼰대들끼리 앉아 신입생 얘가 예쁘네 쟤가 예쁘네 떠들어 대는 꼴은 이제 익숙하지 않나. 어쨌든 한국일보는 59년 째 더욱더 적극적으로 또 공식적으로 예쁜 사람을 뽑아 모아 놓고 순위를 매긴다. 주최측은 저렇게 ‘대회역사’에서 병크를 저질러놓고는, 지레 혼자 뭔가 찔렸는지 애써 오해를 풀고자 변명한다.


미스코리아는 키가 커야 뽑힐 수 있다면서요?

이전에는 평균 키가 작아 키가 큰 후보자들을 우선적으로 선발 했다면 요즘 대회에서는 ‘끼와 재능 및 인성’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재치 있는 입담과 관객들을 한눈에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미스코리아 대회에 도전해보세요.

드라마 ‘미스코리아’를 보니까 가슴성형을 고민하던데…

몸매 라인도 심사기준에 포함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스코리아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여성을 선발하는 대회’입니다. 본인만의 장점과 매력을 어필할 자신이 있다면 굳이 ‘아이뽕’ 같은 물품을 사용할 일도 없겠죠?


아, 끼와 재능 및 인성을 본단다. 끼와 재능은 스타킹에서 보시고 인성은 음. 인성을 너네가 대체 무슨 기준으로 왜 판단하느냐는 거다. 이 말도 안되는 해명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후보자들의 평균 키는 170.2cm이다3)뒤에 소수 자리 제외하고 직접 일일이 계산해봄.  몸무게도 평균을 내봤다. 몸무게는 51k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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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닝겐들.. 밥은 먹고 다니시죠?…

한국 여자 평균 키가 몇이냐 대체. 대략 160cm 정도란다.키가 161cm인 나로서는 170cm 대의 몸무게 감이 잘 안 잡히긴 하지만 밖에서 마른 편이라는 소리를 듣는 내가 몸무게가 51kg인 걸 감안한다면, 나랑 키가 거의 10cm가 차이 난다. 몸매라인이 심사기준에 들어가긴 하지만 지성과 인성도 본다는데, 상식테스트라도 하느냔 말이다.

 

미스코리아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일자 2002년부터 미스코리아 대회는  더 이상 공중파 중계를 하지 않는다. 그러자 오히려 공중파 뒤 저 너머 케이블에서 조용히 또 더욱 자극적으로 행사가 이루어졌다. 지성과, 미모, 인성이라는 심사기준을 스스로 비웃기라도 하듯이 후보자들은 여전히 비키니를 입고 사람들과 심사위원 앞에 전시된다. 이제는 트렌드에 맞춰 래시가드에 빤쓰만 입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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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기준에 빤스라인 테스트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미스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한켠에 있는 대회 Q&A를 들어가봤다.


본선대회 심사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모든 심사는 심사위원들의 재량으로 판단됩니다. 미스코리아 조직위원회에서는 심사위원들에게 심사 참고사항을 알려줄 뿐 특별한 기준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라고 한다. 심사위원들과 미스코리아 조직위원회가 어떤 특별한 기준을 강요하고 있는지 우리만 아나보다.

한국일보야~

사실 정말 분노한 이유는 이 모든 행사를 한국일보가 진행해서다. 춘추필법 정정당당 불편부당 60년 전통의 정론지 한국일보가! 중도를 지향하는 한국일보가! 부끄러워서 미스코리아 홈페이지 대외역사에 코딱지만하게나 한국일보를 언급하는 줄 알았더니 한국일보 홈페이지에서 홍보 기사도 써준다.

확 바뀐 ‘2015 미스코리아’ 서바이벌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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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도 아니다.

해당 기사에서는 한국일보, ㈜한주미디어네트워크가 미스코리아를 주최한다고 나와 있는데 한주미디어네트워크는 구한국일보 쯤 된다. 지금은 갈라진 신한국일보와 구한국일보가 유독 미스코리아에서만큼은 대통합의 모습을 보인다. 다른 언론사 인터넷 홈페이지의 각종 선정적 광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정의 일환으로 더러운 광고도 치워버린 한국일보가 지극히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진행되는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왜 매년 꼬박꼬박 개최한단 말인가!

본격 대통합

본격 대통합

그래서 한주미디어네트워크와 한국일보에 직접 물어봤다.

우선 한주미디어네트워크에 취재를 시도했다. 뚜뚜뚜… 드디어 전화를 받았으나 ‘본선 준비 때문에 바빠 대회가 끝나고서야 응답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번엔 한국일보에 취재를 요청했다. 요청한 취재공문에 서면으로 질문까지 보냈으나 한국일보측은 아직 응답하지 않았다.

대답 좀 해주센..

대답 좀 해주센..

일각에서는 장재구 전 한국일보 회장이 미스코리아 대회를 아꼈기 때문에 눈치보느라 도저히 포기를 못했다던데 이건 아닐 거 같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횡령과 업무상 배임죄로 징역 2년 6개월을 받았거든요! (설마 감옥에 있는 장재구 전 회장 위로용일까..)

이제 그만 좀 해라

아무리 여성혐오가 판을 치고 여성 타자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지만 언론지가 나서서 주최하는 건 정말 너무하다. 여성혐오며 반페미니즘적인 세태에 대해 나서서 비판해야 할 언론이, (실존하는지 나는 모를) 중도를 지향한다는 언론이 어째서 이토록 우스울 정도로 전형적인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주의적인 행사를 개최하느냔 말이다.

미스코리아 대회 일년치 걸로는 성에 안 찼는지 비쥬얼레전드 페이지에서 역대 최고 미모의 미스코리아가 누군지도 살펴봐준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특별한 기준을 강요하고 있는지 우리만 알고 있는 것 같다.sdf미스코리아 대회는 여성을 미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하고 순위를 매기고 벗길 원하고 그 벗은 ‘미인 후보자’들을 전시하고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미인을 구분하는 과정과 기준은 전적으로 남성적 존재와 동치인 소비자, 심사위원단과 같은 권력자에 의해 설정된다. 초창기의 개최 의도가 그러했듯,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듯 여성은 아름다워야 살아남아 영광을 누릴 수 있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그 영광을 받을 자를 골라내기 위해 혹은 그렇지 않은 여성을 끌어 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여성을 타자화하고 전시한다.

미스코리아는 이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팍팍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북돋여준다는 헛소리로 여성들을 눈요깃거리로 전락시킨다. 팍팍한 삶의 이유를 나, 개인 한 명의 탓이라거나 혼자 극복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왜 여성을 끊임없이 타자화하고 또 전시, 소비되는 대상으로 환원시키냐는 말이다.

사회에서 끊임없이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발생하는 이유는 일베와 같은 극단적인 집단만의 탓이 아니다. 이미 체화되어 그래서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이런 개별자 하나하나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차곡차곡 젠더 편견과 성차별을 만들어 내 우리 모두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한국일보가 말하는 정정당당 불편부당에는 반세기가 넘는 섹시즘도 포함되는 듯 보인다. 남은 반세기 역시 여전할 것인가. 한국일보와 (주)한주미디어네트워크는 미스코리아 대회와 그 목적, 그리고 이 대회의 튼튼한 받침이 되는 반페미니즘적 매커니즘을 반드시 재고해야만 한다. 나는 춘추필법 정정당당 불편부당을 지향하는 한국일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럴지 정말 잘 모르겠지만) 이 모든 반페미니즘적 요소들이 내 오해였구나! 하는 답변을 듣는다면 나는 외치겠다.

갓빤스라인코리아 만세!

   [ + ]

1. www.misskoreai.co.kr
2. 미스코리아는 1957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72년부터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었다
3. 뒤에 소수 자리 제외하고 직접 일일이 계산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