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퍼들의 전쟁, 쇼미더머니.

지난주 부터 시작된 쇼미더머니 시즌4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3일에 방영된 2회는 유료플랫폼 기준으로 1534 남녀 시청 층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고, 힙합 음악에 관심있다는 사람들이 모이면 쇼미더머니에 대한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시즌1에서 시즌4에 이르기까지 로꼬, 바비 등 수많은 랩스타를 배출해낸 쇼미더머니는 대한민국에서 힙합 음악에 대해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힙합 음악하면 쇼미더머니, 쇼미더머니 하면 힙합 음악’ 이라는 유기적 관계가 이미 형성된 것이다.

힙합 했을 때 떠오르는게 쇼미더머니라니

그러나 ‘쇼미더머니가 힙합 음악의 본질에 충실한가?’ 라는 대답에 “Yes”라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쇼미더머니가 방영되는 금요일 11시부터 토요일 새벽 1시까지 힙합엘이, 힙합플레이야, 리드머 같은 힙합 뮤직 커뮤니티의 게시판은 불타오른다. “버논 왜 붙음?” “앤덥 개사이닼ㅋㅋㅋ 아이돌 깝치는거 개시룸” “블랙넛 말대로 결국 우승은 송민호 아님?ㅋㅋㅋㅋ 쇼돈노답” 같은 골수 힙합팬의 글 부터 “피타입 존나 못하네 저게 랩이냐 왜 빠는지 모르겠음 지코가 더 잘함ㅇㅇ” 등의 어그로글 까지 다양한 논의가 오간다. 하지만 어그로성 글을 제외한다면 모든 논의의 기본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쇼미더머니는 힙합 음악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랩퍼들이 나오는 쇼일 뿐이다”

 

쇼미더머니와 힙합 음악 사이엔 거센 논쟁들이 있다. ‘쇼미더머니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랩퍼)들의 태도가 과연 바람직한가?’와 같은 플레이어 중심의 논쟁과 ‘쇼미더머니를 본 대중들이 힙합을 그릇되게 인식하지 않을까?’ 같은 대중 중심의 논쟁까지. 그러나 쇼미더머니에 대한 논쟁이 빗발치는 가운데, “어떤 면에서 쇼미더머니가 힙합 음악의 본질을 담지 못하고 있는가?” 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아직 없는 듯 하다.

그 이유로 첫째는 상업적 성격의 쇼미더머니가 너무 많은 측면에서 힙합 음악의 본질을 무시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힙합 음악의 ‘본질’ 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같을 수 없으므로 누구나 이마를 탁 치고 무릎을 탁 칠만한 답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첫 번째 이유와 홍보의 장이 되어버린 쇼에 대해 짧은 사견을 말해보려 한다.

힙합이 뭔데?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힙합 ≠ 랩이다.

힙합 문화의 4대 요소는 MC, 그래피티, DJ, B-Boys & Girls 이며 ‘MC’로 대표되는 랩은 힙합이라는 거대한 문화의 일부일 뿐이다. 필자는 그래서 글에서 ‘힙합’이라는 표현보다 ‘힙합 음악’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쓰고자 한다.

디스 & 스웩. 쑈오미-더-머니!

쇼미더머니의 핵심은 ‘랩배틀’과 ‘스웩’이다. 제작진은 ‘힙합 뮤직’의 수많은 요소들 중 ‘스웩’과 ‘랩배틀’이라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차용한다. 가장 자극적이고 상업적으로 사용하기 좋은 부분만 잘라내어 가공한 다음 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돈 버는게 1차 목적인 엠넷은 당연히 스웩과 디스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싸움 구경이 가장 재밌는 구경 아닌가. 시청자들은 재밌다고 하든 욕을 하든 결국 이 싸움 구경을 볼 테니까. PPL과 광고로 제작비 끌어모으고 시청료 받아먹고 여기저기서 돈 받아먹기 좋은 최고의 돈벌이 수단이 되는 것이다.

디스랑 스웩에 밥비벼먹으면 ㄹㅇ 밥도둑

디스랑 스웩에 밥비벼먹으면 ㄹㅇ 밥도둑

여기에 쇼미더머니가 힙합음악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Swag과 Diss가 강조되다 보니 힙합 음악에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인 ‘Hood’나 ‘Respect’ 같은 요소들은 조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힙합 잡지 중에는 ‘Respect’라는 잡지도 있다. 그 만큼 Respect는 힙합에서 중요하다.

미국 힙합 잡지 중에는 ‘Respect’라는 잡지도 있다. 그 만큼 Respect는 힙합에서 중요하다.

힙합 음악에서 Hood는 ‘나고 자란 동네, 그리고 가족을 포함한 동네 친구, 이웃’을 의미하는, 공동체적 성격을 가진 속어다. 힙합 음악에서 Hood는 다른 hood와 경쟁하는 ‘파벌’의 성격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런 측면에 앞서 동고동락한 세월에서 나오는 믿음과 끈끈한 형제애의 의미를 가진다. Respect 역시 힙합 뮤지션들 간의 끈끈한 형제애와, 형제애에서 나오는 서로의 인격과 실력에 대한 상호 존중을 의미한다.

힙합 음악엔 디스와 스웩으로 대표되는 ‘경쟁’과 더불어 다른 실력있는 랩퍼를 존중하고, 같은 크루, 레이블, 또는 집단에 있는 랩퍼들을 위해주는 끈끈한 문화가 공존한다. 그러나 쇼미더머니에서는 ‘경쟁’ 뒷 면에 있는 끈끈함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극적 갈등의 밑밥을 깔기 위해 서로를 뒷담까는 인터뷰를 집중적으로보여주고, 다른 랩퍼의 실수를 비웃는 모습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준다. 쇼미더머니에서 랩퍼들은 다른 랩퍼들을 비웃고 호박씨까고, 상호 비방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크루원 간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존중은 드라마를 위한 장치로만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쇼미더머니에서 힙합 음악은 ‘헐뜯기와 돈 자랑’ 을 주제로 하는 음악이 되고, 힙합 음악에 대해 오해를 가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신인 얼굴 좀 보자…

플레이어(랩 음악을 하는 것을 종종 ‘랩 게임’이라 통칭한다. 그래서 랩퍼들을 ‘랩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라는 의미에서 플레이어라고 부르기도 한다.)들의 태도나 참가자 구성 역시 구설수에 오른다. 먼저 기성 랩퍼들의 참가가 문제다. 쇼미더머니 시즌2 부터는 기존 실력파 랩퍼들이 많이 참가하기 시작했고, 이번 시즌4에는 멜론차트를 휩쓸던 긱스의 릴보이까지 나왔다. 신인 발굴을 위한 무대에 릴보이라니. 소환사의 협곡에서 막 궁극찍고 타워 슬슬 밀려는데 상대편 이즈리얼이 바론버프에 삼위일체들고 나타나는 기현상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뭐.. 실제 일어날 일은 없겠지만 그냥 비유로.. 그리고 피타입 형님은 애초에 제작진 비판이 참가 목적이었으니 예외로 치겠다.)

신인을 위한 등용문을 기성 랩퍼들이 차지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프로듀서들은 실력이 보장된 기성 랩퍼들을 팀으로 데려오려 할 것이고, 신인을 위한 T.O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시청자 역시 실력과 재미있는 무대를 보장할 수 없는 신인보다는 실력과 공연 매너가 보장된 기성 랩퍼가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결국 신인을 위한 무대는 기성랩퍼의 인지도 향상을 위한 무대가 되고, 홍보 수단으로 전락한다. 신진 아티스트의 등장을 위한 장이 기존 아티스트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변한다는 것은 씁쓸할 따름이다.

쇼미더머니 글2

홍보 목적으로 참가했다고 추측되는 기존 랩퍼나 아이돌 멤버를 보면 한편으론 측은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얄밉다.

전쟁을 하려면 제대로 해라

랩퍼들의 전쟁을 슬로건으로 걸고 시작한 쇼미더머니. 하지만 이 전쟁이 진정한 의미의 힙합 전쟁인지는 회의가 든다. 명분없이 프로그램 규칙에 순종하는 랩배틀은 엠넷이 정말 힙합의 껍데기만 차용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기성 랩퍼들의 출연은 홍보수단으로 전락한 쇼미더머니를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화룡점정으로, 악마의 편집을 통해 랩퍼들을 서로를 깔보고 비웃기나 하는 저열한 녀석들로 보이게 만들었으니 에스프레소 5잔을 원샷 한 것처럼 입맛이 쓰다.

대중은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판단하는 존재다. 프로그램이 마케팅으로 점철되면 점철될수록 대중은 이를 눈치채고 프로그램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이미 JJK, 제리케이 같은 상당 수의 랩퍼들이 예전부터 쇼미더머니를 멀리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며 힙합씬 내부의 ‘자정작용’을 하고 있다. 아직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갈수록 상업적 색채가 짙어지는 쇼미더머니를 보면 이런 움직임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더 많아지고, 움직임의 크기도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늦기 전에 ‘힙합의 본질’ 에 다가서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쇼미더머니가 오래 갈 수 있지 않을까. 랩퍼들의 전쟁. 좋다. 하지만 전쟁을 하려면 제대로 해라. 아무리 프로그램 이름이 쇼미더머니지만 이토록 순수하게 돈 욕심만 내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