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했다.

이번 퀴어 퍼레이드는 반대시위에 밀리지도 않았고, 큰 사고가 나지도 않았고, ‘변태들이 눈에 보이면 신고해 버릴테다!’라는 요량으로 갔었지만 다행히(?) 눈에 띄는 노출은 없었고, 시청 광장에서 출발한 퍼레이드는 무려 남산과 명동 거리를 돌고 무탈하게 끝났다.

‘일 년 중 이 하루만이 아닌, 언젠가는 일 년 내내 우리가 당당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누군가가 이번 퍼레이드의 축사에서 했던 말이다. 퀴어 퍼레이드 뿐 아니라, 이미 거리 행진 자체는 역사 책의 흑백사진으로밖에 접할 수 없게 됐다.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이미 교과서 속의 이상으로만 치부되는 세상에서, 이 많은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비현실을, 우리는 현실로 만들었다.

출처 : 퀴어 문화축제 페이스북 페이지

출처 : 퀴어 문화축제 페이스북 페이지

길고 길었던 축제는 끝났다.

다시 일상이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었고, 다시 계절학기 시험에 시달리고, 취업을 걱정하고, 미스핏츠 마감이 눈앞에 닥쳤음을 실감했다. 밤 아홉시 반, 거의 모두 떠나간 시청 광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고, 치맥을 먹고 난 나와 일행들은 막차를 타고 떠났다. 모두가 꿈에서 깨어나야만 했던, 월요일을 앞두었던 그 밤.

이 글이 마지막이다. 나는 이 글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까. 소감? 선동? 유대? 아쉬움? 감사함?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순전히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썼던 글은 어느 새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사실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가 끝인 것 같다.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편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여름밤의 꿈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아련아련…..!!!!

아련아련…..!!!!

이렇게 글이 끝나면 참 좋았을 것 같다.

역시 나는 알량한 인간이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는 제대로 묻지도, 화내지도, 따지지도 못하면서 집에 와선 이불을 뻥뻥 차고 주위 사람들에게 카톡으로 불평을 해댄다.

내가 이 글을 쓴 계기는 정말로 단순했다. 퀘스쳐닝1)Questioning.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정하지 못한 사람.으로 산 시간들이 아까워서. 그걸 보상받고 싶어서.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나 자신에게, 남들에게 확인받고 싶어서. 그런 얄팍한 생각으로 시작한 글이니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항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올라가는 좋아요 수를 보면서 전전긍긍했다. 이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정말 공감하는 걸까. 그저 요즘 핫한 퀴어 얘기니까 읽고 지나치는 김에 ‘좋아요’ 한 번 누르고 가는 거 아닐까.

그렇기에 두 번, 세 번씩 고치면서 어떻게든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야만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성 소수자 이야기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오만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커밍아웃한지 겨우 1년이 지났고, 이반 동아리에서 활동한 시간은 그보다 더 짧다. 퀴어로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치기어린 이야기는 그래서 솔직한 ‘척’, 쿨한 ‘척’하는 것에서만 머물렀다.

수련 for Misfits

그리고 6월 28일 시청 광장의 퀴어 퍼레이드 폐막 공연은 그 치기어림의 섣부름을 나에게 다시금, 제대로 각인시켜 주었다.

폐막 공연은 두 사회자의 인사로 시작했다. 옆의 반대 시위 bgm 볼륨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 마이크 볼륨을 한껏 키워놓아 시청 광장이 떠나갈 듯한 쩌렁쩌렁한 소리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짱짱한 볼륨으로 사회자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사회자 : “평소에는 발에 채이는 게 이성애자였는데, 여기서는 발에 채이는 게 퀴어들이네요!! (중략) 자, 그럼 이제 우리 저 사람들 들으라고, 이 자리에서 한 번 다같이 크게 외쳐봐요! 저희가 외치면 여러분이 따라하는 걸로!”

여 사회자 : “나는 레즈다!” (군중들 : ‘나는 레즈다!’)

와, 소리 진짜 크다.

남 사회자 : “나는 게이다!” (군중들 : ‘나는 게이다!)

…게이 진짜 많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 사회자 : “나는 트랜스젠더다!”

…어?

사회자 : “아, 여러분, 소리 작아요. 몇 분 안 계신 분들 위해 다시 해봐요! 나는 트랜스젠더다!” (군중들의 함성)

아, 까먹은 거겠지.

남 사회자 : “나는 끼순이다!”

일동 웃음.

사회자 : “아, 이제 공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여러분 이제 팀 소개를…”

……뭐야.

내가 소심한 건가? 뭐지? 지금 장난해? 까먹었나? 아니 근데 LGBT라는 용어를 저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을 건데 까먹을 리가. 순서를 넘어가서 언급하기 애매했나? 그럼 끼순이는? 무성애자는? 내가 이성애자라고 생각해서 안 부르는 거야? 근데 저 바깥 사람들은 내가 성소수자라는데?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왕따 당하는 학생이 애써 ‘나 왕따에요, 도와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오기와 비슷했다. 일반들 사이에서도 모자라 이반들 사이에서조차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가는 정말로 내가 발붙일 곳이 없다는 걸 내 스스로 인정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글도 그냥 좋게좋게 마무리하려고 했다. 퀴어 퍼레이드는 성공했고, 우리는 우리 존재를 사회에 알리는 것에 성공했고, 다음 축제에도 나는 꼭 함께 즐기면서 차별을 철폐하는 긍정적인 사회 운동의 전파에 공헌할 거예요.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고 마침내는 써놓았던 글을 10분 만에 모두 밀어버렸다. 솔직히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오전 열한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진행되던 축제의 대장정 중 저 대사가 차지했던 시간은 단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을 아주 단순하고 짧은 ‘진행멘트’였을 뿐이다.

나는 이제껏 그런 소심한 관대함으로 그들을 정당화해주었다. 이태원 퀴어 메인 파티에서도 내 면전에서 “세상에 바이가 어딨냐?”라고 묻는 게이 앞에서 억지로 웃으면서 넘어갔다. 다른 동아리 사람을 만날 때 “바이는 좀… 사귈 대상은 아니지? 어차피 걔네도 우리 진지하게 생각안할 걸.” 라는 말을 들어도 ‘제가 바이인데요’ 라는 말조차 못하고 넘어갔다. 나 하나로 그 자리의 분위기를 깨기가 싫어서. 내가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없는 사람들끼리의 불안한 연대가, 나 하나의 항변으로 흔들리는 게 싫어서.

원래라면 이래야 하는데….

원래라면 이래야 하는데….

동성애자들은 항변한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고, 우리의 사랑도 똑같은 것이니까 차별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습게도, 이반 세계에서는 ‘바이포비아’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상대의 성별이라는, 양성애자들이 가장 예민하게 비판하고 맞서는 바로 그 잣대를 이반 세계 안에 들어선 양성애자들에게 들이민다. 또한 그 이유로 바이들이 맺는 ‘연애’적 요소들이 포함된 관계들을 언제든지 불편하면 바꿔끼울 수 있는 쉬운 것인양 말한다. 그건 동성애자들은 항문섹스를 하기 위해 만난다는 저 말도 안되는 낯뜨거운 소리(주장이라고 할 가치도 없다)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까! 이건 생선이라고요! 생!!!선!!!!!

그러니까! 이건 생선이라고요! 생!!!선!!!!!

이런 ‘쉬운’ 양성애자의 프레임 안에서 양성애자들은 동성애자보다 커밍아웃하기 훨씬 쉽다는 말도 듣는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커밍아웃을 ‘당하는’ 입장인 이성애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모르니까 괜찮아’ 식의 순진함을 앞세운다. 그럼 여자도 사귀어봤어? 남자하고는 자봤어?  남자하고 많이 해 보면 생각 달라질 걸?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인정하기 무서운 거 아냐? 유행에 휩쓸린 거 아냐?

그런 유행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양성애자인 척 한다는 말까지 들어본 나로서는 – 그러니까 그 분의 말은 내가 바이면 남자에게 너와 잘 될 거라는 여지를 주면서도 동시에 정복하기 어렵다는 신비감을 조성한다나…실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겠다. – 정말 그런 유행이 있다고 해도 이제는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유행을 통해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가 마구마구 흐려진다면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은 말도 안되는 발상일까.

이렇게 된 이상 전부 바이나 되어버려라!

이렇게 된 이상 전부 바이나 되어버려라!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퀴어가 퀴어 퍼레이드 처음 간 이야기에서, 하라는 퀴어 퍼레이드 얘기는 안 하고(…) 시리즈를 연재하는 내내 딴 길로 얘기가 새어 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내 글을 통해 퀴어 퍼레이드를 간접 체험하고 싶었던 독자가 계셨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린다. 그러니까 내년에 직접 오시죠.

그러나 퀴어 퍼레이드는 “시청에서 명동까지 무지개 띠를 만들며 한 시간 동안 행진하는” 단순한 거리 퍼포먼스가 아니다. 그 한 시간을 위해 게이들, 레즈들, 바이들, 트렌스젠더들, 그리고 LGBT로도 호명되지 못하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은 유리 벽장 안에서 말 그대로 ‘버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전히 시청 광장 잔디밭 밖에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기만하는 무리들이 있고, 우리가 도로에서 손을 흔들어도 유리창을 올려버리는 운전자들이 있고, 우리가 행진 코스를 잠시라도 이탈하려고 하면 다시 안으로 밀어버리는 퍼레이드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경찰벽이 있다.

퀴어 퍼레이드는 해방구가 아니다. 다만 숨통만 트이게 해준, 변함없이 우리를 가두고 있는 평소보다 더 커진 유리 벽장에 불과하다. 축제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딱 한 명 분의 벽장 안으로 자신을 다시 우겨넣어야 한다. 우리는 열여섯 번의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고 나서야 겨우 서울 하늘 아래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고, 하룻밤 꿈에 불과한 퀴어 퍼레이드가 아닌 현실에서 살아 숨쉬는 ‘퀴어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는 날은 아직 멀었다.

내 인생에서, 축제를 기다리는 월요일 아침이 아니라 축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 밤이 현실이 되기를.

 

편집 및 교정 / 저년이

글 / 몰래

   [ + ]

1. Questioning.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정하지 못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