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이맘때는 한국 대학생들의 수강신청 시즌입니다. 오늘은 한국 대학의 광적인 수강신청 전쟁을 보여주는 ‘반도의 문물’을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UTCK(한국표준시간) 프로그램입니다.

수강신청의 비밀병기, 요렇게 생겼습니다.

한국에선 학교마다 수강신청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온라인으로 수강할 과목을 선택해 신청하는 시스템입니다. 신청 방법은 한마디로 ‘클릭순’입니다. 인기과목은 거의 2초 안에 결판이 납니다. 길어야 30초. 그 안에 본인이 원하는 수강과목을 재빠르게 클릭해서 수강신청에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생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수강신청 전쟁에서 성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쓰이는 승리의 아이템, 그것이 바로 ‘UTCK’입죠.

UTCK는 한국과학표준연구원에서 제공하는 표준시간 알리미입니다. 학교 서버시간과 본인 컴퓨터의 시간을 맞춰서 0.01초도 어긋나지 않는 ‘정확한’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이 소프트웨어를 활용합니다. 9시부터 수강신청이 시작되면 9시 2초면 본인이 원하는 과목의 수강인원(TO)가 다 찰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빈 화면에 대고 처절하게 클릭 연습을 해보기도 합니다만, 동기 중에 한 명 이상은 꼭 0학점-3학점을 겨우 넣은 ‘저주받은 손가락’들이 생깁니다.

내 손가락을 믿느니, 프로그램을 믿겠다 하는 학생들은 ‘매크로’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매크로란 알아서 컴퓨터가 반복작업을 하도록 해놓는 것인데요. 매크로를 걸어놓으면 마우스가 알아서 신청 과목을 반복 클릭하는 겁니다. 서버에 과부하가 걸리기 쉽기 때문에 일부 대학에선 매크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0.1초가 아쉬운 만큼, 빠른 서버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요. 조금이라도 더 빠른 서버를 이용하기 위해 수강신청 날, 아침부터 학교 근처 PC방으로 달려갑니다. 대충 모자를 눌러 쓴 졸려 보이는 대학생들이 PC방에 앉아 시계만 보고 있다? 그러면 수강신청을 기다리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이 때, 외국에서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들은 거의 웬만한 과목은 다 포기한다는 마음으로 수강신청에 임합니다. 외국 서버가 더 느리기 때문이죠. 물론, 학년별로 커리큘럼이 짜여 나오는 공대나, 교육대학, 간호대 등은 이러한 수강신청 풍속도에 예외적이긴 합니다.

이 일련의 절망과 고통, 자책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대학교 커뮤니티에는 여러 글이 올라옵니다. 대체로 이렇습니다.

“심개(심리학 개론) 수업 가서 빌면 넣어주나요?”

수강신청에 실패한 학생들은 이렇게 정원 외 인원으로 교수에게 따로 허락을 받아야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걸 ‘가서 빌어서 들어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글도 올라옵니다.

“현대생명론 수업 사거나 교환 원합니다.”

 

세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강의 교환/ 판매 관련 글

세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강의 교환/ 판매 관련 글

세연넷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수강신청에 실패한 과목을 돈 주고 사거나, 자신이 필요 없는 과목을 교환하는 ‘벼룩시장’이 열립니다. 물론 다들 높은 대학등록금을 지불한 학생들입니다. 그렇지만 원하는 과목을 듣지 못해 다시 돈을 주고 거래하는 겁니다. ‘2012 대학지속가능지수’ 평가에서 한국의 35개 대학은 모두 ‘수강신청 만족도’에서 D~F 등급을 받았습니다. 물론 A가 굳인 거고 F가 저질등급인 거구요.

이 와중에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비쌉니다. OECD 국가 기준 연평균 대학 등록금은 실질적으로 2위 수준입니다.  (2009년 국공립대,사립대 모두 2위, 2011년엔 국공립대,사립대 모두 4위. 그러나 2,3위에 99%가 등록금을 내지 않고 다니는 등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등록금 부담이 더 압도적인 상황 ) 1위는 미국이구요. 한국에서 학사모는 천 만원 이상의 빚을 의미합니다. 대졸자 10명 중 7명이 평균 1445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고 하니 알 만 합니다. 이 빚을 갚는 데는 4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대충 서른 즈음엔 그래도 다 갚겠네요. 아, 대학 열 곳 중 일곱 곳은 카드 결제는 안 받습니다. 그러니 한국으로 유학을 오신다면 현금을 준비하시든, 대출을 받으시길.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 과목의 수강 신청은 어려운 편이라고 합니다만, 합리적인 개선을 고민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MBA) 와튼스쿨의 경우 ‘베팅’의 원리를 이용합니다. 입학 시 1인당 5000포인트를 받고 듣고 싶은 강의들에 우선순위를 매겨 포인트를 거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대의 경우 1) 순번대기제 같은 제도를 도입해, 수강신청을 한 사람이 수강을 취소하면 다음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이 다른 대학에서도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 대학의 수강신청. 여러 사정이 있어 이 모양이라 생각하고는 싶은데, (사실 그냥 학교가 게을러서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등록금 내고 빚더미에 앉고, 웃돈 주고 강의까지 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자 주

1) 이 글을 본 고려대학교 재학생 분의 말에 따르면 ” 대기 제도가 있는 건 맞지만, 대기자가 자신의 대기 순번을 알 수 없어서 오히려 선택이 더 어려워졌다는 평도 있습니다. 차라리 탈락이라면 다른 과목을 신청할텐데, 가능성도 모르는 채로 대기 상태로 기다리다가 탈락하게 되니 오히려 더 불리하다는 겁니다. 게다가 대기자들의 신청/탈락이 확정된 후에는 대기 제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전과 마찬가지로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강의 교환 내지 거래를 원하는 게시물들이 종종 올라옵니다.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아요.”라고 합니다. 참고를 위해 추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