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팔이의 시작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취업 시장에 새로운 트렌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당시 취업에 관심도 없는 새내기였기 때문에 잘은 몰랐지만 ‘스토리텔링’이다 ‘감성자소서’이다 뭐다 하며 ‘진솔한 자기 이야기’에 대한 강조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길게 보아 봤자 고작 2n년을 산 우리에게 고난이 무엇이었으며, 문제가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혁신적으로 해결했느냐며 물어대는 통에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태평양을 맨몸으로 횡단하고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동물들과 함께 마라톤을 하고 히말라야 산 정상에서 라면 정도는 먹어줘야 인사담당자의 눈에 띌 거라는 자조 담긴 말을 하기도 했다. 무언가 ‘경험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한 줄 스펙으로 남기는 일에 목말라 있는 우리를 노리고 어느 순간부터 온갖 대기업, 중견기업, 정부 산하 공공기관 및 단체 등에서 무언가 신박한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ㅇㅇㅇ기자단

□□ 서포터즈

△△△△ 체험단

☆☆대원

달려라~ 달려라~ 20대~

그러자 너도나도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 그 의도야 다양했으리라. 내가 꿈꾸던 기업이었으니까, 혹은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직종과 유사해서, 스펙에 한 줄 추가하기 위해,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재밌어보여서, 혹은 봉사활동은 나의 어릴 적 로망이라, 것도 아니면 이렇게라도 연애할 대상을 만나고 싶다는(…) 축축한 욕망을 위해.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흐르자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거의 대부분이 대외활동을 한 개 이상은 하니까. 이거 하나로 내가 경쟁력이 있을까? 누구나 알아주는 큰 기업에서 무언갈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우리는 내 희망 직무와는 상관없는 대외활동을 신청하기도 했다. 뭐, 별로 관심은 없지만 알아주는 기업이니 도움은 되겠지. 혹은 대외활동 같은 거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흥미도 안 생기지만.. 나만 안 하면 안되잖아? 남들 다 하는데? 스펙에 한 줄이라도 적어야 되지 않겠냐. 이렇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대외활동은 속칭 제로 베이스가 되고 말았다. 마치 토익 900 이상처럼, 아르바이트 경험처럼. 누구나 다 해서 딱히 큰 플러스 요인은 없지만 동시에 누구나 다 해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것.

넘치는 수요, 잘 팔리는 사업

문제는 이게 아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청년 실업률의 최고점을 찍는 이 나라에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뛰어나 일단 취업을 하고 봐야 하는 우리들에게 스펙에 한 줄 적겠다고 아둥바둥거리는게 무어가 잘못됐단 말이냐. 문제는 바로 넘치는 수요를 재수없게 이용하는 기업들이다1)모집 주체에는 기업, 정부 기관, 공공단체, 시민 단체 등이 있으나 본 글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모집 주체가 기업인 점을 들어 편의상 기업으로 기재하겠다. 큰 기업 한 두개가 본격적으로 대외활동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주변의 잠잠하던 다른 기업들도 너도나도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무슨 무슨 기자단, 홍보단, 서포터즈 하는 일은 다 똑같은 거 같은데 이름만 바꿔가며 이것저것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활동 내역은 얼핏보면 다양해 보이지만 이름만 다르지, 사실은 비슷하다. 선발된 20대는 인터넷 클릭수로 대변되는 기업 홍보를 위해 기사를 작성하거나 짧은 글을 작성한다. 혹은 영상을 제작하거나 사진을 찍고 웹디자인을 하거나. 블로그에 후기를 작성하거나. 때로는 다른 팀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같은 옷을 입고 프로젝트를 홍보한다(고 쓰고 기업을 홍보한다고 읽는다).

문제는 여기서 노동 착취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기업들의 수는 빤하다. 기업 홍보는 해야겠는데 SNS가 파급력은 높아보이는데 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20대가 좋을 것 같고, 그렇다고 젊은 인턴이나 신입사원 시키자니 좀 모양새도 안 나고 돈도 많이 줘야할 거 같고, 아하! 어차피 스펙에 뭐라도 더 쓰겠다고 혈안이 돼있는 20대를 대외활동 명목으로 값싸게 부리자! 돈도 별로 안 들고! 다루기도 쉽고! 기업 홍보도 되고!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고! 아이디어도 얻고! 콘텐츠도 얻고!

야~하!

야~하!

집 나간 양심 좀 찾아주세요.. 젭라..

아무리 이 나라가 지적재산권이며, 직접 제작한 콘텐츠에 대한 가치와 저작권이며 등등에 대해 생각이 없다하더라도 대외활동에서 20대가 받는 대우는 해도해도 너무하다. 대통령 직속 산하에 있는 청년위원회가 지난 3월에 배포한 대외활동 실태조사2)https://www.young.go.kr/#!/section/1/content/13185?category=23&order=time에 따르면 대외활동 경험이 있는 대학생 중 36%가 ‘열정페이’를 받았다고 답했다. 주최기관으로부터 알바처럼 단순 근로를 강요받고 공고 이상의 과중된 노동을 하기도 한 대학생이 60.5%에나 달했다. 더 문제는 그런 창작물에 대한 원고료나 보수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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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비, 활동비 지원을 명목으로 보통 한 달에 5만원 정도를 받거나, 심지어 무급인 경우가 훨씬 많다. 몇몇 기업은 빵원으로 퉁치기 민망한지 지네 기업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콘텐츠 작성 외에 실제 거리로 나가 기업 홍보에 애쓰는 거리 홍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기업 홍보를 위해 애를 써도, 그 애를 쓰기 위해 사전에 몇 번이나 자기 시간을 할애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내고 내도, “너희들이 좋아서 하잖아!”라는 미명 아래 무급이나 꼴랑 5만원 10만원 정도로 퉁치곤 한다.

친구들 주머니 털어오라고. 대외활동 내에서도 조를 나눠 경쟁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페이스북 좋아요나 설문참여, 인터뷰 등등이 단골 소재다. 잘해보려면 주변 지인 탈탈 털어오는 수밖에 없지 않냐. 보험판매원 모집해서 지인 털어먹고 버리는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머리 굳은 님들이 하기 어려운 페북 홍보나 길거리 홍보 시켜 먹으려고. 딸리는 드립력도 보충하고. 길거리 홍보하려면 원래 사람 써야되는데 그 돈 아깝고 신입사원 내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대학생 등쳐먹는듯.

라고 분노에 찬 20대 내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물론 인사담당자는 대외활동이 구직에 가산점이 된다고는 하지 않는다. 대외활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의 대부분은 대외활동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 하지만 동시에 78%는 대외활동 경험이 전혀 없어도 지원자의 인상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학과 공부 등 다른 일에 충실했을 것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말이 ‘대외활동을 하지 않아도 너의 합격 여부에 마이너스가 절대 되지는 않을거야~~~’와 동치는 아니다. 결국 20대는 우리에겐 명확히 공개되지 않은 정보의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다.

물론 소수 몇 대외활동들은 적절해 보인다. 실제로 직무와 관련된 일들을 20대들에게 부여하거나 해외에서 업무나 봉사활동을 하기 힘든 20대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은 끔찍한 청년 실업률에 대한 두려움과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20대들의 전전긍긍과 불안함을 교묘하게, 또 적절히 이용한다.

아 불만 있으면 하지 말던가~~~~~

그럼 안하면 되잖아? 지도 스펙 때문에 해놓고 왜 난리야? 라고는 제발 하지 말자. 당장 내 옆 20대들만 봐도 취업에 대한 불안감에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취업 N수생은 넘쳐나며 ‘나는 이제 사토리 세대’라는 자조는 흘러넘친다. 취업과 생활고로 청년 자살은 잇따라 일어나고 대학은 이미 취업을 위한 학원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 20대들에게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뛰어나기 위한 스펙 한 줄은 단순한 한 줄이 아니다. 그 한 줄에 대한 간절함은 나도 결국엔 저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과 공포에 대한 일종의 발악이다.

이젠 죽겠다는 말도 질린다

이젠 죽겠다는 말도 질린다

20대의 넘치고 넘치는 강요된 열정! 으리! 로 얻게 된 기업 홍보 효과, 인터넷 클릭수, 바이럴, SNS 파급력, 좋은 콘텐츠, 넘치는 아이디어, 궁극적인 수익까지. 그런데도 20대들에게 정당한 보수를 주는게 그렇게 어렵나. 인턴은 그나마 하도 열정페이로 논란이 생기니 이제 대놓고 열정페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외활동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끊임없이 불만을 뱉어내자. 왜 정당한 처우를 보장해주지 않는지, 왜 나를 값싸게 부리려고 하는지.

이 불만에 불만 있으면 대외활동 사업 하지 말던가! 그냥 너네가 좀 해!!!!!!양심 좀 찾아!!!!!!!!

   [ + ]

1. 모집 주체에는 기업, 정부 기관, 공공단체, 시민 단체 등이 있으나 본 글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모집 주체가 기업인 점을 들어 편의상 기업으로 기재하겠다
2. https://www.young.go.kr/#!/section/1/content/13185?category=23&order=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