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이 죽었다.

6월 17일, 미국의 한 백인 청년이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미국 흑인 교회에서 총기난사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상원의원을 포함해 9명이 숨졌다. 가해자인 딜런 로프라는 이름의 백인 청년은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있었으며 범행 당시 “당신들은 우리 여성들을 성폭행했고, 우리나라를 차지했다. 당신들은 이 나라에서 떠나야 한다. 나는 흑인에게 총을 쏘러 왔다”고 말했다고 목격자는 증언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내쫓고 차지한 백인들의 역사는 까맣게 잊은 채 흑인을 탓한 것도 골 때리지만 더 골 때리는 건 이놈이 남부 연합기를 흔들어댔다는 점이다. 남부 연합기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주창하던 남부 연합을 상징하던 깃발이다. 흑인 인종 차별의 상징이란 말이다.

현재 미국 국기 옆에 있는 빨간 바탕의 깃발이 남부 연합기다.

현재 미국 국기 옆에 있는 빨간 바탕의 깃발이 남부 연합기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남부 연합기 관련 상품이 월마트를 통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가 남부 지방이며 아직까지 인종차별의식이 있는 곳이라지만 정도가 너무 심했다.

월마트를 비롯해 언론계, 정계, 산업계 모두가 남부 연합기와 관련된 상품을 보이콧하고, 남부 연합기 사용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에게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심지어 대통령이 직접 팟캐스트에 나와 인종차별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종북’을 외치며 한 소년이 테러를 가할 때, 테러는 쏙 빼놓고 종북몰이를 한 반도의 흔한 대통령과는 다르다.

잠깐 좌표를 한국으로 돌리고, 시간도 돌려보자.

시간대는 2014년 여름. 위치는 광화문 광장. 청년들이 피자와 치킨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단식투쟁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하한다. 피자와 치킨을 다 먹은 청년들은 자랑스럽게 전직 대통령을 인격적으로 비하하고 모독하는 노래를 틀고 흥을 돋운다. 집에 가서는 자랑스럽게 인증을 하거나 같이 간 ‘행게이’들을 독려한다.

이들의 화살은 세월호만을 향하지 않았다. 이들은 케케묵은 지역 감정을 갖고 와서 전라도를 차별한다. 표현은 신랄하다. 아니 신랄하다 못해 하수구 급이다. 하지만 이에 관해 어떠한 정치인도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언론 역시 하나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벼운 비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시간을 현재로 돌려보자. 이제 주제는 여성이다.

장동민 사건, 여성시대 사건으로 여성혐오가 ‘다시금’ 불타올랐다. 과거와 달리 여성들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메르스갤이라는 신선한 방법으로 여성혐오를 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코리아는 김치녀 관련 페이지는 살려두고, 메갈리아 관련 페이지만 처벌하는 아름다운 이중잣대를 보여준다. 심지어 몇몇 언론은 여성 혐오를 의미하는 단어인 ‘아몰랑’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한다. 이젠 ‘아몰랑’에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잘못된 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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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을 목도한 미국, 이념논쟁과 지역차별 그리고 여성혐오를 목도한 한국의 태도는 매우 상이하다. 전자는 언론, 산업, 정치,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혐오와 차별을 비판한다. 후자는 언론에 몇 번 나올 뿐,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 있다. 제대로 공론화 되지 못해 해결조차 하지 못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이념논쟁을 부추긴다.

의식이 먼저인지, 제도가 먼저인지 확답은 내리지 못한다. 가장 정답은 의식이 바뀌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제도 확립이 좋은 해결책이다. 그간 한국의 정치권과 행정부는 이런 차별과 혐오 논쟁에서 ‘단 한 번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내세우지 못했다. 그저 느릿느릿, 시민들이 하라고 하니까 하는 시늉만 낼 뿐이다. 만일 그들이 적극적인 해결책을 내세웠다면, 지금처럼 혐오가 판치는 사회가 탄생하진 않았다.

언론도 책임이 있다. 매르스 갤러리, 김치녀 페이지 관련한 뉴스를 언론은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저 ‘실황 중계용’ 보도만 하지 않았는가. 혹은 미디어 속 여성 차별을 ‘실황 중계용’으로만 다루지 않았는가. 전통 미디어의 빈자리를 오히려 ize와 같은 미디어가 채웠다. 적어도 신문과 방송 같은 전통 미디어가 선제로 이와 같은 문제를 다루고, 해결책을 논했어야만 한다.

언론, 정치, 행정이 문제 해결을 포기하니 사회가 혐오로 인해 개판 5분 전이다. 여성을 때리고 한 끼 음식으로 다루는 만화가 ‘상남자 만화’로 묘사되거나, “여성 혐오를 막읍시다!”라고 외치면 “웃자고 한 얘긴데 왜 죽자고 달려드냐”, “남성 인권이 오히려 위기다”, “왜 이렇게 여성편만 드냐”고 답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진짜다.

나중에 “요즘 사회가 개판이야.”라고 한숨 쉬거나 “이 모든 게 경제상황 때문이다”라고 훈수질 두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혐오 방지 정책을 만들어야만 한다. 언론은 뒤늦게 고용 문제, 신자유주의 사회를 문제점으로 논하기 전에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혐오 문제를 어떻게 막을지 이야기해줘야 한다. 지긋지긋한 뒷북식의 분석보다 당장 정책적 대안을 정치권에 촉구해야만 한다.

정말 이게 떠야할 곳은 따로 있다.

정말 이게 떠야할 곳은 따로 있다(..)

정치권도 표현의 자유를 논하기 전에 혐오 관련 게시물을 적극적으로 warning,or.kr 로 때려야만 한다. 아니면 단체로 쇠고랑이라도 채워야 한다. 걸어다니는 명예훼손, 숨 쉬는 모욕죄 덩어리들이 저곳이다. 일본 AV 배우의 신음소리보다 백 배, 천 배 위험한 게 일베다. 청와대 대변인도 야동을 공유하는 세상에 야동 유해 사이트는 너무 구식이다. 정치권도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와 같은 혐오, 극우 단체를 엄중히 단속해야만 한다. 이념을 무기로 민간인들을 죽인 단체를 왜 재건하냐. 행정부도 저런 단체에 대한 경제적 지원 혹은 절차적 지원을 당장 끊어야만 한다.

혐오를 단순히 의식적 개혁으로만 해결하려고 해선 안 된다. 구체화되고 위협적인 혐오엔 그만큼 강한 제재를 가해야만 한다. 더이상 멀뚱멀뚱 혐오를 보고 있으면 안 된다. 혐오의 폭주는 사회 분열을 낳고 사회 분열은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역사 속의 혐오는 나치를 낳았고, 나치는 홀로코스트를 낳았다. 이미 한국의 근현대는 지역 차별과 이념 논쟁으로 반세기가량 비극으로 보냈다.

지금 사회는 혐오의 생지옥이다. 과거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편집 및 교정 / 저년이

글 /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