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냐고 내게 묻는다면, 아마 과장을 약간 더해 “맛있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천천히 내공을 다지기 시작한, 밥값은 아껴도 술값은 아끼지 못하는 초보 애주가다. 멋도 모르고 OT와 새터에서 들이켰던 소주맛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스스로가 음주에 꽤 괜찮은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은 맥주, 어느 날은 선배가 지르는 양주, 어느 날은 제법 운치 있어 보이는 칵테일. 아, 비오는 날 마시는 막걸리도 빼놓을 수 없다. 주종을 늘리면서 술 맛을 탐독하던 나는 곧 술값이 아까워졌고, 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국가공인 조주사 자격증도 땄다. 마침 신촌에 새로 얻은 자취방은 나만의 조그만 둥지가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미니 술집이 됐다. 

제 인생 로망 중 하납니다. 홈바 말이에요 킁킁. 지금은 저정도는 안 되도, 나름 ‘이거’ 해줘! 하면 해줄 만큼의 주종을 자취생 주제에 이고지고 삽니다. 사진 = 구글

세상에 나온 모든 맛있고 대단한 술을 맛보지는 않았지만, 나름 20대를 보내면서 야매로 쌓은 음주 커리어는 쑥쑥 느는 중이다. 그리고 이 커리어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는 박궁그미와 함께 내가 먹었던 그 안주와 그 술, 혹은 그 술과 그 때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할까 한다.

 

#1 야매야매한 셀프 칵테일의 세계 – 여름엔 럼이죠

아무리 칵테일을 배워 봤다지만, 사실 업장에서 먹는 것 만큼의 다양한 술들을 집에 구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마치 영원히 이룰 수 없는 환상의 판타지…. (별).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기주(칵테일에서 베이스가 되는 술로, 주로 진, 럼, 보드카, 위스키 등을 말한다)와 리큐르를 준비하는 대신 야매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러면서도 제법 있어보이는) 레시피 비슷한 것을 소개한다.

칵테일의 세계는 드넓고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여름에 가장 어울리는 계열은 럼 계열이다. 남미 등에서 즐겨먹는 사탕수수술인 럼은 다양한 과일과 무난하게 어울리기 때문에 상큼하고 시원한 칵테일을 찾을 때 제격이다. 럼은 싸게 사면 만 원 정도로 750ml 한 병이 구매가 가능하다. 물론 이 때 럼 자체의 맛은 구리지만 사실 칵테일로 섞으면 상관없다. 당신이 까탈스러운 입맛을 가졌다면야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저렴이 입맛이니까(아니라면 돈을 약간 더 들여서 바카디 등의 유명 브랜드를 살 수 있다.  750ml에 약 1만 6~8천원 정도 한다). 럼 한 병만 있으면 제법 멋낸 칵테일들을 만들 수 있다.

 

얼음만 있으면 칵테일 완전체!

아무리 커 보이는 잔이라도 사실 칵테일에 술이 많이 필요하진 않다. 럼 한 병을 샀다면 왠만큼 애주가가 아닌 이상에야 한 달 이상은 너끈히 한 병으로 버틸 수 있다. 왜냐면 칵테일 잔에는 술이 아니라 얼음을 많이 채우니까!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무 마트나 들러서 돌얼음이나 각얼음 한 봉지만 삽시다. 그거면 멋있어 보이는 칵테일 만들기는 준비 완료!

네. 이런 느낌입니다. 일단 칵테일 만들기를 처음 배울 때 모든 잔에 얼음을 얼마나 채우는지부터 배운다구욧! 간지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얼음. 사진 = CC by Petri Damstén

 

럼 + 아무 과일

자, 일단 집에 있는 아무 잔이나 하나 꺼낸다. 과일과일한 칵테일은 대부분 용량이 많으니 큰 맥주잔이면 무난하다. 그리고 얼음을 가!득! 채운다.

보통 칵테일 한 잔에는 베이스가 되는 기주가 많아봤자 45ml밖에 안 들어간다. 취향따라 15~45ml를 조절해 주면 된다. 계량해 주는 도구로 ‘지거’라 불리는 그것이 있지만, 굳이 살 필요는 없다. 보통 집에 있는 맥주잔을 기준으로 또록또록 5초만 술을 따라 주면 된다. (‘콸콸’ 말고 ‘또록또록’ 말이다. 마치 소주잔에 소주 채우듯이!) 고렇게 하면 보통 45ml다. 자, 거기에 본인 취향의 아무 과일 주스나 45~90ml정도를 부어준다. ‘또륵또륵’ 7~10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휘휘 섞어주면 그냥 끝. 야매 레시피 1이다.

혹시 자취방이 아니라 엄마의 키친 툴이라는 치트키를 쓸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집에 있는 제철 과일을 재깍 꺼내자. (복숭아라거나 복숭아라거나 복숭아라거나…. 딱히 제가 복숭아 빠순이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믹서기에 럼을 45ml 붓는다. 복숭아 혹은 복숭아 혹은 복숭아를 텀벙텀벙 반 개 정도 썰어 넣고 얼음을 한 손 가득 쥐어 넣는다. 30초정도 갈아서 큰 잔에 부어 내면 생과일이 오독오독 씹히는 제법 맛있는 쿨러가 탄생한다. 응? 이게 보통 쿨러랑 뭐가 다르냐고? 럼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깔끔한 술이면서도 약간 단내가 나기 때문에 설탕 등을 넣지 않아도 제법 단맛이 난다. 야매 레시피 2.

 

럼 + 아무 과일 + 맛있는 리큐르

자, 이것보다 좀 더 바에서 볼 법한 칵테일을 만들고 싶다면 제법 활용도가 높은 다음 리큐르들이 도움이 된다.

1) 피치 리큐르: 나와 같은 복숭아덕을 위한 리큐르. 브랜드별로 가격이 제법 차이가 나지만 보통 1만 5천원 정도면 괜찮은 리큐르로 살 수 있다. 요 리큐르를 30ml(약 3초 또록또록) 정도 위의 ‘쿨러’에 첨가해 주면 더욱 진한 복숭아향과 함께 제법 시중의 칵테일(피치 어쩌고 붙은 왠만한 시중 칵테일보다 고퀄리티의 맛이다) 같은 맛을 낼 수 있다.

2) 블루 큐라소: 그렇다. 간지 내기엔 역시 이국적인 색이 짱 아니던가. 럼 + 블루 큐라소 + 파인애플 주스 혹은 파인애플 생과일 간 것 콸콸 = 우리가 여름철 대표 칵테일로 기억하는 블루 하와이언이다. 위 세 가지 재료와 얼음 한 주먹을 넣고 쉐이킹하면 되지만 쉐이커 도구가 없다면 적당히 텀블러나 락앤락 보틀에 넣고 미숫가루 섞는 양 열심히 10~20회 흔들어주면 된다. 리큐르계의 양대 산맥 볼스 사 혹은 마리 블리자드 사 둘 중 어느 걸 사도 비슷하다. (볼스 사 제품이 조금 더 깔끔하고 블리자드 사 제품이 조금 더 부드럽다는 시중의 평이 있으니 참고해도 좋다) 가격은 역시 1만원 중반대.

요로코롬 생긴 이것 말입니다. 사진 = CC by daryl_mitchell

3) 기타 열대과일 맛 리큐르: 바나나, 파인애플 등 매우 다양한 열대과일 베이스 리큐르들이 많다. 이것만 마시면 너무 달달하고 너무 쎈데, 특히 럼과 1:1 비율로 섞고 비슷하게 맛이 어울리는 주스를 아무거나 컵이 꽉 찰 때까지 콸콸 부어주면 이름은 없지만 겁나 맛은 있는 칵테일이 만들어진다.  (이 방법으로 랫사팬더의 야매 홈바에 온 취객들을 여럿 만족시켜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