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7초부터 글의 제목인 ‘I feel something so right doing the wrong thing, I feel something so wrong doing the right thing’이 나옵니다!

나에게 외삼촌은 미워하고 싶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1999년, 빨간 딱지가 소용돌이마냥 휘몰아치던 시절 외삼촌도 그 풍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빨간 딱지는 빨간 줄이 되었고, 출소 후 삼촌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외할머니는 치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내가 외삼촌을 다시 만난 건 14년 후인 2012년 외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니 니네 아빠 억수로 닮았네.”라고 말하는 낯선 스님에게 손님들은 저 사람 누구냐는 눈길을 보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혈육이란 건 무서운 거다. 그날 장례식에서 밤새도록 불경을 외는 삼촌을 보면서, 나는 ‘그거 의미 없어요.’라는 말을 계속해서 속으로 삼켰다.

종교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내가 조계종 성소수자 초청 법회에 간 건, 그래서 반은 오기였고 반은 궁금증이었다. 어차피 내 얘기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나 들어보자. 나는 왜 그 사람을 좋아했을까, 나는 왜 그녀에게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렇게 행동하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일까, 원래 그런 사람인 나는 누구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나 자신은 아직도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으니, 이 미천한 중생에게 한 줄기 답을 제시해 주소서. 그리고 법회에서 나온 답은 명확했다. ‘그런 건 없다.’

왜죠....!

왜죠….!

내가 이해한 법회 내용을 세 줄로 요약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선천적인 요인을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아집을 버리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라.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 분노를 사랑으로 감싸면 이 험한 세상에서 자신으로서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 제가 그걸 몰라서 여기 온 건 아닌데요.

여러분은 지금 부처님을 대상으로 어그로를 시전하는 글쓴이를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부처님을 대상으로 어그로를 시전하는 글쓴이를 보고 계십니다.

그래, 불교란 원래 질문과 답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종교라고 했다. 스님들도 평생 고민한다는 ‘불성’을 속세에 찌든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법회에서 나왔던 화두 중에서, 내가 답할 수 있을 것만 우선 생각해봐야겠다.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다는 건 대체 뭘까.

“커밍아웃(Coming Out)”은 ‘벽장 밖으로 나오다’에서 나온 말로, 성소수자가 스스로 자신의 성지향성을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커밍아웃 전에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스스로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반1)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하고 자신을 구분할 때 쓰는 용어. ‘일반’의 반대말로 ‘이반’.들에게는 “언제 알았어?”라는 질문이 낯설지 않다. 이 질문은 정말로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 그 사람을 언제, 왜 좋아했었어?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는 무슨 일들을 겪었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 너는 어떤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어? – 등등.

나와 이반 친구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한 기억을 떠올리자면,

“나? 야동 볼 때 안 서던데?”

본능형2)게이 중에 저런 경우들이 은근히 많다(…) .

“그게, 고딩 때 같은 반에 썸 타던 애가 있었거든? 근데 나 남고ㅋ”

게이득형3)이 경우는 사실 게이보다는 주로 여고 다닌 레즈비언들이 많았다. (내 주위 사람 기준) .

“나 대학 와서 여친들 만났는데, 만나면서 오히려 확신들더라. 첨엔 이게 뭔가, 했지만.”

잠복 바이러스형.

“하….그게… 내 첫 남친하고 얘기거든?(이하 생략)”

사랑과 전쟁형.

“중학교 때 자주 놀러가던 친구 집이 있었거든? 어느 날 그 집 어머니가 불러다가 말씀하시더라. 혼란스러운 건 알겠는데, 내 아들 좋아하지 말라고.”

나만 몰랐던 이야기 형.

이렇게 운명의 데스티니처럼 팍! 깨닫는 건 아니다.

이렇게 운명의 데스티니처럼 팍! 깨닫는 건 아니다.

“그래서, 너/누나/언니는?”

………나?

2014년 6월 14일, 나는 내가 인생 최초로 커밍아웃을 할 때까지도 나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커밍아웃의 상대에게 “저 지금 커밍아웃하고 있는 거죠?” 라고 묻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선배의 대답은 “네가 익히 병신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였다(...) 흔한_커밍아웃을_듣는_상대의_반응.disrespect

그리고 그 선배의 대답은 “네가 익히 병신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였다(…) 흔한_커밍아웃을_듣는_상대의_반응.disrespect

그래서 이 편을 쓰면서 참 많은 고민을 했다. 페이스북 대나무숲에는 오늘도 커밍아웃을 할지, 자기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도 헷갈려 하는 제보들이 올라오는데 나는 그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아니, 내가 그럴 자격은 있나?

2014년 6월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던 새벽, 내가 처음 커밍아웃을 하던 날.

보통은  ‘커밍아웃’하면 “그래, 그런 너라도 괜찮아.”식의 훈훈한 분위기를 떠올리겠지만, 역시 우리는 달랐다. 나도 어지간한 츤데레 소리를 듣지만 이 선배가 시X데레4)뜻을 모르는 분들은, https://namu.wiki/w/%EC%9A%95%EB%8D%B0%EB%A0%88 참고. 라는 걸 잊고 있었다.


“너 결혼식장 갈 거야?”

“왜 가요 그걸.”

“불 질러!”

“아,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에요!”

“야, 진짜 사랑했다면 그래야 하는 거야!”

“오빠 같은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면 그러겠죠!”

“그러면 너 계속 그렇게 살 거야? 그러고 싶으면 계속 그래라. 네가 이렇게 찌질거리고 있는 거, 주변 사람에게 왜 그러는지 제대로 말도 못하는 거, 너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거, 그 모든 걸 네 전 여친 탓으로 돌리고 싶다면! 문제는 걔가 아니라 너야!”

“솔직히 가기 싫어요. 아니, 그냥 없던 일로 하면 안 돼요? 어차피 가봤자 뭐가 달라져요.”

“왜 없던 일로 하고 싶은 건데?”

“사귀는 동안 별로 좋았던 기억이 없어서요.”

“그런 놈을 8년이나 만났어?”

“…만난 건 아닌데요. 그냥 알고 지낸 거지.”

“그거나 그거나. 너도 참 노답이다. 왜 스스로한테 솔직하지를 못해? 네가 바이면 세상이 뒤집어지냐? 왜 그렇게 너 혼자 심각해?”

“오빠는 안 심각해요? 알고 지내던 사람이 성소수자라는데?”

“나랑 뭔 상관이야?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말든.”

“이야, 알고는 있었는데 성격 진짜…..”

“너는 왜 그렇게 남의 눈치를 보냐?”

“그래, 너희가 차별받고 있는 것도 알겠고, 네가 거기에 대해 함부로 밝힐 수 없는 것도 이해한다고 치자. 근데 왜 너까지 거기에 동화되는 건데? 막말로 시X, 그 인간들이 니 인생 살아줘?”

“세상 사람들이 내가 틀렸다고 하는데, 그럼 거기다가 대고 뭐라고 해요? 나도 내가 잘못 없다는 거 알고 우리 편인 사람들 많은 거 알아요. 하지만 그거랑 이거는 다른 거죠!”

“세상 사람이 다 등 돌려도, 너만은 너를 외면하면 안 되지! 그럼 그 사람들이 너보고 틀렸다고 해서 뭐 어쩔 건데? 바뀔 수 있어? 너랑 걔랑 사귀었던 과거가 변해? 어쩔 수 없는 거면은 부정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게 맞는 거 아냐?”


나는 아직도 저 말보다 더 내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지 못했고, 저 말만큼 핵심을 관통하는 말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좋았고, 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편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솔직한 사람으로 보이는 방법을 익혔고, 그래서 나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 너머에는 ‘나를 더 알려고 하지 마, 나도 알고 싶지 않으니까’ 라는 냉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것은 편했고, 나는 자아의 빈약함을 주변 사람과의 화려한 관계로 포장했다. 그리고 이대로 괜찮을 것이라는 오만함으로 나와 전 여친을 기억의 절벽에서 밀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 이성애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걸 믿어야만 친구들에게, 부모님에게, 주위 사람에게, 신에게, 나 자신에게 당당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당당하지 못했다. 내가 진짜 누군지 알아도 그들이 내 곁에 있어줄까. 이제껏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건 아닐까. 내가 저질렀던 모든 거짓들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나조차 용납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이번 글은 하릴없이 길어졌다. 나 자신을 반추하고, 과거의 찌질함과 자기합리화를 여과 없이 들어내 보고, 쓰다가 지우다가를 반복하다가 그냥 있었던 사실들을 쓰기로 했다.

사람들은 LGBT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놀림을 당연시한다. 이해한다. 그들의 삶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겉으로 보기엔) 없었을 테니. 서로를 차별하며 살아온 역사가 그렇지 않은 역사보다 몇 배는 되는 인류사에서,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도 쉽사리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불교의 선승5)불교 종파 중 선종에 속해있는 스님., 임제 선사는 일갈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 되라, 네가 서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가 될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6)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 살인하라는 말 아닙니다..

이거 아닙니다(feat. 음성지원)

이거 아닙니다(feat. 음성지원)

이제, 누구를 죽일지는 온전히 당신 손에 달려있다.

   [ + ]

1. 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하고 자신을 구분할 때 쓰는 용어. ‘일반’의 반대말로 ‘이반’.
2. 게이 중에 저런 경우들이 은근히 많다(…)
3. 이 경우는 사실 게이보다는 주로 여고 다닌 레즈비언들이 많았다. (내 주위 사람 기준)
4. 뜻을 모르는 분들은, https://namu.wiki/w/%EC%9A%95%EB%8D%B0%EB%A0%88 참고.
5. 불교 종파 중 선종에 속해있는 스님.
6.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 살인하라는 말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