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영화보는 게 취미다. 취준 중인 입장에서(통장잔고가 없…) 그나마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생활로 영화 만한 게 없으니. 그런데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를 만나게 된다. “이걸 내가 이 돈을 주고 봤다니ㅠㅠ” 하는 뭐 그런 생각 말이다. 그래서 한 번 해보려고 한다. 분노의 평론.   한 짤 평가

 

들어감

최근 ‘그런 영화’의 끝판왕을 만났습니다.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쓴 분노의 까똑

영화를 보는 내내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하는 충동으로 온 몸이 근질거렸지만, 그 느낌을 글로! 승화해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간신히 자리를 지켰다. (글덕후는 화를 낼 때도 글로 냅니다) 위 사진은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미스핏츠 단체톡방에 날린 톡이다. 글감과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만들어준 <숫호구>에 감사를.

 

줄거리

아마 내가 애써 말하지 않아도 대다수는 보지 않았을(앞으로도 보지 않을) 듯하니, 줄거리를 먼저 쓰는 것이 낫겠다.
모티브는 간단하다. 숫호구의 의미는 ‘30살까지 못 해본 남자’다. 숫호구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설상가상, 하는 일도 없다. 소위 백수.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고, 관심 있는 일이라곤 여자, 섹스밖에 없어 보인다. 주변인들의 관심사도 다를 바 없다. 친구들은 주인공의 처녀성을 안타까워하고 심지어 친구 한 명(A라 칭하겠다)은 자기 여자친구와 집에서 섹스를 하기 직전, 불을 꺼두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한 후 주인공을 몰래 들여보내기도 한다. 이 범죄는 다행히도, 그리고 당연히도 실패한다. 남친 아닌 사람을 불 껐다고 못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하니까 말이다.
그러던 중 주인공은 어떤 박사를 만난다. 인조인간을 만들어 그 안에 실제 인간의 영혼이 들어가게 하는, (즉, 몸을 바꿀 수 있는) 그런 연구를 하고 있다. ‘비주얼’을 바꾼 숫호구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헌책방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찾아간다. 바뀐 것은 비주얼일 뿐 병신 같은 성격도, 미래도, 뭣도 똑같은데 그녀는 숫호구에게 빠져든다…..

 

낚시의 기술

이 영화를 왜 봤을까. 하는 이유부터 말하자면, 마케팅의 승리다. 영화제목, 포스터, 그리고 티저영상이 다… 했다.

마력의 포스터

 

일단 제목.

‘숫호구’라는 제목은 한 번 보면 잊기가 힘들다. 친구들과 만나면 한 번 꺼내봄직한 제목이기도 하다. 포스터도 볼 만하다. 요새 유행이라는 병신美가 출중. 똘끼 있는 신예들이 신명나게 만든 듯한 느낌적인 느낌을 풍긴다.

 

티저도 괜찮다.

모든 인연의 시작, 카톡을 보여주는데, ‘잘못된 카톡의 예’를 보여주는 방식이 센스 있다.
특히, 괜히 안 친한 사이에 무작정 고백 비슷한 내용을 보내놓고 반응이 없자, ‘앗, 오늘 사촌동생이 놀러왔는데, 그 친구가 카톡을 보내놨네요’ 하는 부분이 레알 ‘연애고자’ 같달까?
사실 이런 연애고자st한 병신美가 나로 하여금 지갑을 열고 영화관에 입장하도록 한 주요 원인이었다. (영화는 연애고자도 뭣도 아니고 그냥 믿힌놈 얘기다ㅠㅠ)

 

아무런 고민 없이 만든 마초영화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감독이든 배우든 작가든 지금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 했을 것 같다. 친한 친구들끼리 만나서 자기들끼리 낄낄대기 위해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각종 NG장면에서 그 느낌은 극대화된다. 그렇고 그런 UCC에서 보던 딱 그 NG장면이 등장한다. (사실, 영화 전체가 NG랑 크게 차이가 없기도….)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영화는 너무했다. 특히 거슬렸던 부분은, 모든 것의 원인을 ‘외모’에서 찾는 편리함(?)과, 여자를 섹스대상 만으로 보는 폭력성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상대 여성(심지어 이 여성은 친구A의 여친이었다)의 동의 없이 몰래 주인공을 불꺼진 방에 들여보내는 장면에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친구A는 마른 편이었던 반면 주인공은 살집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 여성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남자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챘기에 망정이지, 혹여 술이라도 취한 상태였다면 알아채지 못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명백히 범죄다.

이를 들킨 후에 A가 하는 말은 더 가관이다. 그는 여성에게 “야 그냥 한 번 해~줘라!”라고 말한다. 여성을 하나의 주체적 인격체로 보지 않고 ‘남성과 다른 생식기를 가진 객체 중 하나’로 인식하는 데서 나올 수 있는 발언이다. 쉽게 말해 상대 여성은 해당 발언을 듣는 순간 인간이 아닌 사물이 되어버린다.

A가 “나 지금 ‘먹으러’ 간다”고 라이벌 남성에게 선전포고한 후 여주인공 집에 쳐들어가는 장면도 거의 공포스럽다. 여주인공은 A와 정서적 교감을 전혀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집에 도착한 A가 문을 쾅쾅 두드리고 여주인공이 문을 열자마자 쳐들어가는 장면에서 나는 외치고 싶었다. ‘저건 범죄라고!’   슬프게도 영화관계자는 그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난 후 나는 피해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혔는데, 나와 같은 피해자들 역시 환불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던 것 같다. -> 초록창에 숫호구를 치시면 ‘숫호구 환불’이 따라 나온다ㅋ

숫호구를 치면 숫호구 환불이 검색어에 따라 나온다. 심지어 저건 숫호구 상영 첫날 *_*

거슬리는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나, 한 장면만 언급하려 한다.
잘생긴(?) 인조인간의 몸을 입고 여주인공의 사랑을 받게 된 주인공, 영화 말미에 이렇게 외친다. “나 사랑해요? 나?” “‘나’ 사랑하냐고요, 나 말이에요. (눈물)” 자신의 달라진 얼굴을 사랑하는 것이지, 자신의 내면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즉 나를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절규다. 이렇게 되묻고 싶어진다. ‘그러는 너는 여주인공 얼굴 보고 좋아한 것이 아니냐’고.

 

그래 긍정적인 측면도 한 번 보자.

개똥도 약에 쓴다는데, 이 영화에도 좋은 점이 있겠지. 하고 긍정파워를 발산해보았다. 두 장면이 기억났다.

장면 1. 엠티 날 여자애들이 남자들이 자는 방에 들어와 얼굴에 낙서를 한다. 주인공의 얼굴은 거들떠보지도 않아 깨끗하다. 주인공은 쓸쓸히 새벽에 일어나 홀로 낙서를 한다. 자고 일어나 얼굴에 낙서가 되어 있을 때의 슬픔과 낙서가 되어 있는 사람들 틈에 홀로 깨끗한 자의 슬픔을 생각해보게 됐다.

장면 2. 주인공이 집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한다. 세 식구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막이 나온다. “너 몇 살인지 아니, 어떻게 살 거야. 기술이라도 배우든가. 대학원이라도 가든가!” “아버지 걔네들 그냥 할 거 없어서 가는 거예요. 대학원 졸업해도 똑같아요.” 등등 이미 너무 많이 해버려서 더 이상 ‘말하지아나도아~’는 그런 상황이다. 표현방식이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요약

안 봤으면 좋겠어서 쓴 글인데 안 보면 이 글도 이해가 안 될 것 같아 슬프긴 하다. 그래도 보지 마시라.
단, 영화홍보의 기술은 본받을(?) 만하다. Z급 영화의 생존법으로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