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농장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간다 퍼스로. 질문 받는다.

간다 퍼스로. 질문 받는다.

퍼스는 아주 크지도,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은 도시였다. 적당히 살기 좋은 곳 같았다. 한국의 강남 격인 퍼스 CBD에서 우리는 나 방금 도착했어요, 티를 폴폴 냈다. 28인치 캐리어와 백팩을 두 개나 겹쳐 멘 탓이었다. 게다가 아침 8시였다. 만국 공통 러시아워 출근시간이었다. 더불어 우리는 버스 정류장을 잘못 내리기까지 했다. 호주 버스는 정류장 안내 방송이 없었다. 구글맵에 백팩커 주소를 찍고는 근처에 다다르길 오매불망 기다렸으나, 잘못 내렸다. 고장난 캐리어는 시티를 달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남반구의 2월은 여름이었고, 우리는 땀을 한 바가지씩 쏟아냈으며, 한국어로 욕을 내뱉기 일보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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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어도 짲응..

백팩커 근처까지 왔을 때, Excuse me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웬 친절한 남자가 내 캐리어가 열렸다며, 조심히 끄는 게 좋겠다고 한마디 했다. 감동. 우리는 백팩커로 가는 내내 퍼스에서 처음 마주한 외국식 매너에 대해 떠들었다.

우리가 정한 원칙(이랄 것도 없지만)은 두 가지였다. 첫째, 같은 도시로 가되 집은 따로 살 것. 나는 예민보스라 다른 사람과는 절대 같이 못 사는 성격이다.

굉장히 예민함

굉장히 예민함

기숙사도 이런 성격 탓에 박차고 나왔으니 말 다했다. 반면 지현이는 반반이었던 것 같다. 성격상 남과 부딪힐 걸 알면서도, 가족이 아닌 남과 살아보고 싶은 마음 같은. 하여튼 이 점은 분명히 하기로 했다. 우리의 성격을 아는 주변 친구들도 거들었다. 너네 둘이 같이 살면 한명은 분명 조기귀국 할 걸. 둘째는 농장잡(job)을 한번쯤은 해볼 것. 한국에서 농장 일을 언제 해보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워홀을 온 이상 힘든 건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고, 농장 생활 재밌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기 때문. 백팩커에 있는 동안 농장일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최대한 알아보고, 지역 이동이 필요하면 지역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호주에 오자마자 해야 할 일은 핸드폰 개통은행 계좌 개설이었다. 공항에서 유심칩을 산 다음 바로 바꿔 끼운 덕에 백팩커에 짐을 푼 우리는 곧장 은행으로 향했다. 은행원 언니는 더 없이 친절했다. 백팩커에서는 시간 당 돈을 내고 와이파이를 이용해야 했기에 근처에 있는 주립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서 퍼스 한인 커뮤니티를 뒤져 농장으로 가는 길을 찾아냈다. 쉐어생을 구한다는 글이었는데, 쉐어 마스터분이 농장 에이전시에서 일을 하셔서 쉐어를 들어오면 웨이팅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거였다. 게시글을 보자마자 연락을 취했고 다행히도 사흘 뒤에 바로 집에 들어올 수 있다는 답변을 받게 되었다.

농장으로 가기 전에 사흘의 시간이 생긴 우리는 퍼스 생활을 조금이나마 즐기기로 했다. 퍼스는 해안에 위치한 도시라 근처에 바다나 비치가 많다.

프리맨틀이다. 후리해보인다..

beach

퍼스 근교의 코테슬로 비치..! 혼또니 외국이다..!

프리맨틀, 코테슬로, 수비아코 등 지금이야 익숙한 지명이지만 당시에는 낯설기 짝이 없던 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여름 끝물의 해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뱃살과 허벅지살에 상관없이 다들 비키니를 입었고, 작렬하는 햇볕을 즐겼다. 농장으로 가기 직전의 우리는 마냥 들뜬 상태였다. 농장은 퍼스에서 남쪽으로 200km 가량 떨어진 마가렛리버에 위치했다. 우리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마가렛리버 행을 결정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홍대의 디저트 카페 이름이 ‘마가렛리버’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냥 거기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마가렛리버를 만나다

마가렛리버는 와인으로 유명한 지방이다. 사람들이 맥도날드조차 없는 이곳을 찾는 이유는 도시를 둘러싼 와이너리(Winery) 투어를 하기 위해서였다. 타운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시내에는 마트 하나와 도서관, 그리고 열 몇 개의 가게가 전부였다. 주변은 전부 포도 농장이었다.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도 농장, 농장, 또 농장뿐이었다. 마가렛리버로 가는 고속버스 티켓을 예약하면서도 우리는 마가렛리버가 그렇게 작은 도시인줄 몰랐다. 쉐어하우스 마스터 언니가 ‘퍼스에서 좀 더 놀다오지.’라며 동정의 눈길을 보낼 때도 그게 동정인줄도 몰랐다.

미리 말 점 해주지..

미리 말 점 해주지..

마가렛리버는 딱 안암동만한 동네였다. 어쨌든 우리는 호주에 온 지 4일 만에 포도 농장에 입성했다. 해봤던 농장일이라고는 농활과 주말 농장이 전부인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