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캐나다에서 합류한 친구 왕멘을 리마 터미널에서 만났다. 우리는 터미널에서 마추픽추의 길목인 쿠스코로 가는 버스 티켓을 샀다. 무려 ’21시간’이나 걸리는 길이라, 가장 좋은 버스 회사인 ‘크루즈 델 수르(Cruz del sur)’의 1등석 티켓을 샀다. 가격은 한국 돈으로 약 7만 원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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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세고 건강한 크루즈 델 수르

버스는 으리으리했다. 서울에서 순천으로 가는 우등 고속버스의 시설에 감동받았던 적이 있는 나는, 쿠스코행 티켓을 사면서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어’란 생각을 가졌다. 아, 남미를 믿지 못한 내가 잘못이었다. 크루즈 델 수르의 버스는 남미 버스 중 ‘최고 존엄‘이었고, 곧 세계 버스 중 ‘최고 존엄‘이었다. 남미는 고산 지대에 산맥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기차가 발달하지 않고 버스가 발달했다. 근데 발달한 버스 회사 중에 최고 회사의 1등석이니 언터쳐블이었다.

꽤나 좋음

꽤나 좋음

장시간 운행하는 버스라 그런지, 의자를 완전히 젖힐 수 있었고, 의자 앞에 모니터가 달려 있어 최신 영화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완전 최신은 아니었다. 2014년 6월에 개봉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있었고, 남미산 공포영화와 액션이 있었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책상도 있었고, 버스 내부의 와이파이도 있었다. 화장실도 있었고, 주기적으로 밥과 간식이 나왔고 음료수를 줬다. 그렇다. 승객을 입 다물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먹이는 거다(..). 물론 마을 버스나, 시내를 다니는 버스야 한국이 더 좋겠지만, 도시와 도시 간의 장시간 운행을 하는 버스는 한국보다 남미가 우월했다.

버스에서 본 페루는 황량했다. 리마에서 쿠스코 가는 길은 ‘사막-시골-산골-쿠스코’로 요약된다. 도시를 벗어나 한동안 황량한 사막과 광산밖에 보지 못했다. 그런 사막에도 사람들은 집을 짓고 살았다. 삶은 어디에서든 이어진다.

황량 이빠이 데스

황량 이빠이 데스

21시간 동안 탄 버스 안에서의 여정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밤을 전후로 나뉘는데, 밤이 되기 전까지는 나름 ‘버틸만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스페인산 호러 영화를 보면서 버틸 수 있었다. 타자마자 버스의 승무원은 우리에게 맥모닝스러운 머핀 샌드위치를 줬다. 영화를 보면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영화보고, 다시 자고 하다보니 벌써 밤이 됐다.

맛은 그저 그랬다.

맛은 그저 그랬다.

이제부터가 진짜 고문이다. 밤이 되면서 엉덩이에 좀이 쑤시던 나는 의자를 최대한 젖히면서 마구 움직였는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주구장창 앉아있으니 여름도 아닌데 ‘엉땀’이 찼고, 엉땀은 곧 내 엉덩이를 간질였는데, 이게 진짜 고문이었다. 엉땀이 스멀스멀 기어오고, 간지러움은 엄청나는데 막상 긁으려니 이게 참 애매해서 일어나서 바지를 피는 방법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엉땀은 긁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습기 찬 거 보이죠? 제 엉덩이에도(..)

습기 찬 거 보이죠? 제 엉덩이에도(..)

21시간 버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용!변!

다행히 버스 내에 화장실이 한 개 있었다. 비행기 이코노미석 화장실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한 가지 차이는 ‘악취‘였다. 다행히 우리 일행의 자리는 화장실과 거리가 있었지만, 첫째 날 지나고 둘째 날이 되자 누적된 용변으로 인한(..) 악취가(..) 느껴졌다. 화장실 문 앞 승객들에게 명복을 빈다.

화장실은 버스의 2층에 있었고, 둘째날 아침 버스의 주 도로는 산 굽이굽이 퍼져 있었다. 이게 진짜 환장하는 게 재수없게 버스가 코너를 돌 때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면 진짜 큰일난다(..). 임시 무중력 상태에서 구렁이를 내뿜는 기분을 그대들은 아는가? 후… 더이상 말하기 싫다. 구렁이와 산맥. 물아일체.

구름 위에서 맛 보는 구렁이 배출

구름 위에서 맛 보는 구렁이 배출

21시간의 말미에 마추픽추의 입구인 쿠스코에 도착했다. 쿠스코는 옛 잉카 제국의 수도로서 무려 해발고도 3500m에 위치했다. 백두산 해발고도가 2800m, 한라산 해발고도가 2000m 정도이니 진짜 ‘오진’ 해발고도다. <꽃보다 청춘>에서 윤상이 고산병을 겪은 곳도 여기다.

날씨는 꾸리꾸리

날씨는 꾸리꾸리

우리 일행은 리마에서 출발하기 전 예약한 <호스텔 쿠루미>에서 숙박을 했다. 우린 쿠스코에서 고산병을 겪을까봐 일정을 늘렸다. 원래 2일만 머물 것을 3일 머물기로 했다. 숙박하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볼리비아 비자 발급이었다.

숙소 찾으러 다니던 길에서 본 쿠스코 풍경.

숙소 찾으러 다니던 길에서 본 쿠스코 풍경.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린 택시를 타고 볼리비아 대사관으로 향했다. 볼리비아 대사관은 펀치볼 모양의 쿠스코 가장자리에 위치했다. 주택가 사이에 있기에 초행길인 우리가 지도를 보고 따라가기는 너무 어려웠다. 택시를 타고 갔는데 재수없게도 대사관이 닫.혀.있.었.다. 하필 늦어서 문이 닫혔다.

한국의 빡센 근무시간 문화를 전세계로 퍼트리고 싶단 생각이 200g 들었다.

야경은 그럴싸하다.

야경은 그럴싸하다.

또 본 것은 있어서 쿠스코에서 ‘꾸이1)꾸이는 쥐와 비슷한 기니피그를 통째 구워먹는 페루 요리다. 큰 쥐를 바비큐해 놓은 비주얼’ 고기를 먹고 싶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꾸이 고기와 라마 고기를 먹었다. 라마와 알파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먹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 알파카는 남미에서 주로 짐꾼으로 쓰이는데, 이는 알파카 고기가 질기고 냄새가 심하기 때문이다. 라마 고기는 별반 특이한 풍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그런 고기였다.

비주얼은 흉물! 맛은 짜! 값은 비싸!

비주얼은 흉물! 맛은 짜! 값은 비싸!

우리는 그 다음 날 아침에 부리나케 달려가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비자 발급에 필요한 건 사진과 여권 스캔본이었다. 특이한 게 대사관은 여권을 A4 용지에 복사하길 바랐다. 난 여분의 여권을 복사해갔는데 하필 그게 ‘여권 사이즈’로 ‘잘린’ 놈들이라서 다시 해야만 했다. 명심하라. 여권 스캔본은 온전한 A4 용지여야만 한다. 그리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에서 ‘잉카 트레일 패키지’를 신청했다. 우리의 프로그램은 총 3박 4일짜리였다. 잉카 트레일은 고대 잉카인이 만든 길을 ‘잠시’ 맛보면서 마추픽추까지 걸어가는 코스로, 하드코어 둘레길 정도다.

유일하게 날씨가 좋았던 시간대.

유일하게 날씨가 좋았던 시간대.

우리는 그날 점심을 페루판 맥도날드 – 이름이 기억 안난다. 미안해 – 에서 해결했다. 흔한_햄버거집.fastfood 로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페루의 인심은 한국 패스트푸드의 그것과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 햄버거의 사이즈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여러분 이게 햄버거입니다 우화하하

여러분 이게 햄버거입니다 우화하하

햄버거에,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흔한_반도의_돼지새끼인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근처 시장을 돌아다니며 우의를 사고, 모자를 샀다. 사진 속 모자는 작은 것 같지만 그건 기분 탓이다. 내 머리가 큰 게 아니라 남미 사람들이 소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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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머리가 큰 게 아니다.

우린 호스텔 쿠루미에서 벗어나 또 다른 호스텔로 옮겼다. 호스텔 쿠루미는 인기가 많아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연장을 할 수가 없었다.

별로 무겁지도 않은데 고산이라 공기가 희박해서 그런지 힘들더라

별로 무겁지도 않은데 고산이라 공기가 희박해서 그런지 힘들더라

우린 숙소를 옮기고, 난 성적을 확인 했고, 맥주를 마시며 잉카 트레일을 준비했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며 먹은 부리또.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며 먹은 부리또2)토르티야에 콩과 고기 등을 넣어 만든 요리..

그렇다. 지옥은 곧 시작이었다.

   [ + ]

1. 꾸이는 쥐와 비슷한 기니피그를 통째 구워먹는 페루 요리다. 큰 쥐를 바비큐해 놓은 비주얼
2. 토르티야에 콩과 고기 등을 넣어 만든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