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싸대.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무엇이 처음 생각나는가?

중학교 미술 시간에 사용했던 철사가 생각나거나, 혹은  ‘철싸’라는 이름으로 2011년 무한도전 가요제에 참가했던 전설의 겨땀춤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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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 버린 그 녀석과 월드스타…

아쉽게도 둘 다 틀렸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철싸는 철사도, 철싸도 아닌 ‘철도 사이코 대원’의 줄임말 ‘철싸대’다. 철도 싸이코 대원이라니, 이 특공대스러운 이름은 무엇일까. 싸이코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좋은 뜻은 아닐 것 같고, 철덕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이름이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3대 덕후 중 하나로 철덕을 분류하고 있을 만큼 철덕의 덕력은 대단하다. 나같은 쪼렙 마니아는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덕들이 많다. 열차 편성번호만 보고 몇 호선의 몇 년식 모델이고 그 특징은 무엇인지, 기차가 들어 있는 풍경 사진만 보고도 어느 지역을 지나는 어떤 노선의 사진인지 단숨에 알아맞힐 정도의 덕력을 소지한 분들이 넷상에만 해도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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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니라니까요 ㅠㅠㅠ 더쿠 아니라구요 ㅠㅠㅠㅠㅠ

모든 관심과 애정은 지나치면 집착이 되는 법. 철덕들 중에서도 선을 넘은 사랑, 집착에 가까운 철도 사랑을 보이는 분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철싸대라고 부른다.

  • 철싸대가 뭐죠?

앞서 말했듯 철싸대는 철도 사이코 대원의 줄임말이다. 철덕의 성지, 나무위키는 철싸대를 “2001년 다음 철도동호회 카페에서 탄생한 말로 본래 해당 카페에서 무개념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철도 동호인의 이름을 사칭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호기심과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뜻으로 확장되었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철도 관련 악행이라. 지하철 쩍벌남을 지칭하는 건가? 혹은 전철 바닥에 주저앉아 길을 막고 회식판을 벌이는 사람들? 물론 이런 일도 없어야겠지만, 철싸대의 악행은 단순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위를 넘어서 철도 기관 종사자와 일반 승객의 안전까지도 위협하는 수준이다.

  • 철싸대의 대표적 악행, 도둑질

그들의 첫 악행으로는 도둑질이 있다. 역내, 차량내 비치된 철도 관련 비품들을 집어가는 행위가 대부분이다. 차량마다 붙어있는 열차번호가 적힌 판, 노선도 등 ‘기념이 될 만한’ 것을 들고 간다. 공공재는 마음대로 다뤄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그러니까 내가 맘대로 가지고 가도 됨’으로 발전한 다음 ‘운행에 지장이 가지 않으니까 이것쯤이야’하는 마음과 합쳐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이는 이기심과 자기 합리화의 합작에 지나지 않는다. 본인들이 마음대로 훔쳐가는 것들, 의미가 없다면 애초에 그 곳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도둑질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 나중엔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물건을 훔쳐가기도 한다. 지난 번 벚꽃놀이 때 가 본 교외선 원릉역에서는 일부 침목에서 못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후화되어 빠졌다고 보기엔 나사의 결도 구멍도 너무나도 깔끔했다. 선로를 걷어내지 않고 놔둔 철길은 언제 다시 사용할 지 모르기에, 절대 임의로 건드리면 안 된다(실제로 일반인이 걸어다닐 수 있게 관광용 산책길로 조성해 놓은 항동철길에도 지난 주 열차가 운행했다).

심지어 선로 반경 30미터 이내에서는 돌멩이를 집어가는 것조차 철도안전법1)그렇다. 철도안전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방대한 양을 이 곳에 전부 옮길 수 없으니, 궁금하신 분은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5장’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보시면 된다.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선로에 깔린 자갈이 예쁘다고 집에 마음대로 가져가면 범법자가 된다는 소리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본 적 있는 후임을 둔 친구에게, 그 후임이 여행 중 만난 한 외국인이 사용하지 않는 철로의 침목을 빼서 기념품으로 가지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역시 덕 중 최고 덕은 양덕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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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일반 침목의 규격은 길이는 2.5미터입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침목은 매우 길기 때문에, 대못이나 버팀돌을 가져간 일이 와전된 것이겠지만(그리고 러시아의 철도법 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여나 우리나라에서 그러면 콩밥 먹는다. 설사 걸리지 않는다 치더라도, 착한 어린이 및 어른이분들은 추후 선로를 재사용할 때 탈선 등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니 절대로 철도 관련 시설, 부속품을 기념품처럼 가지고 오시면 안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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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징역, 징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글을 쓰며 그들의 심정을 이해해보려 노력해 보았는데, 아무리 그 뜻을 헤아려보려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걸 굳이 말로 해야 아나?

  • 두 번째 악행, 운행 방해.

철싸대의 두 번째(로 적었지만 첫 번째보다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대표적 악행은 운행 방해다. 기관실, 선로 등 역사와 승강장, 그리고 열차 내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은 앞서 언급한 철도안전법에 의해 ‘승객이 출입해서는 안 되는 공간’으로 지정되어 있다.

기관실에 있는 기계를 인가받지 않은 사람이 마음대로 조작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지하철 2호선을 예로 들어 보자. 한 칸 당 약 120명의 승객이 탑승해 있다 가정하면 전체 열차에는 1200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때 실수로 누군가 열차를 비상제동시킨다면? 1200명의 승객이 전부 앞으로  쏠려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다. 반대로 열차가 멈춰야 할 상황에서 멈추지 않고 앞 열차나 마주 오는 열차와 부딪힌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일부 개념이 없는 철싸대원은 기관실 문을 열어 들여보내달라고 떼를 쓰고, (너무나 당연하게도)문을 열어주지 않은 기관사에 앙심을 품고 민원을 넣는다. 운행 중 문을 두들기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 기관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민원 담당자가 말도 안 되는 민원들을 처리하며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할 것이다.2)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예시로 이 링크를 걸어 놓겠다

또, (철도안전법 링크를 타고 들어가 읽어보았다면 알겠지만) 선로에 임의로 출입하는 행위도  엄연한 불법 행위다. 단순히 선로 위에 무언가 물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열차 운행에 큰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작년, 1호선 세류역에서 선로로 내려가 사진을 찍던 철싸대원이 논란이 됐다. 세류역은 플랫폼이 군부대 안에 들어가 있고 역에 기지 반입선로도 있기 때문에 안전문제에 보안문제도 겹쳐, 동호인들 사이에서 한동안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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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이거 설경구씨 철도보안법 위반입니다

철싸대원이 단순히 선로에 들어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자동화 설비를 건드려 열차 운행을 대놓고 방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승객들과 회사가 입는 금전적 시간적 피해3)시간적 피해 측면만 봐도 열차에 1000명이 타 있고, 한 시간이 지연되면 총 1000시간이 하늘로 증발… 중요한 회의나 시험, 거래가 있던 사람들의 경우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어마어마하다. 작년 영등포역에서 한 남성이 열차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다가 고압선을 건드려 즉사한 사고도 있었다. 비슷한 사고는 올해 우크라이나에서도 있었다.

그 외에도, 지하철 차량기지를 따고 들어가 그래피티를 그리는 행위, 말도 안 되는 민원을 자꾸 올려 정상 민원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초대받지 않은 철도 시승식에 몰래 참가해 열차에 무임승차하는 행위 등 철싸대의 활동 영역은 넓고도 다양하다. grafitti

  • 고의면 욕이라도 할 수 있지…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명목 하에 선로에 내려가거나 열차 위에 올라가고, 진입중인 열차에 플래쉬를 터뜨려 기관사의 시야를 방해하는 등의 행동은 대개 고의가 아니다. 그렇기에 더 무섭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말은 그것이 잘못된 행위이고 위험한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차량 명판을 훔치는 것, 말도 안 되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일, 어두운 터널에서 플래쉬를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는 일 모두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철싸대원이 많다는 것이다.d0140437_5395432b9c6d7

그렇기에 그들은 대부분 당당하다. ‘내가 새 열차가 궁금해서 무임승차 좀 해 봤는데, 그게 잘못이야?’, ‘내가 철도를 정말정말 좋아해서 좋은 각도로 사진 좀 찍겠다는데, 왜 방해하고 그래?’ 등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은커녕 잘못으로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견을 여과없이 인터넷에 올려 커뮤니티를 싸움의 장으로 만든다. 철도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철덕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덤이다.

  • 철덕과 철싸대는 종이 한 장 차이

철덕과 철싸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기본적으로 철도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같(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자신의 욕구 충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기적인 태도와, 이를 합리화하는 과정이 철덕을 철싸대로 만드는 것이다. (타락천사 루시퍼가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나도 철도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덕후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들의 호기심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철도 매니아 대 철도 매니아로, (본인이 철싸대원인지도 모르고 있을) 철싸대원에게 이 말 한 마디만 던지련다.

님들 발이나 열심히 만지세요. 국민의 발에 손 대지 말고!!

   [ + ]

1. 그렇다. 철도안전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방대한 양을 이 곳에 전부 옮길 수 없으니, 궁금하신 분은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5장’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보시면 된다.
2.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예시로 이 링크를 걸어 놓겠다
3. 시간적 피해 측면만 봐도 열차에 1000명이 타 있고, 한 시간이 지연되면 총 1000시간이 하늘로 증발… 중요한 회의나 시험, 거래가 있던 사람들의 경우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