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무엇에 대하여 썼는가? 시급 만 원 넘지 않는 알바들에 대하여.

누구를 위하여 썼는가? 나, 너, 우리 대학생 청년 백수들.

어떤 형식으로 썼는가? 직접 그 알바를 경험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하였습니다.

왜 썼는가?

왜 썼냐고요? 일단 그냥 제 얘기부터 하죠

#1.

자취방에 누워서 페이스북을 하던 어느 날, 기사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대생의 하루 생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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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도 J인데? ㄷㄷ

그 밑에는 예상 가능하듯, “요새 ‘여’대생들은 3000원 학식 사먹고 7000원 커피 사먹는다면서?” 등의 댓글들이 달렸다. 사실관계에 대한 논박은 여기서는 접어두고, 문득 나 자신의 한 달 생활비는 얼마일까 궁금해졌다.

우선 나는 지방에서 상경한, 먹고 살 걱정은 없었던 맞벌이 부모님 슬하에서 곱게(?) 자란 딸내미라는 점에서 시작하자.

먼저 월세 45만원(보증금 2000만원은 별도로 하고). 관리비 3만원과 전기세, 가스비 등 플러스 알파(2만원 이상). 한 달 용돈 40만원. 핸드폰 요금도 부모님 부담이라 차마 LTE로 바꿀 생각은 못한다. 3G 무제한 요금제 54000원. = 최소 총합, 95만 4천원.

가끔 끊어주시는 KTX 티켓과 인간적으로 금요일 저녁은 평일 요금 좀, 칠 때마다 죄송한 토익·토스·자격증의 응시료, 가끔 저것도 부족해서 부모님께 사바사바해서 받는 특별 용돈(?)과, 한 학기당 등록금 350만원은 열외로 치자.

그리고 우리 집은 두 살 터울의 딸이 두 명이다. 언니가 4학년이고 내가 2학년이었을 때, 이발소 가면 머리숱만 치고 오던 우리 아버지는 원형탈모를 보유하게 되셨다.

#2.

내가 2학년이 되던 즈음 대학가에는 ‘반값등록금’의 열풍이 한창이었다. 이와 맞물려 비슷한 시기에 LH 주택공사 전세 임대주택,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과 근로장학생 제도가 대대적으로 홍보 · 확대되었다. 그러나 나는 나라에서 제공하는 혜택들 중 그 어느 것의 수혜자도 될 수 없었다. 뭘 어떻게 계산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잘 사는 편으로 분류되는(!) 8분위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동아리 부회장 역할을 맡게 됨과 동시에 연애를 시작했다.

요새 젊은이들은 밥값보다 커피값을 더 쓴다면서? 라고 혀를 차시는 어르신들은 당시에 연애를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지만 ‘썸’이라도 타보신 분은 알 것이다. 사랑은 밥을 먹여주지 않고, 밥만 먹는다고 관계가 유지될 리도 없다는 걸.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를 꼬실 때 적금을 깨셨다.

단체생활하면서 돈은 억수로 깨져나가고... 찌밤...

단체생활하면서 돈은 억수로 깨져나가고… 찌밤…

비단 리더의 역할이 아니더라도, 단체 활동을 해보신 분은 알 것이다. 회의할 때의 자릿값(카페에서의 커피값으로 주로 나간다)과 뒤풀이 때의 술값의 만만찮음. MT라도 가는 날에는 – ‘일단 내 돈으로 채울 테니 나중에 계좌이체…..’가 절대 될 리 없다는 걸.

그렇게 나는 처음 써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알바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래 뭐, 배부르고 여유 있는 ‘요새 애들’의 철없는 이유로 들릴 수 있겠다. 먹고 살 걱정도 없이 단지 ‘놀 때’ 쓸 돈이 부족한 거니까(연애 말고 동아리와 대외활동이 과연 마냥 ‘노는 것’인지는 읽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지만). 딱히 거기에 대해 반박할 생각은 없고 그러려고 쓴 글도 아니다.

(이력서 쓰며)‘…나 대학 와서 뭐했지?’

#3.

처음 써보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A4용지가 이렇게 컸나 싶었다. 과제처럼 줄글로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표의 빈 칸만 채우면 되는데 한 칸 한 줄 채우는 것이 만만찮다. 아니, 처음부터 쓸 게 없으니 채울 수도 없다.

보유한 자격증? …한국사능력시험?? 초딩 때 딴 워드 2급?

야간 알바는 군필 남자 선호합니다?

용모 단정한 여자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엑스에서 엑스포 진행합니다. 일본어 통역 가능? 나니?

알바가...통역가능이요...?

알바가…통역가능이요…?

사무 보조 알바 구합니다. 문서 작업 가능한 분. 20장짜리 레포트도 포함시켜주나요?

가족 같은 고깃집에서 알바 구합니다. 네 시에서 네 시까지?

동기들아, 너희는 과외 어떻게 구했어? 아, 엄마친구 아들딸들 가르치고 있어.

과외사이트…. 대한민국에 외고랑 과고가 이렇게 많았나.

학원알바는 경력직을 선호합니다? 고등학교 때 동갑내기 과외라도 했어야 했나?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빽도 없고 능력도 없고 연고도 없이 서울 하늘 아래 혼자 떨어진 신세라는 것을.

맑스는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상적인 생산 활동을 하지 못하고, 타인을 속여 부유한 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모든 노동자 계급”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정치학 교수님은 웃으며 덧붙이셨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요.”

‘미생’이면 차라리 다행이다. 우리는 ‘룸펜’이다. 다른 계급들에게 하루하루 기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 그런데 어쩌겠나. 이거밖에 못한다면, 이거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생각했다. 빽도 없고 능력도 없고 연고도 없고, 젊음 하나 믿고 오늘도 알바지옥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초상화이자, 자화상이다.

김화백님 제 이야기 함부로 하면 저작권 위반인데요

김화백님 제 이야기 함부로 하면 저작권 위반인데요

#4.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똑같은’ 대학생이다. 일단 내가 이 모양이니 말 다했다(…)

토익 점수 없고, 제2외국어는 더더욱 없고, 컴퓨터를 활용할 줄 모르고, (전공자 제외하면) 엑셀과 포토샵은 켜보지도 않았다.

원래는 방학 알바를 찾는 대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취지로 이 시리즈를 기획했지만, 막상 진행하다보니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다. 인터뷰이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저를 탓하세요 그래도 나는 여러분들이 글을 읽으면서 일종의 ‘실마리’들이나마 얻어가셨으면 한다. 담대해질 희망, 아주 약간의 도전정신, 저런 사람들도 사는데(…), 새삼 실감하는 인실X 등등.

끝으로, 훈훈한 마무리를 위해 주워봤던 구절 한 마디를 덧붙여본다.

“내가 쏜 화살이 분명히 과녁에 명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엉뚱한 바닥에 꽂혀 있는 것을 보면 허망하지 않겠어요?”

“그럴 때는 말이야”

히비노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떨어진 장소에 과녁을 그려 넣으면 되지.”

「오듀본의 기도」, 이사카 고타로

편집자주: 1편은 명동 한복판에서 옷을 파는 게 아니라 11시간동안 리듬을 탄다는 SPA 판매점 알바님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미리 읽은 편집팀 모두 꿀.잼.보.장! 몰래님과 리듬을 타는 그 분의 흥미로운 만담같은 인터뷰, 다음 주 목요일을 기대해 주세요!


인터뷰이를 모십니다.

빽·연줄·능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시급 만 원 이하 알바를 해 보셨던 대학생 분 중,

혹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철저한 신상 보호 보장)

mystery@misfits.kr 로 이메일을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