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에서의 둘째 날.

아침 9시에 일어난 우리는 컵라면을 끓여 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리마는 서울의 4.3배 면적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리마는 약 2700km², 서울은 600km². 우리는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에 가기로 했다. Plaza de Armas, 아르마스 광장은 고유지명이 아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공원’ 즈음 되는 일반 명사다. 각 도시 별로 아르마스 광장이 있다.

듬직한 친구들 덕분에 장기 털릴 일은 없었다. 빠블로(오른쪽)가 강도를 막을 때 나와 김샤카(왼쪽)는 도망치다가 내가 김샤카를 버리고 튀는 시나리오였다.

듬직한 친구들 덕분에 장기 털릴 일은 없었다. 빠블로(오른쪽)가 강도를 막을 때 나와 김샤카(왼쪽)는 도망치다가 내가 김샤카를 버리고 튀는 시나리오였다.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 근처에는 대통령궁, 산 프란체스코 성당 등 볼 거리가 많다. 숙소에서 그곳까지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우리 숙소는 해안가에 있었고 아르마스 광장은 리마 한 가운데에 있었다. 우리는 그곳까지 Metro, 메트로를 타고 갔다. 메트로라고 해서 지하철을 생각하기 쉬운데, 버스다. 그렇다고 한국의 버스와는 다르다. 레일 위를 달리는 버스다. 땅 위를 달리는 롯데월드 모노레일 느낌이랄까? 교통비는 기억이 안난다. 다만, 현금을 버스에 낼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페루는 버스용 카드가 따로 필요했다. 우리는 민박 아저씨가 카드를 빌려주어 카드를 살 필요가 없었다. 충전은 우리가 했다.

rima

날씨는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하늘은 꾸리꾸리했다. 다소 습한 날씨를 뚫고 메트로에 타고 아르마스 광장 근처로 갔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리마는 고층 빌딩이 없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유럽식 주택이 대부분이었는데, 뭔지 모르게 완성도가 떨어졌다. 장식을 더하든가 아니면 아예 안해서 고풍스럽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이도 저도 아닌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길거리 노점상은 과일을 팔았다. 대학 축제에서 볼 법한 과일 노점상을 보니 괜히 반가웠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 곳은 상온의 과일을 그대로 갈아주기도 했다는 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상온’이다. 아침 10시 30분이었는데도 거리는 한산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긴 했지만 배가 고팠다. Desayuno1)데사유노. 스페인어로 Breakfast, 아침밥., 아침에 열려있는 가게에 무작정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우리나라 음식점은 아침 메뉴를 따로 제공하진 않는다. 맥모닝, 아침 토스트를 제외하고 밥집에선 아침밥 메뉴를 팔진 않는다. 남미 같은 경우는 아침 메뉴를 따로 판다. 개별 음식을 판매하긴 하지만, 아침세트를 먹는 게 무조건 이득이다. 주로 아침은 빵, 일품음식, 음료로 구성된다. 들어간 가게에 현지인들 역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카레로 추정되는 음식을 먹고 있는 아저씨가 우리 오른쪽 대각선에 있었다. 들어가고서야 알았는데, 가게 점원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저거랑 같은 걸 달라고 온갖 바디랭귀지를 썼는데, 알아 먹지 못해서 데사유노 항목에 써있는 메뉴 하나를 시켰다. 결과는?

맹모닝에 이은 망모닝. 여러분 아침은 맥모닝입니다.

맹모닝에 이은 망모닝. 여러분 아침은 맥모닝입니다.

망했다. 내 메뉴는 망고와 고구마의 중간 즈음에 있는 과일이 구워져 곁들여진, 달걀후라이와 쌀밥이었다. 저 과일은 단듯, 시큼했다. 식감이 익숙지 않았다. 생과일로 먹었으면 모르겠는데 구워 먹으니 별로였다. 달걀은 달걀맛이었고 밥은 왠지 푸석했다. 소금을 엄청 뿌려서 소금맛으로 먹었다. 가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은 튀긴 생선과 밥, 무언가 밍밍한 채소 오므라이스를 시켰다. 반응은 그저 그랬다.

 이 음식은 양반.

이 음식은 양반.

아르마스 광장은 관광지였다. 기념품이 진열되어있고, 박물관이 있었다. 길거리에는 개시를 준비하는 걸인과 집시가 보였다. 대통령궁에서는 행사가 있었다. 호위대가 교체되는 장면은 지루했다. 낮이 되니 해가 떴다. 남미 날씨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알파카 인형을 팔고, 선글라스를 팔고, 기념 셔츠를 파는 곳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꽃보다 남자’였다. 6년 전 드라마, 오그라들어서 보지 못한 그 드라마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역시 페루의 김현중….kim산프란체스코 성당 앞에는 비둘기가 참 많았다. 평화의 상징에서 하늘의 쥐가 된 비둘기는 불청객이다. 슬슬 성당이 지겨워질 무렵 버스투어를 하기로 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언덕까지 올라가는 버스투어가 있었다. 거대 십자가가 있는 언덕에서는 리마가 한 눈에 보였다. 그 언덕이 있는 곳이 리마의 빈민촌이라 우리끼리 걸어갈 수는 없었다.dd

그래서 버스투어를 이용했다. 건설 중인 언덕은 길이 꼬불꼬불했다. 꼬불꼬불한 길 옆에는 빈민촌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니까, 브라질 골목에서 공 하나 들고 헐렁한 셔츠를 입은 사람들 말이다. 언덕 위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있었고, 나는 리마를 한 눈에 넣었다. 리마는 아직까지 성장하고 있는 도시였다. 모래로 된 산이 도시 곳곳에 있었고, 그들은 뭔지 모르게 개발 중이었다. 도시 한 가운데에 큰 축구장이 있었고, 대중교통이 설치되고 있었다. 같은 버스에 탄 슬로바키아 여자들은 이뻤다. 금발 백인 버프였으려나.

남!미! 남! 미! 나아아암! 미!!!!!

남!미! 남! 미! 나아아암! 미!!!!!

리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언덕에서, 언덕 바로 밑의 슬럼가 판자촌은 보이지 않았다. 리마의 축구장, 건설되고 있는 빌딩이 보였지만 언덕 바로 밑의 빈민들은 보이지 않는 현실. 우리나라라고, 우리라고 다를 게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저런 위선에서 자유롭지 않겠지. 우리나라도 달동네, 굴다리 밑의 빈민들이 있었다. 엄연히 국민이던 그들을 위정자는 보기 싫었나보다.

사회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노인들은 공원밖에 갈 곳이 없다.

사회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노인들은 공원밖에 갈 곳이 없다.

자기네들이 책임져야 할 빈민들을 지도자는 서울의 구석으로 쫓아냈다. 평화의 비둘기가 88년 서울을 날아다닐 때, 가지지 못한 자들은 음영으로 숨어들었다. 세계의 이목이 지나간 뒤, 위정자들은 여전히 그들을 책임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라는 김용판 전 경찰청장의 말처럼 달동네 판자촌이 보이지 않는다고 빈곤이 없는 건 아니다. 달동네 판자촌의 빈곤은 하우스푸어로, 스펙푸어로, 스펙을 쌓을 자격도 갖추지 못한 빈곤청년으로 전이됐다.

보고 싶지 않아도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보고 싶지 않아도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내려와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아르마스 광장 근처에, 가이드북에 써있는 식당을 갔다. 세트 메뉴를 시켰다. 감자샐러드 + 빵 + 쥬스 + 치킨이었다. 가격은 다소 비쌌는데, 맛은 좋았다. 페루에 와서 괜찮은 현지식을 처음 먹었다. 가이드북은 날 배신하지 않았다.

In 가이드북 We trust

In 가이드북 We trust

숙소 근처 미라 플로레스의 쇼핑지구에 가기로 했다. 메트로를 타기 위해 나왔는데, 페루의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가 있었다. 기껏해야 2층짜리 건물이었지만 나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나는 수건과 바디샴푸를 샀다. 신기했던 게, 이 마트는 DOVE 관련 상품을 자물쇠가 채워진 유리 상자 안에 보관했다. 가슴이 파여있는 유니폼을 입은, 행사 진행 누나가 문을 열어줬다. 더 보고 싶어서 더 불렀다. 갑질이었나 보다.

메트로를 타고 쇼핑지구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길에 <꽃보다 청춘>에 나온 샌드위치 집에 갔다. 그렇다. 꽃청춘 아저씨들이 묵은 곳은 좋은 곳이었다. 어쨌거나 그 샌드위치는 맛있었다. 유희열이 먹은 거랑 똑같은 걸 시켰는데, 가격이 비싸서 하나만 샀다.

먹었어! 내가 먹었어!

먹었어! 내가 먹었어!

음식점 근처 공원에서는 춤을 추는 공연이 있었다. 춤이라고 해서 빡센 게 아니라 대학생 새내기 배움터에서 추는 그런 율동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 단위 사람이 많았다.

dance
쇼핑지구의 건물은 현대적이었다. 비싸보이는 옷을 팔았고, 그럴 듯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보였다. <박물관이 살아있다3> 광고가 보였다. 삼성을 비롯한 전자제품 광고도 있었다. 이 곳에 있는 오피스텔들은 전부 경비가 있었다. 여튼, 우리는 해안가 근처의 쇼핑지구에 도착했다. 저 멀리 윤상 아저씨가 본 거대 예수상이 있었다. ‘사랑 공원’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연인들은 키스를 나눴고 나는 외로움을 흩뿌렸다. 해안가 근처에서 사람들은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1시간이 채 안 되는데, 가격이 겁나 비쌌다. 구체적 수치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비쌌다. 해안가를 따라가서 가장 큰 쇼핑플렉스에 갔다. 나이키, 아디다스, 명품알파카, 스타벅스가 있었다. 갤러리아 백화점이랄까.

백화점은 비싸서 못사니까 명화 구경하고 갑시다.

백화점은 비싸서 못사니까 명화 구경하고 갑시다.

숙소와 같은 해안가라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니 페루에서 한 1호 미친 짓이었다. 하루 종일 걸어다녀서 피곤했는데, 무슨 패기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백화점에서 숙소까지 2시간이 걸렸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꼬박 12시간동안 돌아다녔다. 비행기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헤헤 쟤네는 사진 찍히고 있는 거 모르겠지 헤헤?

헤헤 쟤네는 사진 찍히고 있는 거 모르겠지 헤헤?

저녁에 먹기로 한 고기집을 우리는 포기했다. 그리고 잤다. 이닦고 바로 누워서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캐나다 교환학생 중인 친구 왕멘을 만나 쿠스코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었다.

가족 같은 기업에 들어갑시다. 가!족 같은!회사에!

가족 같은 기업에 들어갑시다. 가!족 같은!회사에!

나는 모든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했다. 친구 빠블로 역시 마찬가지였고, 김샤카는 똑딱이 디카를 가져갔다. 나와 빠블로는 스마트폰용 렌즈를 사갔다. 어안 렌즈와 광각 렌즈였는데, 셀카는 어안이고 일반 사진은 광각으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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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사유노. 스페인어로 Breakfast, 아침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