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일단 글은 쓴다고 했고, 편집팀에서 오케이 싸인도 받았고, 이 글의 소재는 뜨겁다 못해 폭발하고 있는 핫이슈 중의 핫이슈고, 공부 빼고 모든 능력치가 2배 증가한다는 시험기간이다.

그런데 쓸 말이 없다.

미스핏츠나 페이스북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도 말들을 잘하는데, 정작 글을 써야 하는 나는 할 말이 없다. 음, 할 말이 없으니까 왜 할 말이 없는지부터 생각해봐야겠다. 나는 왜 할 말이 없을까?

우선, 위에도 언급했듯 다른 분들이 정말 말을 잘한다. 보고 있으면 놀랍고, 반성하고, 깨닫는다. 저걸 저렇게 반박할 수 있구나. 아, 저런 것도 차별이었구나. 그런 키배를 보고 있으면 한 마디 해줄까 싶다가도 마음을 고쳐먹는다. ‘저 사람들이 다 말해주는데 뭐.’ ‘나같이 말 못하는 사람이 끼면 안 돼.’ ‘잘못 말했다가 괜히 신상 털리면 어쩌려고?’ 등등. 그렇게 다시 스크롤을 내리며 구경꾼 속으로 돌아간다.

구경꾼 속 ‘객관적인’ 나의 위치는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를 전부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에 대해 설명하려면 무언가가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몇 가지 사실들을 더 추가해보기로 한다. 막내딸. 무교. 165cm. 몸무게는 생략하자 2D 이상형은 정대만, 3D는 손석희. 이번 생은 틀렸네 연애 경험은 여친 한 번, 남친 두 번. 정치성향은 공화주의자. 좋아하는 색은 파랑, 음식은 카레와 파스타, 영화는 「인셉션」과 「007」, 책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만화는 말할 것도 없이 <슬램덩크>. 최근의 가장 큰 소원은 MUSE 내한 콘서트 예매 성공. 에너지를 분산시켜서 최선을 다 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거라는 걸 믿고 있다.

독자들 예상 반응(...)

독자들 예상 반응(…)

평범하다. 너무 평범해서 쓸 말이 없었던 것 같다. 해외 무전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하나.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하는 당신들은 나의 무엇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는가? 남들 다하는 연애, 남자가 아닌 여자랑 했다는 거? 위에 있는 다른 모든 사실들보다 그 한 가지가 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유감이지만 세상은 내가 양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랑 비슷하게 동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하나의 울타리 안에 묶으려고 한다. 세칭 ‘LGBT –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다. 이렇게 묶이는 것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백인, 황인, 흑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처럼 어쨌든 일반인과 이반1)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하고 자신을 구분할 때 쓰는 용어. ‘일반’의 반대말로 ‘이반’.들이 다른 건 맞으니까. 하지만 그 구분이 이쪽과 저쪽의 ‘경계선’이 되고 그것이 넘지 말아야 할 선으로 치부되는 순간 다름은 차별이 된다. ‘선긋기’와 ‘차별’은 명확히 다른 문제이다.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사이는 점선인데, 양성애자와 이성애자 사이는 실선이라고 해야 하나. 어디서인지부터는 모르겠지만, 그냥 확 달라지는 것 같아.”

“근데 누나는 왜 이 동아리 들어왔어? 그냥 남자 만나고 살아도 되잖아.”

그리고 나는 그 ‘경계’ 위에 서 있다. 일반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반들은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한다. 내가 퀴어 퍼레이드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은 그 이유였다. 나는 내가 퀴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퀴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소수자로 편입되는 순간 그 대가가 무엇인지는 이미, 숱하게, 지겹도록 봐왔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왜 가냐고?

어쩔 수 없이 내가 퀴어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나는 퀴어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성별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놈(queer)으로 취급받고,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당하고, 종교나 정신과 치료로 교정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라는 성 정체성만으로 규정되는 내가 아니라, 다른 정체성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 자신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퀴어 퍼레이드에 갈 것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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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번 퀴어 문화축제(이하 ‘퀴퍼’)에 참여하는 나의 자세는 축제보다는 전장에 나가는 마음가짐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가 반갑지 않은 손님께서 오셨고, 16년의 한국 퀴퍼 역사 최초로 개막식은 그렇게 화질구지의(…) 유투브 생방송 중계로 변경되었다.

당연하지만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다. 시험 기간이고, 학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퀴퍼 개막식을 보고 있으면… 단체 아우팅잼ㅋ 그래서 누가 ‘어디서 개막식 생방송 같이 본다고 한 거 같은데.’ 라고 말하는 것을 듣자마자, 바로 짐을 싸서 학교를 뛰쳐나갔다. 그렇게 처음 간 곳이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이하 행성인)이었다.

솔직히 행성인 입구를 처음 들어갈 때는 마치 레지스탕스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학교 밖에선 이쪽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잘 없었고, 만난다고 해도 내 또래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활동가’라는 말에 엄청 비장하고 혁명적인, 흔히 생각하는 ‘운동권’의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들어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상상은 두 시간 만에 완전히 깨졌다. 전전긍긍하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사람들은 카톡하고, 페북하고, 웃고, 즐기고, 과일을 깎고 맥주를 사와서 술판을 벌였다. 그리고 ‘저 사람 잘생겼지 않아?’ ‘내 식은 아닌 듯.2)이반 용어로 ‘스타일’, ‘취향’. 내 식이 아냐 = 내 스타일/취향이 아냐.’ ‘쟤 평소에 안 저러는데 되게 진지하다.’ 와 같은 자잘한 수다부터, ‘개막식 무대설치비 아껴서 서버에 돈 좀 들이지.’ 같은 다소 불온한(?) 불만들을 토로하고는 했다.

들어보니 다른 단체에서도 술판을 벌이셨다고(...)

들어보니 다른 단체에서도 술판을 벌이셨다고(…)

그러한 불만들에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변경되었고, 처음이니까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개막식 시작 예고는 일곱 시 반이었는데 여덟 시 반에야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고, 개막식 중계는 아홉 시 가까이 되는 시간에 시작되었다. 뭐, 그 점은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아주시는 어떤 분들의 참여(?)와, 여섯 시가 되어서야 겨우 무대 설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주최측의 사정을 참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개막식이 진행되면서 점점 내가 퀴어 퍼레이드 개막식을 보고 있는 것인지, 연말 시상식을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서울시 인권위원장님과 다른 나라 대사님들, 종교 지도자들의 축사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퀴어 퍼레이드는 이반과 일반이 함께 어울려야 그 의의가 커지는 것이니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락 페스티벌에서 재즈나 발라드 가수가 헤드라이너가 될 수 없듯이 퀴어 퍼레이드는 퀴어가 주인공이 되는 축제이다. 우리들의 거리에서 군중들의 광장으로 나왔다면 ‘방해하는 그들’보다는 ‘함께하는 우리’가 주된 메시지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중계 방송을 보고 있는 동안 ‘퀴어와 함께 해주는 사람들’과 ‘퀴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연이고, ‘퀴어’들은 조연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사회의 살벌한 인정 투쟁3)헤겔이 주장하고 악셀 호네트가 발전시킨 개념. 나와 타자가 서로 대등한 위치에 놓일 때 서로 간의 자유와 자아를 존중하는 바람직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등한 관계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왜곡되어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상대방을 억누르고 지배 아래 두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권력’과 ‘폭력’이 창출된다. 타국을 자신의 논리대로 지배하려는 식민지적 발상, 다국적 기업을 통한 세계 경제의 잠식,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라는 이름을 내걸고서 자신의 정치 체제를 관철시키려는 태도, 자신의 종교만을 진리로 간주하면서 행하는 종교 탄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안에서 성소수자들은 남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숨기도록 강요받는다. 자신을 자신으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여지는 것조차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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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거기 당신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즐겨야 한다.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시위고, 우리가 하는 것은 축제다. 그들은 우리가 없어지길 바라기에 시위를 하는 것이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기에 축제를 연다.

행성인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도 우리는 지금 항쟁이 아니라 축제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몇 시간 미뤄져도, 화질구지에다가 계속 끊기고 지직거려도, 봤던 거 또 보여주는 영상이라도 그걸 함께 보면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같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가 되는 것. 대학교 축제와 락 페스티벌이 그렇듯이 말이다.

 

락 스피릿!!!!!!!!!!!!!

락 스피릿!!!!!!!!!!!!!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우리의 축제는 이제 겨우 서막을 올렸다. 그리고 아마 퀴어가 퀴어라고 불리지 않게 될 그 날이 올 때까지 축제는 계속될 것이다. 인종 차별을 끝낸 방아쇠는 남북 전쟁이 아니라 킹 목사의 연설이었다. 나는 증오는 절대 사랑을 이길 수 없고, 차별은 끝내 연대를 이길 수 없다고 믿는다.

   [ + ]

1. 성소수자들이 이성애자들하고 자신을 구분할 때 쓰는 용어. ‘일반’의 반대말로 ‘이반’.
2. 이반 용어로 ‘스타일’, ‘취향’. 내 식이 아냐 = 내 스타일/취향이 아냐.
3. 헤겔이 주장하고 악셀 호네트가 발전시킨 개념. 나와 타자가 서로 대등한 위치에 놓일 때 서로 간의 자유와 자아를 존중하는 바람직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등한 관계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왜곡되어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상대방을 억누르고 지배 아래 두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권력’과 ‘폭력’이 창출된다. 타국을 자신의 논리대로 지배하려는 식민지적 발상, 다국적 기업을 통한 세계 경제의 잠식,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라는 이름을 내걸고서 자신의 정치 체제를 관철시키려는 태도, 자신의 종교만을 진리로 간주하면서 행하는 종교 탄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