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고백해야 할 비겁한 기억이 있다.

금요일에 신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교육이 끝났다. 2박 3일의 합숙 연수가 끝나자마자 나는 재빨리 귀가했다. 읽다 만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다. 책을 다 읽고 카톡창을 보았다. 친구들이 공개적으로 성차별 발언을 한 영국 교수의 멍청함과, 그의 낡은 사고방식을 유쾌하게 비웃는 ‪#‎DisturbinglySexy‬ 트위터 태그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의 손가락은 ‘ㅋㅋㅋ’를 쳤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나는 그 주에 내가 했던 비겁한 행위를 반성했다. 그리고 혼자 반성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내가 겪은 일을 말하기로 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교육은 2주간 진행되어 3일의 합숙으로 끝났다. 합숙 전에 나와 신입 기자 동료들은 많은 강의를 들었다. 그 중에는 전 언론인이자 현 대학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그 강의는 강사가 사례로 뽑아 온 인터뷰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중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씨에 대한 인터뷰에 대해 코멘트할 때였다. 기사에는 “작가 조선희 씨가 위인전을 써 주겠다고 약속할 만큼 대단한 일을 해 놓고도…”라는 대목이 있었다.

강사는 그 대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명숙씨가 정말 대단한 분이기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잘 봐야 돼요. 내가 페미니즘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서명숙씨는 여자입니다. 조선희 작가도 여자고, 이 기사를 쓴 기자도 여자에요. 여자들끼리 그냥 하는 얘기일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럼 이 발언이 얼마나 진지한 건지, 아니면 그냥 여자들끼리 수다를 떤 건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얼마나 무게 있는 발언인지.”

내가 비교적 자세히 이 발언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화가 났기 때문이다. 강사에게도 화가 났지만 즉각 손을 들고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한 나에게 더더욱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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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손을 들지 모태…

“그렇다면 남자 기자가 ‘남자 작가가 남자 인터뷰이에게 한 말’을 인용할 때도 여전히 무게 없는 수다일 가능성을 따져야 합니까? 아니면 저 셋 중에 한 명만 남자면 되는 건가요? 어째서 인터뷰이의 발언의 신뢰성이 그들의 성별에 달려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죠?”

나는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대신 뭘 했냐면, 속으로 내 발언을 ‘검열’했다. 이렇게 질문하면 ‘너무 공격적’이지 않을까? 내가 선택한 어휘와 숨기지 못할 분노에 의해 내 말을 제대로 안 들어주면 어쩌지? 어떻게 말하면 가장 ‘공정한’ 지적일까?

또한 반복적으로 강사의 말을 되뇌었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이건 분명히 문제 있는 발언이겠지? 내가 ‘유난 떠는’ 건 아니겠지?

바로 문제제기를 하는 대신에 스스로의 입을 꼬매버렸어...

강사의 입을 꼬매는 대신에 스스로의 입을 꼬매버렸어…

강사의 말을 비교적 정확히 기억한다고 자부하는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복적인 자기 검열. ‘감히’ 내가 이런 지적을 해도 될 만한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수많은 용기 없는 검토.

이런 검토를 하는 사이 강사는 기사에 대한 다른 수긍할 만한 비판적 지점으로 재빨리 옮겨갔고 타이밍을 놓친 나는 더더욱 발언할 용기를 잃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지금껏 나는 후회했고, 자책했고, 반성했다.

그러나 이 일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는 않으려고 했다. 그저 합숙 마지막 날 강의평가서에 ‘성차별적 인식에 근거한 강의 내용에 유의하시고 시정해줄 것’을 두 번 적었을 뿐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베카 솔닛과 버지니아 울프와 수전 손택과 트위터의 수많은 여성 과학자들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나는 내 안에 쌓인 자책과 반성과 분노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도 될 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것이 이 지긋지긋한 일상적 성차별의 패턴을 조금 부수는 데 기여할 지도 모른다.

안선생님...!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아요...!

안선생님…!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아요…!

나는 기자를 자처하면서 불의를 보고 질문해야 할 순간에 질문하지 못했다. 물론 그 자리에는 나 말고도 다른 여성 기자 동료들이 있었다. 동료들은 그 발언을 유의깊게 듣지 않거나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 발언의 문제점을 눈치챘다. 그러고도 침묵했다. 언론인으로서 이것은 재발해서는 안 되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이것은 또한 역사가 유구한 성차별의 패턴이다. 여성을 무시하는 처사를 보고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침묵하는 여성들. 나는 이것을 깼어야 했다. 오늘을 어제 같이 살면서 내일이 달라지길 바랄 수 없기에 나는 어제 하지 않기로 했던 일을 한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일에 대해 설치고, 떠들고, 말한다.

아녀 이젠 한 번도 참지 않을 거예요

아녀 이젠 한 번도 참지 않을 거예요

그가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하게 했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 장면을 목격하는 동료들, 남자 혹은 여자, 또한 나 자신이 ‘저런 말을 했다간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걸 기억하게 했어야 하는데. 열댓명 남짓한 공적인 공간에서 나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사소한 모욕도 지적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회 전체를 무대로 타인에 대한 중대한 차별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나는 용기가 없었고 비겁했고 기자답지 못했다. 이 분노로 인해 나는 이제부터 질문보다 침묵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