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초면

내향적인 사람은 소극적이다.’

위 명제는 거짓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그냥 내향적인 거다.

내향적.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형용사다. 너 참 내향적인 아이구나, 라는 말은 너 존나 소심하고 쫌생이 같은 새끼야, 라고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심리학자 칼 융에 의하면, 내향적인 사람은 내적인 활동에서 힘을 얻고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내향적이라 하는 것이며 내향적인 사람들 모두가 소극적인 것은 아니라고. 그의 설명을 따르자면 나 역시 내향적인 편에 속한다. 것도 굉장히. 거기다 생긴 것과는 딴판으로 낯가림까지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전날이면 내일은 누구랑 밥 먹지, 하는 고민으로 잠을 못 이뤘다. 한 때는 나도 외향적인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왜 나는 그들처럼 살 수 없는 걸까 고민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은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활동이었으며 어쩐지 부담스럽기까지도 했으니까. 낯가림과 내향성을 극대화하는 건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내 인생에서 오지랖은 금기였다. 나에게 주어진 것만 최선을 다해 끝내자는 게 모든 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었고, 남 인생 신경 쓰지 말고 나나 잘하자는 게 내 인생의 방향성 같은 거였다.

KakaoTalk_20150603_144905358

누가 뭐라던 난 존나 나만의 길을 간다. 그런 애였다. 나는.

이런 날더러 얼음공주 납셨다느니, 혹시 본명이 김엘사세요 등 주변인들은 늘 한마디씩 했다. 나에게 닥친 일도 버거운데, 다들 어찌 그렇게 남 인생에 관심들이 많은지. 어차피 곧 헤어질 사람들이고, 손톱만치 관심도 없는 사람들인데. 그런 이들 때문에 내 뉴런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둘 사이에 남겨진 어색한 공백이 민망해 겉만 빙빙 도는 식의 수다를 떨고 싶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민망해...

민망해…

그러니 내가 케어할 수 있는 내 사람들에게만 온전히 집중하자는 게 내 인간관계의 철칙이 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친구들이 지어준 ‘철벽녀’라는 별명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마땅한 반박거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처음 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쌀쌀맞게 군다거나 무표정하게 그들을 맞는 건 아니다. 적당히 선을 그을 뿐. 대규모의 모임도 무조건적으로 피하지는 않는다. 일단 약속이 잡히면 그 속에서는 적당히 웃고,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다 나온다. 그런 날엔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나를 반기는 건 소파와 침대, 커피와 책이었다. 가끔은 티비와 맥주였고. 나는 나의 내향성을 인정했으며, 사랑하기로 했다. 그러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텔레비전과 SNS에서는 ‘여행’이 유행처럼 번졌다. 다들 각종 국내외 여행지에 대해 떠들어댔고, 일반인들이 올리는 여행 동영상은 수십 만 개의 좋아요를 달고 다녔다. 영상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즐겁고, 쾌활해보였으며 초면인 외국인과의 만남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한 때 열심히 찾아보았던 워킹 홀리데이 후기 또한 그러했다. 국적조차 모르는 외국인과 hang out 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저녁 파티에 초대되기도 하고. 후기에는 하나같이 다양한 살 색의 사람들과 찍은 단체 사진 따위가 있었다. 아, 난 안 될 거야. 집을 나서는 데만 해도 삼만 칠천 구백 시간이 걸리는 난 아마 안 될 거야. 나 같이 introvert한 애는 물 건너서도 방 안에 있을 걸. 그럼 한국이나 외국이나 다를 게 뭐람! 그렇게 캐나다로의 워킹 홀리데이를 포기했다.

(물론 선착순에서 떨어진 것도 한 몫 했다. 4학기 수강신청 전승인 내가 떨어지다니! 자취방의 인터넷 속도를 맹신한 탓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10개월 후, 2015년 6월.

늘 그렇듯 버스는 도착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오지 않았고, 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초콜렛을 또각또각 까먹고 있었다. 왼쪽에서 와 닿는 시선이 따가웠다. 동네에 흔하게 있는 홈리스였다. 초콜렛을 입에 넣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고 괜히 멋쩍어진 난 초콜렛 봉투를 내밀며 물었다. Do you wanna try?

호주 땅에 떨어진 지 딱 3개월이 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