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 <타이타닉>

<타이타닉>은 별다른 수식이 필요 없는 당시 전 세계 최고 흥행작이자, 현재 전 세계 최고 흥행작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작품이다. 1위는 <타이타닉>의 감독이자 각본을 쓴 제임스 캐머런이 역시 각본과 감독을 맡은 <아바타>. <아바타>가 3D 영화라는 신세계를 개척한 것을 감안하면 <타이타닉>은 2D영화 시대, 혹은 필름 영화 시대 최고 흥행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임스 캐머런은 액션 영화와 SF 영화에 강점을 보이고 있었다. 그에게 부와 성공과 명예를 가져다 준 <터미네이터>, <터미네이터 2>를 비롯해 <에이리언2>까지 SF적인 배경 속에서 총질하고 마구 폭발이 일어나는 영화가 그의 대표작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특유의 엄청난 물량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걸까, 그는 다음 작품으로 현대물이자 코믹 첩보물인 <트루 라이즈>를 찍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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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 멋졍…!

<트루 라이즈>는 <터미네이터> 이후 다시 만난 제임스 캐머런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콤비만큼이나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당시 미군 최신예 전투기였던 해리어기의 등장으로 관심을 모았다. 총 1억 1,500만 달러가 들어간 이 영화는 철거 예정인 다리를 실제로 폭파하기도 하고 도심에 해리어기를 띄우는 놀라운 CG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CG 수준은 상당히 높아서 진짜 해리어기를 띄웠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트루 라이즈>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짜 폭파 연출과 CG 연출이 잘 어우러진 액션영화의 수작이었다. 그는 CG 기술력이 SF의 세계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잘 녹아드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제임스 캐머런의 다음 작품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역사물이었다. 역사물은 보통 스필버그 같은 감독들이 아카데미상을 타고 싶을 때 만드는 것이 아니었나. 시각효과상 외에는 아카데미와 별 인연이 없는 제임스 캐머런에게 역사물인 <타이타닉>은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모든 이들은 이 영화는 제임스 캐머런만이 만들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케이트 윈슬렛도 아닌, 바로 타이타닉 배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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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변함 없이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은 참 멋지다…

1912년 있었던 타이타닉 호 침몰 사건은 사실 이전에도 영화화가 됐었고,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도 재연되는 등 다양한 매체에서 많이 다뤘던 소재였기 때문에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타이타닉 제작을 반대했는데,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누가 영화로 보겠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작비도 2억 달러(현재 환율로는 2,200억 원인데, 당시는 IMF 시절이라 1달러당 1,600~ 1,700원 정도 했으므로 3,200억~3,400억 원으로 보면 된다)를 투입하겠다고 했으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미친 소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1912년 당시 그 어떤 여객선보다 컸다는 타이타닉 호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고, 영화는 그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타이타닉>은 세트와 CG와 미니어처, 모션 캡처 등 문자 그대로 최첨단의 영상 기술을 동원해 배의 웅장한 출항, 내부의 화려함과 침몰하게 되는 그 순간의 긴박함까지 모두 되살렸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임스 캐머런은 엄청난 흥행 성공과 더불어 자신의 감독상을 포함한 아카데미 14개 부문 후보, 11개 부문 수상까지 성공하며 역사물을 만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바타>와 <타이타닉>으로 역대 흥행 1,2위를 차지한 지금 그는 정말로 ‘킹 오브 더 월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타이타닉>은 서울 기준 197만~226만 관객을 기록했는데, 전국 기준으로 하면 450만~500만 명 정도로 보면 된다.

movie_image (8)철저한 고증 속 잘 배치한 픽션 서사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서사는 <타이타닉>에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타이타닉>이 다큐를 넘어서는 영화로서의 가치를 주기 위해 차용된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전통적인 혼인 방해 서사인데, 사랑을 방해하면 방해할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더 커진다는 내용이 주요 줄기다. 배에서 처음 만난 사이인 잭과 로즈는 점점 더 사랑하게 되고 결국 그 사랑은 목숨마저 바칠 정도의 사랑으로 커진다. <폼페이:최후의 날> 같은 영화에서도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될 만큼 흔하고 잘 먹히는 서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매력, 그리고 셀린 디온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 등이 적절히 어울린 ‘뱃머리에서 팔 벌리고 바람 맞기’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사랑에 깜빡 넘어가고야 마는 것이다. 특히 두 주인공을 감싸는 석양이 실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데 놀라운 점은 그 석양이 다 CG라는 것이다.

movie_image (10)그린 스크린을 배경으로 강풍기 틀고 그 뱃머리 발판만 놓고 찍은 후 그 석양과 빛을 다 CG로 만들어낸 것이다. 아름다운 명장면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마침표가 제임스 캐머런이 지금까지 단련해온 CG 기술력이라는 점이 이 잘 만든 역사극을 왜 SF 기술의 거장인 그가 만들어야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렇게 아름답게 준비된 서사와 장면들은 실제 이야기에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특히, 잭이 천천히 눈을 감는 장면은 디카프리오의 젊은 시절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까.movie_image

사실 타이타닉 호 침몰 사건은 80년이 지난 이후에도 비극적인 사건임에는 변함이 없다. 비극성이 가득한 이야기는 쉽게 희화화해서도 안 되고 마음대로 왜곡해도 안 될 것이다. 제임스 캐머런은 이를 철저한 고증과 조사를 통해 실수가 거의 없는 영화로 만들어냈다. 극중에서 조금은 악역처럼 나온 1등 항해사 윌리엄 머독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장면 때문에 소송을 치른 것이 고증 실패라면 실패였다. 그 역시 다른 승무원이나 선장과 마찬가지로 배와 운명을 같이한 명예로운 승무원이었으니까.

movie_image (3)<타이타닉>의 비극과 우리의 비극

이제 일 년, 그리고 두 달 가까이 지났다. 타이타닉 침몰 사고만큼이나 슬픈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말이다. 사실 한국의 여객선 해양 사고는 세월호 뿐만 아니다. 1970년 남영호 침몰 사고,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 등 약 20년마다 한 번씩 대형 사고가 터졌다. 사건 때마다 무정한 바다는 약 3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남영호 319+명, 서해 페리호 292명, 세월호 295+명) 타이타닉은 빙산에 부딪히는 사고기라도 하지, 우리의 희생자들은 해운회사의 과적과 안전규정 무시에 의해 희생되었다.

과연 우리는 사고가 일어난 지 80년이 지나고 나면 그때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이 각각의 사건에 대해 영화를 가질 수 있을까? <타이타닉>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 생생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끊임없이 그 사례가 연구되고, 생존자 증언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유가족은 무시하고 진상 규명은 뒷전인 채로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우리는 나중에 이 사건들을 온전히 되살려낼 수 있을까? 실수나 자연 환경의 탓이 아닌 선주의 탐욕과 강제, 그리고 정부의 관리 감독 소홀이 가장 큰 원인인 이 사건에서 말이다. 과연 이 비극적인 사건 속에는 어떤 서사가 어울릴까? 아무리 생각해도 잭과 로즈 같은 감동적인 혼인 방해 서사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포세이돈 어드벤처>에서 사용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남을 구하려는 승객 모두들의 이야기여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에린 브로코비치>처럼 끊임없이 진실을 파헤친 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라든가.

movie_image (31)B SIDE – <약속>

90년대에 박신양을 빼놓고 한국적 멜로의 흐름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편지>, <약속>부터 시작해서 <화이트 발렌타인>까지. 최진실, 전도연, 전지현 등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여배우들의 상대역으로, 또 비중 면에서 그들보다 조금씩 더 존재감 있는 주연으로 활동할 만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박신양이 주로 멜로에 출연했다고 해서 말랑말랑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약속>에서는 깡패 보스였고, 그를 코미디 쪽에서 성공을 거두게 만든 <달마야> 시리즈에서도 그는 조폭 보스였다. 오히려 마초적이고 남성미 넘치는 역할이 더 어울리는 배우였던 것이다. 이런 마초성이 극대화된 것은 2000년의 누아르 영화인 <킬리만자로>다.movie_image (26)

그의 마초적인 연기와 감성 연기가 적절하게 결합되어 정점을 찍었다고 불러도 좋을 <약속>은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인 전도연과의 탄탄한 호흡 때문에 시너지가 더 두드러진다. <편지>, <접속>, <약속>의 성공 이후로 한국에는 뜬금없는 두 글자로 영화 제목 짓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트루 라이즈>, <타이타닉>같이 엄청난 물량이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들어올 당시 우리는 IMF 구제금융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영화 제작 역시 여러모로 힘든 시절이었고, 정말 옆에서 툭 치면 울고 싶은 시절이기도 했다. 그럴 때 신파 영화가 인기였다는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 아마 요즘 같은 때에도 괜찮은 신파 영화가 나온다면, 꽤나 성공할 것 같다. 요즘에도 울고 싶은 사람들은 정말 많을 테니까 말이다.movie_image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