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기억이 있다.

여덟살 때, 군인교회에서 실시한 지옥체험 비슷한 것을 다녀온 기억 말이다. 가끔 휴가 나온 친구를 만난다거나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가 나올 때면 그 때의 경험이 떠올라 얘기를 꺼내곤 하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헐, 설마”, “진짜 그랬다고?”하면서 잘 못 믿겠다는 투다.

 

아무도 못 믿는 기억

직업 군인이신 아버지를 따라 방학 때마다 군부대에서 살았던 나는, 그 해 비가 죽죽 쏟아지는 여름에도 부대 안의 군인아파트에서 방학을 보냈다.

부대 안에는 군인교회가 있었고, 아버지가 어떤 부대로 가시든 우리가족은 주일마다 그 부대 안의 군인교회를 다니곤 했다. 아무래도 군인교회다보니 밖의 교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예배를 듣는 신도(?)들의 8할이 일반 병사들이었고, 딱히 군인자녀(이른 바 ‘관사키드’)를 위한 청년부나 유아부 그런 것도 없었다. 해서, 예배가 끝나면 아이들끼리 모여 또 다른 성경공부를 하는 등의  일도 많지 않았고 (각 군인교회 별로 다르긴 했지만) 웬만하면 예배 끝나고-빵과 요구르트를 받아서는-식당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여름 날, 군인교회에서 실시한 ‘천로역정’이라는 캠프에 다녀오게 됐다. 일종의 교회 여름 수련회 같은 거였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전체 동선이 어떻게 됐는지 전부 다 떠오르진 않지만 여태 기억이 선명한 몇 개의 장면이 있다.

※기사를 쓰던 도중, 다행히 이 때 써둔 그림일기를 득템했다(!)

오늘 교회에서 천로역정을 했다. 천로역정이란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오늘 교회에서 천로역정을 했다. 천로역정이란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일단 하나.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연병장에서, 빨간 모자와 선글라스, 군복을 입은 교관과 그를 마주보고 선, 비에 홀딱 젖은 우리 관사키드들(그래봤자 10살이 채 안 되는 아이들 한 열 명 쯤)이 서있던 장면. 내려치는 빗방울에 볼이 아플 정도로 비가 많이 와, 연병장이 엄청나게 질척질척했는데, 그 곳에서 오리걸음에 뜀뛰기에 뭐에 꽤나 많은 훈련? 벌?을 받았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건 사실 더 압권인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저 교관이 우리를 이렇게 대하는 게 뭔가 이해도 안 되고 너무 웃겼던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나름 뒷줄에서 살짝 웃었다고 생각했는데 선글라스를 낀 그 조교는 어떻게 그걸 알고 “웃은 사람 나와”라며 바로 나를 열외시켰다.

열외된 곳에서는 ‘주먹 쥐고 엎드려 뻗쳐’를 시켰는데 자꾸 손이 펴져서 안달이 났었다. 하얗게 뜬 내 손과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 잔디, 연병장의 진흙탕 물과 고인 물에 살짝 비치는 교관의 빨간 모자가 들어온 그 때의 내 시야가 아직도 엄청나게 선명한 그림으로 남아있다.

천로역정은 힘들고, 무서웠다. (…) 두 번째로 갔다. 두 번째도 머리가 돈다. (…) 세 번째엔 토끼뜀, 오리걸음, 엎드려 뻗쳐였다. 네 번째는 십자가 들기. 다섯 번째는 천국이다. 옥수수 먹는 천국 말이다.

천로역정은 힘들고, 무서웠다. (…) 두 번째로 갔다. 두 번째도 머리가 돈다. (…) 세 번째엔 토끼뜀, 오리걸음, 엎드려 뻗쳐였다. 네 번째는 십자가 들기. 다섯 번째는 천국이다. 옥수수 먹는 천국 말이다.

다섯 번째는 천국이다. 옥수수 먹는 천국 말이다.

연병장에서의 활동(?)이 끝나고, 우리는 교관의 지시에 따라 교회로 다시 돌아왔다. 물론 곱게 돌아오진 않았다. 군대의 목봉훈련을 연상시키는, ‘십자가 들기’를 하고서는 그 멀고 먼 교회까지 ‘행군’을 했던거다. 초등학교 저학년 짜리 애들 대여섯 명이 달라붙어 십자가 하나를 들쳐맸는데 한 명이 무너지면 전부가 멈춰야 해서, 가는 길에 몇 번이고 멈춰섰던 기억이 난다.

군인교회로 들어온 우리는, 반갑게 맞아주는 군종병 선생님(!)과 어머님들 품에 폭 안겼다. 거기는 천국이랬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 때 그 분들의 모습은 진짜 천사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우리-관사키드-들은 따뜻하게 찐 옥수수를 받아먹고 다같이 큰 도화지 위에 하나님 모습의 색종이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샤프로 하나하나 꾹꾹 눌러가며 만드는 일이 꽤나 수고스러웠는데, 몇 시간 전의 지옥체험을 떠올리면 일도 아닌 거였다.

 

난 왜 진짜사나이를 보고 ‘공감’하고 있을까

새삼스레 이 때의 기억을 떠올린 건 최근 불거지는 군대 가혹행위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웬만해서는 예능 프로그램을 잘 챙겨보지 않는 내가 단 하나 챙겨보는 주말 예능, MBC <진짜사나이>의 지난 주 방송분이 그 이유였다.

원체 이 예능을 좋아하는 이유가 어렸을 적 아버지 부대에서 보고 경험했던 것들이 솔솔 기억이 나서인 것도 있고 또래 친구들의 경험담이 떠올라서 인 것도 있고, 그냥 ‘재밌으니까’ 보는 것도 있는데 이런 이유들보다 더 치명적으로 날 잡아끄는 이 예능의 매력은 ‘참 저걸 저렇게 포장했네’ 싶은, 꼬인 생각을 들게 하는 점이었다.

사진1: MBC  캡쳐. 유격훈련 장면 도중 삽입된 박건형의 인터뷰. 박건형의 이 멘트는 방청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사진 2: 박건형의 이 질문은, 사실 어마어마하게 핵심적인 부분을 지적한다. / 사진=MBC

사진1: MBC <진짜사나이> 캡쳐. 유격훈련 장면 도중 삽입된 박건형의 인터뷰. 박건형의 이 멘트는 방청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사진 2: 박건형의 이 질문은, 사실 어마어마하게 핵심적인 부분을 지적한다.
/ 사진=MBC <진짜사나이>

근데 저번 주 편은 좀 그 느낌이 진했다. 유격훈련을 받는 사병들의 모습과, 박건형의 말 대로 ‘왠지 모르게 빡이 쳐있는’ 교관들의 모습. 사병들이 군복을 입었다는 것과 훈련 강도의 차이만 있었다 뿐이지 그들의 말투, 행동, 태도는 솔직히 내게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단지 여덟살 때 경험했던, 채 하루도 되지 않았던 군인교회 지옥캠프 때문만은 아니다. 그 때의 기억이 나 혼자만의 기억이라면, 이제 꺼낼 이야기는 ‘중고등학교 무난히 다녀본 8090년생들’은 다- 경험해봤을 만 한 이야기다.

 

‘수련’이라는 이름의 제2의 지옥캠프

  • “여러분이 하는 것에 따라 제가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여러분 놀러 온 거 아닙니다”

  • “목소리 이것밖에 못 냅니까?”

  • “전방에 함성 X초 발사!”

  • “(학교 이름), 이것밖에 못 합니까?!”

  • “(단체기합을 주다가)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겠습니다.”

출처 : 엔하위키

유격훈련 교관의 멘트가 아니다. 학교 수련회 지도사의 멘트다. 솔직히 수련회 한 번 쯤 다녀와 본 사람들이라면 저 멘트 보고 안 익숙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어디서 저런 대사들을 미리 써놓은 교안이라도 발행했던 건 지 뭔지, 어디 수련원을 가도 다 똑같다.

말이 좋아 ‘수련’, 그니까 심신수양이지 수련회를 가서 하고 오는 건 실상 기합받기-레크리에이션-캠프파이어 정도가 공식 프로그램의 전부다. ‘기합받기’는 보통 도착하자마자 진행되는 순서인데 <진짜사나이>에서 박건형이 한 말 대로 ‘대체 왜 화가 나있는지 모르겠는’ 교관들의 버럭에, 수백명의 학생들은  ‘또 이건 대체 왜 받아야되는지 모르겠는’ 이유로 기합을 받는다. 중고등학생들이니까 그리 빡세지 않은 기합을 주겠지, 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거의 군대 유격훈련의 얼차려와 유사한데 <진짜사나이>에도 등장한 ‘문제의 PT체조 8번’을 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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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지도사 앞에서 우리는 ‘정신개조’ 받아야 할 인간쓰레기로 추락한다.

내게 여덟살 때의 기억은 ‘아니 그냥 그랬던 적이 있었다고’ 하고 말 정도의 기억이었다. 호들갑을 떨며 못 믿어하던 친구들의 반응이 되려 “아, 그게 그렇게 신기해?” 싶어서 반문할 정도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련회에서의 경험도 다르지 않다. 그걸 직접 겪었던 우리들에게는 그저 “아, 뭐 그랬었지” 싶었던 기억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도 ‘호들갑을 떨며 못 믿어할’ 정도의 일이다. 다 같이 공유하는 기억이어서 그렇지, 그게 당연한 일이었어서는 결코 아니다.

 

그리고 또, 또, 또 반복된다.

http://www.youtube.com/watch?v=ELo8E0atoR4&feature=youtu.be

올해 초 ‘유투브’를 통해 퍼진 이 영상은 3년 전, 신한은행이 신입사원 연수 현장을 담고 있다. 동영상에는 신한은행의 남녀 신입사원들이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기마 자세로 서서 ‘주인 정신’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큰 소리로 읽는 장면 등이 담겨 있다. 3시간 가량 진행됐다는 군대식 ‘교육’ 장면을 담은 동영상에는 직원들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클로즈업한 장면이나, 교관으로 보이는 이들이 ‘자세가 좋지 않다’며 신입사원들을 질타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심지어 신입사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본의 아니게 오바이트를 두 번이나 했다”고 인터뷰하는 장면도 포함돼있다.

대기업의 신입사원 연수 현장. 이번에도 익숙하다. 군대에서는 ‘군대니까 이런가보다’, 수련회에서는 ‘수련회니까 이런가보다’ 하면서, ‘이 시간만 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넘겨왔더니, 이번에는 기껏 공부해서 취직한 기업에서도 마찬가지인거다. ‘○○에 맞도록 정신개조’를 하겠다는 명분 하에 이 군대식 ‘교육’은 끝도 없이 반복된다.

영상에 등장한 신한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얼차려’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부터 여러분들과 저는 신한의 혼을 이루고 있는 주인정신에 대해서 몸으로 체험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을 바꿔나갈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말로 풀어놔서 그렇지, 군대에서 얘기하는 ‘정신개조’와 다를 게 없다. 마찬가지로 수련회에서 얘기하는 ‘심신의 수양’과 다를 것도 없고, 군인교회에서 얘기하는 ‘하나님 나라로 가기 위한 고난 수행’과도 다를 게 없다.

계속 반복되는 구호. ‘정신개조’. 이렇게 차근차근 개조시키지 말고 한방에 개조해주면 안돼요? / 사진=MBC

계속 반복되는 구호. ‘정신개조’. 이렇게 차근차근 개조시키지 말고 한방에 개조해주면 안돼요? / 사진=MBC <진짜사나이>

신한은행 신입사원 얼차려와 관련된 기사가 보도되고 난 뒤 네티즌들은 신한은행에 대해 엄청난 비난을 보냈다.  “저게 군대냐 은행이냐”며. 하지만 뭐가 다를까. 단지 내가 저 자리에 없었다는 것만이 달랐던 걸지도 모른다. 십자가를 짊어맨 꼬맹이들의 모습도, 수백 명의 학생들이 대강당에 모여 얼차려를 받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내 시선이 아닌 제3자의 눈에 비춰졌을 때, 이 상황은 그저 ‘정신개조’라는 말 같지도 않은 명분을 뒤집어 씌워 놓은 일종의 폭력일 뿐이다.

 

실소라도 터뜨릴 수 있었으면

그래서 뭐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떨자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무서운 생각이 슬쩍 지나간다. 돌이켜봤을 때 ‘알고 보니 그게 참 어처구니 없던 일이더라’ 할 게 아니라 그 당시 그 현장에서 ‘이거 좀 아닌데’ 싶은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그게 도저히 안 돼버리는 게 되려 무섭다는 거다.

여덟살의 나, 그니까 교관 앞에서 실소를 터뜨렸다가 열외를 당했던 당시의 나는 적어도 ‘이 상황 좀 웃긴데’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치만 ‘웃었다’는 그 이유로 따로 벌을 받으면서 체득해 버린걸까. 언제부턴가 그런 비슷한 상황들을 겪으면서도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왜 이걸 해야하지’라는 생각은 들지가 않는다. 사실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생각은커녕, ‘화’라는 감정조차 올라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짜증’, ‘아 빨리 끝나라’라는 체념이 그 자리를 대신해버린다.

 

어후...교관 옵하들 돌이켜 생각하면 완전 복수하고 싶어요.

어후…돌이켜 생각하면 교관옵하들 완전 복수하고 싶어요.

“제가 왜 얼차려 받아야되는지 모르겠는데요”

어쩌면  “여러분 놀러 온 거 아닙니다”라는 그들의 말에 “놀러온 건 아닌데 얼차려 받으러 온 것도 아닙니다~”라고 할 수도 있었고 “저는 딱 세 번만 참습니다”라는 말에는 “어차피 폭발하실테니 미리 포기하고 들어가 쉬시죠~”라고도 할 수 있는 노릇이었다. 왜 화가 나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문제가 있는 쪽은 내가 아니라 분명 그 사람들이었다.

그치만 수도 없이 반복되는 상황 앞에서 이런 ‘당연한’ 생각들은 애초에 머릿속에서 피어오를 힘조차 잃었다. “저들은 어디 가서 화가 나서 온 걸까”라는 박건형의 멘트에 방청객 사이에서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런 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데 다들 공감했기 때문일거다.

난 지금 스물네 살의 여대생이다. 어디 가서 군대 얘기 괜히 함부로 꺼냈다가는 딱 욕 먹기 좋은 스펙이다. 그치만, 역시 이건 말해야겠다 싶었다. 진짜 ‘군대’는 다녀오지 않았지만 나는 ‘군대 프레임’을 정확히 갖다 씌운 현장을 분명히 경험했고 그 기억은 생각보다 강한 인상으로 내게 각인돼있다.

어쩌다 발견한 내 여덟살 무렵의 그림일기 안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수련회의 기억 안에, 인터넷에서 발견한 어느 기업의 신입사원 교육 현장의 사진 속에, 교묘하게 그 가면만 바꾸어 쓴 채 군대는 계속 모습을 드러낸다. 매일 같이 터져나오는 ‘군 가혹행위’ 보도를 보면서, 또 그 때문에 폐지하자는 말까지 나온 <진짜사나이>를 보면서, 군대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