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혹은 때 이른 불볕 더위가 기승이다. 이제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 오고 낮에 잠깐 거리에 나갔다가는 익어서 죽을 것 같다. 이런 불볕 더위를 마주한 <왕좌의 게임> 덕후는 자연스레… 도르네를 떠올렸다! 시즌 4의 오베린 마르텔과 엘리리아 샌드, 시즌 5의 샌드 스네이크 자매들(*엘리리아 샌드, 그리고 샌드 스네이크들은 모두 엄밀히 말해 성이 ‘마르텔’은 아니지만 서자를 크게 차별하지 않는 도르네의 특성상 거의 마르텔이나 다름없다), 도란 마르텔 등과 더불어 앞으로도 주요 등장인물들이 주르륵 배출될 예정인 도르네는 앞으로 <왕좌의 게임>의 이야기가 전개될 주요한 지역이자 세력 중 하나다.

씨도 날씨인 데다가 최근 제이미 라니스터까지 도르네에 상륙하면서 이야기에서 도르네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날로 커지는 고로, 오늘은 태양과 사막의 땅 도르네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어디에 있냐면

wheresdorne도르네는 칠왕국이 위치한 웨스테로스 대륙의 남쪽 끝에 있다. 칠왕국(seven kingdoms)에 포함되긴 하는데, 다른 지역들보다 유독 지역색이 강하고 거의 독립 왕국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수도인 킹스랜딩과 지리적으로 좀 멀다. 도르네 해를 거쳐 배를 타고 가면 금세 가긴 하는데, 다들 알지 않나. <왕좌의 게임>의 시대적 배경의 해상 교통이란 게 뭐 ‘금세’라고 해도 몇 주, 혹은 몇 달(…)이다. 육상으로 가면 중간에 거대한 산맥을 하나 넘어야 하는 데다가 도시에 닿기 전까지 너른 사막이 펼쳐져 있다. 그러니까 물리력을 행사하기 힘든 지역일 수 밖에.

하렌할의 모습. 녹아버린 석벽이 그대로라 기괴하기 짝이 없다.

하렌할의 모습. 녹아버린 석벽이 그대로라 기괴하기 짝이 없다.

그 때문에 칠왕국을 타르게리엔 가문이 통일했을 100년 전에도 도르네만은 정복하지 못했었다. 다른 지역이 다 불타고 영주들의 성이 녹아 없어지고(저주받은 성이라고 불리는 하렌할을 떠올려보자. 후에 따로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여튼 이 성은 타르게리엔 가문의 용들이 통째로 녹여 버렸고 영주도 함께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그 이후 하렌할의 영주 타이틀을 수여받거나 하렌할을 점령한 사람들은 다 영 좋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된다. 여기엔 티윈 라니스터도 포함.) 들판이 깽판(…)이 됐는데 도르네만은 그래도 잘 버텼다.

정복자 아에곤 시절에 다른 지역들은 개기다가 한 번씩 가문의 영주 혹은 장자 혹은 둘 다 혹은 여기에 전가족은 옵션으로 몰살당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도르네는 독립을 지켜냈다. 지리적인 특성 덕분이긴 하지만 워낙 이 지역 사람들이 드세고 무예에 뛰어나기도 해서다. 도르네는 아에곤에 의해서 칠왕국에 편입되지 않고 후에 왕가와의 결혼을 통해서 칠왕국에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그럴 수 있었던 유일한 지역이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건 당연하다.

수도는 선스피어. 엄… 이름이 살짝 유치한 감이 없잖아 있다. 도르네를 지배하는 마르텔 가문의 문장이 해를 꿰뚫는 창이다. (…)

Unbowed, unbent, unbroken

MartellCoA도르네의 영주는 마르텔 가문이다. 그렇다. 삼국지로 치면 여포급의 무력인 드래곤 세 마리의 공세도 이겨낸 지역의 영주 가문답게 가언은 ‘unbowed, unbent, unbroken’. 고개 숙이지도, 부러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고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다니 흠 좀 멋있다. 마르텔 가문의 주요 인물로는 시즌 4의 머리끄댕이를 쥐고 흔든 ‘붉은 독사’ 오베린 마르텔 왕자(…ㅠㅠ)와 그의 정부 앨리리아 샌드가 있고, 시즌 5에서 처음 전면에 등장한 도르네의 통치자 도란 마르텔, 오베린의 세 딸들과 도란의 경호대장 등이 있다.

좀 많다. 그런데 앞으로도 많아질 예정이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킹스랜딩의 라니스터 및 타르게리엔 가문에 쌓이고 있는 분노의 수위가 이제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일단, 현재 도르네를 통치하고 있는 도란 마르텔의 누이인 엘리아 마르텔이 관례에 따라서 칠왕국의 왕과 결혼했는데 하필 그게 라에가르고 아에리스가 반역 크리를 맞는 탓에 엘리아 마르텔이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정확히 말하면 마운틴이 그녀의 자식들을 보는 앞에서 모두 죽이고 (…) 아이들의 피가 낭자한 그레이트 홀에서 그녀를 강간하고 죽였다.  이 때문에 오베린 마르텔이 시즌 4에서 티리온 라니스터의 투사로 나서 마운틴과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을 정도다.

독사찡....ㅠㅠ

독사찡….ㅠㅠ

그런데 이미 20여년 전 엘리아 마르텔의 참혹한 죽음 역시 여전히 도르네에서 회자되고 있는 판에, 그 누이의 복수를 위해 칠왕국까지 먼 길을 떠났던 오베린도 시즌 4에서 참혹하게 죽어버렸다. 이미 활활 타고 있는 불에다가 휘발유를 트럭 채로 가져다 부은 셈이다. 이 때문에 오베린의 딸들은 당장에라도 군대를 일으켜 칠왕국으로 쳐들어가고 싶어 한다. 더불어 오베린의 죽음을 눈앞에서 봐 버린 앨리리아 샌드는 원작에서는 그 후 스르륵 등장 비중이 줄어 들지만 드라마에서는 꾸준한 조연의 자리를 획득, 오베린의 죽음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며 도르네 땅에 볼모로 와 있는 마르셀라 바라테온 공주를 매 초마다 (…) 죽이고 싶어 한다. (ex. “오베린은 죽었는데 지금 저것은 내 눈앞에서 웃고 떠드는구나. 저 년의 신체를 하나씩 절단내서 세르세이에게 보내고 싶어.” <-실제 드라마의 대사다.)

도란 마르텔. 책에서 묘사된 것보다는 좀 더 잘생기고 좀 더 건강하게(...) 나온다.

도란 마르텔. 책에서 묘사된 것보다는 좀 더 잘생기고 좀 더 건강하게(…) 나온다.

하지만, 분노에 불타고 있는 앨리리아 및 샌드 스네이크와는 달리 실제 통치자인 도란 마르텔은 여전히 침착하다. (그가 침착한 이유는 그래도 있긴 하다. 다른 계획이 있어서다. 그의 복안은 아직 드라마에서는 공개되진 않았지만 책에서는 이미 공개됐다. 그래도 이 글은 드라마가 기준이므로,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그는 자신의 동생과 누이인 오베린, 엘리아 마르텔의 죽음에 대해서 여전히 라니스터 및 칠왕국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샌드 스네이크를 중심으로 반란의 조짐까지 보이는 중이다.

즉, 앞으로 어떤 방향이든 유혈이 낭자해 질 것은 뻔하고 그 중심에 마르텔 가문이 서 있다. 게다가 마르텔 가문은 다른 명망깊은 가문들에 비해 유독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많다. 이를테면, 스타크 사람들이라면 ‘스타크 사람들’이라는 하나의 덩어리와 비슷한 성격/외모 등으로 묶일 수 있지만, 마르텔 가문은 다혈질(…)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친척들끼리 성격도 닮지 않았고, 관심사도 다르고, 잘 하고 못 하는 일도 다르다. 피칠갑에 매력적인 캐릭터의 향연이라, 당연히 HBO의 총애를 받을 만 하다. <왕좌의 게임> 시즌 전반부는 스타크, 그리고 라니스터가 이끌었다면 후반부엔 마르텔과 티렐이다.

날씨만큼이나 강렬한 문화적 풍토

다른 칠왕국의 지역들이 비교적 비슷한 관습과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도르네는 도르네만의 문화와 사고 방식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고 협해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에소스의 사람들만큼 다른 건 아니지만.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도르네는 스페인 지역에서 영감을 받은 지역이다. 그래서 딱 그만큼의 차이다. 보통의 웨스테로스와 도르네의 차이는 중세 영국의 차이와 중세 스페인의 차이로 이해하자. 도르네인들은 이슬람식에 훨씬 가까운 옷을 입고, 도르네 아이들은 창과 아라크, 기마술을 가장 먼저 배우고, 도르네 전사들은 강철 갑옷보다는 천 갑옷 혹은 가죽 갑옷만을 걸친다.

도르네는 여성을 대하는 방식도 웨스테로스의 다른 지역과 많이 다르다. 정부와 본처의 구분이 크게 없고, 정부도 본처만큼 큰 권력을 가지고 떵떵거릴 수 있으며 (오베린 왕자의 정부인 앨리리아 샌드는 선스피어 궁전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여자들도 성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처와 정부의 구분이 없으니 서자에 대한 차별도 훨씬 덜하다.

또,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더라도 도르네의 여성들은 개별적인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보통 웨스테로스의 여성들은 좋은 아내가 되도록 교육을 받고, 아내 외의 다른 ‘일’이나 ‘직업’, 아내가 되는 것 외에 필요한 ‘기술’들은 권장받지도, 교육받지도 못한다. 아리아 스타크처럼 말이다.  하지만 만약 아리아 스타크가 도르네에서 태어났다면 이미 10대에 훌륭한 전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원작의 샌드 스네이크는 총 여덟 명이지만 시즌 5에선 이 중 세 명만 등장한다.

원작의 샌드 스네이크는 총 여덟 명이지만 시즌 5에선 이 중 세 명만 등장한다.

도르네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아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며, 네임드 여전사들도 많다. 후에 등장할 에소스의 몇몇 네임드 용병단에도 도르네 출신 여용병들이 종종 보일 뿐더러, 오베린의 딸들인 샌드 스네이크들은 아예 도르네 군대의 지휘관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자들이 리더로 나서고, 정치력이나 무력을 뽐내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똑같이 무력과 지력을 갖추고 훌륭한 리더로 떠오르고 있지만 가문 및 기수들 내부에서도 반발, 경멸이 심한 아샤 그레이조이와는 또 다른 경우다. 이쯤 되면 대륙이 그냥 붙어 있어서 그렇지, 도르네는 사실상 웨스테로스와는 별개의 ‘대륙’이자 또 하나의 세상이나 다름없다.

권모술수에 지친 덕들에게 내리쬐는 한 줄기 빛

<왕좌의 게임>은 어디까지나 철왕좌를 놓고 다투는 패권 싸움이 큰 줄거리인 만큼 권모술수와 야합, 정치 싸움 투성이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쓰는 온갖 비열한 수, 위대한 실패, 추악한 이득은 팬들을 흥분시킨다. 하지만 때로는 킹스랜딩을 둘러싼 처절한 머리 싸움이 지칠 때가 있다. 그들은 멋지고 아름답지만 교활하고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서다. 반면 도르네의 사람들, 그리고 도르네라는 땅은 솔직하다. 그건 도르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