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까진 굉장히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종교에 많이 매달렸다. 가장 먼저 남자를 생각한게 초등학생 땐데, 이것이 ‘다른’, 아니 혹시 ‘틀린’게 아닌가 하는 고민 때문에 아군으로서의 신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교회가 그에 대해 확실한 답을 내려 줄 수 있는 곳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나라는 동성혼이 가까운 시일 내로 이뤄질 것 같기도 하면서 내가 결혼적령기를 벗어나기 전에는 절대 안 될 것 같다. 내 또래 사이에서는 동성혼에 대해서 닫혀 있는 시각이 적고,  그런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잘못되었다’는 인식 역시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동성혼에 대해 반발하는 포비아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도 하지만, 아무튼 전반적으로는 호의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 점거 때 한쪽에서 계속 찬송가를 부르고 있던 그분들의 모습을 잊기도 어렵고, 기독교인과 단체의 표심 때문에 동성애자의 권리를 지지하던 정치인들이 손바닥 뒤집듯 뒤로 돌던 모습 역시 잊기 어렵다. 과연 이 사회에서 정말 동성애자가 ‘치유가능한 대상’이 아니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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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교회는 나의 가장 든든한 아군 중 하나였지만 정체성을 자각하기 시작할 때쯤 그것은 굉장히 위태로운 사상누각이 되어버렸다. 정체성을 자각한 후부터 나는 더 이상 그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를 기독교인으로 정의한다. 교회로부터는 탈출했지만, 기독교적인 가치를 위해 다시 교회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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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쪽의 교회에 다녔다. 그리고 여기서 내부적으로 파가 또 나뉜다. 통합, 합동, 백석, 고신, 개혁… 장로교 (분명 이름엔 장로회라 써있는데 그냥 장로교라고들 부른다) 등등 다양한 종파 자체가 이미 보수적인데 나는 그 파들 중에서도 훨씬 보수적인 파의 교회에 다녔다. 내가 다닌 교회의 목사들과 사역자들, 신도들은 성경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전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오류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번역하는 과정마저도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신 번역이라 오류는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이 분들이 레위기 18:22 (“너는 여자와 동침함과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라니.”) 를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고 뭐라고 가르칠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초등부는 아예 예배를 따로 보았지만 중등부부터는 일반 예배를 같이 보았다. 13세도 안 된 애기들에게는 고작해봤자 4대 복음서나 사사기, 모세 5경의 이야기를 어떤 스토리와 함께 가르쳤다면 (기적이 많이 일어나는 부분들은 애들에게 가르치긴 재밌을 테니까) 일반 예배에서 담임목사는 당연히 더 교리적인 것을 가르쳤는데, 그 때 저 성경구절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목사는 그의 청중들에게 ‘동성애는 사탄의 꼬임에 타락하는 것이고 더러운 행동이므로 동성애자들은 회개하고 ‘정상인’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런 설교는 잊어버릴 법하면 등장했고, 어떤 때는 목사가 당시를 ‘매우 문란한 세계’라고 생각했는지 계속 간통, 동성애 같은 성경적인 성의 불량한 사용을 하지 말라며 몇 주 연속으로 설교한 적도 있었다. 몇 번은 그래서 일부러 다른 친구의 교회를 따라갔다. (내가 댕기던 교회는 놀랍게도 정말 드럽게 보수적인 교회여서 그런 다음주에는 선생님이 항상 어느 교회인지 물어보고 ‘웬만하면’ 다른 가르침을 하는 곳일 수 있으니 가지 말라고 말했다.) 근데 다른 곳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고 ‘한국엔 ㅎㅅㅎ 없구나 ㅎㅅㅎ 아니면 내가 정말 찾기 힘든 곳에야 있거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커밍인하기엔 교회통념상 문제가 있지 않았나

커밍아웃은 남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스스로 가리키는 것으로 Coming-in이라는 말이 있다. 쓰는 사람을 보지 못한 것으로 보아 만들어진 후 죽은 말이 되었거나, 아니면 어떤 목적 (가령 학술이나 운동) 을 가진 사람들만 사용하거나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쩜 내가 모르는 데에선 활발히 쓰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의 커밍인과정은 저런 교회 탓에 굉장히 힘들었다.

중학교 3년 내내 적어도 계절에 한 번 이상은 호모포빅한 내용의 설교를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집에 돌아가선 동성을 성적 지향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나와, 신이 바라는 내 모습이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으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의 정체성이 정말 ‘치료가능’하다고 여겨서 진심으로 기도하기도 했다. 난 도저히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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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를 떠나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며 고등학교 기간 동안 스스로가 정상이 아니라고 느꼈다. 고등학교 3년과 대학교 1학년은 내게 있어 나를 부정하면서 나를 찾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게이인데 이성애자인 척 해야 했으니까. 고등학교 땐 나한테 고백할 것 같은 낌새를 보이는 여자애가 있는 걸 알자 도망다녔고 대학교 1학년 때는 스무 살 먹고 다시 한 번 여자애를 어떻게든 사귀어 보면 내가 달라지지 않을까 여겼다. 하지만 그 시간에 차라리 섹스를 한 번 더 하는 게 백만 배는 행복했겠다. 결국 나는 대학교 일학년과 이학년 사이에 나를 받아들였지만,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이에 대해선 다음번에 다시 쓰고 싶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기독교인

아는 선배는 수업시간에 당당히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다. 성에 있어 중요한 담론을 나누는 수업에서 토론 도중 자신이 커밍아웃을 할 것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결과 같은 수업 내에서 자신을 멀리하는 사람이 느껴졌다고 해서 굉장히 안타까웠다. 이 선배는 교내 기독교 동아리 내에서도 커밍아웃을 했다. 그 전까지는 그에게 몇 가지 일이 주어져 있었지만 기독교 동아리 내의 학생들이 그 선배가 일을 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전보다 자신의 위치가 많이 축소되었고, 주변부로 몰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맨 처음 일반예배에서 받은 충격을 10년이 지나도록 간직한 채, 그런 선배의 일화를 보고 있으면서도, 기독교인으로서의 나를 버리지 않았다. 처음엔 양자택일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버리는 데에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갖는 어떤 독특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 분의 도덕에 미치지 못할 거라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있지만, 동시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면 동성애자와 빈민의 곁에 있어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늘었기에. 신앙과 경전이란 결국 해석하는 사람에 있어서 그 입장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아직도 나를 매달리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것과 무관하게 나는 (이전에 다니던 것과 유사할 보수적인) 교회는 도저히 나갈 수가 없게 됐다. 선배의 이야기에서 본, 내가 직접 겪어 본 교회는 호모포비아의 산이고 그것은 이제까지 내가 게이로서 살아오며 본, 교회 바깥에서의 삶에서도 표현이 된다. 올해의 퍼레이드는 어디서 열릴 수 있을까? 그들은 여전히 내가 나서지 못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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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퍼레이드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보이는 모든 사람을 향해 (축복이거나 기도인 척을 하는)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그들은 이빨을 날카롭게 세운 호랑이처럼 내가 게이란 것을 알게 되면 물어뜯을 준비를 완료하고 있다.

나는 호랑이굴로 다시 들어가진 못하겠다. 진짜 애매하고 뒷맛 안 좋은 마무리인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이상 다르게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깊게 믿었던 신앙의 문제는 가볍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정체성 역시 버릴 수 없다면, 결국 나를 쏘아대는 호모포빅의 창만 내 눈에 가시화되지 않으면 된다. 불쾌하지만, 가장 가능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