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0602239_0

“네 소원 들어줄게 잘 들어.”

로 시작된 졸리브이와 타이미의 디스전은 2년 전 졸리브이가 ‘Bad Bitches’에서 타이미를 디스하면서 시작됐다.

이 곡은 유독 ‘성’에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 ‘싼년’이나 ‘창녀’ 같은 단어를 쓰는 것에 남자와 여자가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곡의 가사를 살펴보자면, ‘내가 남자면 이미 다 따먹고도 남았지’, 심지어 홍등가 언니들은 밥값이라도 한다는 식으로 타이미를 ‘창녀’보다 못한 취급한다. 여기서 ‘오빠 나 해도 돼?’라는 곡은 타이미를 까기 위한 근거로 잘 활용됐다.

밝히는 여자=싼 여자

‘오빠 나 해도 돼?’

이 가사는 여성의 성욕을 담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는 표현이 아닌 수동적으로 ‘해도 돼?’냐며 남자로 부터의 허락을 구하는 문장이다. 이 여성 화자는 본인의 성욕을 도발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내 성욕은 네가 허락하면 풀게.’ 라고 말한다.

‘여자도 하고 싶을 때가 있어?’

친한 남자 친구들에게 많이 들었던 고전질문이다. 이런 질문에 나는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왜? 아무리 친구라도, 그 남자애가 나를 ‘밝히는 여자’로 생각할까봐 두려웠으니까.

‘밝히는 남자’하면 ‘정력이 좋구나’, ‘상남자네’, ‘남자라면 당연하지’ 등등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반면 여성의 ‘성욕’은 당연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 남자나 여자나 ‘성’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자’라는 신분은 더더욱 본인의 욕구에 대해 자유롭게 발화하지 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 욕구마저 거세 당하도록 만든다.

‘정숙함’, ‘순결함’. 남자에게 붙지 않는 이 수식어들은 ‘정숙한 여자’와 ‘순결한 여자’를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고 그 아름다움과 반대되는 이들을 ‘추한 것, 아름답지 못한 것 으로 만들어 버린다.

정숙과 순결의 기본은 ‘성’ 혹은 ‘성관계’를 멀리하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성’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난 하고 싶단 생각 별로 안 드는데’, ‘난 남자친구랑 잘 생각 없어’ 라며 자신의 본능이 없다고 표현한다. ‘성’에 있어서 여성이 ‘발화를 꺼리는 것’과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여성스러운 것이라 여겨지지만, ‘성’ 대한 발화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여성스럽지 못한 것’으로, 혹은 ‘창녀같은 것’으로 표현되기까지 한다.

자신의 몸을 무기 삼는 여자들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날 사랑한다면, 나를 지켜줘야지’라는 말들로 본인의 억압된 성관념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까지 한다.

문화재나 지켜

그만 좀 지켜줘 제발…

‘지켜주긴 뭘 지켜줘, 문화재야?’ 문소리씨의 발언이 떠오른다. ‘정숙’과 ‘순결’이라는 단어로 많은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성욕’을 억압 받는 폭력 아닌 폭력을 경험하고 있으면서 그 피해를 또 다시 타인에게 폭력으로 되돌리는 현실에 대한 시원한 일침이다. 이렇게  ‘지켜달라’며 본인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여자들이 많다 보니, ‘지켜주는 남자’가 멋있는(혹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되고 이를 따르지 않는 남자들은 ‘나쁜놈’이 되기도 한다.

이거 여자도 마찬가지다..?

이거 여자도 마찬가지다..?

그냥 좀 해라 좀

“섹스는 100일, 200일, 300일, (혹은 1년 2년 등등)이 지나면 할 거야.”

어릴 때부터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을 자주 봤다.  날짜(특정 기념일)를 정해두고 상대와의 관계를 미루는 여자들. 이 생각의 기저에는 일찍하면 할수록 상대가 나를 쉽게(낮잡아, 싸게) 볼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 그들은 상대에게 비싼 여자가 되기 위해 제 성욕을 거세하고 음지로 묻어버리는 수고(?)를 감수하기도 한다.

그녀들이 무기로 삼고 있는 순결한 ‘여성성’은 다른 여자들에게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더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 관계를 최대한 미루고 미뤄 자신이 가진 순결한 ‘여성성’이 고귀해지도록 하고, 그것으로 남자를 안달나게 만들어 연애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도 한다. ‘몸과 시간’을 무기로 한 그들은 다른 여자들을 ‘싼 여자’로 구분하여 자신을 ‘비싼 여자’화 시키곤 한다.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는 게 재밌었다. 게임 경험치 쌓듯 몇 퍼센트 완료되면 ‘너랑 자줄게’. 섹스가 무슨 퀘스트 완료하면 주는 보상도 아니고 이 순간 마음이 동해서 너랑 자겠다는 게 아니라, 사귄 지 몇 일 째 되는 날(기념일)에 하겠다니. 남자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물약 써 가면서 경험치 쌓는 기분이 왜 안 들겠나. (기념일에 레벨업? 단계별로 자신의 몸을 ‘선물’로 ‘허락’하나보다.)

고..고맙다

고..고맙다

자신의 몸을 무기로 얻은 사랑의 기간. 그 기간이 그녀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까?

나라면 굉장히 유쾌하지 않을 거 같다. 오히려, 이 남자의 사랑에 ‘나랑 자고 말겠다’는 목적이 생겨, 그 남자가 어떤 애정 표현을 해도 ‘나랑 자려고’하는 수작으로 느껴질 것 같다. 또 이 새끼가 레벨업하고 나면 나를 떠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설 것 같다.

정신 좀 차려보자

왜 자기의 진짜 모습으로 상대에게 사랑 받으려 하지 않고, 고작 몸으로 이뤄지는 ‘관계’ 하나에 자기의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가. ‘관계를 늦게 하는 것’ 이외에도 본인이 사랑 받을 수 있는 매력은 충분할텐데, 왜 정숙함과 순결함을 무기인양 휘두르는지.

‘정숙’의 그늘 아래 ‘지켜줘’를 외치고, ‘성’을 무기로 남자들을 안달 나게 하는 여자들, 사실은 그녀들도 피해자다. 사회 분위기가 말하는 올바름에 제대로 적응한 거니까. 또 억압된 성관념으로 나의 몸을 무기 삼다 보면, ‘섹스’는 유쾌하지 않다. ‘섹스’가 유쾌하지 않다 보니, ‘난 하기 싫어.’, ‘안 하고 싶다’ 가 자연스러워 지고, 관계를 원하는 남자에게 ‘너가 정 그렇게 원한다면 들어주지 뭐,’하는 식의 보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 18...

아.. 18…

섹스는 ‘쾌락’만을 위한 것이 아니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너와 나의 진짜 모습.

지금 이 순간, 혼자 보아오던 나의 속살을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만 보이고 있는 시간.

나를 규정해오던 사회의 수많은 굴레 속에서의 자아가 아닌, 너와 나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자아.

서로의 살갗을 비비면서 눈빛으로 손짓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

너에게만 보이는 애교. 찰나이지만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게 되는, 키스하는 순간의 눈 마주침.

긴장으로 떨리는 손을 네 가슴에 얹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콧노래.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너를 사랑한다 말하는 서로의 몸짓.

나는 그랬던 거 같다.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면서 사랑하게 되는 시간. 그 사람의 눈빛에서 ‘아,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생각하고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이 만큼이야.’ 하며 내 마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시간.

서로에게만 허락된 특권을 행사하겠다는 ‘하고 싶다’라는 말이 왜 싸 보이는 것인가.

내 엉덩이 네 꼬추에 비비고 싶어

싸 보이지 않기 위해 ‘정숙함’을 추구하게 된 여자들. 나아가 정숙함을 무기 삼는 여자들. 모두 사회로부터 억압 받은 폭력의 피해자들이다. 여성들에게 ‘정숙함’을 강요하는 폭력. 그 폭력을 다시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되갚게 되는 이 사이클을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언제까지 ‘본능’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길 것인지, 언제까지 자신이 받고 있는 폭력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인지 말이다.

twen

남자친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당황한 표정.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표정 말고. 이제는 좀 당당히 말해보자. 한 번 말이라도 해보자. 근데 남자가 당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면, 버려 그냥. 그 새끼는 어차피 당신을 영원히 고통 받게 할 존재니까.

자, 이제 답을 찾아보시오.

  1. 하고싶어
  2. 내가 할래
  3. (오빠가 계속하기) 힘들지, 내가 올라갈까?
  4. 야, 누워
  5. 내 엉덩이 네 꼬추에 비비고 싶어
  6. 우리 사랑하자.

위의 보기 중에는 ‘여성상위를 하고싶다’는 표현도 포함돼 있다. 선택은 취향대로.

#내얘기

섹스칼럼을 쓰는 나 또한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기에는 ‘여자’라는 신분이 많이 염려가 됐다. 혹여, ‘나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생기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내가 밝히는 여자로 인식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 했었’었’다.

“성에 대해 솔직해지자”라고 말하면서, 나를 감추면서 말하기는 위선이니까. 당당해지고 싶었다. 나의 ‘발화’에 대해 말이다.

이제는 오히려 발화함으로써 편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우습게(싸게)보는 새끼들, ‘밝히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싸게’보는 새끼들은 내가 이런 글을 얼굴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씀으로써, ‘쳐 내기’ 혹은 ‘알아서 꺼지기’가 가능해 졌으니 말이다.

‘말하기’는 가끔 좋은 방어벽이 된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또라이들로 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막’. 그러니 맘껏 외쳐보자. ‘하고 싶어!’라고 당당히!

(편집자 주 :  적극적으로 해야 제대로 된 오르가즘 느낀다 너~   (╭☞͡° ͜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