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덥다. 비도 온다. 꿉꿉하다. 아침부터 신발에 흙탕물이 튀었다. 기분이 더럽다. 혼자 꿍얼꿍얼 짜증을 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물어본다.

“너 그날이냐?”

생리, 다른 말로는 월경, 멘스, period 등이 있다. 생리는 감사한 인체의 신비로움(은 풔킹 마더네이쳐)으로 약 한 달 전후에 한 번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린 댓가로 달게(…) 받는 벌이다. 풔킹 마더네이쳐는 불특정 다수에게 “저출산 시대에 왜 애를 안 낳고 자궁을 놀려두냐”, 마치 비난하듯 생리통도 덤으로 주고 간다. 거기다 생리 시기에 많은 여성들은 개 같은 호르몬 덕분에 폭식을 하거나 우울해지거나 자궁을 누가 칼로 쑤시는 것처럼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잠이 쏟아지거나 등등의 신체 이상 변화를 겪는다. 많은 여성들이 겪고, 일상적이고, 특별하지 않고, 사실은 마치 습관처럼 매우 익숙한 것. 아무튼 여기까진 익히 알려져 있는 여성과 생리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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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생리를 둘러싸고 찝찝한 몇 가지 것들이 있다. 이상하다. 아무도 어릴 때부터 직접적으로 생리를 숨겨야 한다고 부모나 학교로부터 배운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생리는 항상 무언가 우리도 모르게 숨겨야 하는 것이 되었다. 비교적 매우 사적인 공간, 가령 친밀한 여성과 여성(동성) 사이 혹은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의 생리는 그다지 말하기에 큰 거리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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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해하기 쉽도록 하나의 스펙트럼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저 왼쪽 끝으로 갈수록 사적인 영역, 저 오른쪽 끝으로 갈수록 공적인 영역이라고 보자*. 왼쪽에 가까울수록 생리는 이야기되기 쉽다. 그러나 스펙트럼 상에서 오른쪽, 공적영역으로 조금만 기울어도 더 이상 생리는 공론화 되거나 직접 발화되기 난감한 주제가 된다. (*사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올바른지 모르겠으나 편의상 쓰도록 하겠다) 종종 생리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도 오고 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남자친구로서 혹은 가족으로서 궁금증 해소나 배려차원에 그치는 것이다.

이야기 하나

일본 오사카에서 배낭 여행 했을 때다. 바뀐 환경 때문인지, 한창 4월의 아름다운 니죠성을 구경하고 있던 도중 무언가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느낌이 왔다. “X발! X발!!!!!!”을 연달아 외치며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예정보다 훨씬 빨리 방문하신 생리(새끼) 때문에 근처를 급히 둘러보았지만 편의점도 자판기도 무엇 하나 생리에 관련된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늘 그랬듯 늘 준비성 없는 나를 욕하다 니죠성 내부 군데 군데 계시던 관리소 녀성분을 마주쳤다. “아노 스미마셍…?” 다행히도 그분은 친절하셨고! 생리대를 가지고 계셨고! 가져다 주신댔고! 관리소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몇 분 뒤 갑자기 관리소의 문을 열더니 나를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뭔가 해서 들어갔더니 엄청나게 낮은 소리로, 바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파우치에서 생리대를 꺼내, 내 손에 황급히 쥐어주시며, 웃어주셨다. “아.. 아리가또..”

이야기 둘

배가 아프다. 풔킹 마더네이쳐 때문에 배가 또 아프기 시작한다. 과방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 친구들이 걱정해준다. 그때 뒤늦게 들어온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쟤 왜 저래?”. 친구들, 다른 (특히 남자사람)친구들을 의식하며 대답한다, “아 그냥 좀 어디가 아프대.”

“어디가 아픈데?”

“(눈치 없이 굴지마 좀) 아 그냥 좀 아프대” 혹은 “(니 귀에만 들릴 듯) 그날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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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한다고 왜 말을 못하니..

이야기 셋

생리대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남자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탐폰을 몇 개 주섬주섬 주워 카운터에 올려놨다. 알바 노동자는 계산을 하더니 갑자기 까만 봉투를 꺼내 탐폰을 감쪽같이 담아준다. 편의점에서 원래 쓰는 불투명 흰 봉투가 아니다. 어느 편의점과 어느 슈퍼를 가도 열에 여덟 정도는 알아서 까만 봉투를 꺼내 생리대와 탐폰을 넣어준다. 여성 알바 노동자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두 수줍고 나를 위한 배려 넘치는 표정으로 까만 봉투를 건네준다.

이런 배려 또 없습니다..☆

이런 배려 또 없습니다..☆

이야기 넷

까페에 앉아 있던 친구 하나가 아까부터 배가 어째 아프다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분명 자궁과 속옷에 무언가 일이 벌어진게 틀림없다. 사색이 된 표정으로 친구는 옆의 다른 친구의 귀에 대고 “생리대 좀!”, 위스퍼한다. 다른 친구는 조용히 가방을 뒤지더니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손에 쥐어준다. 생리대를 받은 친구는 생리대를 주머니에 보이지 않게 잘 쑤셔 넣더니 화장실로 사라진다.

나 생리해

생리라는 단어는 흔히 마법, 그날 등으로 치환되며 가끔 생리를 하는 것 자체가 앞의 이야기들처럼 의도적으로 숨겨지기도 한다. 아 물론, 그들의 호의와 선함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 따뜻한 배려(?)도 고맙다. 그러나 보통 우리가 쉽게 드러내지 않는 단어나 이야기들은, 대부분 혐오스럽거나 더럽거나 민망하거나 문제가 있거나 별로이거나(…) 뭐 그런저런 부정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익숙한, 또 불결하지 않고 더럽지 않고 문제가 아닌 생리가 어떤 공간에서는 발화되기 난감하게 여겨진다는 것. 왜 항상 생리라는 단어를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 뱉어내는 것이 어렵게 된 걸까. 왜 항상 누가 볼까 생리대를 주머니에 혹은 파우치에 꼭꼭 숨겨야 하는 걸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생리’라는 것이 ‘은밀하고 부끄러운 지극히 사적인 여성 개인만의 것’ 정도로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남성의 ‘것’들은 대부분 사회적이거나 중요한 공적 가치로 환산된다. 반면 여성의 ‘것’들은 비교적 사적이고 덜 중요한 것으로 치부돼 사회에서 혹은 공적인 영역에서 종종 지워진다. 생리 외의 흔한 예를 들자면, 남성의 자위와 여성의 자위/남성의 성욕과 여성의 성욕을 생각하면 쉽겠다. 여성의 자위나 성욕은 으레 부끄러운 것, 숨겨야 할 것으로 그려져 공론화가 잘 되지 않는 편이고 종종 여성을 무성욕의 존재로 놓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에서도 이런 현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는 생리나 자위, 성욕 같은 생물학적 외의 것에도 해당된다.

물론 생리와 연결된 여성의 ‘것’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가령 ‘출산’의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하게 환원된다. 그러나 출산은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까닭에 공론화될 필요가 있는 주제가 된 것이다. 그 외 (임신이 이뤄지지 않은 후의 현상인) 생리나 초경 같은 의제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적인 몫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대한민국만세!

대한민국만세!

이런 기제, 즉 ‘생리는 지극히 개인의 사적인 몫으로 공론화될 필요가 없다’를 모든 사람이 직접적으로 발화하지는 않는다. 사실 의식적으로 이 매커니즘을 사고하지도 않는다. 그저 무의식 중에 발현되는 것이다. 이 모습은 결국 생리가 사회적으로 공론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여성 개인이 감당해야 할 아주 원초적이고도 사적인 1차원적인 신체의 신비(?)일 뿐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여, 말한다.

지구 환경 파괴하는 쓸데없는 까만 봉지에 생리대를 담아주지 말고, 나의 생리를 부끄러워 하지 말고, 생리대를 숨기지 말고 화장실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