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중경삼림> – ‘왕가위 쇼크’

1994년 <펄프 픽션>이 서구권을 강타했다면, 1995년 한국에 분 바람은 왕가위와 <중경삼림>이었다. <펄프 픽션>이 기존의 서사 구조를 해체시키는 도발적인 의미의 90년대를 상징했다면 <중경삼림>은 홍콩의 중국 반환(1997년)과 1000년대 밀레니엄의 끝으로 달려가며 생긴 혼란 속에서 90년대를 상징하는 영화였다. 사람들의 불안함을 상징하듯이 피사체의 모습마저 불분명하게 만드는 극단적인 핸드헬드에 이은 스텝 프린팅과 잘못 알아듣기 쉬운 문학적 대사들에 감성을 자극하는 올드 팝까지! 눈이 어지럽고 귀가 어지럽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은 그 혼란과 불안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드림’과 함께.movie_image (8)

“57시간 후, 나는 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

“사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외에도 다시 생각해보면 오글거릴 수 있는 수많은 명대사를  남기며 <중경삼림>은 그 당시 한국의 문화인(요즘 말로 하면 힙스터 정도로 쓰면 될 것 같다)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저런 말들 하나쯤은 내뱉고 6,70년대 음악을 들으며 담배 한 개비 물고 다니는 게 90년대 가장 문화인적인 모습이었다. 그 당시 싸이월드가 있지 않았던 것이 그 당시 문화인들에게는 큰 축복이었다. 저 시대에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등의 SNS가 있었다면, “난… 가끔… 눈물을 흘린ㄷㅏ…”나 “뉴욕 헤럴드 트리뷴!” 이상의 놀라운 감성 흑역사들이 넘쳐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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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_고통받는_그_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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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 역시 왕가위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왕가위의 스타일을 모방한 영화들이 속출했다. 딱히 모방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특징적인 스타일인 핸드 헬드 기법, 한 배우만 느리게 움직이고 나머지는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스텝 프린팅 기법, 색감의 과도한 노출, 현학적인 대사들과 문학적이지만 당혹스러운 설정들, 올드 팝을 테마곡으로 사용하는 등의 방식 등이 수없이 벤치마킹되었다.

한국의 문화인들이 <펄프 픽션>보다 <중경삼림>에 더 열광한 것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펄프 픽션>은 미국의 1900~1950년까지 출간되던 싸구려 잡지인 펄프 매거진에 즐겨 실리던, 야하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소설의 감성을 따다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의 순진한(?) 관객들에게는 너무 잔인하고, 너무 자극적이고, 너무 감당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청소년 관람불가였다. 반면 <중경삼림>은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이 사랑과 이별에 관해 이야기하고, 한국문학을 닮은 감성적인 대사들이 자막으로 깔렸고, 게다가 기분 좋은 음악까지 틀어주니 접근하기에 보다 부드러웠던 것이다. <펄프 픽션>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폭력적이고 거친 걸 좋아해서 언젠가 피를 부를 것 같은 갱스터라도 된 느낌이지만 <중경삼림>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소 서정적이고 심지어 로맨틱하게까지 보일 수 있었으니 유통되는 수준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movie_image (5)

한국의 세기말 감성 역시 타란티노의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느낌보다는 왕가위의 불안감과 훨씬 더 밀접했는데, IMF 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에 더 공감을 하고 있었다. 이 불안감을 상징하는 노래가 <중경삼림> 양조위와 왕페이(당시 왕정문) 파트를 관통하는 노래이자 <중경삼림> 이후 30여 년 만에 다시 히트한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이었다. ‘California Dreaming’은 1966년에 빌보드 차트 4위를 기록했던 노래였는데 차가운 현실 속에서 이상향인 따뜻한 캘리포니아를 꿈꾼다는 내용이었다. 마치 90년대의 신세대 감독인 왕가위가 ‘너희가 60년대 팝을 아느냐’ 식으로 노래를 강제 히트시켰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과 장면 속으로 곡을 삽입시켰다. 1997년 장국영, 양조위 주연의 <해피 투게더>에서도 1960년대 팝인 터틀스의 ‘Happy Together’를 같은 방식으로 히트시켰을 정도로 왕가위 감독은 음악 선곡에 대해서도 감각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California Dreaming’과 ‘Happy Together’를 들으면 아, 들어본 노래라는 인식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같은 팝 전문 방송의 애청자가 아닌 이상 옛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지금 쓰면서도 약간 불안한데 지금의 20대들은 이 노래들을 모르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히트한 지도 어언 20년이 아닌가… 괜찮다. 무슨 노래인지 몰라도 된다. 시대는 변했고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다.

<중경삼림> 속 왕페이가 연기하는 페이라는 캐릭터는 샐러드 가게에서 일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이상에 대한 꿈을 찾는 캐릭터였다. 그런 페이를 샐러드 가게 사장은 몽유병에 걸렸다며 무시한다. 페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바로 ‘California Dreaming’이다. 그 외에도 크랜베리스의 1993년 데뷔 싱글인 ‘Dreams’를 왕페이 본인이 번안해 부른 ‘몽중인’ 역시 주요 테마곡으로 흘러나오는데 왕가위 감독은 이 두 곡으로 꿈을 좇는 페이라는 캐릭터를 정의한다. ‘California Dreaming’이 히트한 것처럼 왕페이가 부른 ‘몽중인’ 역시 영화의 인기를 힘입어 히트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몽중인’ 덕에 크랜베리스의 ‘Dreams’가 동반 히트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샐러드 가게 직원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짝사랑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행복한 상황을 앞두고 페이는 돌연 자취를 감춘다. 그녀가 사라진 것은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을까?

왕가위는 그 이후 <동사서독>, <타락천사>,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2000) 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시켜 가며 세계적인 감독으로서의 성취를 이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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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side <개같은 날의 오후>한국의 천재 감독, 장진

미국의 천재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와 홍콩의 천재 감독인 왕가위에게만 천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도 천재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감독이 있었는데 그게 장진이었다. 장진의 최근작들과 아시안게임 감독 경력 등 이미 성장해버릴 대로 성장해버려 천재라는 이름이 영 무색해졌지만 그래도 장진에게는 분명 천재로서 반짝반짝하던 시절이 있었다. 장진이 천재 감독으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1995년과는 약간 시간이 지난 이후, 1998년 <기막힌 사내들>과 1999년 <간첩 리철진>이었다. 그 연쇄는 2001년 <킬러들의 수다>로 이어지며 장진이라는 브랜드가 충무로에서 가장 반짝거리고 재기 발랄한 이름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커리어 앞에 이 영화가 있었다. <개같은 날의 오후> 각색에 참여한 것이 장진의 첫 번째 영화 커리어였다.

<개같은 날의 오후>는 굳이 장진의 이름을 꺼내지 않아도 매우 훌륭한 영화고, 어떻게 보면 문화사적 가치를 가진 영화라고도 부를 만하다. 90년대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이 얼마나 개같았는지,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얼마나 바뀌었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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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처증으로 아내를 폭행하는 남자, 거래처 사장이 온다며 대접을 한다고 휴일에까지 ‘아가씨’를 부르는 남자들. 더위를 핑계로 배달을 아내에게 떠넘기는 음식점 사장 남편, 바람을 피우고도 아무 죄책감 없이 오히려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등등. 이 개같은 남자들이 가득한, 이름도 연극적인 서민 아파트 앞에서 의처증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은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를 방관한다. 여자들은 이에 직접 그 남자를 떼어놓고 직접적인 무력으로 혼내준다. 이를 보고 있던 남편들은 오히려 그 남자를 돕고 여자들은 이에 분개해 그들 역시 혼내준다. 그러다 병원에 이송 중이던 의처증 남편이 목숨을 잃고 여자들은 의도치 않게 옥상에서 농성을 하게 되는데…movie_image (26)

코믹한 터치 속에서 성차별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남성이라는 카르텔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권위주의적인 정부 자체에 대한 풍자까지 제대로 된 풍자 코미디를 보여준다. 농성 하룻밤 지나고 아침에 남편들이 밥 안 챙겨 준다고 투정하는 꼬라지를 보면 홈에버 투쟁 당시 남편 밥해 주느라 조합원들이 투쟁장을 떠나야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이다. 정선경과 송옥숙이 다른 여성들과 여전사(?)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연대란 무엇인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훈훈한 영화다. <개같은 날의 오후>와 같은 연대하는 여성이 주역인 영화는 <카트>가 나올 때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계의 진짜 보석과도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카트>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개같은 날의 오후>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다시 보면 오히려 씁쓸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