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성향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지만 유난히 동맹전선을 펼칠 때가 있다. 바로 여성 의제다. 여기 기사 3개를 보자.

[오늘의 세상] 낮엔 難民 위해 회견하고, 밤엔 한 남자 위해 장을 봤다

조선일보의 첫 번째 기사는 앙겔라 메르켈의 사생활을 그리고 있다.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는 메르켈을 취재했다. 참 좋은 기사다. 어느 신문이 유럽 최강국 총리의 사생활을 취재했나. 메르켈 총리의 모습은 평범했다. 신으로 군림하는 누구네 대통령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제목은 쓰레기 수준이다. “밤엔 한 남자 위해 장을 봤다”라는 제목과 대응되는 취재 내용이 기사 본문엔 하나도 없다. 메르켈이 그렇게 말했다거나 근처 상인들이 남편을 위해 요리하는 메르켈의 모습을 증언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기자의 상상이 지어낸 제목이다. 한 남자를 위해 장을 봤다는 전형적인 아저씨들의 망상이 함의된 기사다. 물론 아내가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모습이 대다수 가정의 모습일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런 취재 내용 없이 굳이 메르켈에게서 ‘남성을 위한 여성’ 모습을 끌어내는 동기는 뭘까. 설령 메르켈이 장을 본다고 해도 ‘한 남자를 위해’라는 표현은 수식어는 부적절하지 않은가.

여성 강점으로 ‘유리천장’ 뚫은 LG 女임원 4인방

두 번째 기사는 LG 그룹의 여성 임원에 대해 보도했다. 4명의 여성임원이 끈기, 유연함, 인내력, 전문성 등의 여성 강점으로 성공했다는 기사다. 유연함과 포용력을 여성의 강점으로 묘사하고 인내심을 여성의 특징이라고 기사는 암시한다.

아, 궁금하다. 대체 여성 강점이 뭐냐? 끈기와 유연함, 인내력과 전문성은 여성의 강점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의 강점 아닌가! 왜 성공한 사람한테 여성성을 끌어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여성이라 성공한 게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 여성인 건데 말이야.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여성이란 ‘차분하고, 유연하고, 세심하고, 낮에는 강한 여성이지만 밤에는 여리여리하게 남편만을 위해 요리하는’ 사람인가보다. 밤일까지 잘하면 가산점 100점 주려나? 전형적인 마초 아저씨의 상상 속 여성상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두 기사의 기자가 여자라는 사실.

말 그대로 팀킬.

말 그대로 팀킬.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우리의 자식을 기다린다

위 제목의 한겨레 기사도 만만치 않다. 한겨레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우리의 자식을 기다린다’라는 제목 하에 아이를 가진 신혼부부의 모습을 그렸다.

내용은 참 현실적이다. 연봉 3천만 원 초반의 남편과 2천 5백만 원을 받는 여자가 아이를 가졌다. 여자는 출산 휴가를 받기 힘들어 퇴사를 고민하고, 남성은 돈 때문에 고민이다. 이 얼마나 현실적인 이야긴가. 서울시여성재단에 따르면 여전히 임신과 출산은 여성 퇴직 사유 4위다. 

부부싸움 내용도 현실적이다. 찌질하고 판타지 같아 보이지만 현실은 원래 더 판타지니까.

이제 기자의 뇌내 망상이 들어간다. 기사는 아내를 뭣도 모르는 멍청이로 묘사한다. 서로 자존심을 긁으면서 싸우다가 갑자기 드라마를 보자며 부부싸움을 멈춘다. 전지적 남편 관점에서 기사는 아내를 이렇게 묘사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시간이다. 잘생기고 돈 많고 똑똑하고 착한 완벽남이 가난한 이혼녀를 좋아해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성사시키는 뭐 그런 부류의 흔하디흔한 드라마다. 매번 똑같은 플롯에 첫 회만 봐도 다 알겠는데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아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게 아내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 쓸쓸함이 밀려온다”

아 이게 무슨 개판인가. 출산 때문에 퇴직을 고려하는 아내를 졸지에 ‘신데렐라 판타지에 빠져버린 현실도 모르는 흔한 아줌마 1호’로 만들어 버린다. 인기 드라마의 수많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위험한 문장이다. 하지만 일단 나도 한국 드라마를 안 보니까(….) 일단 넘어간다.

다음 부분은 산후조리원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는 2주에 400만 원이 들어가는 산후조리원으로 옮기고 싶다며 남편을 조른다(주관적인 표현이지만, 기사의 맥락을 읽으면 ‘조른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어 남편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했다. 세금 떼고 거의 두 달치 월급을 2주 만에 쓴다는 것도 놀랍지만 조리원 동기라니 앞으로 얼마나 치맛바람을 일으키려고 그러나,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우리의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고 현실도 모르는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빠르다니! 요즘은 뱃속에서부터 교육을 시켜야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거래. 나,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애 문제만큼은 절대 양보 못해!”.

심지어 기사 말미에는 남편의 상황을 ‘보통 남자’라고 규정하며, 아내까지 ‘보통 여자’로 결정지어 버리는 흔한 일반화를 해버린다.

5만원짜리를 보자. 나 좀 그만 우려먹어 새끼들아. 이렇게 외치고 계시는 것 같다.

5만원짜리를 보자. 나 좀 그만 우려먹어 새끼들아. 이렇게 외치고 계시는 것 같다.

하나의 유령-김치녀라는 유령이 한국 사회에 떠돌고 있다.

“남자는 항상 현실에 충실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지만 여자는 현실 쥐뿔도 모르고 항상 징징대기만 하고 고생은 안 하려고 하고 남자 등골만 빼먹는 모습”

한겨레는 경향신문과 함께 진보적인 일간지로 불린다. 하지만 이 기사는 전형적인 꼰대 아저씨, 심지어 일베의 김치녀와도 맥락이 닿아있는 모습을 보인다. 진보는 개뿔, 80~90년대 진보 운동권 꼰대의 모습과 닮았다. 운동권 내에서 성폭력을 작은 일이니 넘어가자라던 모습이나, 성폭력 문제가 나오자 여성을 문란한 여성으로 몰아가던 최근 한 단체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문제가 생기면 여자 탓이고, 이 빌어먹을 현실을 뚜벅뚜벅 이끌고 살아가는 것은 남성이라는 것.

조선일보나 한겨레나 똑같다. 여성을 대놓고 차별하진 않아도 그들의 편견을 여성에 씌워버리는 모습.

여성은 항상 여리여리하고, 낮에는 총리여도 밤에는 남편을 위해 요리해야 한다거나, 여성은 현실도 모르고 집에서 애나 보는 주제에 징징댄다는 모습.

여성 혐오가 있다고 중계하거나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성역할 제한이 나쁘다고 말하는 일이 언론의 전부는 아니다. 나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기사에는 그런 편견이 없나 고민하고 방지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월터 리프먼은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세계를 만든다고 했다. 모든 언론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저 기사들을 본 사람은 여성들을 저렇게 볼 위험성이 있다. 건강한 편향은 좋다지만, 저딴 편향은 개나 줬으면 좋겠다.

성공한 직장인이며 신사임당처럼 정숙하며 육아에 전념하고 남편만을 바라보고, 침대에서는 마릴린 먼로처럼 요부 같은 모습을 바라면서 아내는 현실의 짐이라고 묘사하는 이상한 잣대들. 여성은 부부라는 공동체에서 짐이자 객체일 수밖에 없다고 묘사하는 잣대.

한겨레나 조선이나 거기서 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