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열한 번을 해봤지만, 소개팅은 세 번 뿐이 안 해봤다. 그것도 대학 입학 1년 차, 파릇파릇 풋풋 쫄깃했던(?) 새내기 시절에만. 세 번 밖에 못했으니 그렇다면 할 얘기도 없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그럴리가 있나. 나란 놈이 세 번 밖에 안 해봤으니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딱 세 번의 짧은 소개팅이었지만, 난 그 만남 동안 ‘나란 놈의 쓰레기’와 ‘쓰레기 같은 너’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고, 덕분에 소개팅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미련만큼은 햄스터 똥만치도 남김 없이 날려보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억울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너무나 오글거리고 우습기만한 기억들인 나란 놈의 소개팅 ssul. 돌 맞을 각오하고 풀어보련다.

오리너구리의 소개팅ssul. 봉인해제!

오리너구리의 소개팅ssul. 봉인해제!

2011년 2월. 첫번째 소개팅

같은 대학, 동갑내기, 동네 친구의 소개

사실 첫 소개팅은 그다지 인상적인 경험은 아니었다. ‘아, 이런게 소개팅이구나’하는 정도의 인상이었달까.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카페도~ 가고 레스토랑도~ 가고, 마시고 썰고 하며 참 알맹이 없는 대화를 ‘ㅎㅎ이게 뭐지’ 하는 심정으로 주고 받았다. 뭐 어떤 얘기를 해야될지도 모르겠어서, 나름의 가장 최근 이슈인 수능 얘기와 대학 얘기(예를 들면 시간표라던가 아니면 시간표…)만 나눴더랬다. 기억도 가물가물.

 

2011년 5월. 두번째 소개팅

같은 대학, 1살 연하, 같은 수업을 듣던 친구의 소개

이 자리를 빌어서 용서를 빕니다. (손발싹싹) 욕을 먹어도 쌉니다. 실제로도 욕을 먹긴 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2월의 소개팅을 참 미련 없이 보내고, 1학년 1학기를 바쁘게 보내던 와중 같이 교양수업을 듣던 한 친구로부터 소개팅을 제안받았다. 오호오라아~ 성년의 날마저 혼자 보낸 허했던 내 옆구리에 + ‘훈남일거라는’ 그 친구의 야부리는 = 미친듯한 시너지효과를 뿜어내며 바로 전화번호를 따내오는 ‘기관차급 추진력’으로 소개팅을 성사시켰다.

만났다. 재밌었다. 약간 무뚝뚝한 말투의 친구였는데, 그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 속에 슬쩍 드러나는 관심 표현이 귀여웠고 나름 관심사도 잘 통하는 게 좋았다. 그치만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해서 이성으로는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꼬였다. 지금 생각으로는 좀 아니었으면 알아서 표현하고 거리를 뒀어야 했는데, 그 때 심정으로는 ‘이성으로는 아니’어도 ‘성격도 맞고 재밌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럼 굳이 김칫국 마시고 미리 쳐낼 필요 있나”는 결론을 내렸던거다. 그래서 또 만났다. 같은 대학이니 학교 안에서 잠깐, 한 번. 또 학교 밖에서 잠깐 또 한 번. 술도 한 번 마시고 노래방도 같이 갔다. 물론 연락도 계속했다. 굳이 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 하에.

그리고 그 때 쯤, 난 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와 조금씩 잘 돼가기 시작했다. 그래, 이성으로서. 소개팅남과 연락을 하는 와중에 난 다른 남자와 말 그대로 ‘썸’을 타고 있었던 거다. 그 다른 남자 사람과 난 결국 연인이 됐다. 그 역시 그 소개팅남과 연락을 하는 와중에. 와,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는 중에는 당시의 내 행동이 참 한 대…두 대 세 대 맞아야겠다 싶은 짓이다 싶다. 근데 그 땐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응, 나 남자친구 생겼어ㅎㅎ”라는 나의 너무나도 뻔뻔한 답장에 어이없어하고 ‘빡쳐’하는 주선자 (그리고 건너건너 들은 그 소개팅남)의 반응을 본 나는, 오히려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했고 혼자 김칫국 마신 그 친구를 탓하기까지 했다. 왜 날 욕하냐며, 내가 뭘 잘못했냐며. 하.

 

2011년 9월. 세번째=마지막 소개팅

이웃 대학, 동갑내기, 같은 수업을 듣던 친구의 소개

ㅎ…두번째 소개팅남을 차버리고 사귀게 된 그 친구, 그 친구와도 한 두어 달 만나다가 곧 헤어졌다. 여하튼 그러고 곧 받은 소개팅에서 만난 친구가 바로 이 놈(!)이었다.

제대로 만난 건 9월이었지만,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건 8월 말 부터였다. 처음 카톡을 할 때부터 얘기가 어-마어마하게 잘 통했다.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나름 소개팅인데도 뭐 카톡 밀당 뭐 이런 것도 없이, 서로 끊-임 없이 연락을 주고 받다가 만난 우리. 처음 만난 장소도 술집이었고, 한 잔 주고받으며 꽤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

소개팅 전후 카톡 밀당, 생각보다 엄청 중요하다. / 사진=솔브 블로그

소개팅 전후 카톡 밀당, 생각보다 엄청 중요하다. / 사진=솔브 블로그

우린 그 날 이후로 매-일 만났다. 정말 당연하단 듯이 매일. 소개팅 이틀 뒤인가부터 ‘그래, 일단 만나보자’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는 매일 같이 쉼없이 만나댔다. 심지어는 그 친구의 동네로 아침(!)을 먹으러 찾아가서는, 근처에 있던 가족분들께 인사드리기까지 했다. 되려 그 상황이 당황스럽지가 않았을 정도로 우리는 약간 미친 것처럼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그 관계 자체에 대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을 정도로 끊임없이 만났다.

그래서 얼마나 만났냐구? ㅋ2주ㅋ 정확-히 2주를 만났다. 웃음이 피식 난다. 실은 별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잘 사귀겠지, 지금 너무 좋으니까. 이 생각이었는데 주선자가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할 얘기가 있다며.

“사실 걔~ 주변에 여자 엄청 많고~ 주변 친구들 쪼아서 여자들 다 소개받아 놓고는~ 막 건드려놨다가 버리고 뭐~ 그래서 어쩌구저쩌구 너한테 미안해서 쏼라쏼롸~”그런 내용이었는데 대충 듣고보니 ‘아 그냥 소개시켜줘놓고 보니 좀 쓰레기니까 그만두라는 거구나’라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해석하고 더 안 들어버렸다.

솔직히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소개를 시켜주지 말든가 이 자식...' / 사진=19MELISSA68

솔직히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소개를 시켜주지 말든가 이 자식…’ / 사진=CC, 19MELISSA68, BY, 8A

 

그리고 바로 통보했다. 그냥 연락 말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무책임한 반응이었는데, 그 쪽에서 그닥 큰 반응도 없었으니, 그리고 그 후로도 잘 사는 모습을 보니 뭐, 그런갑다-싶더라.

돌이켜보면 걔도 그랬던 애고 나도 뭐 생각해보면 그리 순수한(?) 애도 아니었고, 그렇고 그런 애들이 만나서 재밌게 잠깐 좋은 기억 남겼으면 되지 뭐. 하는 그런 생각이다. 지금이라서 그런가. 여튼. 뭐 그래도 지금도 장난 삼아 ‘X쓰남’(X는 그 친구 대학의 약자)이라 불러드리긴 한다. 열한 명의 내 구남친들을 못 다 외우는 친구님들을 위해. (아마 두번째 소개팅을 했던 그 친구에게도 나는 ‘X쓰녀’로 남았을 지 모른다. 아니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

 

나 이제 소개팅 안 할래

딱 저렇게 세 번이었다. 물론 저 뒤로 끊임없이… 연애를 해대는 탓에 그닥 소개팅을 할 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저 세 번의 소개팅 이후로는 소개팅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싹- 사라져버렸다.

또 다시 ‘속을 모를 쓰레기’를 만날 것 같다던지 ‘나도 모르는 내 속의 (쓰레기 같은) 나’를 갑자기 만나게 될 것 같다는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소개팅이라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너무 별로였달까. 대학 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신기해뵀던 소개팅이라는게, 실은 그저

 

  • 주선자 통해 상대방 사진+연락처 받기+ SNS 털기

  • 적당히 카톡하고 만날 날짜 잡기

  • 밥 먹고 커피마시거나 / 밥 먹고 한 잔 하기(한 잔 할 경우 성공 확률 상승)

 

이런 정도의 내용 밖에 안 됐다는 게 사실 좀 허무했다. 실망스러웠다기 보다는(?) 재미가 없었다.

누구를 어디서 언제 만나든 하는 얘기들은 거의 똑같았다. 아마 대부분 또래였던 데다가 신입생이였을 때 만나서 더 그랬을 거다. 일단 주선자 얘기를 시작으로 (이 때 주로 ‘주선자 갖고놀기’를 시전하면 얘기가 재밌어진다.) 주선자를 어디서 만났는지에 대해 얘기했다가, 수업 때 만났다는 얘기로 넘어가서는 결국 수업/시간표 얘기로 자연스럽게 점프. 한동안 막- 내가 듣는 수업은 어떻다~ 과제가 많다 시험이 어렵다 어쩌구 저쩌구~

나중에는 “아, 공부얘기 질린다”면서 ‘노는 얘기’로 넘어가서는 술 얘기, 동아리 얘기 등 신입생 때 본인들이 놀았던 경험들에 대해 아주 그냥 일장연설을 했더랬다.

지금 와서 소개팅을 하면 대화소재야 뭐 달랐겠지만, 그래도 뻔-히 반복되는 레파토리는 있을 것 같다. 꼭 소개팅이 아니더라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 대할 때 내 태도를 떠올려보면 뭐 뻔하지 싶다.

또 만나고 나서도 문제다. 외모든 성격이든 뭔가 맘에 안 들면 이제 더 연락하고 싶지가 않아지는데, 서서히 연락 끊어가는 것도 (특히 관계 불편해지는 거 엄청! 싫어하는 내 성격에서는) 정말 못 하겠고 그렇다고 애매하게 계속 답장 주고받았다가는 결국 ‘어장관리’ 소리만 들으니까. 이성으로서 눈이 맞아서 만난다해도? 또 저 세번째 소개팅남 같은 경우가 또 있을 지 모르는 일이고.

계속 연락은 했지만 어장관리는 아니예요...ㅎㅎ / 사진 = tvN 화성인바이러스 캡쳐

계속 연락은 했지만 어장관리는 아니예요…ㅎㅎ / 사진 = tvN 화성인바이러스 캡쳐

사실 괜한 소리로 주변에 “야 나도 소개팅 좀 시켜줘~” 할 때가 없지는 않다. 그치만 막상 또 받는다 생각하면? 음…역시 아니다. 나 소개팅은 정말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