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이야기 – 박완서의 ‘카메라와 워커’

선정의 변

– 박완서 작가는 ‘그 여자네 집’, ‘엄마의 말뚝’, ‘나목’ 등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전집은 22권이 나와 있습니다.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이기 때문에 아직 주목 받지 못한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단편 소설에서는  사회와 정치에 대한 박완서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드러납니다. 그중에서 ‘카메라와 워커’는 6·25 사변때 태어나서 부모를 잃은 조카를 키우는 고모의 이야기입니다. 청년실업, 해외취업, 비정규직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골라 보았습니다.

6·25 사변 때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길 만한 첫 문장

– 나에게는 조카가 하나 있다. 가끔 나는 내가 내 아이들보다 조카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마다 조카가 생후 사 개월, 내가 스무 살 때 겪은 6·25 사변을 생각 안 할 수 없다.

달콤한 문장

– 취직시험도 하도 여러 번 치르니, 보러 가기도 보러 가라기도 점점 서로 미안하게 되었다. 이 년 가까이를 이렇게 지겹게 보내던 훈이 어느 날 나에게 해외 취업의 길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교재비로 돈을 좀 달라는 당돌한 요구를 해왔다. “뭐라고, 해외 취업? 그럼 외국에 나가 살겠단 말이지? 그건 안 된다.” …… 글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녀석이 꼭 이 땅에서, 내 눈 앞에서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내 간절한 소망의 참 뜻을, 지랄같이 무책임한 전쟁이 만들어 놓은 고아인 저 녀석을 (후략)

/ 우리나라가 텅텅 비어도 상관없으니 젊은이들에게 해외로 나가라는 분이 떠오릅니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한 잘 살아갈 희망이 없으니 나가라고 하는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는 삐딱한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잠깐만, 핏덩이들. 여기서 부턴 나 혼자서 간다.

잠깐만, 핏덩이들. 여기서 부턴 나 혼자서 간다.

고통스러운 문장

– 훈이가 젖먹이일 적, 그때 그 지랄같은 전쟁이 지나가면서 이 나라 온 땅이 불모화해 사람들의 삶이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던져지는 걸 본 나이기에, 지레 겁을 먹고 훈이를 이 땅에 뿌리내리기 쉬운 가장 무난한 품종으로 키우는 데까지 신경을 써가며 키웠다. 그런데 그게 빗나가고 만 것을 나는 자인했다. …… 그러나 후회는 아니었다. 훈이를 키우는 일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러이러하게 키우리라는 새로운 방도를 전연 알고 있지 못하니, 후회라기보다는 혼란이었다.

/ 20대 개새끼론, 달관세대, 5포세대 등 청년들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어서 바라보려는 시도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청년의 탓으로 넘기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닐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 역시 살아남으려고 애쓴 결과이기 때문에 결국 누구의 탓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정리하는 문장

–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혼란을 짐작해보는 시도

보태는 문장

– 박완서 작가의 다른 단편 작품들 중에서 ‘도둑맞은 가난’을 추천 드립니다. 유머와 반전과 서글픔이 얽혀있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