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핏츠가 어디에요? 찾아보려 했는데 안 나오던데….”

지금 이 순간 관악을 재보궐 선거에서 여러 의미로 가장 핫한 남자, 정동영을 만났다. 바쁜 와중에 굳이 미스핏츠를 찾아보시다니, 어쨌든 감사하긴 한데 첫 마디가 나름 아프다. 한편 미스핏츠 단체 카톡방에 이 말이 전해지자마자 “정동영 당이 어디에요? 찾아보려 했는데 안 나오던데….”라는 반응이 바로 튀어나왔으니, 오호라 이 인터뷰, 시작부터 의도치 않은 기싸움이 만만치 않다.

지진을 부르(고 싶어하)는 자! 몰아쳐라 관악을!

흔들흔들열매

흔들흔들열매

– 출마선언 직전까지만 해도 고심하고 있다, 생각이 없다, 하다가 관악을 재보궐에 갑작스럽게 출마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지진을 일으킬 적기다, 이런 판단이다. (무슨 지진?) 정치 지진! 때인가 아닌가에 대해 고심을 했는데, 결국은 지금이 내가 몸을 던질 때다. 새민련, 새누리는 골리앗 정당인데, 관악에 와서 골리앗을 쓰러뜨리면 지진이 생긴다. 4월 29일 저녁 정동영이 당선되면, 그 다음날부터 정계 재편이 시도될 거다. 그게 내가 나온 배경이다.

-종전의 참여정부, 새민련을 비판했다. 본인부터 참여정부의 장관이자, 해당 정당의 당대표, 대선 후보까지 지내지 않았나.

내부에서 지난 몇 년간 치열하게 싸웠다. 성과도 있었다. 내가 주장했던 것은, 민주당을 루스벨트 민주당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뉴딜 민주당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미국 민주당이 남부의 농장주들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민주당이었고, 정당으로서의 조직력도 제대로 못 갖춘 미약한 정당이었다. 1932년 루스벨트의 당선과 함께 민주당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뉴딜 입법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진보적 민주당의 길을 걷는다.

뉴딜의 핵심은 노동권 보장, 사회 보장이다. 대공황 속에서 미국 민주당이 탈바꿈했듯이, 중도 개혁주의 민주당이 진보적 노선으로 진화해야 된다, 이게 내 주장이고 실천이었다. 한진중공업에, 쌍용에, 강정에, 밀양에, 용산에, 현장에서 연대했다. 민주당의 당헌 개정안을 정동영 이름으로 발의해서 바꿨다. 보편적 복지라는 다섯 글자가 들어갔다. 민주당에, 진보 정당들의 당헌에 있는 보편 복지가 박힌다는 것, 이건 굉장한 사건이다. 또 강령을 바꿨다. 경제 민주화, 노동의 가치, 복지 국가. 이게 2010년, 2011년의 일이다.

이후에 (2012년) 대선이 왔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복지 국가라는 깃발을 누가 들고 있었나? 문재인 후보가 아니라 박근혜 후보가 들었다. 내가 사실상 설치한 민주당의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 유종일, 복지국가특별위원장 이상이 두 사람은 공천을 신청했는데도 친노당권에 의해 바로 날아가 버렸다.

민주당은 정권을 헌납한 거다.

jeong1내가 줄기차게 비판해왔다. ‘봐라, 당신들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걸 입으로 해선 안 되고, 체화, 육화, 실천해라. 이것이 없으면 대중이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보편적 복지는 민주당 당헌에서 삭제됐다.경제 민주화, 노동의 가치는 물타기! 그리고 (민주당 내부에서) 뭐라고 그러냐, 너무 왼쪽으로 가버려서 대선에서 졌다는 거다. 그래서 중도화, 보수화의 길로 가야 한다고. 우경화의 늪에 빠졌다.

2017년 정권 교체는 경제 민주화, 복지 국가, 평화 체제의 기치를 세워야 한다. 이걸 믿게 하려면 실천해야 한다. 야당이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 전선을 만들어서 투쟁을 하든지, 아니면 자영업을 살리기 위한 유통법 논의하든지 해서 작지만 단단한 성과물들을 만들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다른 세상이 도래한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여당을 따라하고, 2중대라는 소리도 듣는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정권 교체는 무망해진다. 가만히 있으니까 세월호 비극이 왔다. 지금 가만히 있으면 2017년에 기득권이 15년차 집권에 들어간다.

대선인듯 대선같은 재보궐 나온 너

-지금 다음 총선, 대선도 바라보면서 진보대통합, 야당 교체, 정권 교체를 생각하고 있는 건가.

관악을 선거를 통해서 진보 통합의 에너지를 만들 것이다. 정의당,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관악을 재보궐) 선거를 통해서 공동 대응하고, 연대하고, 선거에서 성과를 만들어 진보정당들 통합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진보, 우리 사회의 혁신을 원하는 사람들을 품에 안아 1대1대1로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한다. 새누리와 새민련, 이 두 새를 이 개혁진보민주세력이 하나가 되어서 때려눕히고 강한 야당을 하나 만들어 보자, 그게 관악을 출마의 의미다.

-진보를 통합해서 관악을을 기점으로 대선까지 노려보겠다? 그런데 관악구의원이었던 노동당 나경채 대표, 원래 관악을 국회의원이었던 이상규 후보, 지속적으로 관악에서 활동해온 새민련 정태호 후보, 정의당 이동영 예비후보 등과 달리 관악과의 인연이 그리 없어보인다. 관악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삼성시장, 신원시장, 신사시장을 도니까, 관악은 자영업이 많고 청년이 많았다. 자영업과 관련해서는 내가 할 말이 있다. 뭐가 있냐, 전통시장이다. 열린우리당 1호 법률이 전통시장 지원에 관한 특별 법률이다. 그 특별법으로 지난 10년동안 국가 예산 3조원이 투입되었다. 1700개 시장이 그때부터 안 없어진다. 1700개 시장에 지붕이 생기고, 화장실이 생기고, 주차장이 생기기 시작한다.

관악의 지역 경제와 관련해서, 애로 사항이 물론 있지만 신사시장, 신원시장은 다 현대화가 되어 있다. 삼성시장은 아무 것도 안 되어 있더라. 거긴 비공인 시장이라고 한다. 그 문제는 그 동네 구의원, 시의원과 머리를 맞대고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차원, 박원순 시장이 할 수 있는 차원,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차원, 이 세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 진보대통합과 정권 교체는 두 마리 토끼라는 느낌이 든다. 과연 그 많은 노선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서 의회 정치, 선거 정치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가능한가. 현실적인 방법론은? 어디까지 연대할 수 있고 교체가 어떻게 가능할까.

jeong2내가 주목하는 것은 처방이다. “비정규직을 과연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에서 처방은 비슷하다. 처방 중심으로 뭉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다른가를 얘기하기 전에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방법론을 내놓아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폐, 좋다. (하지만) 당장의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건 장기 목표이고, 지금 당장 20대 국회에서 우리가 의석을 가진다면 그걸 갖고 뭘 할거냐를 두고 보면 서로 비슷하다.

나는 지금까지 진보 운동을 해온 분들이 못 가진 정치 현실에 대한 경험과 내 나름대로 실천의 자산이 있다. 접목해야 한다.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 예를 들면, 내가 국회의원이 아니었더라면 한진중공업에 김진숙씨를 내려오게 하기 위해서 단순 연대하는 길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이슈를 사회적으로 증폭하기 위해서, 아마 6월 항쟁 이후에 최초로, 한 400개 단체를 내가 모았다. 그래서 영도 크레인 앞에서 김진숙 희망버스 문제 해결을 위한 시국회의를 개최한다. 함세웅 신부님, 백낙청 선생님, 김상근 목사님, 종교지도자들, 이석태 참여연대 대표 (등이 참여했다.)

그 다음에 서울역 광장에서 민주노총과 시국대회를 했다. 그리고 그 압력을 가지고 국회 청문회를 끌어낸다. 그 청문회를 끌어내기 위해서, 이명박 정권 시기 집권 여당의 대표였던 홍준표를 움직인다. 이 분이 늘 자랑하는 게 자신이 조선소 노동자의 아들이라는 거다. 찾아갔다. 당신이 조선소 노동자의 아들이라는데, 지금 조선소 노동자가 죽게 생겼으니 도와달라. 이건 당신들 정부에도 도움이 되고, 당신한테도 도움이 되는 거다.

재벌 회장이 야당 힘으로는 안 나오면 그만이다. 근데 여당 대표가 움직이면 다르다. 내가 홍준표 대표를 움직여서 조남호를 청문회에 두 번 세웠다. 그리고 여야 타협안을 만들었고, 조남호를 압박해서 그걸 한진이 받는다. 정리해고자는 복직되고, 이렇게 해서 309일만에, 김진숙 씨가 크레인에서 살아서 내려오게 되었다.

20111111110712난 이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 해낸 건 아니지만, 말하자면 운동과 정치는 다르다.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게 정치다. 우리 사회는 오천만 명의 이해 관계가 다 엇갈리니까, 갈등과 열이 발생한다. 이 열을 운동 에너지로 바꿔주는 게 운동이고, 그 운동을 정치의 장으로 수렴해서 사회를 통합해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지속 가능한 거다. 지금 (사회는) 고장 나 있다. 정치가 작동 안 하니까.

으 아니 챠! 나의 장그래는 그렇지 않아!: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청년실업자를 위한 정치를 해야 – 청년 실업 문제는 구조적 문제

– 서민과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한다고 했는데, 서민이 도대체 누구인가.

비정규직 860만, 영세자영업자 300만, 그리고 청년실업자 200만이다. 대한민국 경제활동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다. 소득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 3000만명 중에 1500만명이 1년에 1000만원도 못 번다. 거기에 속하는 사람들을 누구도 대표하고 있지 않다. 진보정당들이 있지만, 주변화되어 있고 미약하다.

-특히, 청년이라 하면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층이 있고, 대학도 안 가는 층이 있고, 어찌 보면 공허할 수 있는 기호다. 청년이라 말할 때, 이 청년은 누굴 가리키나.

우리 대학 다닐 때는 대학생이 10명에 1명이 안 됐다. 요새는 10명에 8명이 대학을 간다. 국민모임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국민모임은 빈 배다. 누구를 태우려 하냐면, 청년을 태우려고 한다. 여러분이 당을 만들려면 힘들지 않은가. 우리가 목수다. 배를 만들었으니, 이 배를 타서 선장도 기관사도 갑판원도 다 하고 이 배를 당신들이 원하는 항로로 운영해서 끌고 가라. 우리가 정해주지 않겠다. 이런 생각이다.

-청년 실업에 대해서는 원인과 대책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얼마 전 모 청년 단체에서 민주노총 앞에 가서, 청년 실업의 원인은 이른바 일부 귀족노조들이 좋은 일자리들을 양보 안 하고 독점하기 때문이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또 옆에서 다른 대학생들이 맞불 기자회견을 했다. 청년 실업, 그리고 서민들의 경제 문제는 누구의 책임이며 대안은 무엇인가.

jeong3출발은 세계화, IMF다. 구체적으로는, 1993년 2월 국회에서 통과된 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 파견법에서 시작했고, 거기에 기름을 끼얹은 건 2006년 11월에 통과된 기간제법. 비정규지법 개악이다. 이게 쌍끌이로 대한민국 청년을 비정규직으로 안내했다.

1997년 12월 5일,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대통령 후보들은 오늘 밤 7시에 긴급히 청와대로 와주시라. 내가 대변인이었으니까 김대중 후보를 모시고 갔다. 그 자리에 김대중 후보, 이회창 후보, 이인제 후보, 김영삼 대통령 네 사람이 모였다. 백지 한 장씩을 주고 각서를 썼다. 본인이 12월 18일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IMF가 요구한 내용을 지체 없이 이행할 것을 서약함. 김영삼 대통령이 각서를 모아서 IMF에 보냈고, IMF가 구제금융을 줬다.

그리고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 당선되고 그 다음날 내외신 기자회견을 했다. 첫 번째 질문이 외신 기자였다. 12월 5일날 쓴 각서는 유효합니까? IMF 요구사항 중, 노동의 유연화,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라는 요구가 있는데 약속 이행하겠습니까? 거기에서 이 땅의 청년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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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일지 뭘지 정말 불안하다고(…) 사진/고용노동부 공익광고 캡쳐

IMF로 세계화, 개방화, 유연화의 물결(이 흘러 들어왔고), 후속 과정에서 받아들여진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 즉 1980년대 후반 레이건, 대처의 금융 자유화,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 유연화, 작은 정부, 감세, 이걸 전면적으로 17년 동안 밀고 온 것 아닌가.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청년 실업의 천국, 청년 비정규직의 천국이다. 그런데 이 박근혜 정부가 또 비정규직법 개악을 하려고 한다.

-결국 청년 문제는 세대 간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 문제다. 일단 가장 시급한 청년 의제는 일자리 문제다. 이건 산업 정책하고 연결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네 가지 처방이 필요하다고 본다. 동서남북! 우리나라 일자리의 88%가 300인 미만 사업장인 중소기업이다. 이게 독일처럼 괜찮은 일자리 같으면 청년 실업 문제가 없는 거다. 왜 대만은 하고 일본은 하고 독일은 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는가? 우리는 재벌 중심 경제 체제를 계속 강화하니까 중소기업이 말라비틀어진 거다. 이게 1번, 동(東)이다.

더불어 사회적 일자리를 확충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교사, 경찰관, 소방관, 요양사, 간호사 등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우리나라는 여덟 명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유럽, OECD 평균이 네 명중에 한 명이더라. 선생님, 소방관 더 필요하다. 그런데 재정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이건 또 세금 문제하고 연결된다. 작은 정부가 아니라, 유능한 큰 정부로 가야 한다. 정부가 사람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되는 거다. 정부의 존재 이유가 돈 남기는 게 아니지 않는가. 이게 서(西)다.

jeong6남(南)은 뭐냐, 김대중 대통령이 되고 나서 옛날에 1년에 300편 하던 한국 영화가 30편으로 줄었다. 그런데 2500억을 영화진흥기금으로 넣었다. 그때부터 소재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풀리고 그 돈이 들어가면서 한국 영화가 불 같이 일어난다. 지금 영화로 먹고 사는 사람이 4-5만 명 된다. 영화가 중요한 사업이 된거다. 4대강에다 22조를 넣었는데, 22조의 반의 반만 IT, 바이오 사업, 문화 사업, 환경 사업, 나노 사업, 우주 산업에 투자하면 그 효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마지막으로 북(北). 일본의 전문가들이 한국이 일본을 따라온다고 그런다. 일본이 지금 25년째 불황인데, (한국은) 7년째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어간다. 한 가지 일본과 다른 게 있는데 뭐냐, 한국은 동, 서, 남쪽은 써먹었는데 북쪽을 안 써먹었다. 북방 경제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은 대운하를 내걸었고, 나는 대륙으로 가는 길을 내걸었다. 이리 가야 대한민국의 비전이 열리고, 청년 실업 문제의 해법이 열린다 말했는데 결국 7년 동안 단절됐다.

그럼, 청년 주거는?

-청년 문제 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주거 빈곤 문제다. 특히 관악구 신림동 일대는 고시원, 원룸촌이다. 

제일 무거운 주제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나는 고시원의 실상에 대해서 잘 모른다. 잘 몰라서, 알아야 하기에 고시원에 방 두 개를 얻었다. 선거 기간 동안 등록하고 한 달 동안 살아보려고 한다. 살아야 알 것 아닌가. 아주 참담한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의 얘기를 전해 들었지만, (고시원에) 들어가서 직접 얘기를 들으면, 답을 그 분들이 갖고 있을 것 같다.

-부동산 시장 일반에 대해서도 체험한 후에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인가.

아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나는 노무현 참여정부를 비판한다. 참여정부가 시작될 때, 전국에 있는 땅, 공장, 아파트, 다 시세로 하니까 4000조였다. 5년 지내고 나니까 이게 6000조가 됐다. 이 2000조가 어디로 갔을까? 기득권의 부가 커졌고, 중산층과 서민층은 버려져버린 거다. 그 부분에 대해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퀴어 문제는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내가 방어했다

– 작년,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서울시 인권 헌장이 파탄 났다. 이러한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

지난번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시 의회에서 부결됐다. 그걸 다시 의논하게 해서 통과시킨 배후가 정동영이라고 내가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내가 서울시 의회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당신들 당헌 위반이다. 당의 강령과 당헌에 이렇게 안 되어 있는데, 시의원들이 부결시키면 되냐.” 이렇게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키는 데 내가 역할을 했다. 그것을 통해서 내 생각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한다.


 끝이 덕스러우면 다 덕스럽다: 덕후! 덕후란 무엇인가

-이제는 가벼운 질문들밖에 안 남았다. 소주파냐 맥주파냐 이런 질문도 있었고.

소맥파다! 소맥!

-혹시 본인의 덕질 분야가 있는지. 무엇 덕후라거나.

덕후가 뭐지? 덕후! 덕후! 많이 들었는데! 인터넷 용어. 음. 내가 알았는데 건망증이…. 덕후? 덕후!

-파고드는 취미생활 같은게 있으신가.

내가 72학번이다. 덕후! 많이 들었는데. 취미? 빠져드는 분야라…. 나는, 자전거 타기. 그 다음에, 비오는 날 비 맞기. 눈 오는 날 산길 걷기. 이런 게 아주 꿈이다. 왜냐하면 산촌에서 컸기 때문에, 눈 오면 우리 집 강아지가 막 집 마당에서 뛰고 같이 뛰고 그랬던 어린 시절이 있어다. 서울에 있으면 눈 올 때 어디 가야겠는데 서울은 지난 겨울에 눈도 잘 안 오고.. 음,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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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덕후!라는 인상적인 외침을 뒤로 하고, 정동영은 인터뷰 장소를 떠났다. 분명 정동영은 달라졌다. 하지만, 그 ‘달라진 모습’이 유권자들에게 닿았는지는 29일 재보선의 뚜껑을 열어 봐야 확인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