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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9 06:03. 마지막으로 찍은 광화문 농성장. CC by 안똔

안녕하세요, 18일 오후 6시부터 19일 오전 6시까지 광화문을 지키며 실시간 보도를 했던 안똔입니다. 어제 오후에 집에 들어가서 쓰러져 자고, 이제야 돌아보며 후기를 쓸 기운이 나네요.

전하지 못했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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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9 오전 3시경, 광화문 분향소. 16일, 경찰은 헌화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하던 시민들의 행렬을 가로막았다. 결국 기자는 2박3일만에야 헌화를 할 수 있었다. CC by 안똔

차마 보도로 전해드리지 못했던 많은 순간들이 있어요. 무지개 뱃지를 옷에 단 채 서로 손을 꼭 잡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던 두 남성, 맨앞에서 최루액을 조준발사하던 경찰을 찍으려 하던 순간 직선으로 제 얼굴에도 날아오던 최루액, 물대포를 정통으로 맞고 안경이 날아갔을 때 제 손을 붙잡고 물 고인 바닥에서 같이 안경을 찾아주시던 시민, 2박3일만에 겨우 헌화할 수 있었던 새벽 3시 광화문 분향소의 향냄새, 제게 라이터를 빌려주던 앳된 얼굴의 경찰.

가만히 있으라: 누구를 위해서?

세월호 집회를 취재하며, 합법과 불법, 평화와 폭력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 주변에서 세월호 집회를 이야기하시는 분들 중, 경찰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에 분노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우선 차벽, 위헌이죠. 경찰이 먼저 물 샐 틈도 없이 길을 막아놓고 갇혀버린 행렬에게 도로 점거 운운하는 거, 웃기죠. 연행 과정이 적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이에 대한 항의는 일단 잡혀갔다가 유치장에서 풀려난 다음에야 현실적으로 가능하죠. 계속해서 채증을 하고, 물대포와 최루액을 조준해서 쏘고 방패로 밀어대고, 불법이라는 걸 두 번 말하면 입 아파요.

모두 맞는 말입니다. 경찰이 자유민주주의 원칙 하의 법을 어기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현행범으로 ‘만들고’ 있어요. 하지만, 불법인지 합법인지가 과연 얼마나 중요한 문제일까요?

가장 단순하게 얘기해서, 세상에는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어요. 권력자는 자신이 이득을 보기 위해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사장님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지금처럼만, 현상만 유지하면서 각자 직분을 다해 착실하게 일하면 끝나요. 하지만 피고용자의 경우는 어떤가요? 자신의 이해 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항의를 하든 태업을 하든 파업을 하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과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세월호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anton222경찰 저지선을 넘어 광화문으로 향하는 시민들. CC by 안똔

세월호로 돌아가 봅시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했으면 위협했지 정권에 득 될 게 전혀 없는 세월호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임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박근혜에게 이익이 되죠.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이 자신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을 정부에 ‘강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분란을 야기해 청와대의 권력에 균열을 일으키며 정부를 압박하는 것입니다. 평화 상태가 유지되는 게 한쪽 편의 이득으로 돌아온다는 것, 애초에 시작부터 세월호는 불공평한 싸움이었고 싸움의 규칙은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결국 세월호는 불공평하게 나누어진 권력을 둘러싼,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봅니다. 국가는 유가족과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경찰 병력이든 언론이든간에, 자신이 가진 무기를 충분히 활용했어요. 그러한 무기들이 법리에 합치될지언정, 곧바로 도덕적으로 옳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유가족에게 없는 무기를 얼마든지 휘두를 수 있고, 또한 현장에서 유가족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즉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지를 정하는 것조차 그들입니다. 심지어 자신들은 불법인 행위를 해도 어물쩡 넘어가고, 유가족이 합법적 행보를 걸을 수 있는 길을 차단하기까지 하면서 말이죠.

폭력과 불법의 프레임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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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을 넘어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과 합류할 수 있었던 유가족. CC by 안똔

4월 18일, 세월호 시위는 분명 폭력적이었어요. 비록 일부 언론에 의해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지긴 했지만, 시위가 폭력적이었음은 결코 부정할 수는 없고, 부정해도 안 됩니다. 하지만 불법과 폭력이 행해졌다 한들, 맥락에 대한 판단 없이 그것이 무조건 비판받는 일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앰뷸런스도 화장실도 없이, 경찰에 의해 꼬박 며칠을 광화문 앞에 감금되어 있었던 유가족을 ‘구출’한 것은 어디까지나 경찰버스를 밀고 당기며 움직이고, 최루액과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나아갔던 시민들의 ‘폭력’이었습니다.

행렬, 좌측 차벽 친 기동버스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행렬을 막은 차벽은 위헌이지만, 그 분노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욱 강경하고 무자비한 진압의 빌미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행렬이 진입한 바깥쪽에서 진압조가 대기중이라고 합니다. #세월호1주기중계

Posted by 미스핏츠 – Misfits on 2015년 4월 18일 토요일

사후적으로 미스핏츠의 중계를 확인하며, “행렬을 막은 차벽은 위헌이지만, 그 분노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욱 강경하고 무자비한 진압의 빌미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라는 말이 등장한 것을 보고 현장에서 보도하던 사람으로서 저는 볼멘소리를 조금 했어요. (스티치 씨의 집회 생중계 후기에서 이 멘트와 관련된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정권은 유가족과 시민들이 평화로울 때조차 똑같이 강경하고 무자비했으며, 프레임은 가만히만 있어도 이미 만들어져 버린다는 것을 세월호 정국 초기부터 봐왔기 때문이죠. 이미 유가족과 시민들은 1년 동안 너무나 많은 평화를 지켰고, 너무나 많은 폭력을 당했어요.

‘순수’한 채 있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 글의 제목을 “불순한 안똔의 집회 생중계 후기”라고 정했습니다. 전 불순합니다. 전 세월호를 ‘순수하게’ 추모하지 않을 겁니다. 세월호 사태에 ‘정치적으로’ 접근해서, 무능한데다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들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남겨진 사람들을 짓밟는 정권에 항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권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싸움에서, 필연적으로 폭력과 불법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질, 유가족과 시민들을 ‘편향되게’ 지지할 것입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권력 싸움에서 이겨야만, 안전한 사회를 건설할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글이 지루하게 길어진 것 같습니다. 이만 인용으로 글을 마치면서 후기를 송고함으로써 정말로 4월 18일 세월호 집회 취재를 종결하고자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또한 현장 생중계 당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시고 때로는 기자들의 안전을 걱정해주신 많은 독자 분들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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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by 신주욱 스티커. 앗싸라비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