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들, 자유롭게 올라오셔서 사진 찍으셔도 됩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듯이, 수많은 대포알 카메라들과 ENG 카메라가 올라와서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매운 시민들을 찍어 갔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그림’과 ‘각’이 가장 잘 나오는 무대 위, 그렇게 기자들은 최적의 스팟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의 몸을 비틀며 셔터와 녹화 버튼을 눌러 댔다. 7시부터 9시경까지 시청 앞 광장에서 진행된 범국민 추모제에서는 가수와 시인들, 그리고 유가족들이 무대로 나와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증언했다. 하지만 그들의 발언, 추모제의 진행 방식, 추모제의 분위기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언론들’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사진/이열 for Misfits

그들에게는 객관성이란 허울 좋은 방패가 있다.

나도 안다. 보통의 꼭지 리포트, 혹은 기사를 써야 하는 기성 언론 기자들은 오직 ‘객관적’인 사실만을 최대한 간결하게 쓰도록 요구받는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 중요한 것은 그 모든 다른 것보다 집회측 추산 참여 인원이 몇 명인지, 경찰측 추산 참여 인원이 몇 명인지다. 하지만 난 의구심이 든다. ‘객관적’인 걸 정말 좇은 것인지, 혹은 ‘숫자’나 ‘그림’이나 ‘야마’를 좇은 건지. 현장에서 보도해야 할 제 1의 가치가 숫자와 빽빽하게 광장을 채운 시민들의 모습이었는지.

추모제는 그 이상, 그 이하로도 기성 뉴스에서 다뤄지기 힘들었다. 그리고 오늘, 보도된 대부분의 방송 리포트, 신문 기사를 봐도 숫자와 그림과 유가족 한, 두 명의 멘트가 그 구성의 거의 전부였다. 추모제의 맥락과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그 뒤에 묻혀 버린다. 그렇게 추모제는 하나의 사건으로, 그 사건은 곧 하나의 보도 상품으로 잘 포장된다.

‘그림’과 ‘야마’를 잡기 위해, 그들은 또 뛰었다.

추모제가 끝나고 광화문으로 가는 헌화 행렬이 시작됐을 때, 기자들은 누구보다도 분주했다. 각 언론사의 색깔을 맞춘 점퍼를 입거나, 카메라에 언론사 스티커를 붙이고 그렇게 그들은 뛰었다. 뛰는 새 그들이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약간은 긴장되고 불안한 표정으로 교복을 입고 함께 와 있던 아이들, 새내기 과잠을 입고 학교 깃발 아래서 친구들과 손을 꼭 붙잡고 있던 대학생들, 선두에서 함께 걷던 유가족들과 아이들의 초상화를 품에 안고 걷던 청년들, 이대 앞에서부터 대학생들과 함께 걸어와, 또 다시 광화문으로 함께 발길을 돌린 아저씨들. 이들을 모두 제치고 기자들은 시위의 선두보다 더 선두에 섰다.

그리고 그들은 시위대를 무참히 막아선 폴리스라인 위에 올라 섰다.

폴리스라인 위의 카메라들. 사진/이열 for Misfits

폴리스라인 위의 카메라들. 사진/이열 for Misfits

채증 카메라와 기자들의 대포알 카메라가 뒤죽박죽 섞여 폴리스라인의 벽을 타고 있었다. 뒤에서 걸어 오는 그 사람들을 찍기 위해서다. 그러다가, 유가족이 마이크를 잡으면 또 거기에 와, 하고 몰려 들었다. 유가족들을 둥글게 둘러쌌다. 유가족에게 터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주변에 있는 내 눈이 다 부시다. 이런 벌떼같은 취재를 1년 동안 당해 왔을 그들의 심정이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그러면서도, 유가족들은, 이제 피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차라리 찍어 가서 방송이나, 기사나 하고 써 달란 것만 같다. 그렇게 잠깐의 대치 국면을 카메라에 담다가 다시 그들은 사다리를 주섬주섬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대오의 선두를 찾아 이동한다. 필요하다면 기자증을 내밀어 돌아가기보단 빠른 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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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열 for Misfits

그렇게 시위대를 앞질러 미리 또 다른 차벽들에 대기하고 있는 그들은 시위가 평화롭게 흘러가는 대부분의 순간보다, 그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울분의 물리적 표출에 훨씬 더 방점을 두고 있다. 차벽을 발로 차는 사람, 뜯어보려는 사람, 경찰벽을 뚫어보려는 사람들만이 그들의 뷰파인더에 담겼다. 헌화 행렬이, 그렇게 노래와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당신들에게 ‘덜’ 자극적이었고 ‘덜’ 멋진 그림이었나. 그렇게 헌화 행렬은 또 다시 ‘시위대와 경찰 충돌, 과격한 움직임, 과잉 제압, 캡사이신 물’ 정도로 잘 포장된 꼭지가 되고 기사가 된다.

사실, 어제 경찰의 대응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사진/이열 for Misfits

사진/이열 for Misfits

그렇지만 어느 기사나 리포트에서 그들의 대응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익히 포장된 캡사이신 물, 최루액, 과잉진압 논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애초에 행렬을 토끼몰이한 그 방식에 대해서다. 1만 명의 경찰 병력과 차벽을 쌓은 수많은 버스를 아주 잠시만, 잠시만 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까지 행렬이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데 사용했다면 충돌은 없었을 공산이 크다. 추모 행렬의 의사와 추모에 참여하지 않고 버스와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공동 이익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게 더 지당하다.

그렇게 했으면 세 시간이 넘어간 광화문 – 종각- 청계천 일대의 교통 통제는 없었을 테다. 경찰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시청 앞 광장에서 딱 5분 거리에 차벽을 치고, 잠시 대치 후 오른쪽 길만 터줬다. 오른쪽 길로 주욱 따라 내려갔을 땐 이미 또 다른 차벽들이 행렬을 막고 있었다. 그렇게 차벽과 씨름하기를 1시간 30분, 을지로 3가 쪽에 와서야 광화문으로 우회할 수 있는 길이 뚫려 있었다. 그 길을 다시 타고 최대한 인도로 행진한 행렬은 다시 종로 1, 2가 사이를 가로막은 차벽을 마주했다.

그렇게 행렬을 몰아 갔을 때 생기는 사회적 소요와 충돌, 갈등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과정을, 이 맥락을 누군가가 알렸다면 현장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추모 행렬의 답답함과 때때로 터져 나오는 울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했을 거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생방송으로 시위 현장을 중계하고 있는 언론사들을 제외하고서는 ‘당연히’ 다뤄지지 않았다. 혹은, 경찰 측에게 최소한의 취재나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추모 행진을 간 사람들과 가지 않은 사람들은 언론에 의해서 또 다시 구분당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 현장을, 그 맥락을 생략함으로서 둘의 의견은 끝도 없이 갈라진다. 그리고, 언론들은 이야기한다.

“경찰은 광화문 일대에 경찰버스로 벽을 세워 이를 막았고 곳곳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이어지며 충돌이 빚어졌습니다. 청와대로 행진하려는 추모 참가자들과 경찰의 대치는 밤새 계속됐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고, 광화문역 등 이 일대가 통제돼 시민들 불편이 컸습니다.”

– 매일경제, “세월호 추모제, 1만여 명의 시민들 참가…`경찰과 곳곳에서 충돌`” 기사 중 발췌

겨우 방송 한 꼭지, 리포트 하나로 넘어가는 언론에게 묻고 싶다.

종로 1~2가 사이 대치중인 행렬과 십자가, 그리고 카메라. 사진/이열 for Misfits

종로 1~2가 사이 대치중인 행렬과 십자가, 그리고 카메라. 사진/이열 for Misfits

당신들은 이 광경을 제대로 본 게 맞기는 한 건지. 또, 제대로 봤다 해도 이미 시위를 갈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상황들에 무감각해져 이를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당신들은 그저 시위를 하나의 또 다른 그림, 사건으로 여기고 취재하러 간 것은 아닌지. 그들이 왜 모였는지를 보도했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널리 알렸는지, 혹은 객관성이라는 허울 좋은 방패 뒤에 숨어서 전해져야 하는 말과 전해져야 하는 ‘그림’은 전달되지 않았는지. 그리고 남은 것이라곤, 결국 경찰과 추모 행렬이 맞부닥치고 캡사이신 물이 뿌려지고 오고 가는 고성과 경비서장의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고 뿐이지 않았는지. 세월호를 기점으로 1년 동안 얻어먹은 ‘기레기’라는 욕은 여전히 당신들에게, 유효하지 않은지.

jongkak아침에 다시 광화문 일대에 왔다. 어제의 흔적은 눈녹듯이 감추어져 있었다. 지극히 평화롭기까지 한 아침의 풍광과, 각종 언론사들의 메마른 리포트, ‘종합’기사를 접하고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제의 시위를 어떻게 그리게 될까. 그렇게, 객관성이란 말 뒤에서 상황과 맥락은 또 다시 멀어져 갔다.

당신들, 부끄러워 하라

어제 시위에 다녀 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온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었다. 정부의 신뢰도가 떨어진 것 만큼이나, 혹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낙폭으로 언론의 신뢰도는 세월호 참사 이후 지속적으로 추락해 왔다. (그 지옥도 같은 틈바구니에서 세월호 보도를 비교적 문제 없이 수행한 JTBC마저도 최근엔 보도 윤리를 지키지 않아, 답답하다.) 유가족들의 원성은 가끔은 정부보다 언론에 더 매섭게 날아 들었다.

sewol_6pm대학생 추모제에 와서 입을 열었던 단원고 2학년 2반 남지현의 언니, 남서현씨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부, 절대 믿지 말라는 이야기 바로 다음이었다. “여러분, 언론 절대 믿지 마세요. 절대로요.” 그 목소리에 서려 있는 분노는 미디어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에게 서슬 퍼렇게 날아들었다.

그들의 질타는 범국민 추모제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미 유가족들에게 언론은, 적이었다. 그들을 믿지 말라고, 또 그들을 대신해 함께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이들의 분노에 부끄러워하지 않을 언론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레기’ 소리를 질릴 만큼 듣고 반성하겠다고 한 ‘그 언론들’이 어제 어떠한 모습을 보였는지를 되돌이켜 보면, 그들은 여전히 ‘기레기’다. 기레기인 당신들, 부끄러워 하라.

사진/이열

글/랫사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