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 동방불패

지난주 1991년 <미저리>가 업데이트 될 때까지도 나는 어떻게 다음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예정대로 이 90년대 영화 이야기를 일상은 계속된다는 의미로 유지해야 하는지, 그리고 과연 <동방불패>가 과연 어울리는 영화인지, 혹은 영화 이야기로 1년 전 그날을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한 일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마치 그날처럼, 내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 것처럼 원고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일을 처리하고 사람들과 업무용 대화를 하는 모든 순간에도 저 남쪽 바다에서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 편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이 이루어져 실종자들이 가족들의 품으로 되돌아오고

세월호 특별법이 유족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논의되어 이 사회가 좀 더 안전해지고

세월호 사건에 책임 있는 자들이 형사적으로 처벌받고 민사적으로 유가족들에게 배상을 하고

지금껏 남아 있는 의혹들이 한 조각의 숨김도 없이 낱낱이 밝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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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동방불패 삼부작, <소오강호>, <동방불패>, <풍운재기>

1992년 <동방불패>의 인기는 그야말로 ‘불패’라는 이름에 걸맞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였다. 영화의 대성공으로 TV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광고에서 끊임없이 패러디되었다.

http://www.lgcare.com/news/cf/view.jsp?seq=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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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희애씨가 동방불패로 분한 슈퍼타이 광고

이것 외에도 지종은 씨가 분했던 해태 포도 아이스크림 광고가 있다. (그게 더 재밌게 표현을 잘해서 인상이 깊은데 영상을 찾을 수가 없다…)

남성에서 점점 여성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인 ‘동방불패’역을 맡은 임청하의 중성적인 매력에 남성들은 녹아들었다. 임청하의 폭발적 인기는 한국의 여성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신은경, 김지호 등 중성적인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배우들이 그 수혜자가 되어 털털하고 중성적인 매력의 여자가 새로운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요즘에는 작품의 캐릭터들을 남X남, 남X여, 여X남, 여X여에 상관없이 커플링을 맺는 문화가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문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동방불패 같은 작품이 나온다면 정말 다양한 커플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동방불패는 남성도, 여성도 될 수 있는 캐릭터고 영호충 주변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으며 각각의 조연들도 매력적이니 말이다. 이른바 ‘떡밥’이 많은 영화다.

지금이야 <동방불패>가 뭔지도 잘 모르고 지피지기 정도의 사자성어로 생각할 것 같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당시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이 영화가 3부작이라는 거고, 두 번째는 원작인 김용 선생의 소설 <<소오강호>>에서 동방불패의 실제 비중은 극도로 작다는 것이다. 오히려 <소오강호>에서 다루는 화산파 이슈가 더 주요 서사에 가깝다. 남자에서 여자로 조금씩 변해가는 동방불패와 주인공인 영호충의 사랑 이야기 자체가 서극의 2차 창작인 셈이다. 전문용어로는 각색이라고 한다. 특히 3부인 <풍운재기>는 원작과는 상관없이 동방불패와 그의 연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완전 창작물이다.

전편인 <소오강호>와 <동방불패>는 <<영웅문>>시리즈로 유명한 김용의 소설 <<소오강호>>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 <<소오강호>> 자체가 꽤 분량이 많은 소설이다 보니 영화에서는 그중 한 가지씩 이야기를 뽑아 주요 서사로 삼았다. 마치 요즘 마블이나 DC의 히어로 영화에서 영화 한 편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다루는 것처럼 말이다. <소오강호>에서는 영호충을 중심으로 한 화산파 이슈를 다루고 <동방불패>에서는 일월신교 이슈를 다루는데 두 영화 모두 강호의 비정함과 헛된 욕심을 주제로 삼고 있다. 화려해보이지만 치열하고 더러운 강호를 떠나 칼을 버리고 소박하게 살 것을 희망하는 이야기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항상 좋은 사람이 강호를 떠나고 나쁜 사람은 강호에 남아 사람을 괴롭힌다(강호라는 말 대신 정치권이나 정치판이라는 말을 넣어보자)

본격적으로 줄거리를 살펴보기 전,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고 ‘소오강호’라고도 많이 불리는 주제가 ‘창해일성소’나 한번 들어보자. 들어보면 ‘이게 <동방불패> 주제가였어?’라고 하게 될 거다.

 

https://www.youtube.com/watch?v=702huI596m8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동방불패>의 주인공 영호충은 이미 강호를 떠나기로 한 화산파의 사제들과 만나 강호를 떠나려고 하지만, 일월신교 교주의 딸인 옛 연인을 만나 그녀의 아버지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주가 사라진 일월신교는 간부였던 동방불패가 새로운 교주가 되어 있었고, 영호충은 강호를 떠나기 전, 마지막 임무로 옛 연인의 아버지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로 한다. 그 와중에 우연히 강가에서 미녀를 만난다. 그 미녀는 왠지 모르게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데…

눈치가 빠른 사람은 벌써 눈치챘을 것이다. 그 미녀가 바로 동방불패고, 사실 그녀는 남자다. 거세를 한 후 수련을 해야 하는 ‘규화보전’에 적힌 무공 특성상 점점 여성처럼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규화보전’은 원래 궁중의 환관에 의해 창시된 무공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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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여자랍… 아니 나도 남자랍니다~

반대파를 모두 숙청하고 명나라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야심가 동방불패와, 남성인 영호충의 순수한 접근에 설레어 하고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할 정도로 사랑에 빠지는 동방불패의 미묘한 마음은 주로 남성층이 팬덤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무협 장르에서 새로운 매력의 영역이었고, 이후로도 임청하의 남장여자 캐릭터는 임청하 본인을 통해 계속되어 반복된다. 아마 이런 생각이었지 않을까? ‘저렇게 막강한 무공의 캐릭터도 결국 여자가 되더니 사랑을 선택했어… 역시 여자란 사랑을 선택하는 존재…’ 대충 이런 느낌의 90년대 특유의 감성이 팽배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한국의 털털하고 친구 같은 후배도 꼭 마지막에는 “선배에게만은 여자이고 싶었어” 클리셰를 발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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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서만큼은…

원작을 쓴 김용 선생의 무협지를 보면 남성 못지않은 주체적인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므로 김용 선생이 다루는 수준의 이야기를 그 당시의 영화나 인식 수준이 따라가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김용 선생의 무협지는 1960~70년대 주로 쓰였으며 <<소오강호>>는 1967년 작품이다.

그런 사랑 중심의 서사 속에서 훌륭한 점이 있다면 서극 감독이 새롭게 만들어 낸 동방불패의 캐릭터 자체인데, 민폐투성이의 주인공 영호충에 비하면 동방불패는 남성 캐릭터든 여성 캐릭터든 당당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결국 여성화가 이루어져 목소리도 완전히 여성의 목소리로 변해 버리자, 동방불패는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여성의 옷을 걸친다. 오히려 내가 여자라고 무시할 수 있으면 무시해 봐. 나에게는 규화보전으로 익힌 무공이 있다라는 듯한 당당한 태도로 수하들을 마주한다. 오히려 여자가 되어버렸다고 그를 비웃는 상대에게 그 유명한 바늘에 실을 꿰어 날리는 장면으로 상대를 날려버린다. 지금은 유치해 보이고 특촬물이냐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서극-정소동 콤비가 폭약으로 만들어내는 수중 폭발 장면이나 신체 절단 장면 같은 것은 꽤나 진짜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잘 짜인 무협 액션 장면의 합 덕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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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오우삼 감독을 중심으로 한 홍콩 누아르 영화와 <지존무상> 등으로 대표되는 도박 영화 이후 할리우드 영화들에 점점 한국에 대한 지분을 빼앗기다가 마지막으로 흥행에 성공했던 장르가 서극 감독을 필두로 한 무협영화였다. <천녀유혼>, <황비홍> 등의 흥행으로 시작되어 <동방불패>에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홍콩 영화의 고질병으로 지목됐던 계속되는 자기 복제에 점점 힘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는 이연걸과 임청하라는 배우를 얻을 수 있었고, 홍콩 무협 액션이라는 새로운 액션의 방식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B SIDE

<결혼 이야기>marriage

솔직히 영화 <결혼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 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너무나 많이 다루는 내용이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이유는 한국영화 사상 첫 번째 기획 영화라는 중요한 포지션을 가진 영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기획이 신세대 젊은 부부의 이야기고, 거기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모습이 그 당시로는 ‘거의’ 상상할 수도 없는 주체적인 여성의 주체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금기를 건드리는 영화였는데도 불구하고 <결혼 이야기>는 1992년 한국영화 중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그만큼 영화 자체가 세련된 느낌이 있었다. 마치 ‘한국영화도 할리우드 영화만큼이나 그림이 예뻐! 우리가 천문학적인 달러가 들어가는 블록버스터는 못 만들지만, 로맨틱코미디는 한국 사람 취향에 맞게 더 잘 만들 수 있을걸’이라고 항변하는 느낌이었다. 한국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홍콩 영화만큼이나 자기 복제에 능했고, 한국 관객들은 그 이후 맥 라이언이 나왔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와 더불어 로맨틱 코미디의 홍수를 맞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