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대 국제캠에서는 RHC(Residential Hall Coordinater)가 학생들에게 벌점을 부여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물론 RM 교수도 있지만 이쪽이 훨씬 더 우리가 상상하는 ‘사감’ 이미지에 가깝다.)

 

첫 편에서는 송도캠퍼스에 존재하는 상벌점 제도를 다룬다. 사실 대학교 기숙사 생활에서 상/벌점제가 등장한 게 여기가 처음은 아니다. 정갑영 현 총장이 원주캠퍼스 부총장(직책 이름만 부총장이지 그냥 원주캠퍼스 총장이다) 재직 시절 처음 원주캠퍼스에 RC를 도입했었고, 그 때부터 원주캠에는 상벌점 제도와 지금의 송도캠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는 규칙들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소위 말하는 ‘본캠’으로 수입되면서 이러한 상-벌점 제도가 ‘대학’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논란거리가 되기 마땅하도록 변했다.

 

이 곳의 상-벌점 제도가 중요한 세 가지 이유

 

1. 원주캠과 달리 신촌캠은 ‘다른 대학들이 벤치마킹을 많이 하는 학교’ 중 하나다. 자랑스럽든 자랑스럽지 않든 이것은 사실이다. 신촌캠에서의 대대적인 RC가 2012년에 처음 공표되자, 서울대이화여대도 ‘우리도 RC를 하겠다’고 재빨리 나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송도캠의 제도 및 규칙은 다른 학교 교육, 더 크게 봐서는 대학교 교육 전체에 분명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2. 캠퍼스가 지방에 있어 소수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통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원주캠과 달리 신촌캠은 애초에 통학이 충분히 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RC 프로그램’이 주가 되어 이들을 입소시킨 것이다. 1학년에게는 선택권이 없고, 무조건 송도캠에 가야 한다. 기숙사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고 거기에 RC 프로그램이 덤으로 얹어지는 느낌인 원주캠과는 약간 강조점이 다르다.

3. 송도캠퍼스의 개교를 학교에서 ‘제3의 창학’이라고 칭하면서 중요도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즉, 송도캠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육 사업은 연세대에서 현재 많은 예산과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학교의 교육 철학(그런 것이 있다는 전제 하에)과 교육 방법론이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된 곳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상징적인 공간’에서 반인권적인 소지가 다분한 상-벌점 제도가 버젓이 시행되고 있다는 건 문제적이다.

 

공동생활이면 다에요?

물론 그렇다. 어떤 이는 ‘아니, 상 벌점 제도를 시행하는 게 어때서요? 공동생활 아님?’이라는 공동체 만능주의 쉴드를 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관점은 대학생은 어엿한 성인이고 머리는 굵을 대로 굵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아. 무조건 옳은 일만 하는 진리의 존재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그런가. 내가 하고픈 말은 대학생은 엄연한 성인의 범주에 든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본인이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고 어떤 밥을 먹고 애인과 섹스를 하고 말고를 결정할 권리는 있다는 말이다. 또한 성인으로서 져야 할 적당한 책임 소지와 의무 역시 이해하고 있음을 뜻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물론 대부분 이런 느낌이긴 합니다만... 예.. 그렇긴 합니다만...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물론 대부분 이런 느낌이긴 합니다만… 예..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데 학교에서는 단지 학부모들에게 멀리 떨어져 사는 불안함을 해소시켜 주려는 의도인진 모르겠지만(설마 그런 의도만 있다고 생각하기는 매우 싫다) 성인들을 고등학생처럼 대하며 ‘이건 하지 마’, ‘이건 이렇게 해’라며 30개가 넘는 벌점 규칙을 만들어 놨다. 여기에 세부 수칙으로 제정한 시설 이용 수칙까지 하면 (이를 어기면 벌점을 받을 수 있다) 50여개에 달하는 규칙에 성인들이 얽매여 살고 있음을 말한다. 세상 어디에서 성인을 수용하는 집단 거주시설이 50개의 규칙을 가지고 있나. ‘아니 실제로 살아보니까 애들 정말 더럽고 시끄럽고 배려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건 필요하지 않나요?’라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더라도 그에 대해서도 반문하고 싶다. 그러면 당신들은 그렇게 ‘더럽고 시끄럽고 배려 없는’ 학생들에게 ‘너희는 독립된 성인이니 이것은 너희의 할 일이고, 굳이 규칙을 만들지 않아도 우리는 너희를 믿는다’는 입장을 표명해 본 적 있는지. 규칙을 만듦으로서 학교 측은 학생을 미성숙한 개인으로 보고, 그 ‘미성숙한 개인’으로 보는 한계에 맞추어 학생들도 행동한다. 뭘 해도 학교가 먼저 게거품을 물면서 제재부터 가하는 모습을 몇 번 보고 나면 새로운 걸 하려는 시도보다, 학교의 프로그램에 그나마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는 생각보다 적당히 규칙을 지킬 건 지키고 어길 건 어기면서 알아서 ‘생존’하는 삶의 방식이 익숙해 질 수 밖에 없다.

 

벌점 없으면 망할 것 같아요?

규칙이 없으면 송도가 아노미에라도 빠질 것 같은가. 그닥 나는 아닐 것 같다. 송도는 자생한다.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적어도 만들어 가려고 노력은 했다. 하지만 그것을 제도와 규칙, 상/벌점의 틀에 가두는 순간 자생하려는 노력은 사그러든다. 자율성을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정작 학교에서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 대신에 ‘다양한 RC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하지만 완전 비슷한 것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라도 RC에서는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는 모습이 이를 보여준다.

지금 송도는 매 년 새로운 사람만으로 넘쳐난다. 거기에 오래 묵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있어도 약대 및 국제대의 특수 정원 뿐이다. RA들은 대부분 짧으면 한 학기, 길어봤자 1년 약간 넘게 하고 그만둔다. 행정적 업무와 학교의 아르바이트생 취급이 넌더리나서인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를 꿋꿋이 견디고 꾸준히 경력을 쌓는 RA들도 있다. 하지만 전체 인원에 비한다면 매우 적다) 그래서 산적하는 문제를 꿰뚫어 볼 사람도 별로 없고 고치려고 팔을 걷어 붙이는 사람도 별로 없다. 한 학기만, 1년만 버티면 되니까. 그런 환경에서 공동체가 생기고,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 지고 이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 물 한방울 안 준 사막에서 거대한 아마존이 생기길 기대하는 것과도 다름없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상, 벌점 제도라고 생각했다.

벌점이 얼마나 불편하고 사소한 것까지 통제하면서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깎아내리는지는 두말하지 않겠다. 직접 보고 느끼라고 두 개의 기획을 준비했다. 하나는 송도의 벌점 기준표다. 이를 낱낱히 뜯어내고 교정해보는 기사를 썼다. 다른 하나는 여러분과 함께 하는 실전 모의고사다. 송도캠에 거주하는 세 새내기의 가상 스토리를 준비했다. 이를 읽고 세 명이 각각 벌점을 몇 점 받았는지 풀어 보면서 일상에 깊이 침투한 통제의 참 맛을 느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