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S. 내가 처음으로 나를 인정하고 살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이 네 글자는 항상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나를 따라다녔다.

한 10년 전쯤 내가 처음으로 나는 그런 사람일까, 했을 때 학교와 교회는 나한테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이고, 하나님이 그런 가증한 짓을 멀리하게 만들고자 성병, 그리고 에이즈 같은 것들을 창궐시킨 것이라느니 하는, 지금 시선에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설교를 했었다.

커밍아웃을 하면 은근슬쩍 내 건강을 걱정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 명은 아예 대놓고 그러는데, 내가 뭐 어떤 사람을 만났다, 맘에 든다, 이런 얘기부터 하면 조심해 병 걸려, 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솔직히 때릴 뻔.

적어도 여지껏 내 나이 또래를 만날 때 에이즈 걸린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물론 그만큼 ‘막 사는’ 사람을 내 주변에 두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러나 타인은 그렇게 보지 않더라. 몇 년간 반대자들의 행태를 겪어보면서, 여전히 아직도 우리는 잠재적 에이즈 환자로 비춰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가운데 팻말. 무려 에이즈를 ‘하는’ 동성애다… 안녕하세요 에이즈합니다.

에이즈랑 동성애의 상관관계

에이즈는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혹은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라고 쓰는 전염병이고,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혹은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라고 쓰는 바이러스에서 발생한다.

사람들이 덮어놓고 성병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이러스가 옮는 경로 중에 정액이 있을 뿐이지 성병은 아니다. 혈액 역시 감염경로인데, 그래서 헌혈이나 수혈할 때 혹은 쓰고 버리지 않은 주사 바늘 따위로 HIV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에이즈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은 웬만하면 다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물론 모르는 사람이 존재하긴 하더라. 특히 어르신 분들은 많이들 모르신다. 그냥 무언가 문란하게 자고 다니면 걸리는 줄 아시는 분들도 계신다. 적어도 젊은 층에선 그렇진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나 아무랑이나 자고 다닌다고 안 걸린다는 건 아는데, 문제는 게이랑 자면, 혹은 게이들은 걸린다고 알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전염병이라는 사실만 알아도 게이랑 자면 / 게이들만 걸리는 병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해진다.

이런 글들이 항상 그렇듯, ‘에이즈 감염’이나 ‘에이즈 환자’가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겠다. ‘증세에 감염되었다!’는 말은 무언가 이상하니까. 그러므로 밑에선 ‘HIV에 감염’ / ‘HIV 감염인’ / ‘AIDS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이나 경우’ 등으로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위치는

2

위 그래프의 제목은 Estimates of New HIV Infections in the United States for the Most-Affected Subpopulations(2010), 그냥 간단히 HIV에 감염된 사람의 수라고 보면 될 것이다. 출처는 CDC,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로 정부 기관이다. 정부 기관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신뢰성은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글에서 나오는  MSM이란 단어는 Men who have sex with men이다. 즉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을 이야기한다.

그래프를 보고 확실히 남성 동성애가 HIV에 대해 훨씬 취약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마 당연할 것이다. 실제로 통계가 저렇게 나왔다는데 좀처럼 의심하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생물학적인 문제 아니면 종교적인 문제 – 정말 하나님이 동성애자를 벌하려고 내렸다던가 같은 – 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하나님 탓이면 애꿏은 이성애자 여성들은 왜 걸리는 거겠나. 우리는 결과를 원인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자들 속 HIV 감염인이 더 많으므로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역시,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면, 이성애자들이 걸릴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또 전술했듯 결국 이건 전염병이지 성병이 아니어서, 그래프에서도 IDU – 즉 약물주입 – 으로 HIV에 감염된 통계를 분명 명시하고 있기에, 동성애자 사이에 많은 에이즈 증세 발발이 있어도, 동성애가 원인이라 할 순 없다.

왜 우리는 많이들 에이즈에 걸리는가?

그러나 아무튼 통계에서 동성애자 남성의 수가 많다면 그 원인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많은 남성 동성애자들 중 한 명을 임의로 뽑아보았을 때, 이 사람은 많은 남성 동성애자들과 잠자리를 가졌을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의의 이성애자 개인 한 명을 뽑았을 때, 그 한 명이 우연히 많은 이성애자 이성과 잠자리를 가졌을 수 있는 가능성과 같은 것이다.

물론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에이즈와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말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그러한 사람들, 즉 쉽게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을 남자들은 이성애자에 비해 HIV에 감염될 확률이 약간 높다는 것이다.

여기 이성애자 1천명, 동성애자 10명의 그룹이 있다고 하자. (1천명-10명 나눔은 그냥 임의다. 인류의 동성애자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별의별 연구결과는 많지만 가장 신뢰성 높은 게 뭔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1%로 잡았다.) 양쪽 그룹에 둘 다 1명씩의 HIV 발병 환자가 속해 있다고 가정할 때, 환자가 아닌 한 사람이 양쪽 그룹에서 임의의 잠자리 파트너를 구한다고 해 보자. 이성애자 그룹 속에서 HIV 감염인과 잠자리를 가질 확률은 0.1%인 반면, 동성애자 그룹에서는 무려 10%다.

굉장히 거친 도식이라 이성애자 그룹의 이성-동성 여부나 구체적인 동성애자 비율 같은 건 다 생략했지만, 적어도 같은 수의 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HIV 감염인 비율이 왜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는지, 또 한 개인이 HIV 감염인이 될 확률이 어떻게 더 높은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더 구체적으로 쓰고 싶지만 중요한 건 HIV 감염인이 되는 메커니즘이 아니니까.

근데 사실 우리가 다 에이즈를 ‘하진’ 않는다

32그러게여. 대체 어디서부터 이 생각이 온 걸까여.

자료를 조사하다가 HIV 감염인이 되는 것이 호모포빅의 중대한 이유라도 되는 마냥 이야기하는 케이스가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놀랐다. CDC의 통계를 위에서 인용했으니 CDC를 한 번 열심히 뒤져보아라. 여성 동성애자 중 에이즈 증세 발발 케이스의 수를 유의미하게 따질 수 있다는 결론은 절대로 내리지 못할 걸.

HIV의 감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남성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은 우선, 남성 동성애자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즉 과정을 간과하고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싶다. 또, 그런 이유로 남성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이성애가 ‘우월’하다고 말할 거라면, 에이즈가 나타날 확률이 현저히 낮은, 통계상으로 나타나지도 않은 여성 동성애자는 이성애보다 훨씬 ‘우월’한 사랑의 형태인 것인가? 나아가 에이즈가 아닌 남성 동성애자 역시 그 상태에서는 이성애자와 소위 ‘동등’한 사랑이 되는 것인가?

어떤 병에 걸릴 가능성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너무 웃긴 짓이다. 적어도 우리는, 작년에 에볼라가 신나게 창궐할 때에 아프리카 사람을 덮어놓고 위험자라고 분류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가 매우 헛짓을 해 대는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사실 내가 위에서 왜 HIV 감염인이 더 많을까 하는 고민을 한 단락 살짝 풀어놓았지만 이게 필요하다는 것부터가 너무 짜증난다.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인데.

 


 

P.S. 누군가는 항문성교가 질 성교보다 에이즈의 위험성이 더 많다고 말한다. 의학 논문을 찾아보기엔 전문용어와 난해성이 문과생인 나를 위협하기에 차마 못 하겠고, ppss가 이야기해준 내용을 퍼 오겠다.

사정을 동반한 일반적인 삽입 성교에서 약 0.1~0.3% 정도의 감염률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구강성교의 경우에는 감염 사례가 보고되고는 있으나 감염 확률은 그보다 훨씬 낮을 것(0.01% 수준)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항문 성교의 경우에는 감염 확률이 보다 높아서 0.1~1% 정도의 감염률을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http://ppss.kr/archives/7944)

오예. 약간 더 높긴 한가 본데, 여전히 1% 이하에다가, 이것도 결국 파트너가 HIV 감염인이 아니라면 상관없는 수치나 다름없다. 물론, 누군가는 그러한 점도 다 상관없이 아무튼 동성애자가 최대 세 배까지 확률의 차이가 나네! 하고 말할까 두렵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