랫사팬더에게 연락이 왔다. “아날로그, 이 메일 봤니?” 미스핏츠에 올라간 글 중 하나가 수위를 넘은 성인용 콘텐츠를 게시해 경고 메시지가 왔단다. 얼마나 심한 글이길래 경고 메일까지 왔을까. 킥킥대며 웃는 나에게 랫사팬더는 “네 글이야 네 글!!!!” 이라고 얘기해 줬다.

으잉? 나? 왜? 진짜?

메일을 확인해 보니 진짜였다. 메일에서 ‘위반이 발생한 페이지의 예’로 정확히 내 글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구글찡...(코끝찡)

구글찡…(코끝찡)

흠. 정말 내가 저속한 글을 썼나 싶어서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어봤다. 저속하다 느껴질 내용은 딱히 없는데? 아. 일부 단어가 좀 우리나라 기준에서 19금이구나. 구글이 글을 하나하나 읽어 볼 리도 없고, 아마 특정 단어를 입력하고 검색기를 돌려 그 단어가 사용된 모든 글에게 경고 메일을 보낸 듯하다(내 글의 요지가 문란함과 저속함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메일을 보냈다. 내 글 읽어보긴 한 거니…?).

근데 왜 섹스라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지?

답답하다. 구글이 음란하다고 했던 그 글에서도 얘기했었다. 성은 더럽고 음침한 것이 아니다. 성을 더럽고 음침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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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강사는 거대한(크고 아름다운…?) 성기 모형과 콘돔을 가져와 그것을 직접 씌워 볼 지원자를 받았다. 당연하게도, 우리들은 ‘더럽다’는 반응을 보이며 눈을 피했다. 그러자 뜻밖에도 강사가 정색을 하며 진지하게 한 마디를 했다. ‘성은 밝고 재미있는 것이다. 지금 이게 더럽다고 생각해서 피하게 되면 여러분은 재미있는 성을 즐길 수 없게 된다’. 그 땐 이게 뭔 말이지, 했지만 8년이 지난 그 말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명언이다.

카타르시스. 무엇인가를 ‘배설’할 때 느끼는 쾌감이다(마광수 교수에 따르면 카타르시스는 말 그대로 ‘배변을 할 때 항문에서 느껴지는 쾌감’이다). 원하는 때에 똥을 싸지 못하면 그 날 하루종일 꽉 막힌 기분에 화가 나듯, 원하는 것을 적시에 제대로 배설하지 못하면 인간은 시들어간다.

성욕은 식욕, 수면욕과 더불어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다. 밥을 충분히 먹지 못하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된다. 욕구는 쌓여 있는데 이를 분출하지 못하게 하니까, 정상적이고 건강한 열린 방식의 분출이 불가능해지고, 음지로 기어들어가 뒤에서 몰래몰래 분출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부끄러워서 애는 어떻게 만든대? 결국 이런 ‘성의 음지화’가 성욕의 잘못된 표출, 합의되지 않은 일방적이고 불쾌한 성적 표출로 이어진다.

단편적인 예를 들어 볼까? 이 글을 읽고 나서 한번 구글 검색창에 ‘섹스’나 ‘짤’을 검색해 보자. 그리고 0.x초만에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야짤’들을 누리자. 글은 안 되고 그림은 된다니, 역시 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기업답게 참신하다.

ㅇㅇ...

ㅇㅇ…

아무 생각 없이 구글에 짱짱맨을 검색해 보았다. 역시나 쏟아지는 야짤들. 심지어 지인들 중 자신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는데  야짤들이 튀어나와 무척 당황했다는 분들도 있다. 누군가 올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누군가 찾아보지 않는다면 이런 대량의 야짤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모두가 학창시절, 책상이나 화장실 등에 적혀 있는 성적인 표현이나 그림을 많이 봤을 것이다. 심지어 대학교 화장실에도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음란한 말과 원색적 그림이 있고는 하다. 단어가 19금이었다는 게 아니라, 표현이 저질이었다. 실제 사람을 앞에 두고는 평생 한 번도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말. 예컨대, 가족 구성원이 들어간 말이라든가, 상대방의 성기능을 폄훼하는 말 등. 물론 이 모든 표현은 너무나도 일관적이게 저속한 어투로 가득 차 있었다.

군대에서, 부대 내 교육관에 낙서가 너무 심하다며 단장이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뭐지, 하고 가 봤더니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아직 미성년자인 특정 아이돌 스타의 이름을 언급하며 ‘00 x지 졸라 x먹고 싶다’라는 글까지 적혀 있었다. 심지어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또 구글에 걸릴 수 있어 이 사례만 적겠다)

호섹호스의 욕구는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수지를 상상해 보면 쉽다. 장마철, 비가 계속 오면 물이 넘치기 전 미리 수문을 조금 열어 물을 조금씩 수로를 따라 흘려보내줘야 한다. 물은 계속 차올라 저수지가 견딜 수 있는 최대 용량을 넘겼는데 수문을 열지 않고 버티면 물은 결국 흘러넘친다. 범람한 물과 막힌 배수시설의 조합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2011년 7월 말 강남역을 기억하는 이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개인의 몸을, 나아가 이 사회를 처참하게 침수된 강남역 사거리처럼 만들고 싶지 않으면 우리 모두 성을 자연스러운 욕구로 받아들이고 밝고 건강하게 사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 첫 번째 단계가 성과 관련된 단어를 여느 일상용어처럼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이라고 생각한다.

섹스를 섹스라 부르지 못하는 우리들은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다를 것이 없다. 눈물을 삼키며 호부호형의 허락을 외치던 홍길동처럼 나도 외치련다.

구글은 호섹호스를 허하라!

[divider]뱀발[/divider]

1.

글이 너무 길어질까 위에 쓰지 않았지만, 타인과의 하룻밤을 주선하는 앱으로 전락해 버린 많은 채팅 앱들, 이번에 기혼자 매칭 사이트로 사회적 논란이 된 애슐리매디슨의 사례도 뭐…(…)

 2. 

도대체 의자와 책상에 무슨 펜으로 글씨를 적었던 걸까. 지우개, 보드마카로 덮은 뒤 지우기, 아세톤까지 온갖 방법을 써도 지워지지 않아 결국 그 책상과 비슷한 무늬의 시트지를 사 와 100개가 넘는 책상에 전부 그 모양대로 잘라서 붙였다.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주신 (前)전우님들께 감사드린다.

3. (편집자주)

그러면 경고를 준 애드센스는 평소에 얼마나 깨끗한고(…) 사행성 도박이나 성형외과 광고는 과연 ‘호섹호스’를 논하는 글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순결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