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라고 하는 90년대에 운 좋게 데뷔했다” – 문소리

애초에 이런 콘셉트의 글은 아니었다. ‘토토가’이후 90년대 음악을 회고하는 조금은 이른 추억팔이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내 비디오(문자 그대로 비디오테이프)시청그래피 인생이나 돌아볼까 하고 생각한 기획이었다. 더불어 미스핏츠의 부족한 문화면 콘텐츠에 조금이나마 다양성과 깊이를 보탤 생각이었다.

그 생각으로 기획을 미스핏츠 홍시 팀장에게 처음 상의할 때만 해도 이런 서문을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1화에 포함되어 쓸 내용이라면 내용이었다. 그런데…

나 : 90년대 영화에 대한 11부작 기획을 하려고 하는데요. 1990~2000년까지요
미스핏츠 홍시: 왜 90년대죠? 왜 8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도 아니고 90년대인가요?

나 : …..

그랬다. 20대가 만드는 20대의 언론인 미스핏츠에는 90년대에 대한 기억 자체가 없는 것이었다. 90년대에 태어나 비디오로 디즈니 영화나 보면서 자란 세대에게 90년대 영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당연한 이야기였다. ‘토토가’가 나오고 미스핏츠에 릴레이로 연재된 나의 대중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도 2000년대에 치중되어 있었다. 세상에. 2000년대에 ‘유산’이라는 이름을 갖다 넣을 수 있다니. 내가 미스핏츠 최고령(?) 필진이라니

한국 영화의 대표 배우와 감독들을 잠시 생각해보자.

5, 4, 3, 2, 1…

어차피 이종석이나 김수현을 떠올렸으면 아무 소용없으니 그만두도록 하자.

다시, 최근 천만 관객 영화의 주연 배우들을 생각해보자.

배우들

좌측부터 <명량>의 최민식, <국제시장>의 황정민, <변호인>의 송강호.

할리우드에도 진출한 한국 감독 3인방 봉준호, 김지운, 박찬욱.

영화들

좌측부터 <설국열차>, <라스트 스탠드>, <스토커>

이들 뿐이랴. 박중훈, 한석규, 김혜수, 이정재, 정우성, 원빈, 장동건, 임창정, 차태현에 이제는 제작자로도 더 유명한 강우석, 강제규까지 열거만으로 입 아플 정도로 요즘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든 사람들의 경력이 시작된 것이 바로 90년대 한국 영화와 영화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받은 질문이 “왜 90년대죠?”였다니…

홍시가 홍시 맛이

어찌 90년대냐고 하시면 그냥.., 90년대여서 90년대 영화라고 한 것이온데…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콘셉트를 바꾸기로 했다. “너희가 90년대 영화를 아느냐.” 비디오테이프와 단관 개봉 시절에 영화를 보기 시작한 영화 꼰대가 멀티플렉스와 다운로드에 익숙한 요즘의 20대에게 보내는 영화 꼰대질이다.

외화도, 한국영화도 역대급으로 흥했던 시절

90년대에 영화 흥행의 벽은 100만 명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15년 전인 1990년으로 돌아가면 할리우드 직배 영화인 <사랑과 영혼>의 관객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에 전 국민이 놀라고 있었다. 관객 수 100만 명이라는 수치는 성룡 주연의 <취권>이 1979년에 비공식적으로 기록한 이래 그 어떤 영화도 범접할 수 없는 전설과도 같은 기록이었기 때문이었다. 더더군다나 한국 영화가 100만 명을 기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놀라운 것은 그 해에 한국 영화 흥행 기록도 깨졌다는 것이다. 1976년 작인 <겨울여자>(59만 명)의 흥행 기록을 14년 만에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68만 명)이 깨뜨린 것이다.

취권

1990년까지 최고 흥행작이었던 성룡의 <취권>. 1994년 취권 2가 개봉하기도 한다

그것이 시작이었을까. 90년대에는 그전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93년 <서편제>가 처음으로 한국 영화 최초 1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99년에는 <쉬리>가 서울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며 최종 스코어 전국 620만 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0년대로 접어들며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등 첫 천만 관객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딱 100만 명도 드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던 90년부터 10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90년대 영화의 르네상스는 영화법 개정으로부터…

상식 테스트 하나 해보자. ‘르네상스’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뭔지 알고 있나?

5, 4, 3, 2, 1… 됐다. 그냥 말해주마.

르네상스를 번역하면 문예부흥이다. 문예부흥. 부흥이라는 건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그렇게 되게 함.이라고 국어사전에 써 있다. 즉, 쇠퇴를 했던 것이어야 부흥이 일어날 수 있는 거다. ‘태초’라는 표현은 아무 데나 쓰는 게 아니다. (누구 팀장 보라고 쓰는 건 아니다.)

한국영화의 첫 번째 황금기는 1960년대였다. 그리고 이른 바 암흑기인 70~80년대를 거쳐 90년대의 부흥기를 맞은 것이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90년대의 한국 영화의 중흥, 정확히는 영화 문화의 중흥을 이끌어낸 것은 85년과 87년 두 차례 있었던 5차 및 6차 영화법 개정에서 시작되었다.

85년의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화업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
제작업자만 수입할 수 있었던 데에서 제작업자와 수입업자를 분리
독립영화제작(PD) 제도 신설
영화 검열 제도를 사전 심의제로 전환
심의 주무 기관을 문화공보부에서 공연윤리위원회로 이관
예탁금 제도 신설

개정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20개 영화사가 영화 제작을 독점하고 있었다. 물론 그 독점은 60년대부터 정부가 영화사를 통폐합시키고 허가제로 표현의 자유를 묶어온 영향이었다. 제작업자가 수입업자를 병행했기 때문에 외화 한 편을 수입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제작사에서 한국영화 4편을 만들던 시대였다. 그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1~2주 만에도 영화가 완성됐다.

화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 임권택 감독이 영화를 무려 102편을 찍을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다.

당연히 한국 영화의 수준은 떨어졌고 사람들은 이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1985년도의 영화법 개정으로 등록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어서 많은 신규 영화 제작사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검열 제도가 사전 심의제로 전환되면서 검열의 수위가 낮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사전 심의 제도가 실질적인 검열 제도의 역할을 했지만 그래도 ‘검열’ 제도였을 때보다야 검열 수위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 편 80년 말부터 영화계엔 외화가 대세였다

87년의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외국인도 국내에서 영화업을 할 수 있도록 함
수입편수 쿼터제 및 수입가격 상한제 폐지
영화업 등록 예탁금 인하

외국인도 국내에서 영화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서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직접 국내 법인을 만들어 영화를 들여올 수 있게 되었다. 1년에 수입할 수 있는 영화 숫자를 제한하던 편수 쿼터제를 폐지했고 수입 가격 상한 역시 폐지함으로써 최신 미국 영화를 극장에서 금방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할리우드 영화의 융단폭격을 허용하는 시기였다.

연쇄테러

<실제로 단체가 있었던 건 아니고 한 남자가 자처한 거다>

한국 영화계는 1988년 첫 할리우드 직배 영화인 UIP의 <위험한 정사> 개봉 반대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직배 영화는 그 이후에도 연이어 <레인맨>, <인디아나 존스 3>등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한국 영화계는 직배 영화를 개봉하는 극장에 뱀을 풀고 극장에 화재를 일으키는 등의 무리수를 둘 정도로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그 와중에 할리우드의 최신 경향을 직접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네필들이 생겨나는 시기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1990년이 찾아왔다.

다음주부터 <너희가 90년대 영화를 아느냐>에서는 1990년부터 1999년까지, 그 해를 대표할 만한 1개의 영화를 선정하여 소개한다. 외국 영화, 한국 영화 가리지 않고 썰을 풀면서 90년대 영화계를 추억하고자 한다. 워낙 외화들이 강세를 보였던 90년대인 만큼 초반에는 외화 위주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가 뒤처지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럼 타임머신을 타 보자.

<너희가 90년대 영화를 아느냐>

  1. 1990 사랑과 영혼 – 귀여운 여인
  2. 1991 미져리 – 나홀로 집에
  3. 1992 동방불패 – 결혼 이야기
  4. 1993 서편제 – 쥬라기 공원
  5. 1994 펄프 픽션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6. 1995 중경삼림 – 개같은 날의 오후
  7. 1996 더 록– 악어, 세 친구,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8. 1997 넘버3 – 할렐루야
  9. 1998 타이타닉 – 약속
  10. 1999 쉬리 – 밴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