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술을 많이 마셨는데 어제도 술을 마셨더니 대가리가 깨질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말만은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고 키보드를 잡았다.

지난밤엔 미스핏츠와의 술자리였다. 그리고 내 옆자리엔 최경환을 위한 변론을 쓴 ‘비가오려나’ 님이 앉았고 우린 많은 이야기를 함께했다.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던 와중에 내가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실체도 없는 초이노믹스는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도 아닌데 왜 그런 사람들을 대변하는 글을 썼냐?”고 묻자, 그는 “그런 물음은 결국 편가르기 밖에 되지 않는 거 같다”고 답했다.

편가르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편가르기”는 민주주의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현대 민주주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5천1백만이 넘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의 의견을 대신 말해줄’, 다시 말해 ‘대의’해줄 사람을 뽑아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또, 이해관계가 집단화됨에 따라서 각 집단과 계층의 이익을 집약하고 표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고 그로 인해 탄생한 것이 ‘정당’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새누리당 이라는 정당 소속이다.

내가 지난 밤 ‘비가오려나’님에게 저런 이야기를 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나 새누리당은 우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역시 그들을 대변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비가오려나’님의 표현을 따르자면 저들은 우리 편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추진하는 초이노믹스는 ‘은행 대출을 통한 부동산 띄우기->경기 활성화->일자리와 임금 증가->가계소득 증대->경기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카지노믹스)

초이노믹스는 빚 좋은 개살구(오타가 아니라 진짜 빚만 좋음)이다.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지금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뉴스도 안보고 겨울잠이라도 자고 계셨나 보다. 눈감고 귀 막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출받아서 집 사라는 정책을 만든다는 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지금의 정책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그대로 뒤따라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웃나라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침체에 빠질 때 여러 특징을 꼽지만 가장 크게 꼽는 다섯 가지 특징 유동성, 빚, 정책, 구조조정, 불확실성을 ‘5대 함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소름 끼치는 사실은 이 다섯 가지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개만 더 찾으면 신룡이 나타나서 경제를 살려줄까?)

단 한 가지 소원만 들어 주마....????

단 한 가지 소원만 들어 주마….????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초이노믹스는 우선 모든 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정책 함정’에 빠져있다. 박근혜 정부가 시작하고 부동산 대책이 8번 발표가 되었는데 실제로는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정책들의 골자가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서 ‘유동성 함정’에 빠진다.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원인은 국가채무와 가계부채가 이미 각각 1000조원을 넘어가면서(둘이 합쳐 2천조) 소비나 투자, 그 어디에도 돈을 쓸 여력이 되지 않게 되는 ‘빚의 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함정카드발동

최저임금개선이나 비정규직 개선과 같은 경제구조 개혁을 외치지만 전혀 개선은 되지 않는 ‘구조조정 함정’에 빠지는 이유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개혁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4대강이나 자원외교 등 누군가를 위한 바벨탑 같은 사업을 하다 보니 빚이 너무 많아져서 개혁이 어려워진 거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서 그냥 불확실하게만 생각하게 되고, 불확실하니 소비도 안하고 투자도 안 하니 경기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불확실성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왜 서민과 청년들에게 도움도 안되고 효과도 없는 부동산 대책을 계속해서 내놓는 것일까? 정답은 ‘편’이다. 저들은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지 않기를 원하는 국민’의 편에 서서 대변해주는 것이다.

물론 집값이 무조건 싸져야 된다고 주장하고 싶은건 아니다. 단기적으로 부동산 정책들은 몇 억씩이나 되는 비싼 돈을 주고 자가를 마련한 중노년층의 노후복지를 위해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매년 수십만 채의 공실률이 발생할 것을 예상해보면 우리나라에도 ‘잃어버린 20년’이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편을 가를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에게 주권이 있기 때문에 모두의 생각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상호의 이익을 위해 정당이라는 이름 하에 뭉치게 된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는 이런 말이 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속의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가 아닌. 국가에 순응해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

이 책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이다. 우리 사회의 악은 누구일까?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옳다고 맹신하고, 고유의 역할을 벗어나 독자적 이해관계 집단으로 변하여 과두제적 철칙을 관철해나가는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다. 때문에 우리는 누가 자신의 편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