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금요일 오후 5시 공채 서류 지원 마감합니다!

취준생으로서, 닥쳐오는 3월 공채에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은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아직 대학생이던 2012년. 학교 도서관에 앉아 시험 공부를 하는 것 또한 그랬다. 필기를  빽빽히 정리하느라 손목은 아파왔고, 끝나지 않는 범위는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때 나는 문득, 어릴 때 부모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떠올렸다.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공장 간다~”

공장. 일용직 노동자. 청소부.

자신의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길 원하셨던 부모님께선 나의 공부 의욕을 높이기 위해 종종 특정 직장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주는 방법을 쓰셨다. 2012년, 시험기간을 맞은 대학생으로 도서관에 앉아있던 나는 문득, 부모님께서 말씀하시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이 궁금해졌다.

일용직 노동자에 대해 휴대폰으로 이것 저것 검색해보다 알게 된 것은 ‘사랑의 밥차’ 라는 봉사 활동이었다. 기사 몇 줄이 그 활동을 설명했다. 그 몇 줄. 사람들이 일용직 노동자분들에게 가졌던 관심은 딱 그 정도였던 걸까. 여튼 그 몇 줄의 기사로 나는 이런 정보를 얻었다.

사랑의 밥차, 인력 시장에 나가는 일용직 노동자 분들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드리자는 취지로 운영된다. 그리고… 바로 내일 새벽 사랑의 밥차가 남구로 인력 시장에 온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갈까, 여자 혼자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밤 중에 나섰던 그날의 일기를 이 곳에 남긴다.

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날씨는 추움

11월 말이라 찬바람이 제법 거세다. 정말 혼자서 가느냐는 후배의 카톡에 웃으면서 답장을 하긴 했지만 조금 무섭다. 하지만 벌써 막차를 타고 남구로역에 도착했으니 이제 와서 어쩔 건가. 미리 검색해둔 주변 찜질방에 들어갔다가 닭도 잠들어 있을 이른 새벽,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가로등만 켜진 골목. 거리에 사람은 많지 않았고 길을 헤매다가 몇몇의 중국인 무리들을 만났다. 중국인들의 인력 시장을 갈 뻔했어!

한참 헤매다가 발견한 사랑의 ‘빨간’ 밥차. 다행히 아직 준비 중이었다. 차 앞에는 밥을 받으려고 기다리시는 일용직 노동자 분들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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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이름 ‘사랑해 빨간 밥차’ 봉사자 분들께 인사 드리며 학교 신문 기자라고 뻥을 쳤다.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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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 준비하시는 목사님. 말은 많이 하지 않으셨지만 묵묵히 일을 하셨다. 머..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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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동자 분들께서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한다는 말씀을 한 봉사자 분께 들었다. 거칠고 차가워 보이는 그들의 사진을 찍을 용기가 더욱 사라져 애꿎은 가로등 불빛을 찍는 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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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국의 열기가 밥차 천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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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 시작. 난 아직 얼이 빠진 채로 덩그러니 서서 밥차만 찍고 있었다. 왜 더 자세히 알아볼 생각도 없이, 건네볼 말 한마디 준비 없이 왔을까 자책감도 국통에 풍덩.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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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배식 하시느라 힘드실 봉사자 분들의 표정들. 한 분 한 분 맛있게 드시는 모습들을 바라보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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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디 어디 신문사에서 몇 번 왔었는데 사진들 찍어 가봤자 변하는 거 없어” 이제 거의 식사가 끝날 무렵. 이 장소에 갑자기 등장한 낯선 날 발견하시고 약간은 경계하시는 듯 했다.

마지막 뒷정리까지 다 끝낸 골목길에서 자판기 커피를 드시는 모습. 이번엔 약간 큰 소리로 사진 찍겠다고 외쳐 골목길을 꽉 채우셨던 거의 모든 노동자 분들이 사진기를 피해 빠져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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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소심하게 나마 찍던 중에 내게 먼저 말을 건네주셨던 형님.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시며 왜 혼자 여기에 왔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형님께서는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시다 IMF 때 실직하시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하셨는데, 브라질에서 아무것도 없이 맨 땅에 헤딩하듯 갖은 고생 끝에 계약을 따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현재 후배들이 비교적 쉽게 일을 하는 것도 그 당시 자신들의 노력 끝에 있었다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런 분들이 왜 실직을 했어야 했던 걸까? 형님과 얘기를 이것저것 나누며 자연스레 다른 형님들도 주위로 모여들어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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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형님들도 일하러 가셔야 하고, 나도 학교로 돌아가서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 해가 뜨고 또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

그날 형님은 맨 손을 호호 불어가며 사진 찍던 날 보시고 편의점에서 흰 장갑을 선물해주셨었다. 나는 작은 답례로 자신의 사진이 가지고 싶다고 하시던 형님에게 문자로 사진을 선물해드렸었다. ‘정말 고맙다’란 형님의 답문자.  2015년 3월, 지금 내 휴대폰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내 마음속에는 계속 남아있을 것 같다.

처음 인력 시장에 갔을 땐 나와 아주 다른 사람들이라서 못 어울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인력 시장의 형님들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잘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일지 몰라도, 우리 아버지들과 같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괜히 가졌던 편견이 부끄러우면서도 죄송했다. 당시에 중국인들의 인력 시장이 커지면서 점점 일거리가 줄어든다고 걱정하시던 형님들이 기억난다. 잘 계실까? 이 사진들을 찍을 수 있도록, 이 글을 남길 수 있게끔 도와주셨던 형님들과 봉사자 분들 그리고 사랑의 밥차 모두 고맙다.

형님들 건강히, 안녕히 계세요. 2015년의 나도 이제 다시 자기소개서 쓰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