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세대의 꿈은 그랬다. 토끼 같은 자식을 둘셋쯤 낳아 서울 한 켠 좋은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 그것이 한국 중산층의 드림하우스, 뭇 서민의 욕망이었다. 이제 그런 꿈은 깨어진지 오래다. 월세에서 아둥바둥 저축해 전세로, 전세에서 아둥바둥 저축해 다시 자가로. 그런 ‘주택 사다리’를 타는 것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도 바뀌었다. 토끼 같은 자식새끼를 낳겠다는 욕망들도 사라지고 없다. 가족 위주의 삶을 계획하기 이전에 다른 것들을 고려한다. 집이 담는 가치가 바뀐다.

이전, 일본의 드림하우스는 교외에 직접 지은 ‘맨션’이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짱구네 집을 상상하면 된다. 상사맨인 짱구 아빠처럼 한적한 동네에 2층 짜리 맨션을 직접 설계해 짓는 것이 일본의 부모 세대가 꾼 꿈이었다. 이제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은 드물다. 도쿄에 사는 정주과 씨는 “그런 집은 미래의 가족을 위한 것인데 요즘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집을 꿈꿀지, 그 집에서 누구와 함께할지 그리는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만난 청년들을 통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1) 부모 세대의 집을 가지긴 힘들 것이다 – 도쿄 외곽 부모님의 집에서 사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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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도쿄 네리마에 위치한 단독주택에 살고있다. 조부모가 가진 땅에 건물을 세웠기 때문에 쉽게 집을 얻었다. 2층짜리 이 주택 안에는 다섯개의 방과 거실, 그리고 각 층마다 화장실이 딸려있고 욕실이 분리되어 있다. 가격은 1억엔 이상. 1년에 20만엔 정도를 지불한다.

그가 사는 집에는 어릴적부터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가득하다. 직장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리지만 그래도 그녀는 결혼할 때까진 독립할 생각이 없다. 가족과 가까이에 사는 지금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도 본가와 가까운 곳에 살고 싶지만, 그녀는 자신이 부모님집 같은 곳에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배급사에서 일하는 그녀는 “지금 집을 지금 일해서 버는 돈으로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절대 못 살거야(ㅋㅋ). 유명한 대학에서 대기업에 입사해서 40살까지 일하고 이 집 같은 곳에 살려고 해도, 1년에 1000만 엔 이상을 저금해야 해. 아니면 진짜 진짜 부자랑 결혼을 하든가…”

더이상 집은 ‘사는(buy)’ 곳이 아니다. 관점이 바뀌고 있다. 집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너무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40년짜리 론을 껴서 집을 살 만큼 가치가 있지도 않다. 로또를 맞거나 1년에 1000만 엔 이상을 저금하거나 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가족과 가까이 살기를 원하지만 어떤 ‘집’을 사고 싶다는 소망을 별로 없다.

2) 집은 가족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 도쿄에서 자취하는 사회초년생 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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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일하는 그녀는 도쿄 외곽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다. 밤 12시까지 일을 하고 아무도 없는 집 문을 열면 쓸쓸하고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집은 그녀에게 그냥 잠만 자는 곳이다. “내가 지금 일이 너무 바빠서 그냥 쉬는 장소야. 그냥 자. 그냥. 진짜 잠만 자는 장소”. 그녀는 회사에 갔다가 집에 바로 와서 잠깐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단순한 일상이다.

그녀의 가족은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치바에 산다. 하지만 그녀는 독립을 택했다. 조부모님의 집에서 3대가 함께 사는 생활에 ‘자유’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되게 부담이 많았던 것 같아. 서로서로. 내가 잘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감시해야 하고 부모님이 잘 하지 않으면 위에 (조부모님이) 감시해야 하고, 서로 감시하고.”

그녀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집’을 꿈꾸고 있다. ‘다음 세대’까지 생각하는 그런 집은 아니다. 이전 세대에서 꿈 꾼 ‘짱구집’은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까지 고려한 집이다.

“(짱구집 같은 경우에는) 거기서 새로운 세대가 생겨도 가족이 거기 계속 있는 거지.(…) 집은 우리 건물이라서 남아있고 새로운 세대가 생기면 그 새로운 세대의 아들 딸이 거기를 책임져야 하는 거고.”

그녀가 꿈꾸는 집은 자신과 자기 파트너가 함께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을 공간이다. 정착과는 거리가 멀다. 일을 하면서 언제든 거처는 옮겨다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를 원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집은 출장 가방과도 같다. 자신이 어떤 일을, 어디서 하느냐에 딸려오는 부차적인 것이다.

3) 집 따위엔 흥미가 없다.   – 도쿄의 ‘강남’에 사는 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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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대에 다니는 쵸는 비싸기로 소문난 도쿄의 ‘에비수(Ebisu)’에 살고 있다. 그는 부모 세대의 집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론을 받아서 살려고만 하면 살 수는 있을 것”이라며 끄덕였다. 단, “외국계 은행이나 컨설팅, 주식 이런 쪽 직업을 가진 다음에 저축을 엄!청! 해야 한다”는 것이 단서 조건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곳에 살아야겠다는 꿈은 없다고 했다. 그는 “집이 유복하니까, ‘성공해야겠다’ 그런 건 없다. 이미 편하고, (부모님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니까. 물질적인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집은 사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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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그의 친구는 그를 가리키며 ‘슈퍼리치’라고 소리쳤다 (…)

“집 따위엔 흥미 없어.”

그에게 집은 별로 가치를 둘만한 게 아니다. “어차피 집에도 별로 없을 거다. 회사에 갈 테니까. 부엌이랑 거실만 있으면 뭐. 드림하우스도 생각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은 영어도 할 줄 알고 중국어도 할 줄 아니 외국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는 어디든 택해서 살 수 있다. 그가 가진 물질적 자산과 능력 덕에 그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집의 의미가 변하고 있다.

집에 담는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정착해서 ‘마을’과 ‘이웃’을 가진다는 개념이 희박해졌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공간이 아니다. 집을 소유하기보다는 빌리기를 택한다. 무리하게 주택 융자금을 상환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할 집을 상상하는 건 ‘좀 더 나중의 일’이라고들 말한다. 이전엔 가족을 꾸려 일찍 부모집을 떠났다. 하지만 이젠 자신의 가족을 일찍 꾸리는 사람이 줄었다. 아이의 경우처럼 가족 내에서 미혼 상태로 오랫동안 부모와 함께 살거나, 미오의 경우처럼 집을 떠나 자유롭고 고독한 1인 가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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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슬하에 사는 일본의 미혼 독신자 중 25~29세의 비율은 24%(1980년)에서 41%(2005년)까지 증가했다. 30대는 더 많다. 30~34세의 가구 내 독신자 비율은 8%에서 25%로 세 배 넘게 늘었다. 이 중에는 아이처럼 일정한 소득이 있고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지만, 독립하고 싶어도 ‘경제적 이유’로 원치않는 동거를 지속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집으로부터의 독립을 택하면 불안정한 생활을 감내해야 하고, 굳이 그 리스크를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족 단위로 함께 사는 가구가 줄었다. 2010년 기준 일본의 1인 가구는 30.3%로 부부와 자녀 가구(28.3%)를 제쳤고 이젠, 가장 많은 가구 형태다. 그리고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방에 한 명씩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간다. 청년 1인가구에겐 특별히 더 그렇다. 이제 집은 별로 그 안에 담는 게 없다. 그냥 자고, 쉬는 곳. 그 뿐이다. 그래서 좀 좁아도 월세가 싼 집이 낫다고들 생각한다. 부엌이 없으면 더 싸니까. 창문이 없으면 더 싸니까. 그렇게 월세도 깎고 집의 의미도 깎는다. 어차피 집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잠깐 머물고 떠날 곳이다. 잠을 자고 배터리를 충전해서 나가는 곳. 바깥의 생활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문을 닫는다. 그 안에 고립 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각자의 ‘방’이 생기면서 우리는 함께 찾을 수 있었던 집에서의 행복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집은 다양한 모습의 삶을 담는 껍데기 같은 것이다. 집의 의미가 변했다면 어떻게 변한 것인지, 그것을 감싸는 껍데기는 어떻게 변해야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집에 대해 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첫번째로 소개할 곳은 긱하우스. 이 집은 어떤 새로운 것을 담고 있을까? 긱하우스는 사람 사이의 새로운 연결방식, 새로운 커뮤니티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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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하우스에선 ‘낯선 사람’의 방문이 낯설지 않다. ‘느슨한 연결’이 이 쉐어하우스를 지탱한다. ‘트위터’ 에서의 관계 같은 느낌이랄까. 긱하우스를 만드는 데는 아무 조건이 없다. ‘인터넷과 IT에 관심 있는 사람’ 정도가 조건이다. 긱하우스마다 분위기가 천차만별인데, 요요기 긱하우스는 꽤나 붐비는 편인 듯 했다. 에어비엔비 사이트에서 이 곳을 찾아온 외국 여행객도 있고 다른 지역의 긱하우스에서 초대한 손님이 오기도 한다고 했다. 거실엔 손수 만든 커다란 토토로 인형과 프로그래밍 관련 책이 가득한 책장, 그리고 노트북 여러대가 놓여있었고 구석엔 마실 것들이 가득했다. 넓은 거실에서 피자를 시켜먹고 같이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게임을 할 수 있는 방에 들어가서 같이 놀거나 하다가 각자 방으로 갈 수 있다. 4층 짜리 건물인데, 연립주택 같은 느낌은 아니고, 한 사람이 지나가면 꽉 찰 정도 너비의 통로를 지나면 구석구석 문이 나온다. 2층 침대가 2개씩 들어간 방이 세 군데. 다같이 산다. 요요기점 말고도 여기저기 긱하우스가 있다. 신주쿠에도 있고, 시부야에도 있고, 심지어 말레이시아와 싱가폴 국경 부근에도 긱하우스가 있다. 누구든 긱하우스란 이름으로 이런 방식의 집을, 이런 방식의 삶을 만들 수 있다. 오픈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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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하우스 입주민 마사유키 타네노부씨. 사진/미스핏츠

긱하우스 창립자 Pha는 빈둥거리며 니트족으로 사는 법을 설파한 꽤 geek한 사람인데, 누구든 이 이름을 따서 이런 걸 만들어도 좋다,는 취지를 알렸다.  그 취지대로 잘 퍼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만드는 집이 꽤 괜찮은 삶을 경험하게 해줬던 모양이다. 긱하우스 입주민 마사유키 타네노부씨는 “긱하우스는 필요성이 없어지면 없어지기도 하고 필요하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긱하우스는 재밌는 연결을 만들어준다. 오프라인에서 만드는 트위터식 인간관계. 가족이나 연인이 아니어도 좋지 아니한가. 이 새로운 연결은 마사유키 씨 삶에도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긱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이 만든 코워킹 오피스, 긱오피스(Geek office)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프로그래밍 스터디도 하고, 사람들이랑 쿵짝쿵짝 일을 벌이기도 하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웹 관련 회사에서 일을 알선 받아 알바도 한다. 그는 커다란 사진기를 갖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열심히 블로그에 글을 쓴다. 고향인 히로시마에서 식품 관련 업체 일을 할 때는 이런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긱하우스는 마사유키 씨가 흥미로운 사람들과 ‘느슨한 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 관계를 바탕으로 그는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유유자적 살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선 오히려 이런 ‘커뮤니티’가 없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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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되 함께 있지 않는다. 방문을 닫기 때문이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 그들을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K2 인터내셔널은 히키코모리와 니트의 문제에 주목하고, 청년의 자립을 돕는 활동을 하는 곳이다. K2 인터내셔널은 누군가와 함께 사는 집을 ‘자립의 기반’으로 본다. 이 곳에서 집은 동료를 연결하고, 누군가와 소통하는 삶을 담는 그릇이다. 이런 관계의 회복이 있어야 자립도 가능하다. 집은 그런 관계의 회복을 잘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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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옆 화덕. 사진/미스핏츠

K2 요코하마의 마사이 사토 씨는 6시 40분이면 팜하우스의 1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가 지내는 팜하우스의 동료들과 한 시간 동안 팜하우스 앞에 있는 텃밭에 아침 농사를 짓는다. 아침을 먹고 청소 시간이 끝나면 각자 취로활동 나가거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텃밭엔 가까운 K2 시설과 기숙사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꽂혀있었다. 한 구석에 있는 화덕은 마을 사람들과 피자를 구워먹거나 할 때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5년 전, 요코하마 와카모노(젊은이) 자립 지원 사업을 통해 K2에 오게 됐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일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직접 인터넷에 검색을 해서 그에게 상담을 권유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팜하우스에서 다른 K2 프로그램 참여자와 공동생활을 하며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제 스태프다. 다른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팜하우스의 이시 씨는 작년 2월까지 슈퍼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이 집에서 공동생활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웠다. 타카 씨는 K2의 다른 기숙사에 살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동료와 함께 사는 것이 그가 자립하는데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내자라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사는 두 명 동료 또한 고립된 집에서 나와 새롭게 사회생활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 한 사람은 20년 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약한 부분을 보여주면서 일을 해서 서로 서로 쓰다듬어주는 관계”라고 동료 관계를 표현했다. 그에게 집은 ‘생활’을 연습하는 공간이고 동료를 만드는 공간이다. 사람이 자신의 똑바로 서기 위해선 어디든 ‘비빌 언덕’, 마음 둘 곳 하나쯤은 필요한 법이다. 무너진 관계망을 다시 엮고, 흩어진 개인을 모아서 다시 일으키는 곳. 일과 커뮤니티가 있는 집에서 청년들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

“집은 청년 문제를 풀어내는 커다란 그릇”

‘청춘의 집’을 뜯어본다고 할 때 처음엔 ‘집’문제가 눈에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 안에서 ‘청춘’이 겪는 수많은 문제가 함께 보인다. K2는 히키코모리와 니트를 지원하는 단체로, 청년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불안정한 노동과 일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단절된 관계망. 이 문제들을 엮어내고 풀어내는 커다란 그릇으로 집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K2 인터내셔널의 이와모토 마미 씨는 K2 사업엔 세 가지 핵심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일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생활, 주거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직장은 만들어주고 셋째는 동료와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고, 무언가를 담는 그릇이다.

이와모토 마미 씨는 “한국도 일본의 상황과 닮은 것 같다. 경쟁사회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행복이나 충실감이 느껴지는 삶은 마음가짐이라든지 가족 관계, 혹은 내가 어떤 곳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것들이 같이 좋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지금 일본 정부는 ‘경기를 좋게 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젊은이들이 일하게 되면 이런 현상(청년의 자립 문제)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삶의 방식이라든가 주거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녀에게 ‘청춘의 집’은 자립의 기반이고, 삶의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