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도착한 날, 공항 버스를 타고 내린 솀록 호텔 앞은 그 어느 도시보다도 화려하고, 눈이 아플 정도로 밝게 빛나는 네온싸인 천지였다. 그리고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늘 이야기하듯이, 거리의 한 코너를 돌 때마다 보석상, 유명 브랜드 샵, 화장품 가게가 즐비했다. 그 눈이 돌아갈 듯한 풍광에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예약한 호스텔에 도착하기 위한 여정은 험난했다. 삐까번쩍한 거리를 넘어 한 골목 한 골목을 더 들어갈수록 여기가 쇼핑 천국, 관광 천국 홍콩 맞나, 싶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홍콩의 카오룽 반도, 집값 비싸고 명품 많기로 유명한 그 동네의 Nathan Road에서 딱 다섯 골목만 떨어져 나오면 골목에 아무렇지 않게 툭 튀어나온 섹스샵과 담배를 피우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매춘부, 어디서 왔는지 모를 수많은 명품 짝퉁이 늘어선 도깨비같은 야시장을 만날 수 있다. 길 하나를 두고 숨쉬는 서로 다른 삶들, 그게 홍콩의 첫 인상이었다.

결국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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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홍콩에 주거 문제를 취재하러 간다고 했을 때만 해도 주변의 반응은 ‘응? 거기가 왜?’ 였다. 사실 집값이 치솟는 문제는 홍콩만의 문제는 아닐 뿐더러, 도시 자체가 유명한 금융 허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끊임 없이 몰려들고, 결국 초과잉 인구 밀집 지역들이 만들어져 버린 것처럼 보이니까.

그러니까, 미스핏츠가 굳이 현장을 가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그런 사실들로 가득 찬 것 같은 도시라고 느낀 것이다. 나 역시 홍콩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동네를 둘러 보기 전까지는 반쯤은 그렇게 홍콩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집값이 비싼 동네’ 정도로.

하지만 막상 마주한 홍콩의 빽빽한 아파트 숲들 사이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의 삶은 때로는 골목과 골목 사이로, 혹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로 갈라졌다. 끝없이 오르는 집값의 뒷면에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서라도 임대료 규제를 전혀 하지 않으려는 정부가 있었고, 해마다 심하면 두 배, 세 배 씩 오르는 임대료를 못 견디고 좁디 좁은 단칸방(사실은 방 수준이 아니라 정말 정사각형의 상자 하나에서 사는 느낌인데, 홍콩에서는 이를 큐비클cubicle이라고 부른다)으로, 혹은 불법 개축된 사무실 공간으로 밀려나는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밀려 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 서기도 하고, 리모델링이 진행되기도 하고, 거대 규모의 복합 쇼핑몰과 새로운 지하철역이 들어선다.

홍콩의 ‘T존’, 관광지대

홍콩에 관광을 하러 왔을 때 마주하는 지역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카오룽 반도의 값비싼 몰들을 연결하고 있는 메인 스트리트, 또 거기서 갈라져 나온 MRT(지하철) 역 주변,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기가 질릴 것 같이 유명한 세계 각국의 금융 회사들이 모여 있는 센트럴, 야경을 보기 위한 빅토리아 파크 등등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는 갓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비즈니스맨들, 외국인들이 자연스레 상상이 간다. 나 역시 홍콩에 관광을 하러 왔을 때는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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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관광 설명이 붙어있는 지대를 주욱 보면, 거꾸로 선 T자 같다.

 

하지만 홍콩의 지도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구와, 지하철역과, 동네가 있었고 그 동네들에는 내가 관광객으로서 왔을 때는 보지 못하던 홍콩이 있었다. 여기, 취재를 위해 머물면서 보고 들은 홍콩을 소개하고 싶다.

첫날 마주한 홍콩의 ‘사람 사는 동네’ 브레마르 힐 부근

굳이 ‘부근’이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브레마르 힐’ 자체는 값비싼 아파트들과 온갖 학교들의 집합이지만, 그 아래의 산기슭과 도로 근처는 공공주택과 지역 건설회사가 지은 재건축 직전의 아파트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동네를 우리에게 소개한 조나단은 브레마르 힐을 홍콩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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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하우역의 A번 출구로 나서면 제법 고즈넉해 보이는 빅토리아 공원이 나온다. 지하철 역 바로 옆에는 지어진 지 꽤 돼 보이는 공공주택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시선이 닿는 곳 마다 아파트들이 한창 공사 중이다. 땅값과 집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아파트를 허물고 재건축 할 견적이 안 나와서 리모델링을 택하는 것은 홍콩에서 매우 흔하게 있는 일이다. 집 안에 걸 곳이 없어서 널어둔 빨래들이 창문 근처에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다. 이, 빨래들은 언덕을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잘 사는 집에서는 빨래를 집 밖에 잘 걸지 않는다. 정말로 집 안에 공간이 없는 경우에만 그렇게, 빨래들은 먼지를 흠뻑 머금고서라도 창문께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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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공사 중인 아파트 뒤로는 홍콩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각종 음식을 파는 조그마한 식당들, 그리고 그 골목이 있다. “여기도 원래는 좀 더 컸었는데, 지금은 골목 규모가 줄어든 것 같아. 아무래도 대로변 근처는 비싼 음식점들이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골목들을 뒤로 한 채 슬슬 브레마르 힐을 등반하기 시작하면, 야트막한 동산을 끼고 굽이치는 길들 양쪽으로 늘어선 아파트들과 학교들의 행렬을 볼 수 있다. 사실 아무리 인구 밀집 지역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중학교 옆에 또 중학교가, 유치원 옆에 또 유치원이, 고등학교 옆에 또 고등학교가 있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브레마르 힐에는 빽빽한 아파트 수 만큼이나 빽빽하게 학교들이 들어서 있다. 여중 옆에 남중, 남중 옆에 국제학교, 국제학교 옆에 몬테소리 유치원, 몬테소리 유치원 건너편에 로컬 고급 유치원, 뭐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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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마르 힐의 위성사진. 학교들이 곳곳에 보인다. 사진/구글맵 캡쳐

 

그리고 꼭대기를 걸어 올라가면 4년제 사립대도 나오고, 그 옆에는 국제 고등학교, 국제고등학교 아래에는 일본인 학교도 나온다. 이렇게 학교가 몰려 있는 게 혹시 브레마르 힐이 무슨 교육 특구라서 그런 것인지 물었다. 조나단의 대답은 “No”였다. 워낙 아파트가 높고 세대수가 많아서일까. 보통 이렇게 언덕을 끼고 돌면서 아파트가 늘어선 지구에 가면 쉽게 학교가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동산의 능선을 따라서 줄줄이 늘어선 아파트들은 ‘정말로 비싸고 좋은’ 경우에도 우리나라로 치면 3~40평 정도에 해당하는 사이즈다. 얼마 정도로 좋냐면, 전용 셰프가 있는 거주민 전용 식당과 피트니스 시설, 사설 경호원이 문 앞을 지키는 정도다. 타워팰리스 풍의 장식이 달린 대문 앞에서 고급 승용차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선글라스를 쓴 아저씨들이 째려본다. 대만의 디바오 앞에 서 있었던 것 마냥 주눅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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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왜 꼭대기에 비싼 집이 있냐고 물었다. 조나단의 대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일단 공기도 그렇고, 전망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사는 조건이 산등성이일 경우 더 좋아진단다. 산기슭에 달동네가 몰려 있는 서울과 완전 정반대인 생각이 흥미로우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이유를 듣고 나니 이해가 된다. 홍콩이 영국령이던 시절, 홍콩에 사는 영국인들은 대부분 (그리고 브레마르 힐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홍콩의 ‘냄새나는 아시안’들과 따로 살기 위해서 그들을 피하려고 언덕으로 스윽 스윽 올라갔다. 그래서 산등성이를 따라서 길이 생기고, 길 양 옆으로 고급 맨션들과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란다. 그의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길을 따라 늘어선 맨션들 중 조금 낡은 맨션들에서는 확실히 영국식 건축 비슷한 것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야트막한 브레마르 힐의 꼭대기 쪽에 있는 외국인 학교와 사립 대학, 그리고 조나단의 집을 둘러보고 나서 반대방향으로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좁은 2차선 도로 틈바구니로 미니 버스와 2층 버스가 구불구불 내려간다. 언덕의 중반 즈음에 이르면 늘어선 고급 아파트들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 낡은 펩토 빛깔의 아파트 단지들을 마주한다. 평일 대낮이라 몇몇 드나드는 승용차를 빼고는 한적했던 아파트들에 비해, 아파트 상가에도 사람이 많다. 정확히 말하면, 노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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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주택은 ‘사회주택’이라는 개념이 홍콩에 처음 들어 섰을 때 건설됐다. 그 때만 해도 여기에 사회주택을 지은 정부는 브레마르 힐이 영국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면서 값비싼 아파트가 끝 없이 들어설 줄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이 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도 지나치게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내보내고 금싸라기 같은 땅을 재개발 하려고 해도 거주자들에게 주어야 하는 보상금이 지나치게 높아 재개발은 물 건너간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면서 다른 맥락들이 있지만, 비슷하게 재개발을 하는 경우더라도 워낙 주어야 하는 보상금의 순수한 규모 자체가 크다 보니까 – 땅값이 너무 비싸서 – 회사들이 엄두도 못 내는 그런 상황인 거다.

그래서 맨 꼭대기에서 마주한 조나단의 아파트 단지도 그렇고, 상당수의 아파트들은 아무리 고급 아파트라고 해도 세대 곳곳에서 리모델링이 진행중이었다. 특히 최근에 유행하는 리모델링은 테라스를 트고, 공기가 통하도록 돼 있는 테라스 곳곳을 유리로 뒤덮는 스타일이다. 위태위태하게 난간에 매달려 일하는 인부 아저씨들에게 인사를 건네니 화답하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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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서울대’, 홍콩대 대학가와 케네디 타운

이번엔 홍콩의 ‘서울대’격인 홍콩대 부근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홍콩대는 홍콩에서 가장 비싸고 화려한 지구인 센트럴에서 서쪽으로 지하철 15분 거리다. 조나단은 브레마르 힐의 위치를 설명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 여기서 서쪽으로 고개를 돌려봐. 그래, 센트럴이 있는 그 방향. 그 쪽으로 갈수록 더 잘 살고, 깨끗한 동네고 여기서 동쪽으로 갈 수록 더욱 가난해 지지.” 홍콩대는 그 서쪽에서도 거의 서쪽 언저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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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하는 친구, 대학교 기숙사를 사는 한국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하루는 자취하는 친구 방에서 함께 소주(!)를 마시며, 하루는 기숙사에 사는 친구와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또 하루는 그 기숙사에도 놀러가 보면서 여러 번 근처를 기웃거렸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든 대학가 근처의 모습은 꽤 비슷한 것 같다. 대학을 중심으로 계란후라이처럼 퍼져 있는 학생들의 거주지, 그리고 그 틈새에 소금 후추처럼 솔솔 뿌려져 있는 편의 시설들과 적당히 비싸지 않은 밥집, 술집. 그 구성은 꽤 비슷했지만 홍콩의 대학가는 훨씬 더 압축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작년 11월 께에 처음 개통된 MTR을 타고 홍콩대 역에 내리면 홍콩대학으로 바로 들어가는 출구와 연결된다. 홍콩은 이렇게 지하철 출구가 다른 건물 – 공공건물이든, 그냥 건물이든 – 과 연결돼 있는 게 일상다반사다. 지하철 출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홍콩대의 캠퍼스 한 가운데. 엄밀히 말하면 2~3년 전까지만 해도 캠퍼스의 동쪽 입구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최근에 맞이한 대학의 100주년을 기념해 ‘100주년 기념 캠퍼스(Cenntenial Campus)’가 원래 있었던 캠퍼스만큼이나 크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하철 출구에서 내려서 정면으로 마주한 캠퍼스의 왼쪽은 약간 낡았지만 학생들의 왕래가 활발하고, 오른쪽은 훨씬 더 새 것의 냄새가 풍긴다. 주로 홍콩대 친구들과 인터뷰를 하고는 했던 홍콩대 중도 스타벅스를 걸어 지나고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홍콩대 남쪽 정문으로 나올 수 있다.

워낙 산등성이에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보니, 건물과 건물 사이의 복도에 엘리베이터도 많고 야외 에스컬레이터도 많다. 심지어, 홍콩대 앞의 란콰이풍 근처 골목에는 아예 저 아래부터 산등성이의 꼭대기까지 에스컬레이터가 층층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골목 틈바구니의 상가 건물 윗층에 대학생들이 많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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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성이 아랫쪽부터 꼭대기까지 언덕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기다란 길이 있다면, 이를 기준으로 가로로 줄 긋듯 그어진 골목들은 골목골목마다 완전히 다른 느낌을 자랑한다. 정육점과 조금 낡은 듯한 상가, 그 사이로 오래된 딤섬집들이 구석구석 자리잡은 골목 바로 아랫 골목은 한창 철거 후 재개발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먼지를 헤치고 한 골목만 더 내려가면 요즘에는 관광객들에게도 슬슬 소문이 돌고 있는 유명한 유흥가 란콰이풍이다. 워낙 금융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러 오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술값은 말도 못하게 비싸지만 마치 한국의 이태원 같이 다양한 펍, 음식점이 섞여 있다. 심지어… 한국의 파닭도 이 힙한 거리에 진출해 있다!

하지만 유흥가라고 해서 반짝반짝 빛이 나지는 않았다. 거리는 여전히 빽빽하고, 사람들은 다들 마스크를 쓰고 황급히 갈 길을 가고, 도로와 인도는 모두 비좁아 터졌다. 시끄럽고 활기찬 건 분명했지만, 그 거리를 지나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란콰이풍과는 상관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똑 떨어진 것 같이 신기한 그 거리.

대학 근처의 플랫들이 월세가 한 달에 200만원에 달할 정도로  – 200만원도 비싼 수준이 아니고 잘 구한 수준이라고 하던데 – 비싸기 때문에, 학교의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는 많은 학생들은 홍콩대에서 지하철로 두어 정거장 떨어져 있는 케네디타운을 택한다. 혹은, 그냥 집에서 다니거나 말이다. 그나마 최근에 지하철이 개통돼서 통학은 크게 어렵지 않다고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가장 가난한 동네, 샴 슈이 포深水埗區

홍콩섬에서 가장 부가 흘러 넘치는 곳이 센트럴이라면, 구룡반도에서 이에 해당하는 곳은 카오룽이다. 반도 이름과 똑같은 지하철 역 이름을 패기 있게 붙여 놓은 것 부터 느껴진다. 그 카오룽에서 지하철을 타고 딱 두어 정거장만 더 올라가면 행정 구역이 바뀐다. 홍콩의 18개 구 중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샴 슈이 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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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주거 및 인권에 힘쓰고 있는 NGO인 SOCO의 카오룽 부근 사무실을 방문하기 위해서, 샴 슈이 포 지구를 찾았다. 지하철 역에 내려서 사무실을 찾아 가기 위해 생각보다 한참을 걷는다. 길을 살짝 헷갈려서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아파트와 학교들이 줄지어 서있던 탓이다. 하지만 살기 괜찮아 보이는 아파트와 학교들은 서 카오룽 고가도로(West Kowloong Corrider)를 건너면 모두 사라진다.

그 대신, 건물의 외벽마저 색이 바랜 듯한 동네를 마주하게 된다. 그 곳이 샴 슈이 포의 초입이다. 허름한 건물 1층에는 철물점과 페인트를 취급하는 오래된 가게들이 있고, 그 가게 안에는 보통 외국인 노동자들이 앉아 있다. 2월 치고 쨍쨍하게 내리 쬐는 햇살을 마주 받으면서 가게 카운터에서 담배를 피던 이름 모를 동남아 사람들은 제법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취재팀 세 명이 지나갈 때마다 호기심이 묻어난 눈빛을 던졌다. 차마저도 잘 지나 다니지 않는 그 오후, 샴 슈이 포의 거리는 거의 숨쉬기를 멈춘 것처럼 정체돼 있었다.

샴 슈이 포 부근은 외신에서도 여러 번 다뤄 졌던 ‘인간 닭장’의 원조격 쯤 되는 지역이다. SOCO에서 만난   쿠웨이(Kui-Wai)는 이를 ‘cubicle’이라고 불렀다. 약 1.5제곱미터 정도 되는, 보통은 정육면체 같이 생긴 공간의 절반을 갈라 한 층은 침대층으로, 다른 층은 식탁으로 삼는다. 혹은, 이마저도 없는 경우엔 하나의 큐비클에 그야말로 ‘닭장’ 같은 철창을 침상 주위로 두른다. 그렇게 한 방에서 보통 세, 네 명이 잔다. 큐비클, 혹은 닭장들은 주로 허름한 사무용 건물에 스멀스멀 스며 든다. 주거용으로 신고돼 있지 않은 사무용 건물의 빈 공간을 불법 개조할 경우, 그 리스크 때문에 집세가 더욱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런 철창 하나라도 세 들고 있으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원 근처의 육교에 이불로, 판자로, 골판지로 대충 몸 누일 곳을 짓고 산다.

저녁이 되어 철창 뒤, 큐비클 안으로 자신의 몸을 우겨 넣기 전, 대낮의 그들은 고가도로 근처의 공원, 혹은 고가도로 바로 아래에 삼삼오오 모인다. 열 여덟 개의 구 중에 가장 가난하면서, 동시에 가장 노인 비율이 높은 탓에 그 고가도로 아래 있는 사람들의 머리는 대부분 하얗게 세어 있다.

건물 틈바구니에 짓눌린 사람들

화려한 야경과 끝없이 늘어선 명품몰, 보석가게와 홍콩에서 사는 사람은 사실 별로 관계가 없다. 그들에게 홍콩은 “사는게 숨막히는 도시”(인터뷰이 Wing Ng)다. 그 건물들의 틈바구니에서 청춘들은 독립을 포기하고 가족들과 함께 살고, 가족이 없는 외국인인 경우엔 두 명이 살아야 할 방 두 개 짜리 아파트에 대여섯명이 끼어 산다. 대학에 들어가 졸업 전까지 한시적으로 살 수 있는 기숙사는 극소수의 이야기다. 도로 하나로, 혹은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로 그들의 삶은 끊임없이 갈라지고 짓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