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 윤대녕의 ‘대설주의보’윤대녕 - 대설주의보

선정의 변

  • 이제 계절의 이름은 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온도는 아직 겨울을 붙잡고 있습니다. 필자도 윤대녕의 대설주의보를 펼쳐든 것은 아직 겨울을 다 떠나보내지 못해서입니다. 봄이라고 날씨, 세상, 친구들, 티비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필자는 아직 봄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독 겨울에서 봄을 넘어가는 시간이 유독 견디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배경이 겨울인 소설들을 꺼내 보곤 합니다. 지난 봄에는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탐독했습니다.
  • 윤대녕 소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반복적인 테마 중에 하나는 오랜 시간에 걸친 남자와 여자의 관계입니다. ‘대설주의보’는 13년에 걸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오후 6시 50분에 내리는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첫 문장

  • 버스가 원통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50분이었다. 이왕 거쳐 가는 길이니 백담사 입구에서 잠깐 세워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으나 운전기사는 퀭한 눈으로 돌아볼 뿐 별 대꾸가 없었다.
  • 터미널 옆 슈퍼마켓 처마 밑에 휴가병들이 초조한 모습으로 몰려서서 피우고 있었다.

달콤한 문장

  • 잠시 후 맨발에 청바지 차림으로 해란이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와 소주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이내 나가려 했다.

“이왕 엎질러진 물인데 바닥이나 닦고 가지그래?”

“나도 그러고 싶지만 여긴 엄연히 절이잖아요. 옆방 사람들도 신경 쓰이고.”

“전두환씨 내외는 저쪽 화엄실에서 줄곧 함께 지냈다던데?”

/ 97년 봄에 오해로 헤어진 연인이 2003년 가을에 다시 만나서 백담사에 머물면서 나누는 대화의 내용입니다. 절이라는 배경과 아직 남아있는 감정이 느껴지는 대화로 인해서 왠지 모르게 설레는 마음이 듭니다. 맨발이라는 것도 그런 감정을 더 부풀리는 한 요소입니다.

  • “비슷하지 뭐. 가끔 잡지사 일 거들어주고 청탁 들어오면 소설 쓰고 여유가 생기면 혼자 여행 다녀오고.” / 소설의 주인공인 윤수가 뭐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답하는 내용입니다. 제가 꿈꾸는 삶이 저런 삶이라고 조용히 고백해 봅니다. 한량의 삶입니다. 자신이 가진 작은 재주로 독립적으로 사는 삶은 정말 달콤해 보입니다. 물론 그의 연애나 가치관은 별로라고 생각합니다만.

씁쓸한 문장

  • 늘 그리워 하지 않아도 언젠가 서로를 다시 찾게 되고 그때마다 헤어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관계가 있다./ 이 소설은 타이밍을 놓친 남녀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저런 정취를 모른다면 윤대녕 소설에 재미를 느끼시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는 문장

  • 13년, 백담사, 로맨틱, 성공적

보태는 문장

  • 강원도 인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곳에서 보낸 2년이 떠올랐습니다. 올 봄에 인제를 방문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공기는 필요 이상으로 맑고 산세가 험한 곳입니다. 물론 봄에도 조금 춥습니다. 추천 메뉴는 황태 해장국입니다.